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1602)는 영국 청교도주의의 아버지로, 그리고 뉴 잉글랜드(현재의 미국의 북동부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 회중교회 신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Lloyd-Jones 2016, 255: Jeong 2021, 135, 155, 184). 제네바로 망명하여 칼빈에게서 신학을 배운 후 장로교회 설립을 위한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Knox와 달리 퍼킨스는 칼빈의 책들 보다는 베자와 우르시누스의 책들을 통해 신학을 더 많이 배웠다 (Beeke & Jones 2012, 120). 스콜라주의를
영국의 종교개혁을 대표하는 두 사람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 사람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은 선구자이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존 낙스이다. 또 한 사람은 잉글랜드 청교도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윌리엄 퍼킨스이다 (Kim 2020, 221; Won 2018, 45).낙스와 베자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들이 있다: 첫째, 스코틀랜드 태생인 Knox는 핍박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했을 때 제네바의 칼빈에게 찾아갔고, 그는 거기서 칼빈과 함께 머무르면서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배웠다
우르시누스에게 표현이 조금 다른 형태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135번에서도 확인된다.“135 Q: Why is it necessary that the satisfaction and righteousness of Christ be credited to us in order for us to be righteous before God?A: Because God, who is always just and true, wants to receive us into his covenant of grac
(1561-1562), (1561-1562), (1563)을 저술한 우르시누스도 (Zacharias Ursinus, 1534~1583) 베자와 함께 중세의 스콜라주의를 개신교 신학에 도입한 선구자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Letham 2009, 101). 개신교 스콜라주의의 선구자 베자가 칭의의 원리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설명한 것처럼 우르시누스 역시 그렇게 칭의를 설명했었을까? 1561년에 우르시누스가 작성한 36번을 보면, 그에게 표현이 다른
이 전에 살펴본 것처럼, 칼빈과 그 이전 종교개혁자들에게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사상이 주장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칼빈 이후의 종교개혁자들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사상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칼빈과 다른 칼빈주의’ 또는 ‘칼빈과 대립되는 칼빈주의’라고 표현되고 있는 종교개혁자들 사이의 신학의 불연속성 이슈가 사실이라면, 칭의에 관해 칼빈과 칼빈 이후 신학자들 사이의 차이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Seo 2016, 100).칼빈과 칼빈 이후 개혁자들 사이에 발생된 신학적 불연속성의 주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
종교개혁자들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이론에 대해 연구할 때, 칼빈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신학자들과 그 이후의 신학자들을 구분하여 연구해야 한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을 완성했다고 평가되는 칼빈과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유럽의 교회에 정착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던 칼빈 이후의 신학자들 사이에 신학의 불일치성 또는 불연속성이 있다는 지적이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Kendall 1979; Bell 1986; Torrance 1984; Seo 2016, 100). 종교개혁을 완성한 칼빈의 신학과 칼빈의 신학을 계승한 그
종교개혁을 완성한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에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두 가지를 연구해야 한다. 첫째, 칼빈 이후에 자리잡은 구원을 위한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행위언약 신학과 유사한 내용이 칼빈에게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지지하는 모든 학자들은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정하면 행위언약도 부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필립 멜랑히톤 (Philip Melanchthon, 1497~1560)은 종교개혁의 선구자 루터의 제자였고 동시에 루터의 종교개혁을 도왔던 가장 열성적인 조력자였다 (Mark 2021). 과연 멜랑히톤에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유사한 표현이나 신학적 아이디어가 있었을까? 멜랑히톤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의 연관성을 연구하기 위한 객관적인 자료는 아우스부르크 신앙고백이다. 아우스부르크 신앙고백은 루터의 종교개혁 신학이 로마교회의 신학을 반박하는 이유를 독일의 황제 카를 5세에게 설명하기 위해 멜랑히톤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데오도르 베자가 루터파 신학자 플라시우스(Flacious)의 책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능동적 순종-수동적 순종으로 구분하는 방식을 배웠고, 그리고 베자에 의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이론이 개혁신학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Steinmetz 2001, 118; Shin 2016, 73). 베자가 루터파 신학자의 책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을 배웠다고 하니, 독일의 개혁자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신학의 원조로 지목되기도
(독자님들께서 영어로 작성된 긴 글의 일부를 한국어로 옮긴 글임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울리히 쯔빙글리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 ~ 1531)는 독일의 개혁자 루터와 비슷한 시기에 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하여 개혁파 신학의 선구자가 된 인물이다. 쯔빙글리는 루터의 모든 책들을 읽었으나 자신이 루터의 제자로 불리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다. 쯔빙글리는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실제로 임재한다고 주장하는 루터의 성만찬 신학을 정면으로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