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페친 중에는 훌륭하신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글을 보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어떤 분들의 글은 에버노트에 스크랩을 하여 색을 칠하면서 읽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글 쓰는 것을 자제하고 페친들의 좋은 글을 좀 더 읽는데 시간을 들여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이 신사도운동, WCC, WEA에 관한 글들은 잘 언급하시지 않고 그냥 지나가시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또 글을 올리게 되는군요. 목사님들이 알아 두시면 신사도 운동 이단들을 분별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우리가 꼭 확실하게 알아야 중요한 사실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첫째,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은 우리를 부활로 영생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상 아담을 창조하실 때, 아담이 죽어서 부활을 하거나, 살아서 부활과 비슷한 형태의 변화, 또는 존재의 도약 또는 발전을 이루어야만 영원하고 완전한 생명을 얻어서 누리도록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요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 영생에 대해 왜곡하는 주장
찬송가 582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는 삼일절이나 광복절, 625 사변일 등, 국경일과 관련된 기념 주일 예배 때 주로 불려지는 노래이다. "찬송' 이라고 하지 않고 "노래"라고 말한 이유는, 이 노래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지도 않고, 기독교 교리가 담겨 있지도 않은 민중가요 수준의 노래이기 때문이다.그런데 가사를 자세히 보면, 단순히 민중가요 수준의 노래가 아니고, 사탄을 찬양한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어, 그 뜻을 알고 보면 오싹한 느낌이 온다.이 노래는 1, 2절은 장공 김재준 목사가 작사했고, 3절은 문익환 목
글을 시작하며번역 성경(신약)에서의 오역과 오석들은 예수님의 비유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아마도 이는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당시 유대인의 삶의 정황(생활환경, 관습 등)을 배경과 소재로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유대인들의 삶의 정황을 놓치면, 특히 예수님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진다. 따라서 번역 성경(신약)의 오역과 오석이 예수님의 비유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말
정직하지 못한 경제활동에서 파생 되어진 천박한 자본주의는 유대인들의 탐욕에서 나온 이윤 창출을 비난하는 말이었다. 유대인들은 정직한 이윤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나 구조 속에서 엄청난 이윤을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는 착취와 수탈이라고 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시장을 확장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많은 돈을 벌 수 없는 시장의 환경 속에서 유대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천박한 자본주의라고 하는 용어의 의미이다.세상의 가치관은 이미 이러한 천박한 자본주의를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충고>방언에 대해 한 말씀 하자면, 방언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믿는 자에게 방언이 표적으로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제자들에게 방언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이구요.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나타난 방언을, 그렇게도 쉽게 ‘변태 방언’이라는 식으로 폄하하고 모욕을 주는건 ‘바른 믿음’의 자세는 아니라고 봅니다.바른 믿음은 어디까지나 성경을 근거로 하는 것이니까요. 목사님은 은사 중지론의 입장에 계신 것 같은데, 그것 역시 하나의 ‘성경 해석’이고 목사님의 주장일 뿐이지
(예장합동 총신대보(2016년 4월)에 실린 글을 보고 정리하다.) 프랑스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지인 '떼제(Taizé) 공동체' 한국인 최초의 수사인 '신한열'씨의 인터뷰 기사가 전면에 실렸다. '총신을 바꾸는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신한열수사'의 인터뷰기사를 통하여 수 많은 총신인들이 '떼제(Taizé) 공동체'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갖게 될지 참 두렵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인터뷰기사는 이런 글로 시작한다."지난 3월 19일 토요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떼제(Taizé) 예배가 진행되었다. 근교에서는 물론 전국 방방
- 임진남 목사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한국사회가 중화사상에 물들어 거의 2,000여년 동안 불교, 유교, 선이라고 하는 계급과 신분제도에 의해 변화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에서 찾아 볼수 없는 위대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 기독교가 조선에 들어온 이후 구한말을 지나, 6.25 전쟁을 거쳐 그야말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축을 이루는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기에 산업근대화에 성공이라고 하는 열망은 교회 안에서도 진정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아주 딱 맞게 강단에서 목사들의 설교로 전파되고 가르쳐 지면서 교회의 눈부
영국 교회가 시들어가고 있을 때 놀라운 부흥을 가져온 찰스 스펄전, 생기 없이 죽어 가고 있던 유럽의 정통주의 신앙에 영적 활기를 가져왔던 리차드 백스터,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의 물결 가운데 타락과 방탕의 길을 걸어가고 있던 영국 사회를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했던 잔 웨슬리, 영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수많은 심령들에게 불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던 조지 휘필드 등을 연구하면 가슴이 뜨거워짐을 경험한다. 17-19세기 위대한 설교가들에 대한 강의를 듣던 한 학생이 상기된 표정으로 그런 질문을 했다. “그 사람들은 모두가 타고난 자질을 갖춘
성경 말씀으로 모였다고 해도, 예수 이름을 선포하고 기도한다고 해도, 탑을 쌓게 되면 그것은 바벨탑이다. 나쁜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모인 모임이 아니고 좋은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 모였다고 해도, 탑을 쌓게 되면 그건 바벨탑이다.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은 위에서 군림하는 모양과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7장 1-2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
SB Y님의 질문>목사님 질문이 있는데요. 구약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실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성화되게 하는 능력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지는 않았습니까? 구약시대 백성들에게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믿게하는 마음은 은혜로 주셨는데, 반면 백성들이 성화의 마음을 주실 수 없어서 율법을 지키게 하신 건가요? 믿는 마음을 주시는 것도 구약의 하나님의 성신이 함께 동행해서 그렇다고 생각되는데, 그 은혜에 성화는 포함되지 않고 따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
1994년 미국 복음주의 교회와 로마카톨릭 간에 공동협의서가 만들어졌다. 이를 ECT 협의서라고 한다 ("Evangelical and Catholic's Together").이 협의서의 결과 개신교회 십자가 위에 마리아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구세주라는 의미의 M 자 휘장을 걸도록 합의를 했고, 현재 많은 교회들이 이런 모습의 휘장을 십자가 위에 걸어 놓고 있다.그냥 밋밋한 십자가보다도 휘장을 걸어 놓으면 멋지게 보여서 십자가 위의 화려한 장식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의미를 알고 보면 사탄의 계획이 있슴을 깨달을 수 있
지난 9월 10일 세계자살예방의 날을 앞두고 아랍권 최대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한국을 자살의 나라(South Korea : Suicide nation)로 표현하면서 특집기사를 내보내 세계 앞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무너뜨렸다. 사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15년째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보유한 나라이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우리의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이렇다 할 방책을 세워 이 오명을 떨쳐 버리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자살에 대한 세계 기록을 살펴보면, 핀란드가 1990년까지 “자살의 나라”로 기록
(저에게 더욱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고,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하나님의 격려의 편지로 알고 함께 나눕니다. 정이철 목사.) 목사님 안녕하세요.저는 한국에 사는 김00 성도라고 합니다. 목사님 설교 듣기 시작 한지 한 달 정도 조금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설교이며, 기록된 성경 말씀을 그대로 가르쳐 주시는 것 같은 믿음이 믿어지면서, 목사님 설교를 듣고 성경 말씀에 마음이 열리면서 믿음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기존 목사님 설교에는 그냥 세상 속에서 많이 듣던 그런 좋은 말들, 행복해지려면, 착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들을 결국 하나님의 때에 정확하게 이루심을 보고 너무나도 감격 하면서도 참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거의 모든 종교 개혁자들과 당시 신학자들이 같은 마음으로 믿고 기다리던 예언의 말씀에 대한 이해, 이렇게 중요한 믿음의 소망의 닻을 세워 주는 성경 해석에 대한 것이, 왜 아직까지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을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미국에서도 아주 보수적이라는 신학교에서 4년 동안 Master of Divinity를 하면서 요한계시록의 여러가지 해석 관점에 대해서 공부했었지만,
회심준비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죄인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율법의 기능을 통해 인간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런 회중파 신학의 오류는 칼빈과 어거스틴이 비판하고 있는 자유의지, 즉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의지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바르게 알지 못한 결과에서 나온 비성경적 주장이다.어거스틴이 정죄한 팰라기우스와 칼빈이 정죄한 피기우스 그리고 개혁교회가 정죄한 아르미니우스의 한결 같은 주장은 타락한 인간에게 어느 정도 선을 추구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고 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24년 새해에는 존귀하신 가족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만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지를 바꾸어라!"저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이와 같이 조언하셨으나,날이 갈 수록 거룩해진 이단들이하나님의 양들과 교회들을 경건하게 사냥하는 현실을그냥 참고 볼 수가 없습니다. 누구보다 이런 일을 바르게 잡아야 할 교단이이런 자들을 물리치기 않고 오히려 교묘히 보호하는 농간을 버젓하게 행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니 제가 좋게 살기 위해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것은곧 예수 그리스도를 조금 멀리하겠다는 것이므로 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