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기사1>
"청교도운동은 칼빈의 장로교회(개혁신학)를 칼로 죽이고 일어선 회중교회 운동"(1회)

참조 기사2>
"청교도운동(회중교회)은 칼빈의 신학을 망친 베자의 율법주의 신학의 열매" (2회)

이전의 글들에서 칼빈의 장로교회와 청교도들의 회중교회는 완전히 다른 교회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청교도운동을 기독교와 동일시하거나, 또는 기독교가 청교도운동의 덕을 크게 본 것처럼 여기고 있다. 청교도신학을 유별나게 칭송하는 한국의 장로교회 목사들은 청교도들의 신학이 장로교회 신학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1662년 프랑스 개혁교회는 단지 훗날 청교도들이 선택한 회중에 의한 교회운영 방식을 정죄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교회를 이탈한 청교도들이 세운 회중교회의 신학은 결코 장로교회의 신학과 같지 않았다. 사실 청교도들은 처음부터 비정상적으로 율법준수를 강조하는 신약의 한 이단 종파를 형성했다.

1580년대 말까지 청교도들의 주장은 국교회를 칼빈의 장로교회로 전환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교회를 직접 세우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1580년대 말에 이르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주교들은 일치단결하여 국교회를 장로교회로 전환시키자는 청교도들의 주장에 강력하게 대응하였다. 더 이상 국교회를 장로교회로 전환시키자는 주장을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찍 국교회에서 이탈하여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청교도가 나타났다. 그 사람은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e, 1550s~1633)이었다. 1581년 브라운과 그를 따르는 약 40명의 청교도 신자들이 사형에 처해질 것을 각오하고 잉글랜드 영토 안에서 최초의 국교회에 속하지 않은 종교개혁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그 교회는 그때까지 청교도들이 그토록 꿈꾸었던 칼빈의 장로교회가 아니었다. 1562년에 이미 프랑스의 칼빈주의 개혁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하여 엄히 처벌한 회중교회였다 (원종천 1998, 138-139).

국교회에서 목숨 걸고 이탈한 청교도들은 왜 칼빈의 장로교회를 세우지 않고 이미 이단으로 규정된 회중교회를 세웠을까? 자신들을 압박하였던 국교회에 대한 심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국교회처럼 상부에서 하달되는 일방적 명령에 복종하는 피동적인 신앙생활을 거부하고,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스스로 교회를 운영하는 제도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왜 장로교회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소수의 장로들과 목사로 구성되는 당회, 지역의 여러 교회의 목사들로 구성되는 노회 중심의 장로교회 정치가 국교회의 감독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회중교회를 세운 그 청교도들이 추구한 신학은 장로교회와 같은 신학이었을까? 브라운이 1582년에 저술한 책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양식을 보여주고 그들이 투르크족과 교황주의자들과 그리고 이교도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책>(A Book Which Sheweth the Life and manner of all true Christian, and how unlike they are unto Turkes and Papistes and Heathen folke)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이단적인 교회를 추구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교도 브라운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회중교회는 장로교회가 이단시하는 율법주의 신학을 추구하고 있었다. 브라운은 자신의 책에서 교회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공동체라고 기술하였다. 브라운의 말을 직접 보자 (원종천 2018, 144-145).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과 통치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의 자발적 동의이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조건에 스스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거하고 그 분의 율법에 순종하는 한, 그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믿는 자들의 무리로서 하나님과 자발적 언약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통치하에 들어가며 하나의 거룩한 공동체로서 당신의 율법을 지키기로 했다”.

국교회를 탈피하여 최초의 회중교회를 세운 청교도 브라운은 구원을 하나님과 사람의 쌍무적 관계의 결과물로 이해하였다.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조건을 사람이 총족시킴으로 구원이 얻어지는 것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어 죄용서 받은 후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로 다짐하는 사람들로 교회가 구성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국교회에서 탈피한 청교도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개신교회, 즉 잉글랜드 땅에 청교도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청교도운동 교회가 장로교회(개혁교회)가 아니었고, 교회정치 측면에서 칼빈주의자들이 이단으로 정죄한 회중교회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신학적으로도 칼빈의 개혁신학이 심각하게 정죄하는 율법주의 종교를 추구하는 개신교 이단 종파였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야 한다.

율법주의란 무엇이고, 왜 율법주의는 칼빈주의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는 것인가? 율법주의는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준수가 꼭 필요하고, 또한 구원을 유지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도 율법준수가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독자들은 율법준수에 대한 존 파이퍼의 말을 참고하기 바란다 (존 파이퍼 유트브 영상).
 


구원받는 것과 율법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손톱만큼도 관련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그리스도)을 믿음으로만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구약의 사람들은 장차 성육신하여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리실 작정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신약의 사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완전하게 받는다.

그렇다면 구원된 사람과 율법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구약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음과 동시에 율법을 지킴으로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강력하게 요구받았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그렇지 않다. 만일 필자가 신약의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음과 동시에 구약 백성들처럼 율법을 준수하면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고 설교하면, 그 즉시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저주에 잡히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그렇다면 구원받은 신약의 성도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할까? 성령의 힘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은혜를 따라 자기 백성되게 하신 자들을 동일한 은혜를 따라 자기 백성답게 변화되게 만드시는 원리이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 (롬 8:4).

성령은 우리의 죗값을 대신 갚으신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우리에게 적용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another Jesus’이시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죄를 이기고, 죄를 즐거워하는 옛 사람을 이기고 성화되어질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예수 믿고 구원받은 신약의 성도에게 구약 백성처럼 율법을 지켜 하나님 백성답게 살라고 가르치면 저주받을 이단이다. 율법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구약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지배자였다. 그러나 율법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약 성도들에게는 구원 전이나 구원 후에 더 이상 직접하는 일이 없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진리이다.

그러나 국교에서 이탈한 최초의 청교도에 의해 세워진 회중교회는 교회를 율법준수하는 신자들의 공동체라고 가르치는 율법주의를 표방함으로 자신들이 세운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초를 쳤다. 최초의 회중교회를 세운 청교도 브라운의 교회론을 요약하는 다음의 말들을 보라.

‘하나님의 율법과 통치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조건에 스스로 참여’

‘그 분의 율법에 순종하는 한, 그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되실 것이다)’

‘(교회는)하나의 거룩한 공동체로서 당신의 율법을 지키기로’

신약의 성도에게서는 구약의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는 성령의 은혜의 역사(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다. 하나님께서 언제 신약 백성들에게 “구원은 나의 은혜로 거저 받았으니, 구원받은 성도답게 바르게 사는 것은 이제 너희에게 주어진 숙제이다”라고 하셨는가?

최초의 회중교회를 세운 청교도 브라운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순종하고 협력하는 신자들의 공동체 개념으로 신약의 교회를 이해했다. 구원받은 신자들이 모여서 율법준수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교회이고, 하나님은 기꺼이 구원받고 율법에 순종하는 신자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구원은 하나님이 제시하는 조건, 즉 율법을 준수하라는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신자의 참여(협력)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신학은 모두 사도 바울과 칼빈과 장로교회에서는 이단사상으로 간주되는 것들이다.

브라운의 교회 설립 이후 생겨난 청교도들의 회중교회들에서 비성경적인 율법주의가 계속 강조되었다. 1580년대 말에 또 하나의 회중교회가 국교회를 이탈한 청교도 존 그린우드와 헨리 베로우를 통해 잉글랜드 땅 안에 세워졌다. 그들이 어떤 신학을 표방하면서 자신들의 회중교회를 세웠는지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는다. 아마 그들이 얼마 후에 사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종천(1998, 48)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그들도 하나님의 율법을 강조하는 신학을 표방했다. 그 무렵 국교회에서 이탈한 또 다른 청교도 프랜시스 존도 네덜란드에서 회중교회를 세웠고,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원한 율법을 잘 준수하겠다고 언약하게 하였다 (1998, 152).

더 심각한 율법주의 이단사상 구원론이 청교도 신학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에 의해 1592년에 등장하였다. 퍼킨스는 국교회를 장로교회로 전환시키자는 청교도들의 개혁운동이 종말을 고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방향의 청교도 개혁운동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이다. 퍼킨스는 결코 회중교회를 직접 세운 인물이 아니다. 퍼킨스는 장로교회 설립이 좌절되자 잉글랜드 영혼들을 국교회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새로운 영적, 정신적, 신학적 개혁운동의 영감과 깃발을 제시하였다. 1592년에 퍼킨스가 라틴어로 쓴 책 <황금사슬>을 통해 기술된 행위언약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하에서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인간과의 계약이다. 이 언약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약속과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약속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Perkins 1626, 1:32; 원종천 1998, 48).

“행위언약은 완전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윤리법은 인간에게 그의 본질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종을 명령하는 하나님 말씀의 부분이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금한다 ... 율법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순종을 요구하는 법과 그리고 순종과 결합되어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Perkins 1626, 1:32; 원종천 1998, 48).

대체 이 내용은 어떻게 새로운 방향의 청교도운동의 신학적 원동력이 되었을까? 독자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구원을 위해 행동하고 최대한 경건하게 살게 만드는 율법주의 신앙과 목회의 마력을 연구하면  충분히 이해될 것으로 생각한다. 1580년대 초 국교회에서 이탈하여 최초의 청교도 회중교회를 세웠던 브라운이 주장했던 율법주의가 10년 후 청교도 회중교회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게 되는 퍼킨스에 의해 더욱 정교한 모습으로 제시되었다. 퍼킨스는 구원이 하나님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한 인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구원이 하나님과 인간 쌍방간의 조건과 협력의 산물이라는 거짓 신학을 매우 세련되게 기술하였다.

최근 총신의 김효남 교수가 시내산에서 기록되어 주어진 십계명이 처음 창조 때 자연적 방식으로 이미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어졌고, 아담은 그것을 지켜서 영생을 얻었어야 했다는 주장을 <총신원보>에 기고하여 큰 논란이 일어났다. 그와 동일한 내용을 이미 1590년대 초에 퍼킨스가 주장했던 것이다.

퍼킨스는 칼빈에게서 전혀 볼 수 없는 비성경적인 행위언약 이론만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신호섭(2016, 89-93)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퍼킨스는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들을 대신 순종하여 얻으신 의를 신자들에게 전가하고, 그리고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에 대한 속죄, 이 두 가지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었다는 내용의 칭의론을 전개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 이단시비를 강하게 받고 있는 그리스도의 능동적-수동적 순종 교리는 바로 퍼킨스의 신학이었던 것이다. 문론 퍼킨스 이전, 칼빈의 후계자로 알려졌으나 실상 칼빈의 신학을 왜곡한 베자 때부터 그것이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또 다른 심각한 이단사상 하나도 퍼킨스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이 영생을 얻기 원하면 먼저 아담에게 부과되었던 율법의 계명들을 통해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아담이 마주했다는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를 알고, 자신이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를 알고,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슬퍼하면서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찾기 시작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퍼킨스는 가르쳤다 (윌리엄 퍼킨스 1590, 275). 이것이 바로 한국의 예장 합동이 22년 총회에서 정성우 목사와 함께 ‘교류금지’ 대상으로 결의한 회심준비론이다.

그 동안 칼빈주의 또는 칼빈의 신학을 더 세련되게 발전시킨 청교도 개혁신학이라고 소개되었던 것이 주장하는 이상한 세 가지, 1)행위언약, 2)그리스도의 능동적-수동적 순종, 3)회심준비론이 모두 퍼킨스에게서 159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이 가운데 칼빈에게서 그 내용을 찾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맺는 말>

회중교회를 세운 청교도들의 율법준수 공동체로서의 교회론은 칼빈의 신학과 전혀 다른 내용이다. 칼빈은 신약 성도가 구약의 신자들처럼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가르친 적이 없다. 칼빈은 구약의 율법이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율법의 그 기능이 끝났다고 보았다. 신약의 성도에게 율법이 하는 일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이 칼빈의 신학이었다.
 

 

“율법은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게 될 때 더 명백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유용성이 다양할지라도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롬 10:4)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기인된 것이다” (기독교강요, 1.6.2.).

겉으로 칼빈주의를 표방했던 청교도들은 왜 율법과 모든 중요한 것에서 항상 칼빈에게서 벗어났을까? 칼빈보다는 칼빈의 후계자였으면서 칼빈의 신학을 왜곡한 베자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퍼킨스에 의해 청교도신학의 기초가 세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유력한 설명이다. 그런데 퍼킨스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 최초의 회중교회를 세운 브라운도 그렇게 심각한 율법주의 교회를 추구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브라운과 퍼킨스 사이에 어떤 공통 분모는 없을까? 나는 초기 청교도들에게 신학적 영감을 주었고, 초기 청교도들에게서 크게 존경을 받았던 선생 리차드 그린햄을 자세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햄이 캠브리지에서 가르칠 때 퍼킨스와 브라운도 캠브리지의 학생이었다. 여러 자료들이 두 사람 모두 그린햄에게서 신학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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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ins, William. 1626. The Works of William Perkins. 1 vol. London: John Legatt.

원종천. 2018.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대한기독교서회.

윌리엄 퍼킨스. 2016. 황금사슬: 신학의 개요. 김지훈 역. 킹덤북스.

존 칼빈. 기독교강요.

신호섭. 2016. 개혁주의 전가교리. 지평서원.

존 파이퍼. "율법주의란 무엇인가." 
You Tube video, 6:42. https://www.youtube.com/watch?v=jsQrSPwC-J0&t=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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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