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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성경적으로 용서해야 하는가?
김석원  |  cccj2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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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8  12: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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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 모든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충만한 능력 안에서 예수님 이 우리를 용서 하신 것을 배울 때 가능하다.

1) 끊임 없는 용서를 해야 한다.

베드로가 용서에 대하여 주님께 질문을 했을 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만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 이라도 할지니라" (마 18:22)라고 하셨다. 이어서 빚을 탕감 받는 자의 용서를 비유로 설명하셨다.


2) 진실된 마음으로 용서해야 한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회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 : 35).

진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 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진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기도는 "…그 기도가 죄를 면케 하시며"(시 109:7)라는 양심의 가책 없는 기도의 결과를 초래한다.

진심으로 용서의 기도를 드릴 수 없을 때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예배 할 수가 없다("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진심으로 용서의 기도를 드릴 수 없는 사람은 오늘 내 죄를 용서해 달라는 주기도문을 드리기가 몹시 괴로울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아야 염치 있고 양심 있는 신자이다.


3) 완전한 용서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한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용서를 해야 한다. 이 용서는 조건이 없는 용서이다. 성경에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시 103:3)라고 했다. 주기도의 본문에서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라는 말 중에 "사한다(Forgive)"는 동사 아페이나이(αφιεναι)는 헬라어 성경 마 4:22에 나오는 단어와 똑같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서 부르실 때 그를 따르기 위해 그물과 배를 「내버렸다」. 이 동작을 나타내는 단어를 주기도문에서도 같은 헬라어로 사용하고 있다. 용서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완전히 내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가 쓰레기통에 찌꺼기들을 버릴 때는 미련을 갖지 않고 완전히 버린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용서하지 못하는 쓰레기를 담고 고약한 냄새와 함께 산다. 어떤 쓰레기를 조금 뒤에 버린다고 남겨 놓을 때 더러운 냄새는 계속 제거할 수 없다. 버릴 것은 완전하게, 깨끗하게 버리는 것처럼, 완전하게 용서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사실 완전하게 용서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계속 치밀어 오르는 분노,계속 용서 할 수 없음에 대한 연약함이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를 배우라. 그리고 하나님이 완전히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해 보라. 그렇게 할 때 자신의 힘으로 용서할 수 없었던 모든 어려움은 극복될 수 있다.


4) 무조건 용서 해야 한다.

사랑은 무조건적이여야 하고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 한다 (고전 13:5).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다(고전 13:7). 이런 사랑의 바탕 위에 세워질 때 그 용서는 무조건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용서를 구할 때 화목과 화해의 두 기둥 위에 두어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무조건 용서 하려고 할 때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서 성령의 깨우침을 주신다.


5) 용서를 구할 때 우리의 언어는 빛 가운데서 숨김이 없는 정직함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하듯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부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용서를 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언어까지도 성령님께서 주장하시도록 그분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용서를 구할 때, "어쩌면 제게 잘못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게 잘못이 있다면…" 하는 식의 표현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는 성령께서 잘못 했다고 깨우쳐 주신 것은 솔직히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범한 잘못을 감소하거나 적당히 넘어 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대개의 경우 용서라는 말 대신 솔직하지 못한 다른 넋두리나 답변을 하기가 일쑤이다.

가령,"아,뭐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러십니까?", 혹은 "저도 잘 모르고 했는 걸요, 뭐" 또는 "별 걱정을 다 하시는군요. 너무 염려 마십시요" 등은 용서를 구하는 바른 태도라 볼 수 없다. 또한 잘못된 고백으로 우리의 죄를 가볍게 하거나 상대방을 무색하게 하는 때가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가령 "우리들이 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신이 생각하는 꼭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 제가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당신도 (이런, 저런)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진짜 잘못을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다는 것임)" 하는 식의 말투나, 또한 "제가 왜 그렇게 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도 저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저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별로 큰 잘못을 범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 그냥 신경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태도는 상대방이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있든지 아니든지 상관이 없다는 말투이다.)" 라는 식의 말투도 바른 태도라 볼 수 없다. 진정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성령께 의지해서 정직한 태도로 우리의 언어를 사용했을 때 용서의 열매를 맺게 된다. "언어에 조급한 사람"(잠 29:20)의 자리를 피하는 삶의 지혜를 간구 할 때 이 청원은 더욱 그 빛을 드러 낼 수 있다.
 

6) 가시 돋힌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가시 돋힌 용서란 무엇인가? 예를 들면 "000씨가 권하니까 일단 용서는 하지만 당신이 나에게 준 상처는 결코 잊지 못할꺼야"라는 식의 용서이다. 이것은 용서가 될 수 없다. 무디 선생(D.L Moody)은 이것을 "고슴도치 용서"라고 했다. 메튜 핸리 (Matthew Henry)는 "겉으로는 평화스럽고 화해 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으나 용서에는 적의를 품어서도 안되며 누구에게 악한 감정을 가져서도 안된다. 어떤 형 식으로든지 복수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고 화나게 한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원하며 추구하는 마음의 자세 가 아니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 것처럼 보이고, 또 화평한 것 같이 보여도 중심 에는 악한 감정이 있거나 불만이 있거나 시기 질투에 의하여 상대를 나의 중심에서 경계하는 것이 있으면 그 용서가 모두 가시 돋힌 고슴도치 용서인 것이다.
 

7) 상대방을 진심으로「이해」해 주려는 태도를 통하여 용서의 문을 열어야 한다.

「이해」라는 용어는 영어로 "Understand"라고 한다. 이 단어는 아래 선다 라는 말이다. 겸허하고 겸손한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는 자세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는 것이다. 상대방이 어려울 때, 곤경에 처할 때 그런 입장이나 경험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남의 사정도 모르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8) 용서는 용서한 후 용서 할 수 없었던 모든 사실을 잊어 버려야 한다.

스펄존 목사는「용서」에 대하여 아주 유머러스하고도 의미심장한 표현을 하였다. "용서하고 잊어버리십시오, 당신이 미친개를 땅에 묻을 때 꼬리만 땅 위로 기념탑처럼 남겨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한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옛날에는 미친개를 끌어다가 산채로 땅에 묻었던 것으로 본다. 버림받고제 구실도 못하고, 위험하기 까지한 개를 묻을 바에는 완전히 묻어 버려야지 땅 위에 꼬리만 남겨 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타인의 죄를 용서한 후 완전히 잊어 버려야지 일부분을 다시 기억하고 남겨 놓아서는 안된다. 잊어버리지 않는 용서의 꼬리들이 이곳 저곳에서 흉한 모습을 드러내는 현장들이 사라져야 한다.
 

9) 용서는 믿음으로 사랑을 시작할 때부터 가능해진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사랑하는 훈련을 통해서 용서가 실천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 신앙이 성숙 하는 것은 각자의 믿음의 분량과 비례한다.

믿음의 대 헌장을 기록한 로마서 1:17은 모든 사람이「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비결은「오직 믿음」으로 가능케 됨을 언급 했다.「용서」가 점점 부재 되어가는 탁한 세상에서「믿음으로 사랑」하여 용서할 수 있는 진실하고 용기 있는 용서가 필요하다.
 

10) 용서를 베푸는 삶을 생활화(습관화) 해야 한다.

(1)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건강한 정서 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2)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복음 전도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감당하게 할 수 있는 요소이다.

(3)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교회 생활에 성도간의 교제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4)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성공적인 결혼 생활과 건전한 가정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5)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능력 있는 기도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6)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성령 충만한 삶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7)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믿음의 담력을 갖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8)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용서의 삶을 훈련시키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9)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영혼의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10)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겸손과 온유한 인격으로 성장시키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11)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12) 용서를 베푸는 습관은 사단 마귀의 영역을 좁히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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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문인 2018-05-29 09:02:53

    누가복음 17:4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일흔번에 일곱번이라도 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이 빠져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회개하노라라는 조건이 있거든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누가 나에게 돈을 빌렸는데 전혀 미안한 것이 없이 갚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대듭니다.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면 그가 전혀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용서해주고 돈을 안갚아도 된다고 해야 하는가 입니다.(비슷하게 누가 나를 폭행했는데 전혀 회개하지 않는데 그를 용서해서 고발하지 않아야 하는지요?).

    하나님도 회개하고 자백하는 자 즉 예수님을 믿는 자를 용서해 주십니다. 물론 믿음이 하나님께로 왔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조건없이 용서하신다고 봅니다.

    저는 이 딜레마에서 나름대로 해결책을 생각해 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다는 의미는 그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의미로 해석해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 대해서 사랑하고 그를 위해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기도하고 하나님께 복을 구하며 또 섬길 수 있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지 않을까요?

    그것과 돈을 빌리거나 나에게 해를 끼치는 죄를 범할 때 그를 사랑하지만 그가 회개하지 않으면 그가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것은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가 회개한다면 돈갚는 거나 배상의 책무를 사하는 것은 본인이 결정하지만 말이죠...

    제가 내린 결론이 맞는지 모르기에 다른 분들의 고견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싶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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