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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에서 죄의 용서에 관한 간구의 의미
김석원  |  cccj2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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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5  02: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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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 목사가 여러 교회들을 순회하면 주기도문의 내용과 정신을 강의하는 주기도문 아케데미의 모습

주기도문의 다섯째 청원에서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는 "죄의 용서"에 관한 간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죄의 용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제 1의 축복이며 처음 자비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죄를 못 본체 하시고 그 죄의 상처를 치료시키시며 죄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죄 값을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지불하시므로 그 댓가로 우리를 양자 삼으시고 성화(Sanctification) 시키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왕관을 씌우실 것이다.

1)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누구이신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만왕의 왕의 특권이시다.

"오직 하나님 한 분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라고 하였다.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직 채권자만이 빚을 면제 할 수 있다.

2) 죄를 용서하는 권세에 대하여

성경은 성직자들에게 위임된 범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성직자들은 권위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죄를 면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언적으로만 할 수 있다. 성직자들은 죄로 상한 심령들에게 용서의 약속을 적용시킬 특별한 직분과 권위를 가졌을 뿐이다. 성직자는 자기 자신이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통보자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사람이 죄 용서 받았음을 선언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직자 자신의 이름으로 권위적으로 죄를 용서 할 수 있는 권능은 절대로 수여 되지 않았다.

3) 죄의 용서에 대한 정의는?

(1) 죄의 용서란 죄악을 제거하는(take away)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욥은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욥 7 : 21)라고 하였다. 죄의 용서란 히브리어로는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무너져 내리려 할 때 다른 사람이 와서 그것을 들어 올려 주는 것을 인용한 비유이다. 이처럼 죄의 무거운 짐이 우리에게 얹혀져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심으로써 양심으로부터 이것을 들어 올려서 그리스도 위에 얹혀 놓으신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 : 6)라고 하였다.

(2) 죄의 용서란 지은 죄과를 말소해 버리는(blot it out)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는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사 43 : 25)라고 기록하였다. 도말한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채권자가 돈을 지불했을 때 빚을 말소해 버리고 그에게 채무소멸 증서를 주는 채권자를 암시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죄를 용서 하실 때, 그는 빚을 말소시키고 그 위에다 그리스도의 피의 붉은 줄을 긋고 부채 장부에 사선을 그으신다.

(3) 죄를 용서 한다는 것은 이것을 덮어주는(to cover it) 것이다.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시 85 : 2)라고 하였다. 이것은 언약궤를 덮고 있는 속죄소에 예표 되었는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덮어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4) 죄를 용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깊은 바다 속으로 던져 넣는다(to cost into)는 뜻이다.

이것은 죄들이 우리를 심판하러 일어나지 못하도록 눈에 보이지 않게 매장해 버리는 것을 함축한다.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 : 19)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시 떠오르는 콜크 병마개처럼이 아니라 밑바닥에 가라앉은 납덩어리처럼 던져 버리는 것이다.

(5) 죄를 용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들을 구름처럼 흩어지게(Scatter) 하신다는 것이다.

"네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사 44 : 22)라고 하였다. 죄의 구름, 즉 중간에 끼어드는 구름인데 이것을 하나님의 얼굴빛이 비춰 들어오도록 흩어버리는 것이다.

4) 죄의 용서가 포함하고 있는 성격은 무엇인가?

(1) 죄의 용서는 사망을 면하게 해준다. 죄의 댓가는 무엇을 가져오는가? 죽음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 : 23)라고 기록한다. 죄의 댓가는 분량의 대소와 관계없이 죽음에 이르는 것이며 따라서 죄 용서함이 필요하다. 죄의 용서는 영생을 선물로 가져다준다.

(2) 죄의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이고, 은혜로 받는다. 하나님은 채권자가 채무자를 댓가 없이 용서할 때처럼 용서 하신다. 우리의 기도도, 눈물도, 또는 선행도 용서를 매입 할 수없다. 마술사 시몬이 성령의 은사를 돈으로 사고자 했을 때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 지어다"(행 8 : 20)라고 베드로가 말했다.

(3) 죄의 용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는다. 그리스도의 피는 용서를 당연히 받게 하는 외부적인 원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 1 : 7)라고 하였다. 무한한 가치를 가진 주님의 피 외에는 아무 것도 용서를 산출 할 수 없다.

(4) 죄는 회개하기 전에는 용서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눅 24 : 47)라고 하였다. 회개 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모두 용서 받기 이전에 일어나야 할 일 들이다. 하나는 통회(Contrition), 고백(Confession), 그리고 회심(Conversion)이다. 

회개의 첫 번째 요소는 통회(Cintrition)이다. 통회 또는 아음이 상함에 대하여 성경에는 "다 각기 자기 죄악 까닭에 골짜기 비둘기처럼 슬피 울 것이며"(겔 7 : 16)라고 하였다. 이 통회 또는 마음의 찢어짐은 때때로 가슴을 치는 것으로 표현되고(눅 18 : 13), 때로는 눈물로 침상을 띄우는 것(시 6 : 6)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모든 겸비가 다 통회는 아니다. 아합이 스스로 겸비 하였을 때 그의 옷은 찢었으나 그의 마음은 찢지 않았다.

회개의 두번째 요소는 고백(Confession)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시 51 : 4)라고 하였다. 고백은 침해를 당한 당사자인 하나님에게만 행해져야 한다. 고백은 억지 없이 자유로워야 하고, 거리낌 없이 솔직해야 하며, 위선 없는 진심이어야 한다. 이것은 죄 용서의 길을 열어준다.

회개의 세번째 요소는 회심(Conversion)이다. 이것은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겔 18 : 31)라고 하였다. 탕자는 방탕 생활의 길에서 돌아섰을 뿐만 아니라 일어나서 그의 아버지에게로 갔다(눅 15 : 18). 이 회개는 용서로 통하는 즉각적인 길이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 하시리라"(사 55 : 7)고 하였다. 회개는 조건이지 원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회개한다고 용서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개 없이 용서 하시지도 않는다.

(5) 죄의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죄책과 형벌을 면제하신다. 죄책이 면제될 때 형벌도 역시 면제된다. 하나님의 자녀는 용서받은 후에도 하나님의 부성적인 노여움을 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의 법정적인 진노는 제거 된 것이다. 비록 매를 때리실지는 몰라도 그래도 저주(Purnishment)는 제거 하신다. 징벌이 성도들에게 닥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멸망은 오지 않는다.

(6) 죄의 용서 후에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나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 "내가 저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 : 12)고 하셨다.

(7) 죄의 용서는 죄의 분량과 대, 소에 관여치 않는다. 하나님은 빽빽한 구름 같고, 주홍 같이 붉으며, 먹과 같이 검고 흉악한 죄까지라도 말소 시키신다(사 44 : 22)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임금은 그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그의 채무자를 용서해 주었다(마 18 : 27).

(8) 죄의 용서 가운데 용서 받지 못하는 죄들(Unpardonable Sins)이 있다. 이러한 죄들을 성경은 첫째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 ; "성령을 훼방 하는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마 12 : 31), 둘째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눅 12 : 10), 셋째로 성령을 욕되게 하는 죄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히 10 : 29)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고, 욕되게 하는 죄는 용서 받을 수가 없다. 하나님 안에 이것을 용서할 만큼 충분한 자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 죄를 범한 자가 용서를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9) 죄 용서 받음에 있어서 미래의 죄는 그것들을 회개 할 때 까지는 현실적으로 용서 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 하실 때 모든 죄를 용서 하신다. "그들의 내게 범하여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다."(렘 33 : 8),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골 2 : 1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시 103 : 3)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사하신다고 말할 때 이것은 과거의 죄에 관한 것으로 이해 해야 한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장차 지을 죄는 예수님의 공로 가운데 용서의 효력이 포함되어 있지만 미래의 죄는 그것들을 자신이 통회하며 회개할 때 까지는 현실적으로 용서 받은 것이 아니다. 죄가 범해지기도 전에 용서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만일 우리의 과거의 죄들과 미래의 죄들이 한꺼번에 용서 받는다면 그러면 죄의 용서를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무엇인가? 과거의 죄는 물론 미래의 죄도 용서 받았다는 견해는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를 빼앗아 가며 무효로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는 매일의 죄를 위해 중보하시는 대변자이시다.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 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10) 죄의 용서가 있기 전에 우리 편에서 하나님을 믿는 태도가 선행 되어야 한다. 신앙은 필연적으로 죄 용서를 선행한다. "…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 : 43)고 하셨고,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 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좌를 범하였을 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 5 : 15)고 하였다.

(11) 죄의 용서는 성령에 의하여 위임된 용서이다. 성령님은 죄 용서의 사실을 한 영혼에게 알게 하실 때에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하신다. 그 하나가 내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가 외적 방법이다. 이것은 인간 구조의 이중적(二重的) 본성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내적 방법이란 곧 구원 받은 심령 속에 성령님이 내주(內住 : Indewelling) 하셔서 감동과 영적 느낌으로 알게 하신다. 그러나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고개를 들고 일 어설 때가 많다. 성령님은 외적으로 교회의 거룩한 권위가 위임된 형제 자매들을 통하여 사죄의 사실을 선포하게 하심으로 용서의 사실을 알게 하신다.

(12) 죄의 용서는 교제(fellowship)에 의한 용서이다. 구원 받은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들과 교제 할 수 있는 자리에 참예 해야 한다. 그 교제는 생명의 빛 안에서 갖는 참된 교제이다.("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요일 1:7). 영적 신앙의 중요한 표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교제 없는 곳에 승리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현재적 교제가 있어야 하듯이 형제와 형제 사이에도 서로 용서하는 것이 필요 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성도의 교제가 회복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 할 것이니…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만일 내가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고후 2 : 7-10)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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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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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준석 2018-03-15 07:13:11

    매우 훌륭한 글이며 복음의 핵심을 잘 설명하는 글이다. 그런데 두가지 짚을 점이 있다. 1. 죄의 용서는 반드시 성자의 유화사역(propitiation)에 근거한다는 진리를 더 자세히 언급해야 된다. 칭의와 칭의의 근거야말로 복음의 진수다. 2. "회개의 대가로 용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진리를 언급해야 된다. 회개 없는 용서는 없지만 용서를 통해 회개의 선물이 오는 것이지 회개의 결과로 용서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김석원 목사님은 내 생각과 동일하겠지만 이 글에서 자칫 독자가 오해할 소지가 있기에 추가적 설명이 필요하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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