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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장 11절)
김석원  |  cccj2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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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0  08: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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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날마다)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 마태의 주기도에는 '오늘날'을 "세메론”(σημερον : 오늘, today)이란 부사를 사용했고, 누가의 주기도에는 (눅 11 : 3) "카세메란"(καθημεραν : 날마다, each day)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날마다"(each day 또는 every day)는, 사실상 "오늘"(today)의 반복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날마다"와 "오늘날"이란 오늘 하루의 삶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오늘이란 삶을 살아야 한다. "어제"(yesterday)는 이미 지난 오늘이고, "내일"(tomorrow)은 다가올 오늘 이다. 성경은 오늘의 중요함에 대한 교훈들이 있다. 구원의 시간은 오늘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 에 있으리라."(눅 23 : 43)라고 하셨고,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눅 19 : 9)라고 오늘이 구원에 이르는 귀한시간임을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오늘에 완성된 자세로 살아서 오늘 주님이 부르시더라도 떳떳이 설수 있도록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눅 12 : 20)라고 하셨다.

어쩌면 오늘이 우리가 살게 될 마지막 날이 될런지도 모르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이상 더 오늘이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만나로 이스라엘을 먹이셨으며 그것을 하루하루 먹도록 하셨다(출 16 : 13-20). 매일의 만나는 당일에(오늘) 다 소비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누군가가 다음 날 아침에 조반은 어디서 먹을까 염려 하여 물었다면 "우리의 염려는 오늘 하루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만나를「오늘」내려 주셨다. 만일 우리가 오늘 먹을 빵이 있다면 장래를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불신 하지 말자"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내일의 염려는 불신이다. 그리스도인의 만나는 내일을 염려하지 않는 오늘에 허락해 주신다. 의식주와 삶의 여러 분제로 염려하는 자들 은 주기도문의 네 번째 간구와 함께 접목시켜 주시는 말씀인 "내일 일 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 : 34)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우리에게' (US)란 의미는 무엇인가?

주기도문 서론에서 밝힌 바 있지만 주기도문에서는 복수대명사 즉 "우리"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지 단수 인칭대명사는 발견할 수 없다.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우리에게 지은 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이러한 기도는 우리들 자신이 필요한 것과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것에 관한 간구와 중보 기도로 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이기적인 "나는", "나를", "나의"를 가지고 주님께 나오지만 주기도의 기도는 비이기적인 기도를 드리게 한다. 주기도문에는 후반부의 청원에만 우리라는 단어가 8회 기록되어 있다. 왜 우리는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복수형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함을 보여주신다.

다윗은 기도할 때 공적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시 125 : 4)

그는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쫓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라고 비록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로 시편을 시작하지만 그래도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그 시편을 끝 맺는다. 사도행전 여러 곳에 나타나는 사도들의 기도 역시 공적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 하옵시고 또 종들로(복수형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행 4 : 29).

예수님은 공적 정신으로 모범적인 기도를 드리신 분이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결핍과 불행에 대해서 그의 하나님이 그의 자비하심을 그들에게 베푸시도록 기도한다. 특히 성도들을 위한 공적 기도에 힘쓸 것에 대하여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 :18)라고 하였다.

예수님은「우리」를 위해 사셨고「우리」를 위해 마지막 십자가상에서「주여 저들을 용서 하옵소서」(저들은 우리도 포함된다.)라고 기도 하셨다. 네번째 청원에 "우리를"이란 의미는, 이기적인 거미와 같은 사람의 기도를 비이기적인 기도의 사람으로 바꾸게 해 주며 다른 사람들 의 유익을 위해 수정 같은 시냇물로 생기나게 해주고 황금 같은 태양빛의 햇살로 밝게 비춰 준다. 비이기적인 기도는 그의 기도로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둘러싼다.
 

3.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말 개역 성경에 "일용할"이란 말을 헬라어 성경에서는 "에피우시스"(επιούσιος)라 기록한다. 이것은 주기도문에만 나타나고 신약 다른 곳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낱말이므로 단정적으로 해석하기가 아주 어렵다. 주기도문의 근본 정신과 뜻을 혼돈하게 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두 가지 견해를 소개하고 싶다.

첫째 : "에피우시우스"(επιούσιος)는 전치사 에피(επι : 위)와 우시아(ούσια : 존재 또는 본질)의 합성어로서 "존재의 필수적 인 것"(necessary for existence)이란 뜻이다.

둘째 : 에피(επι)와 우산(ουσαν = ημεραν : 날)의 합성어로서 "오늘을 위한"(for the current day, today)의 뜻이다. "오늘을 위한 양식"과 존재 즉 "생존에 필요한 양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진다.

시간에 관해서는 내일이나 종말적인 미래가 아닌 "오늘"로 양식의 내용 및 분령에 관해서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 최소한도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개역 성경에 "양식"이란 단어는 헬라어 성경에 "아르토스"(αρτοτ : 양식)로 기록한다. 본문의 "톤 아프톤 헤-몬"(τον αρτον ημωυ)은 문자적으로 우리의 빵(Our Daily Bread)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하여 몇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 육신에 필요한 육적 양식이란 것이다.

칼빈이나 루터는 육적 양시이라는 견해를 가진다. 루터는 이 일용할 양식을 광범위하게 해석했고 "일용할 양식이란 육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인데 즉, 음식과 의복과 가옥과 가정, 전답, 가축, 금전 기타 여러 물건들과 배우자, 자녀들, 일꾼들, 또는 경건하고 진실한 지도자, 훌륭한 정부, 적당한 기후, 평화, 질서, 건강, 명예, 선한 친구, 믿을 만한 이웃 등을 말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아르토스"를 우리말 성경 에서는 "빵"(bread)으로 번역했다. 이것은 넓은 뜻으로서 식물 전체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에 공급되는 물질을 뜻한다. 주기도문의 넷째 간구에서 예수님은 본인 자신이 인간 현실에서 체험하신 바대로 인간의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도 육신에 소용되는 양식은 인간의 삶에 충분 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 조건임을 드러내 주셨다.

둘째 : 일용할 양식을 예수님의 성만찬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요 6 : 33-35)

이 양식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피와 함께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 : 35) 언급되므로 성례(Sacrament)를 위한 기도라고 했고 초대교회에서는 매일 성찬식(Daily Communion)에서 쓰여 지기도 했다. 성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참된 생명이 됨을 포함하기도 한다.

셋째 : 하늘나라의 떡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 되도다 하니"(눅 14 : 15)라고 기록했는데 메시야가 오시면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큰 잔치를 베푸시는데 이 간구는 메시야 잔치에 참여시켜 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보았다.

넷째 :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으로 해석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터이요"(요 6 : 3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요 6 : 35)라고 예수님은 자신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다. 이 생명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해석했다.

이상과 같이 정리해보면 일용할 양식은 육적인 양식, 영적인 양식, 영육간의 양식으로 언급된다. 우리 육신의 양식은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것인데, 생명에는 육신의 생명이 있는 동시에 영의 생명이 있다. 영적양식, 육적양식 이 두 가지는 마땅히 간구할 것이다. 때문에 본문에서의 청원은 좁은 뜻으로는 육신의 양식을 넓은 뜻으로는 영적 양식을 다같이 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4. "주옵소서"란 의미는 무엇인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우리말 성경에는 "주옵소서"라고 같은 동사로 번역했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에는 의미의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도스"(δσς)이고,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디두"(διδου)이다. "도스"는 "디도미"(διδωμυ ,주다)의 단순 과거 명령형으로서 일회적인 동작을 말하는데 대해서 누가복음의 경우는 현재 명령형으로 반복적인 또는 세속적인 동작을 말한다.

이 마태의 과거형 동사와 누가의 현재형 동사는 각 복음서에 기록된 "주옵소서"의 동작을 수식하는 마태복음의 "세메론"(σημερον : 오늘)이란 부사와 누가복음의 "카데메란"(καθημεραν : 날마다)이란 부사와 잘 조화를 이룬다. 필요한 양식을 마태복음에서는 오늘 한 번 "주옵소서"라고 계속해서 청원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스도는 주기도문의 이 청원에서 하나님은 오늘날(TODAY), 주시는 손(GIVE HAND)을 가지고 계심을 확신시켜준다.

1) 하나님은 오늘날(TODAY), 매일(DAILY), 주시기(GIVE)룰 기뻐하신다.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으나"(사 46 : 10).

2) 하나님은 오늘날, 매일 구원과 능력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신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사 59 : 1)

3) 하나님은 오늘날, 매일 의롭게 살아가려는 사람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하신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 로다"(시 37 : 24)

4) 하나님은 오늘날, 매일 성도들을 도와주시기를 원하신다.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시 41 : 10)

5) 하나님은 오늘날, 매일 우리가 겸손할 때 높여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 : 6)

6) 하나님은 오늘날, 매일 성도들에게 일용할 식물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손을 펴신 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시 104 : 27-28)

이와 같이 이 청원에서 우리는 "주옵시고"(give, 주다)라는 단어로부터 이 생의 좋은 것들은 하나님의 선물(gift, 은사)이라는 것으로도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는 창설자와 증여자이시고, 그리고 현세적인 물질들을 위해서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날마다의 필요를 위해 간구해야 한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 30 : 8)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청원에서 "그것을 우리들에게 주시옵소서, 나에게만 아니라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웃들을 돌아보게 하며 주변에 어려운 환경에 처한 가난한 자,궁핍한 자와 우리 집안 식구들과 영적인 식구인 성도들을 위해 드리는 비이기적인 기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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