칼빈은 제한속죄 교리가 우리를 게으르고 나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화에 더욱 힘쓰게 만듭니다. 성화는 인간의 노력과 의지와 결단을 포함합니다. 칼빈도 그것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대속의 죽음은 모든 죄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택한 백성만을 위한 것입니다.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보편구원론' 또는 알미니우스주의인 '보편속죄론'에게 길을 열어줍니다. 칼빈은 누가 택자인지 이 세상에서 아는 것은 불가능함을 강조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죄함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반응하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즉 그것은 ‘죄사함(칭의)과 성령세례(중생)를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은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글이 긴데 다 읽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도 맥돌이, 맥도날드에서 죽치고 책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을 시키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교회들에게 해를 미치는, 그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이단 문제를 다루게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일을 맡기시고 계십니다. 초기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일을 많이 하였으므로 칭찬도 많았고 박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방향을 바꾸시게 하시더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칭찬 듣고 박수 받게 하는 일을 시키시지 않습니다. 일마다 이 시대의 정통이고 주류이신 유명한 분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연구하도록 매일 맥돌이가 되게 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의 영감을 받
어제 12시간 동안 운전했습니다. 미국 미시간에서 카나다 국경을 넘어 4시간 운전해서 나이아가라 폭로로 갔습니다. 외딴 선교지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의 아내와 따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여기 미시간에 살다보니 귀한 손님이 오실 때 종종 가게되는 곳입니다.운전이 이상하게 꼬여 국경을 도합 4번 넘게되었습니다. 처음 미국에서 카나다로 넘어 갈 때에는 수월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네비를 잘못 쳐서 3시간 이상 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아니었습니다. 폭포보다 30분 정도 아래에 있는 버팔로라는 곳, 다시 미국 동부로 넘어가는 국경이었었습니다.미국 쪽 나이아가라 폭포를 먼저 보고 카나다로 다시 넘어 오기로 맘 먹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쪽 국경 직원은 카나가 국경 직원과 달리 무척
매일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고 있습니다. 지금은 3권을 읽고 있는데, 3권의 5장은 천주교의 연옥, 면죄부, 죽은자를 위한 기도 등을 다룹니다. 6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거룩과 성결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우리를 정결하게 만드셨으므로, 추악한 죄로 우리 자신을 다시 더렵혀서는 안된다고 매우 강조합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How then do I keep myself holy and clean?그러면 어떻게 나를 거룩하고 깨끗하게 유지하지?칼빈은 복음의 효력이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하여 영혼 속에 자리하고 있는 전 인격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 만족에 빠지거나, 죄를 변명하지 말고 인생의 종점을 향하여 끝까지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9장에서 자신이 장차 가게 될 영원한 내세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저는 종교개혁자의 진정한 힘이 자기 목숨보다 영원과 내세를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신앙에서 나왔음을 느낍니다. 신학 지식이 칼빈의 최고의 힘이 아니었습니다."내세의 삶에 비하면 현재의 삶은 무시해도 무방할 뿐 아니라, 완전히 멸시해야 한다. 하늘이 우리의 고향이라면, 땅은 타향임이 틀림없지 않는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곧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세상은 무덤이 아니고 무엇이냐?육신에서 잠시 놓이는 것이 곧 완전한 자유를 얻는 것이라면, 육신은 감옥이 아니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면,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 것은 불행이 아닌가? 세상을 작별할 때까지
칼빈의 를 보니, 칼빈의 힘은 성경의 말씀이었습니다. 칼빈을 보니, 진정한 힘이 성경을 가까이 하는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자신의 존재와 인격을 드러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 "성령의 영감"을 받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과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저술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성령의 특별하신 역사하심으로 그 사람에게 이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말하고 기록하였으나, 그의 마음에 와 있는 내용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성경이 기록될 때에 성령께서 그 특별한 사람들에게 그 같은 '감동'과 '영감
칼빈은 그냥 실력있는 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칼빈은 속사람이 잘 갖추어진 진정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설명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진정으로 자신의 행위의 교만을 버릴 것을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우리가 겸손하게 되는 방법은 철저하게 가난하고 부족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자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기가 아직 무엇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것을 겸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우리의 의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함께 가진 사람들은 파멸적인 위선을 가르치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3.12.6)칼빈의 인격과 속 마음이 묻어 나오는 이런 내용들이 그의 에 자주 나옵니다. 칼빈은
3권 20장에서 칼빈의 방언에 대한 두 번째 언급을 접했습니다. 이전에 방언이 언급되는 딱 한 문장을 보았는데, 오늘은 조금 깁니다. 총 4권 20장으로 구성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대작에서 방언에 대한 언급이 이 정도로 작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기독교의 방언 은사에 대한 이해에 논란이 종교개혁 당시에는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기독교가 출범되는 되던 초기에 잠시 교회에 존재하였으나, 곧 바로 사라졌으므로 전혀 논란이 되지 않았습니다.고린도전서 12장의 성령이 교회에 주시는 은사의 목록에는 방언과 방언 통변의 은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약 2년 후에 기록된 로마서 12장의 은사 이야기 속에는 예언은 있어도 방언이 없습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예언의 은사와
오늘도 우리 동네 맥도날드에 왔습니다. 제가 날마다 이곳에 온다고 하니, 햄버거 많이 먹고 미국형 성인병 걸릴까 걱정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햄버거 일년에 세개도 안 먹습니다.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할 때만 부득이 길가에서 한 두번 먹는데, 그때는 버거킹으로만 갑니다. 버거킹에 가서 1번 셋트를 치즈와 피클 빼고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맥도날드에서는 커피 라테를 저지방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마십니다. 맥도날드에만 와서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의 의지와 테아블이 저에게 맞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맥도날드 매장의 사장들은 매장의 겉 모양은 통일되게 꾸미지만, 내부는자기 개성대로 합니다. 도시마다 맥도날드 매장들이 도처에 있어도, 제 몸에 맞는 탁자와 의자, 그리고 눈을
제가 요즘에는 방언, 예언, 방언 통역 은사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은사주의, 신사도, 오순절 영성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판단됩니다. 문론 거기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으나, 어차피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목회자들이 다 함께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에 붙들리심을 받은 '남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7)두렵고 예민하고 무서운 말이지만, 성경적인 사실이니 말 못할 내용도 아니라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에서 보았던 많은 사람들 가
힘든 몸으로 맥도날드, 저의 도서관의 가장 안쪽의 자리에 와서 앉았습니다. 문제가 온 차를 수리하겠다고 차 밑으로 기어서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는 가운데, 허리에 문제가 왔습니다.저는 허리 문제를 30년 넘게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 번 응급실에 실려가서 정맥에 놓는 주사를 여러 대 맞고 간신히 움직여 지기도 했고, 2년 전 한국에 갔을 때에는 너무 증세가 심하여 허리 근육 속으로 약 15 cm 정도 직접 찔러서 약물을 넣는 주사를 맞고서 일정을 쫓아다니가도 했습니다. 이것 말고도 다른 문제들이 더 있습니다. 모두 3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진 저의 인생의 눈물 베인 이야기들입니다.저는 총신대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할 때, 그 무렵에 막 출시된 대웅 한약탕기를 기숙사 창틀에
구원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대속의 죽음을 영적으로 깨다는 것을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고 한다. 그때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사해져서 의인이 되어 구원 받는다고 한다.그래서 그들은 자칭 “의인”이기 때문에 죄의 회개가 필요 없다고 한다. 이 영적 깨달음은 피동적 깨달음이고 인식적인 깨달음일 뿐이다. 즉 신비적인 하나님과의 영의 합일이다. 이 깨달음을 그들은 “구원의 확신”이라고 부른다.그들은 결코 부활을 강조하지 않는다. 영적으로 이미 구원 받았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무슨 짓을 해도 , 심지어 살인하거나 자살한다 해도 자기의 구원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구원파는 현대판 영지주의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그들의 삶속에는 의지적인 회개와 성화의 삶이 빠져있
이제 「기독교강요」 3권 16장 에 도착했습니다. 칼빈은 정말 능력있는 신학자입니다. 그의 모든 사고와 생각은 언제나 성경과 함께 갑니다. 칼빈의 중요하다 싶은 모든 말들은 전부 성경 구절들로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인용되거나, 성경 구절들이 괄호로 표기되어 있습니다.신학은 반드시 성경으로부터 나와야 함을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제시하지 못하는 신학자들의 말은 그 자신의 사색입니다. 신학 이론은 언제나 성경의 강물에 젖어서 나와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신학자의 이론이 그 자신과 독자들의 신앙과 영혼에 해악을 미칩니다.정독하다가 잠시 멈추어둔 서철원 박사님의 저술 「교의신학전집」의 특징도 중요한 모든 부분마다 관련 성구들이 풍성하게 괄호안
들어가는 말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비록 사본이기는 하지만 헬라어(히브리어) 원문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성경을 번역하는 자들은 성경 원문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성경 번역자들이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원문의 의미를 번역 성경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이창모 목사의 성경 오역(誤譯), 오석(誤釋) 바로잡기(2)"에서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번역이 생기기도 하고, 조금 후에 다룰 “내 아버지여 할 만 하시어든”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하면서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코미디 같은 번역이 생기기도 한다.우리는
세상에서 유행하는 ‘긍정적’ 사고의 환상에 젖은 사람들은 미래가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이 옷처럼 낡아져서 언젠가 끝이 난다고 예언하고 있다. 세상은 편리해지고 풍성해지기는 하지만 점점 타락하며 쇠퇴해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지구가 종말을 맞을 마지막 날까지 세상은 계속 타락하고 부패해 갈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서 질서와 권위가 부정되고 파괴되어갈 것이다. 과거에는 죄였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죄가 아닌 것이 된 것처럼, 지금은 죄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미래에는 죄가 아니게 될 것이다.세상의 타락과 멸망은 이미 예기된 것이지만, 문제는 교회도 타락해 간다는 것이다. 교회가 타락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지만, 그 원인과 해결 방
글을 시작하며“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는 말씀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도 없고, 초대교회 이후 지금까지 오고 오는 모든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성경 말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요3:16만큼이나 이 말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교회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읽혀지는 개역개정(개역한글)에서 행1:8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은 오역되었으며, 또 “권능을 받고”는 오석되어 대부분의 교회에서 잘못 적용되고 있다. 이렇게 행1:8은 너무나도 중요한 성경 말씀임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오역과 오석으로 인해 눈치
한국교회는 전도나 선교에 있어 매우 열정적이라 선교는 ‘세계 2위’이고 전도는 최봉석 목사부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인 노방전도의 인기와 대중 전도 집회 그리고 군선교(훈련소의 진중세례식) 그리고 사영리 및 각종 전도 프로그램 등으로 한국교회의 성장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그러나 이러한 전도 방법들을 개혁주의 교회도 받아들어 왔지만 이제는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물어야 할 시기이다. 즉 이러한 전도 방법들이 사실은 ‘복음주의’나 ‘알미니안주의’가 신학적 배경이고 ‘인본적 방법’이 아닌지를 물어야 한다.미국의 풀러신학대학원 교회성장학 교수로 유명했던 피터 와그너는 ‘복음전도의 3가지 접근방식’으로 현존, 선포, 설득전도를 주장했는데 그동안의 한국교회의 전도는 주로 ‘선포’이고 10년 전부터는
이혼은 성경에서 금하고 있습니다 (마 5:32; 마19:4-6). 그러나 요즈음 이러한 또는 저러한 이유로 이혼을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키려고 상황 윤리를 따지고 있고, 세상은 이혼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보고 싶어 합니다.그러나 이것은 세상풍조와 사회법을 하나님의 법, 즉 성경 말씀 위에 두려고 하는 악한 시도 입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타락하기 전 하나님,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삼각관계 속에서 누구도 변개치 못할 세 가지 규례를 설정 하셨습니다. 1)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인 안식일 제도, 2)남자와 여자의 관계인 결혼 제도, 그리고 3)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인 노동제도입니다.결혼의 근본은 하나님의 언약(규례) 가운데로 들어왔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것입니
중세 암흑기 동안 로마가톨릭은 바벨론에서 탄생한 로마교의 가르침을 뒤섞어 넣으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살해했다.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이라고 판결받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받아 죽어간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자신이 양심적으로 믿는 신앙 때문에, 로마교회가 강요하는 가르침과 우상숭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성서를 높이 쳐들고 죄를 대항해 피로써 항거한 5천만 명의 그리스도인 남녀가 로마교황권에 의해 살상되었다."-J.M. Carroll, The Trail of Blood"로마교회는 일찌기 인간 가운데 존재했었던 어떤 제도보다도 더 많은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 역사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가진 사람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에 대한 우리의 태도1)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의해 우리의 성품이 형성되고 행위가 조절되고 바로 잡아질 수 있어야 한다.주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을 때 사단(악한자)의 어떤 시험(유혹)이 있을 때에라도즉각적으로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주장 하지 않을 때에는 내 육신의 정욕과 죄악이 나를 유혹하고 지배해 버린다.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 악과 대항하여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나니…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이 본문에 대한 우리의 실행,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