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사 칼빈주의’를 발전시킨 청교도들의 회중교회 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국교회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잉글랜드 영토 안에서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려는 청교도들의 시도는 1580년대 초 로버트 브라운에 의해 처음으로 나타났다. 얼마 후 또 다른 청교도 헨리 베로우, 존 그린우드에 의해 또 다른 청교도 교회가 잉글랜드 안에 세워졌다. 그들이 세운 교회는 장로교회가 아니라 회중교회였다.

국교회에서 이탈한 베로우와 그린우드는 1593년에 사형에 처해졌고, 그들보다 먼저 회중교회를 세운 브라운은 투옥되었다 석방된 후 네덜란드로 갔다. 이전에 함께 했던 동료들이 그곳으로 망명하여 회중교회를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네덜란드로 가서 이전 동료들이 망명하여 세운 회중교회에 합류했으나, 얼마 후 국교회 측에 용서를 빌고 국교회 성직자로 다시 복귀하였다.

베로우와 그린우드 두 사람의 순교로 국교회에서 이탈하여 회중교회를 설립하는 청교도들은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로교회가 발달한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1세가 후계자가 없이 죽은 피를 나눈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모두 다스리게 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청교도들은 장로교회가 발달한 스코틀랜드에서 성장한 제임스 1세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으로 크게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제임스 1세가 강경한 국교회 우선 정책을 고수하자, 국교회를 이탈하는 청교도들이 다시 나타났다.

1606년, 국교회에서 이탈한 청교도 존 스미스(John Smyth, 1570년대-1612)는 게인스버로우에서, 리처드 크립턴(Richard Clifton, 1616년 사망)이 스쿠루비(Scrooby)에서 회중교회를 세웠다 (오덕교 2013, 24). 그러자 제임스 1세는 그들은 재판에 회부하고 투옥시켰다. 제임스 1세가 다스리는 나라 안에서 청교도들이 국교회에서 탈피하여 회중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임스 1세는 종교의 자유를 위한 외국 이민을 허용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적발되면 투옥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네덜란드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1608년, 종교의 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네덜란드로 탈출한 청교도들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레이든에서 다시 회중교회를 세웠다 (오덕교 2013, 24).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회중교회를 세우고 예배드리는 그 청교도들의 삶은 너무 어려웠다. 그들은 또 다시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다시 이주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신대륙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 1620년 7월 영국으로 잠시 귀환했고, 8월 5일 사우샘프턴에서 메이플라워 호와 스피드웰 호를 타고 대서양 항해를 출발했다.

그런데 스피드웰 호의 바닥에서 물이 샜다. 그 배의 상황이 수리할 수 없는 정도여서 그들은 그 배를 포기하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라은성 2015, 295). 1620년 9월 6일, 그들은 한 척을 포기하고 메이플라워호(the Mayflower)만 타고 신대륙으로 향하였다. 그 배에 탄 사람은 총 102명이었는데, 절반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하는 청교도들이었고, 나머지는 신대륙에서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위해 모험하는 일반인들이었다. 그 배를 타고 대서양을 행해했던 청교도들을 이끈 지도자는 윌리엄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였다 (오덕교 2013, 24).

영국 땅 안에서 시작된 청교도들의 회중교회는 이렇게 네덜란드를 거쳐 대서양을 넘어 신대륙으로 이동했다. 칼빈의 장로교회와 청교도들의 회중교회는 신학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장로교회와 회중교회는1)처음 아담의 영생 문제, 2)아담의 원죄의 내용, 3)칭의론, 4)구원을 위한 전도방식 등에서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신학적인 차이를 보인다. 

장로교회는 칼빈의 성경 이해를 따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1)자기 백성으로, 2)무죄한 사람으로, 3)죄를 범하지 않는 한 죽음이 없는 몸으로, 4)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5)처음의 그 상태를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상태로 창조하셨다고 본다. 그러나 아담은 불행하게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교만한 마음을 가졌고, 마귀의 미혹을 받아 그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반역하는 죄를 범하였다. 아담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고 모든 것들을 박탈당했다. 칼빈의 말을 직접 보자.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곧 영혼의 죽음을 말한다. 아담이 하늘과 땅의 전체적인 자연 질서에 위배했을 때, 그 반역으로 인해서 인류를 파멸에 다다르게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독교강요, 2.1.5).

“첫째 종류의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영생의 보증으로서 생명나무를 주시고 그 열매를 먹는 동안은 영생을 확신할 수 있게 하셨다(창 2:9, 3:22). 또 노아 그 후손들을 위해서 무지개를 두시고 홍수로 땅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표를 삼으셨다(창 9:13-16) 아담과 노아는 이런 것을 성물로 생각했다. 그 자체로서는 영생을 줄 수 없는 생명나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었다는 것이 아니며, 반대쪽에 있는 구름에 반사된 태양 광선에 불과한 무지개가 홍수를 막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생명나무와 무지개에 표징을 새겨 두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의 증명과 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4.14.18).

칼빈과 장로교회 신학은 죄인이 의인이 되는 원리를 하나님께 반역한 아담과 우리의 죗값을 그리스도께서 친히 대신 갚으심, 즉 죄용서라고 가르친다. 칭의에 대한 성경, 서철원, 칼빈의 말을 직접 보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따라서 법정적 선언이지 도덕적 칭의일 수 없다” (서철원, 구원론, 29).
 

 

“사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구속을 ‘죄의 용서’라고 규정한다(골 1:14). 이 뜻을 바꿔 말한다면, ‘그 피가 우리를 위한 배상에 해당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다 또는 무죄 방면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강요, 2.17.5).

“주께서 받아들여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신 사람은 주께서 의롭다 하신다고 한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지 않고는 자신의 은혜 가운데 받아들이거나 자신과 결합시키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일이 죄의 용서로써 이루어진다고 부언한다 ... 그들은 죄에서 해방되고 죄를 깨끗이 씻어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포용하시는 사람들은 죄의 용서로써 오점이 씻길 때에 정결하게 된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의롭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런 의는 한 마디로 ‘죄의 용서’라고 부를 수 있다” (기독교강요, 3.11.21).

청교도들의 회중교회 신학은 칼빈의 장로교회 신학과 같은 부분도 많지만,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도 많다. 독자들은 다음의 청교도들과 회중교회 신학자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바란다.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
폴 베인즈(Paul Baynes, 1573-1617)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1577-1635)
존 코튼(John Cotton, 1585-1652)
존 프레스톤(John Preston, 1587-1628)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리챠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
윌리엄 브릿지(William Bridge, 1600-1671)
존 하우(John Howe,1630-1705)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
스티븐 차녹(Stephen Charnok, 1628-1680)
존 번연(John Bunyan, 1628-1699)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
토마스 브룩스(Thomas Brooks, 1608-1680)
메튜 폴(Matthew Poole, 1624-1679)
토마스 맨톤(Thomas Manton, 1620-1677)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헤르만 바빙크(Johan Herman Bavinck, 1895-1964)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
리차드 멀러(Richard Muller, 1948-현재)
조엘 비키(Joel Beeke, 1952-현재)
김효남, 정승원, 서창원, 이승구, 김병훈, 이남규, 안상혁, 신호섭 외 고신교수회 ...

이분들의 신학은 많은 부분에서 칼빈의 신학과 같다. 그러나 1)처음 아담의 영생 문제, 2)원죄의 내용, 3)칭의론, 4)구원을 위한 복음전도 방식에서 칼빈의 장로교회 신학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의 신학이 ‘청교도 개혁주의’라고 불리워지고 있고, 칼빈의 신학이 청교도들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더 세련되게 발전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의 신학과 다른 내용의 신학을 만든 것은 더 세련되게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왜곡한 것이다. 이 분들이 칼빈과 많은 부분에서 같았으나 분명하게 다른 점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영생과 하나님 백성의 복과 은혜를 계속 지켜야 할 사람으로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율법을 지켜 그 공로에 근거하여 영생을 얻어야 할 사람으로 창조되었다.

2) 아담은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합격해야 할 ‘시험기간’ 안에서 창조되었다.

3) 죄를 지적하고 억제하는 십계명과 율법은 아담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수단으로서 처음부터 아담에게 주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4) 율법만 잘 지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데, 연약한 인간이 그리하지 못하니 예수님이 대신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그 공로를 우리에게 전가하심으로 구원이 주어졌다.

5) 예수님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우리를 위해 먼저 영생을 얻었다. 이론상으로 예수님이라도 율법을 지키지 못했으면 천국에 못 갔을 것이다.

6) 사람에게 구원을 주려면 예수님의 은혜의 복음을 먼저 전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말하는 율법의 저주를 먼저 전하여 사람이 죄책감과 두려움에 빠지게 해야 한다.

7) 구원은 그냥 예수님을 믿어서 얻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얻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사모하는 과정을 거쳐서 얻어지는 것이다.

8)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만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율법준수의 공덕까지 우리에게 전가되어야 구원을 받는다.

9) 타락한 아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했다. 예수님의 율법준수 공덕이 함께 있었으므로 구원을 받았다.

10)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아담에게 처음부터 주신 영생과 모든 복에 대한 언약의 상징이 아니라 아담이 율법준수하면 하나님이 먹도록 허락하여 아담의 몸 속에 영생이 생겨나게 만드는 (고대 중국인들의) 천도복숭아 같은 것이었다.

이런 이론들의 출발점이 윌리엄 퍼킨스였다는 사실을 이미 설명하였다. 아직 이해되지 않는 분들은 다음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참조>
국교회 이탈한 청교도들 처음부터 율법주의 이단 회중교회 설립 (3회)

이런 잘못된 이론들이 어떻게 청교도들의 회중교회 신학으로 자리를 잡았을까? 국교회를 이탈하지 않고 국교회와 형제 관계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자치하는 독립된 회중교회를 세우려고 시도했던 청교도 헨리 제이콥(Henry Jacob, 1563-1624)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605년, 한 무리의 청교도들이 제임스 1세에게 국교회의 권위와 정당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스스로 목사, 집사 장로들을 선출하여 국교회의 감독들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자치할 수 있는 교회를 허용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체출하였다. 그들은 국교회에 상납금을 바치는 등의 관계를 착실하게 유지하는 국교회의 형제 교회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국교회의 법과 질서를 따르고, 만일 거역하면 마땅히 국교회의 처벌을 받겠다고 맹세하였다 (원종천 2018, 157-158). 그 일을 주도했던 청교도가 바로 제이콥이었다 (157-158). 그 문서 속에서 제이콥은 제임스 1세와 국교회 감독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 공적으로 어느 곳에든 모일 수 있으며, 우리 자체로 예배의 집전과 교회 정치를 실행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허락할 것, 즉 인간의 어떤 전통에도 구애됨 없이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에 따라 우리 안에 있는 몇몇 모임의 목사, 장로, 집사들이 이제까지의 현 상태에서 누릴 수 없었던 것을 허락할 것, 단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1) 치안 판사 앞에서 현재 이 나라의 법이 명시하고 있는 대로각하의 주권과 왕권을 선서한다. 2) 프랑스와 네덜란드 교회가 하는 것같이 현재 확립되어 있는 나머지 영국 국교회들과 형제의 교제를 유지한다. 3) 현재 규정되어 있는 모든 방면의 세금과 의무들을 교회와 정부에 충실히 드린다. 4) 만일 선한 질서와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거기고 교회에 대해서나 정부에 잘못을 범하면, 그때는 각하의 정부 관리에 의해 처벌받는다 (LLoyd-Jones 1987, 156).”

제이콥이 국교회 속의 회중교회 개념을 주장하자 이미 세상 떠난 청교도 신학의 아버지 퍼킨스의 제자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 퍼킨스의 후계자 폴 베인즈(Paul Baynes, 1573-1617) 등이 동조하였다. 그들은 뜨겁게 제이콥의 국교회 속의 회중교회 이론을 지지하였다 (원종천 2018, 160)그리하여 자연스럽게 회중주의 정치 방식과 1602년에 사망한 청교도신학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의 신학을 추구하는 청교도들의 회중교회 신학과 이론이 형성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 비록 수적으로는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에게 미치지 못했으나 신학 이론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던 ‘독립파’(the independant)가 바로 이들이었다.

그러나 국교회만 종교로 인정하는 제임스 1세와 그의 아들 찰스 1세의 국교회 우선주의 정책으로 인해 독립파들도 영국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제이콥도 결국 1624년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갔으나 바로 그 해에 버지니아에서 죽었다.

대서양을 건너지 않고 남은 청교도들은 1640년대에 국교회와 생사를 건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독립파 신자였던 크롬웰 장군이 부상하여 승리를 이루어 냄으로 목숨을 부지하였으나,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에게는 불행이 닥쳤다. 크롬웰과 그의 병사들 대부분이 독립파 신자들이었으므로 장로교회파들이 주도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았다. 크롬웰은 군사혁명으로 주도권을 잡았고 장로교회파들을 모두 숙청해 버렸다. 장로교회파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웨신서도 실질적으로 폐기되었고 독립파들을 위한 사보이 신앙고백이 따로 만들어졌다 (1658년).

크롬웰이 죽은 후 다시 국교회가 국가 종교로 지정되었고 다른 모든 종파들의 활동은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1662년). 청교도들은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자신들의 회중교회를 세워 마음껏 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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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교. 2013. 청교도 이야기. 이레서원.
라은성, 2015. 이것이 교회사다: 진리의 재발견. PLT.
존 칼빈, 기독교강요.
서철원. 2018. 구원론. 쿰란출판사.
D. M. LLoyd-Jones, 1987.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The Bannerof Truth Trust, Carlisle,
원종천. 2018.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대한기독교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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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