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들어가면서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별하고 가르치는 것은 제사장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였다. 레위기 11장부터 15장까지는 주제별 정결 규례를 다루고 있다. 11장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규례를 다루고 12장은 신체 규례, 13장-14장은 질병 규례, 15장은 신체 규례를 다루고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새로운 섭생법을 다루고 있는 11장의 규례의 의미를 살펴보자. 나. 본문1.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1-23절)1) 여기서 “짐승”(“베헤마”)은 ‘네발 달린 짐승’을 의미한다. 짐승을 정하고 부정한 동물
1. 기독교와 불교기독교는 창조-타락-구속의 세계관을 믿는 위로부터(창조주 하나님)의 초월 계시를 믿고 불교는 깨달음을 통해 해탈에 이르기 위한 아래로부터(인간 중심)의 방법론을 추구하는 종교이기에 접근 방법이 전혀 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2. 불교와 아인슈타인, 양자론따라서 양자역학이 인과(원인과 결과: 이게 과학의 기본 전제입니다)를 다루는 불교의 연기법을 연상시킨다고 보는 것이나, 아인슈타인이 불교가 물리학에 영감을 주는 종교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봅니다. 아인슈타인은 평생 동안 양자론은 불완전하다고 했는데, 양자론의 슈뢰딩
“짐승의 수”이면서 “사람의 수인 666”은 요한계시록 13장에만 등장하는 독특한 단어이다. 즉 성경 안에 직접적으로 비교 가능한 본문이 없다. 솔로몬의 세입금 중수 “666”(대하 9:13; 왕상 10:14)이라는 구절이 있으나 이것은 “666 금 달란트”라 “인간의 수 666”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이렇게 성경에 단 한번 등장하는 독특한 단어를 하팍스레고메나(Hapaxlegomena)라고 한다. 하팍스레고메나는 비교 가능 구절이 없는 관계로 해석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런 단어의 경우 단어 자체의 본 의미를 따져보고
법과 정치의 종교 기독교기독교처럼 법과 정치에 민감한 종교가 있을까? 창조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 하시고 방치하지 않으셨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일정한 언약의 법을 제정하셨고 성경 2930명의 실명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친히 “내 친구”라 한 아브라함과도 언약을 맺으셨다. 짐승을 반으로 쪼개어 타는 횃불이 그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도록 했으니 언약을 어기면 그 심각한 죄악의 결과에 대해 경고하는 의미였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 아담과 언약을 맺었듯 법이었다. 이렇게 법은 진화한 인간이 찾아낸 질서가 아닌 창
기독교와 과학의 충돌인류의 신앙적 다양성만큼 종교와 과학은 끊임없는 분리와 통합과 투쟁의 대상이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독교와 과학이 애초부터 긴장관계였던 것은 아니었다. 근대과학의 역사는 유대-기독교적인 과 헬라적 이 만나며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학혁명기를 지나며 과학에서 종교는 서서히 열외 되기 시작했다. 종교에 대한 냉소주의자들은 과학의 성장을 통해 종교는 어떤 식으로든 소멸의 길을 갈 것이라 보았다. 과학은 우주의 모든 신비에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의 행복
창조, 모든 것의 출발성경의 말씀은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 아니다(딤후 3:6).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받은 계시의 책이다. 이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소개한다(계 10:6).창세기 전반부(1-3장)는 창조주 하나님이 스스로 밝히는 창조에 대한 자기 선포이다. 창조의 하나님은 성경의 첫 말을 ‘태초’(bereshith)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시간의 주관자요 시간의 창조자임을 나타낸다. 시간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므로 하나님 이외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벤저민 B.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년 11월 5일 ~ 1921년 2월 16일)는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와 함께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신학자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1887년부터 1921년까지 교수로 재직한 그는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그는 성경무오에 대한 저작으로 유명한 학자다. 또한 그는 철저한 칼빈주의 신학자로도 유명하다. 위키 백과는 이 부분에 대해 그는 "칼빈주의자는 모든 현상의 배후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며, 모
사도 도마의 한반도 선교에 대한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도 도마의 한반도 선교 주장에 대한 신학적 입장과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사도 도마는 누구인가도마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성경에는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 도마의 행적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도마는 예수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요 20:28)이라고 최초로 고백한 제자였다. 이 고백을 통해 도마는 예수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장 먼저 정확하게 인식하고 믿음을 보인 최초의 제자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가 예수
창세기 1장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기독교의 신학자들은 창세기 1장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 왔을까? 역사 속에 나타난 많은 신학자 중에서 창세기 1장 해석에 있어 중요한 두 신학자를 살펴보려 한다. 바로 오리겐(185-254)과 칼빈(1509-1564)이다. 한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초기 형성기에 있어 미숙한 가운데 창조 신앙 해석의 틀을 놓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성경과 역사 속 신학자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창세기와 성경 해석의 바른 틀을 세운 핵심적인 신학자 중 대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이 두 신학자의 창조 해석 방법에
기독교 신앙과 근대 과학이 역사 속에서 본격적으로 대면한 중요한 장면은 아마 다음의 세 가지 사건을 꼽을 수 있겠다. (1) 우주에 대한 용감한 사색(?)으로 화형 당한 브루너(Giordano Bruno, 1548-1600)의 순교와 (2) 교황청과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사이의 갈등 그리고 (3) 1860년 있었던 과학의 진보를 위한 영국 연합회(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의 옥스퍼드 회의에서 일어난 윌버포스(S. Wilberforce, 1805-1873)와 토마
근대 과학의 등장인류 역사 속에 파편적인 과학적 사고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진정한 근대과학은 16세기에 본격적으로 서양에서 그 출발을 알렸다. 16세기 유럽은 걸출한 인물과 학자들이 배출된 시대였다.대륙에서는 먼저 15C 태어나 16C 주로 활약한 종교 쪽의 코페르니쿠스(1473-1543)와 마르틴 루터(1483-1546) 그리고 16C 태어나 활동한 요한 칼빈(1509-1564)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태어났고 독일에서는 천문학자 케플러(1571-1630), 16세기
초기 성경들 해석은 기독교의 전유물인가?성경 고고학자들은 유대교,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 아르메니아 정교, 조지아 정교, 콥트교, 프로테스탄트, 이슬람 등 다양한 신앙적 배경을 가진다. 따라서 이들 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신학, 고고학적 발견 그리고 토라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다양한 역본들 사이에서 서로 간에 해석의 단절 현상을 겪는 경우가 많다.특별히 창세기 1장의 경우 바로 필자가 지적한 인류 타락에 따른 "우주적 붕괴와 에덴동산 추방", 지구적 대격변을 초래한 "창세기 대홍수사건"과 홍수 이후 "바벨탑 인류 언어 혼잡"
창세기 1장은 사실 현대 과학의 복잡한 우주 기원론이나 생명기원론 등 고차원의 과학과 기술의 언어가 동원된 계시가 아니다. 평이한 단어들로 서술된 총 31절에 불과한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계시이다. 그런데 단순 용이하게 묘사된 창세기 1장이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풀려고 할 때, 부딪히는 딜레마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실 온갖 창조론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엄청난 신학적 이론이 난무하게 되었다.창세기 1장으로부터 파생된 기독교 외의 로마 가톨릭이나 그리스 정교회, 유대교,
창세기 제 1장부터 11장까지는 보통 원역사(Urgeschichte)라 불린다(여기에 대해서는 Claus Westermann의 Genesis, Biblischer Kommentar.; Translated by John J. Scullion S. J. 《Genesis 1-11》 A Continental Commentary, Fortress Press/ Minneapolis를 참조할 것).그런데 창세기 전반부는 창조주 하나님의 성경 계시 신앙의 근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석이 사실 그리 간단치 않다. 수천 년 동안 성경을 믿고 읽으며
금성은 태양과 달을 제외하면 하늘 전체에서 가장 밝은 천체이다. 우리가 흔히 '샛별'이라 부르는 행성으로 해 뜨기 전 동쪽 하늘이나 해진 후 서쪽 하늘에서 보인다. 금성은 그냥 보면 하나의 밝은 점처럼 보이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달처럼 그 모습이 차고 기우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금성의 대기는 두꺼운 이산화탄소로 덮여 있기 때문에 망원경으로는 표면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파장이 긴 전파를 이용해 관측하고 있다. 관측(1978년, 파이어니어 비너스 2호) 결과 지구처럼 산맥도 있고 고지대도 있으나 지구에 비해 평탄한 행성으로 확인되
1. 식초는 만병통치 식품?하나님께서 주신 만병통치물질이란 당연히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유명 식품회사 회장님께서 한때 자신이 장수한 비결이 식초를 장복했기 때문이라고 해서 유명해 진 적이 있기는 합니다. 식초가 그만큼 사람에게 유용한 식품이라는 의미겠지요.2. 식초는 무엇일까?식초(食醋, vinegar)는 초산(醋酸 일명 에탄산, acetic acid)을 기본 성분으로(약 4-5% 포함)하는 산성조미료를 말합니다. 간단히 (醋)라고도 하지요. 이 명칭은 “시큼하다”는 라틴어 “아케르”(acer)에서 유래했는데 발효과정에서
성경의 창조 계시, 그 독특성다른 모든 종교의 경전과 구별되는 성경의 특별한 점은 성경이 창조와 창조주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되는 유일무이한 계시라는 점이다. 이 창세기 창조 해석은 과학적 세계관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 “창조”는 인간이 현대 과학과 기술에 눈뜨기 전부터 인류에게 내려진 창조주의 계시였기 때문이다. 즉 이 계시의 특징은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이 언어라는 약속을 배우며 전혀 모르던 세상의 구조를 깨우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믿음의 영역에 주신 초월 계시였다. 창조주는 결코 변덕스러운 하나님이 아니다. 진리는
도올은 신학자인가?그렇다면 도올은 신학자일까? 분명 유사 신학 도서나 성경 강해서를 쏟아냈으니 신학자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신학의 맛(한신대 중퇴)을 보았으며 이미 청년 시절 설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학의 정통 과정을 끝까지 이수한 적은 없으며 교회 교역자로 봉사한 경험은 없다. 그런데 왜 계속 교회는 그의 신앙과 신학에 일정한 관심을 갖고 우려를 표명하는 것일까? 신학자가 아님에도 이미 그는 신학의 딜레탕트를 넘어선 사람이다.기독교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집필했다. 하지만 정통 신학자는 아니기에 신학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부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말 2:15 전반절)성경에는 수천 군데 난해 구절이 있습니다.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한영만 지으셨다" ... 이 부분을 해석해 보겠는데, 제가 구약학자는 아닌 조직신학자임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1. 이 말라기 구절(15)에 대해 딘탄(R.C. Dentan)은 구약에서 가장 어려운 구절 가운데 하나라 했습니다. 그만큼 이 구절에 대해 학자마다 해석이 다양합니다.2. 우리 성경은 KJV번역을 따랐는데, 거기다가
성령은 결코 변덕스러운 하나님이 아니다. 진리와 계시는 결코 부정되거나 수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초대 교회의 창조 계시에 대한 해석도 결코 19세기에 나타난 자연과학이라는 내재적 학문으로 수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해석 방식은 창조주 하나님을 변덕스럽거나 미숙한 분으로 인간을 오도하게 만들 수 있는 치명적 틈새가 있다.창조주 하나님은 창조 계시 해석에 있어 교회 역사의 성령 충만한 중심 인물들을 통해 이미 초대 교회때부터 바른 성경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해왔다고 보아야 한다. 즉 초대 신학자들은 창조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