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에 대한 우리의 태도1)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의해 우리의 성품이 형성되고 행위가 조절되고 바로 잡아질 수 있어야 한다.주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을 때 사단(악한자)의 어떤 시험(유혹)이 있을 때에라도즉각적으로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주장 하지 않을 때에는 내 육신의 정욕과 죄악이 나를 유혹하고 지배해 버린다.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 악과 대항하여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나니…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이 본문에 대한 우리의 실행, 책
주기도문의 여섯째 청원의 후반절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 이 후반절을 일곱째 청원(별개의 간구)으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이것을 별개의 간구로 보고 두 간구로 구분하는데,"여섯째 간구(시험에 들지 말게 할 것)는 미래의 죄에 대하여 일곱째 간구(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이미 범 한 죄로부터 구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라 했다. 반면에 죤 칼빈 (John Calvin)은 이 청원의 전반절과 후반절을 한 가지로 보며 오늘날 여러 학자들도 이것을 한 간구라고 주장한다. 메츠거(Metzger) 교수는 이 두 절을 "우리를 지키심(Protection)" 이라는 하나의 범주 속에 넣을 수 있다고 보았다.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마태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Lead us not into temptation)여섯째 청원은 우리의 청원(We-Petitions)의 마지막 청원으로 마태복음에는 전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와 그리고 후렴으로 나오는 후절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간구로 연결 되지만 누가복음에는 전절만 기록되어 있다. 이 마지막 청원의 전반부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 청원의 핵심적인 단어가 되고 있는 "시험"(πειρασμος)은 무슨 뜻인가또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 하고 있는가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1) 주기도문에서 이 "시험"이란 말을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의미는 무엇인가?주기도의 마지막 간구에 나오는 "시험"은 근본적으로,사단 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간구(The Sixth Petition)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 이 간구의 위치는 우리의 청원(We-Petition) 마지막에 있다. 우리의 청원(We-Petition) 다섯 번째 청원에서 다루었던 용서의 간구는 지난 과거의 죄의 해결함을 위한 것이지만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하는 간구는 미래에 범할 수 있는 죄의 예방이고,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현재 당하고 있는 악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이다.우리를 위하는 세 가지 간구 가운데 첫째 간구인 매일 양식(Daily Bread)은 육적인 것임에 대하여, 둘째 간구는 매일 용서(Daily Forgiveness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 모든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충만한 능력 안에서 예수님 이 우리를 용서 하신 것을 배울 때 가능하다.1) 끊임 없는 용서를 해야 한다.베드로가 용서에 대하여 주님께 질문을 했을 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만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 이라도 할지니라" (마 18:22)라고 하셨다. 이어서 빚을 탕감 받는 자의 용서를 비유로 설명하셨다.2) 진실된 마음으로 용서해야 한다."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회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 : 35).진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 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진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막 6:9-13)왜 죄 용서를 구하지 않는가. 죄 용서가 절대적이고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죄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 1) 죄 용서에 대한 확신(Assurance)의 부족 때문이다.우리는 죄가 우리 양심과 하나님의 비망록에서 지워진다는 사죄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사죄의 확신의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막 6:9-13) 왜(Why)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1)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기도는 모든 기도의 출발이고 신앙생활 성화의 기초이고,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을 매일 구하듯 일용할 용서(Daily Forgiveness)도 매일 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죄라는 단어는 이미 지적 한대로 마태는
주기도문의 다섯째 청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과 우리가 우리 이웃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여기서 전자가 앞서느냐? 후자가 앞서느냐? 전자가 후자에 의존하느냐? 후자가 전자에 의존하느냐? 하는 질문이 나온다. 다시 표현하면 수직 관계와 수평 관계 상호간에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다섯째 청원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다섯째 청원은 근본적으로 이미 용서 받은 청원이다. 말하자면 이 청원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 받은자가 다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할 때 어떤 자세로서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기도는 어디까지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자의 권리나 조건을 강조하고 있다. 그
주기도문의 다섯째 청원에서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는 "죄의 용서"에 관한 간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죄의 용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제 1의 축복이며 처음 자비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죄를 못 본체 하시고 그 죄의 상처를 치료시키시며 죄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죄 값을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지불하시므로 그 댓가로 우리를 양자 삼으시고 성화(Sanctification) 시키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왕관을 씌우실 것이다.1)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누구이신가?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만왕의 왕의 특권이시다."오직 하나님 한 분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라고 하였다.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직 채권자만이 빚을
주기도문의 다섯째 간구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이다. 이 간구는 죄 용서(죄의 사유함)에 대하여 가르친다. 다섯 번째 청원의 헬라어 성경은 "과거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반드시 용서해 주지는 못했으나, 이후로는 그들을 용서해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그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인간에게 가장 실질적이고 절실한 필요는 "일용할 양식"(Daily)을 구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적인 필요는 죄를 사함 받기 위한 간구이며 이것은 "일용할 양식"과 함께 다섯째 간구는 인간편에서 참으로 현실적인 것이다.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는 간구는 신앙생활의 시작의 기초이고 영적 거듭남의 원천이고
1. '오늘날'(날마다)이란 의미는 무엇인가?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 마태의 주기도에는 '오늘날'을 "세메론”(σημερον : 오늘, today)이란 부사를 사용했고, 누가의 주기도에는 (눅 11 : 3) "카세메란"(καθημεραν : 날마다, each day)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날마다"(each day 또는 every day)는, 사실상 "오늘"(today)의 반복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날마다"와 "오늘날"이란 오늘 하루의 삶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오늘이란 삶을 살아야 한다. "어제"(yesterday)는 이미 지난 오늘이고, "내일"(tomorrow)은 다가올 오늘 이다. 성경은 오늘의 중요함에 대한 교훈들이 있다. 구원의 시간은 오늘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강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요소들1) 우리의 소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살피라.이것은 "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소원을 주신다. 그 소원은 거룩한 소원, 아름답고 좋은 소원, 바람직한 소원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그의 뜻을 따라 소원을 일으켜 주신다."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시 37 : 4,)"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 : 13)우리는 무엇을 향해 소원이 일어나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 소원은 내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을 따라 일어나는 소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방식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인정받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할까? 라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1)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My Lord, My God)으로 믿는 일을 할 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자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 했다."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라"(요 6:40)"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the work of God」이니라"(요 6: 29)이것은 모든 신앙의 총화이며, 두 돌판의 축약형이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장 능동적인 순종
주기도문의 세 번째 간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다. 이 간구는 앞의 간구와 함께 하나님에 관한 간구(Thou-Petitions)중 마지막에 있고 근본적으로 앞의 두 간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에 관한 간구 전체의 마무리가 될 수 있다.이 간구는 둘째 간구의 반복, 즉 둘째 간구가 실현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의 실현 없이는 이름을 거룩히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은 서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용할 양식이나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거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원을 바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의 실현이어야 하기 때문에 이 기도는 주기도문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핵심적인 간구 이기도하다.
주기도문의 둘째 간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이다.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 3 : 2)고 외치신 예수님의 전도의 촛점은 하나님 나라였고 전도의 목적도 하나님나라 건설이었다. 유대인들은 기도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주기도문의 둘째 기원은 가장 짧지만 중심적이고 포괄적인 기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에 덧붙여진 송영에서도 하나님에 관한 세 가지 기원 중 "나라" 만은 다시 한 번 결론에서 언급된다. 참되게 헌신하는 영혼은 "나라이 임하옵시며"(Adveniat regnumtuum)라는 이 간구에 진심으로 참여해야 한다.1.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였을 때 그 말의 뜻은 무엇인가?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 : 9)한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을 대표 하듯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대표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이름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알고 사용해야 한다는 중요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마틴 루터는 "이 땅에서 최고로 많이 희생을 당하는 것이 주기도문이고 그보다 더 희생 당하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했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름의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며, 주기도문에서도 그 의미를 모르고 "이름이 거룩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할 때, 그 기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1. 신약 성경에서 "이름이 거룩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그는 하나님이시
주기도문은 서문을 제외하면 나머지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1) 기도의 대상2) 간구들3) 결론기도의 원형(Prototype)이며 기도 중의 기도라 할 수 있는 주기도문의 간구들은 이미 서론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일곱 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첫번째 간구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태 6장 9절)라고 시작 한다. 주기도문의 간구들(Petitions)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 할수 있고, 각 부분은 다시 세 요소로 나누어진다. 처음 세 가지 간구들은 하나님께 관계된 기원(Thou-Petitions)이고, 다음의 세 가지는 우리 자신의 일상적인 관심사와 관계되므로 우리에 대한 기원(We-Petitions)이라 할 수 있다.첫번째 간구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
예수님은 주기도문를 받으시는 분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하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1) 하나님 아버지라는 칭호는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신관을 보여준다.주기도문의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이라는 간구에 이어서 "우리 아버지" 라고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른 것은 역사적으로 오신 예수님의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이다. 아버지라는 말은 가정의 언어이다. 아버지라는 말은 자녀가 아버지나 노인들에게 존경을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애칭이다. 이처럼 익숙하고 평범한 표현을 하나님에 대해 사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아빠 혹은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대단한 불경죄에 해당되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시작하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주기도문의 모든 간구의 가장 적절한 전제가 되며 이 기도의 첫 부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리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 누구이신가를 보여준다."양자(養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1) "하늘에 계신"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배우게 하는가?(1) 하나님은 무한(無限)하시며 유한(有限)한 인간은 그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함을 배우게 한다.하나님의 존재의 무한을 공간 관계에서 말할 때 무소부재(無所不在:GOD IS EVERYWHERE-OMNIPRESENT)하시다고 한다. 하나님은 어떠한 의미에서도 공간에 한정(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