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글에서 청교도운동은 사실상 칼빈의 신학과 장로교회를 죽이고 회중교회를 세운 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영국에서 종교개혁(청교도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프랑스의 개혁교회가 프랑스에서 일어난 회중교회 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관련자들을 추방하고 서적들을 불태웠다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첫 번째 글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참조>
“청교도운동은 칼빈의 장로교회(개혁신학)를 칼로 죽이고 일어선 회중교회 운동”(1회)

그러나 한국의 청교도 개혁주의자들은 프랑스 개혁교회가 회중교회 사상을 이단정죄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청교도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중교회와 장로교회는 교회 정치에서는 달라도 신학에서는 같다!”

사실 청교도주의자들의 이 말에는 타당성이 있다. 회중교회 사상을 이단 정죄하는 앞장선 사람은 칼빈의 친구이며, 칼빈이 죽은 후 칼빈이 세운 제네바 신학교를 물려받은 베자였다. 동시에 청교도들의 신학의 기초를 제공한 사람도 베자였다. 청교도운동의 신학적 이론을 세운 윌리엄 퍼킨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칼빈이 아니고 베자였다. 퍼킨스가 칼빈의 신학을 깊이 배웠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으나, 반대로 베자의 신학을 배워서 영국에 소개하여 청교도신학의 기초가 되게했다는 증거들은 쉽게 접할 수있다.

서요한 교수(2016, 100)는 R. T. Kendall과 Charles Bell과 J. B. Torrance의 논문을 언급하면서 “칼빈의 신학은 베자에 의해 잘못 가르쳐진바, 이를 영국의 청교도들, 특히 윌리암 퍼킨스와 윌리암 에임스가 영향을 받아 잘못 작성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요한 교수의 말에 의하면, 베자는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바르게 소화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베자가 칼빈의 후계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Joel R. Beeke와 Mark Jones(2012, 120-121)도 청교도 신학의 아버지 퍼킨스가 베자의 타락 전 예정설을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타락 전 예정설’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직 인간의 타락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생각하시는 상태에서 소수의 자기 백성을 택하시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이론이다. 반대로 ‘타락 후 선택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창조 후 자기 백성으로 창조된 인간이 자기에게 반역할 상황을 생각하시는 상태에서 소수의 자기 백성을 택하여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이론이다.

대부분의 올바른 개혁신학자들은 타락 후 선택설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타락 전 선택설에 의하면, 하나님은 많은 인간들 가운데 택하신 소수만 구원하시기 위해 다른 다수가 유기되도록 인간의 타락이 일어나도록 조장하셨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타락 후 선택설은 “하나님께서 아담 창조 후에 있을 타락 즉 아담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 사건을 내다보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찬송하는 자기 백성을 가지시려는 창조경륜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죄로 죽을 자들 가운데 일부를 택하셨다”(정이철 2022)는 결론에 이른다. 

서철원 박사도 “타락 전 선택설은 구원에 이를 자들을 선택하시고, 그 선택을 이루기 위해 창조를 하시고, 창조하신 후에 타락을 허용하사 선택된 자들을 구원하신다. 이 타락 전 선택설은 바른 가르침이 아니다”(서철원 2021, 35)고 말했다 .

라은성 교수도 퍼킨스에 대해 “영국에 베즈의 신학사상을 소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 월리엄 퍼킨스는 1598년 베즈의 타락전 선택론을 지지하는 글 <예정론 형태와 순서>(praedestinationis mode et ordine)를 썼습니다 ... 개혁신학과 청교도사상을 결합한 경건을 강조한 분입니다” (라은성 2018, 59-60)라고 평가했다. 

여러 자료들을 통해 볼 때, 청교도 신학의 아버지 퍼킨스의 신학의 뿌리는 칼빈이 아니고 칼빈의 친구 베자였다. 특히 베자의 타락 전 선택설과 퍼킨스가 청교도 개혁운동의 신학적 동력원으로 제시한 행위언약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퍼킨스가 1590년대 초에 자신의 책 <황금사슬>에서 제시한 행위언약 이론을 다시 보자. 퍼킨스의 이 이론이 전체 영국에 확산되었고 50년 후에 열린 웨스트민스터 총회 신학자들에 의해 채택되어 신앙고백서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하에서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인간과의 계약이다. 이 언약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약속과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약속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Perkins 1626, 1:32; 원종천 1998, 48).

“행위언약은 완전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윤리법은 인간에게 그의 본질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종을 명령하는 하나님 말씀의 부분이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금한다 ... 율법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순종을 요구하는 법과 그리고 순종과 결합되어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Perkins 1626, 1:32; 원종천 1998, 48).

퍼킨스가 제시한 행위언약 이론과 하나님이 창세 전에 아직 인간의 타락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생각하시면서 다수의 인류 가운데 소수를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다는 타락 전 선택설은 서로 맥락이 통한다. 왜냐하면 많은 인류 가운데 다수를 넘어지게 하고 소수를 자기 백성으로 만드셔야 하는 상황을 하나님 자신이 만드셔야 하기 때문이다. 퍼킨스의 행위언약 이론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것에 대한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과 자기 백성의 자격을 준다는 매우 어려운 시험을 부과하셨다고 한다. 결국 아담은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고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베자에게서 퍼킨스에게로 전달된 타락 전 선택설에 의하면, 하나님은 아직 인간의 타락이 일어나기 전 상황에서 소수의 자기 백성을 택하셨으므로 다수가 심판에 처해져야 하는 상황을 하나님 자신이 만드셔야 한다. 퍼킨스가 처음 체계화시켜 청교도 경건운동의 신학적 동력원이 되게 한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은 타락 전 선택설과 잘 통한다.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이 칼빈 사후에 크게 왜곡되었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대체 칼빈의 종교신학을 왜곡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칼빈의 친구 베자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베자는 ‘칼빈의 제자’, ‘칼빈의 후계자’라고 일컬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베자가 제네바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을 때, 알미니우스가 학생이 되어 약 1년 베자의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알미니우스는 베자를 통해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배우지 못했다. 베자가 칼빈의 신학을 제대로 계승하여 바르게 설명할 준비가 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알미니우스는 칼빈주의를 가장 심각하게 대적하는 알미니안 신학의 조상이 되고 말았다. 알미니우스가 제네바를 떠나 고국 네덜란드로 갈 때, 네덜란드에서 교수가 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서 보낸 사람도 베자였다. 베자가 알미니우스에게서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느꼈던 적은 있었을까?

칭의 신학에서 칼빈와 베자의 차이는 너무도 명백하다. 칼빈은 죄용서가 곧 의롭다 하심이라고 가르쳤다. 칼빈의 칭의 신학을 볼 수 있는 그의 말들을 직접 보자.
 

 

“그러므로 사도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다시 받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원수라고 가르친다(롬 5:8-10). 그래서 주께서 받아들여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신 사람은 주께서 의롭다 하신다고 한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지 않고는 자신의 은혜 가운데 받아들이거나 자신과 결합시키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일이 죄의 용서로써 이루어진다고 부언한다” (기독교강요, 3.11.21).

“그래서 세리가 의롭다함을 받고 성전에서 내려갔다고 할 때에(눅 18:14), 그가 어떠한 행위의 공로로 의를 성취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죄의 용서를 받은 후에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리가 옳은 사람이 된 것은 그의 행위가 옳다는 인정을 받아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거저 사면해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브로시우스가 죄의 고백은 합법적인 칭의라고 한 것은 적절한 표현이었다” (기독교강요, 3.11.3).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 (기독교강요, 3.11.3)

“이것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고 한 것과 똑같은 뜻이다. 그뿐 아니라, 로마서 4장에서 그는 처음으로 칭의를 ‘의의 전가’라고 부르며 칭의를 죄의 용서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사함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7, 시 32:1)고 말하였다” (기독교강요, 3.11.4).

“만일 하나님께서 무죄 방면과 사죄로 우리를 의롭다 하지 않으신다면 바울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라고 말한 것은(고후 5:19)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21절). 우선 나는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이 의롭다고 인정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에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심으로써 의롭다 하신다는 뜻이 포함되었다” (기독교강요, 3.11.11).

“믿음의 의는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이 화해는 곧 죄의 용서라고 정의한 말이 얼마나 옳은가를 이제 검토해야 하겠다” (기독교강요, 3.11.21).

그러나 베자는 율법준수에서 칭의와 영생이 나온다고 이해하였고, 그리스도가 율법준수하신 공로가 전가되어 신자가 의롭게 된다고 가르쳤다. 베자는 1556년에 라틴어로 쓴 자신의 신약 성경 주해서의 로마서 5:18절에서 다음과 같이 합동이 21, 22년 총회에서 비성경적이라고 규정한 능동적 순종 사상을 기술하였다.

“왜냐하면 죄의 용서, 즉 우리에게 전가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리신 만족에 의해, 우리는 의롭다고 선언되었는데, 다시 말하여 그리스도가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인해 우리는 무죄하다고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가된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해 우리는 또한 의롭다고 선언되었고, 모든 것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붙잡음으로서, 그리고 (율법을 행하는 자는 율법으로 산다는) 그 율법의 공식안에서 우리는 영생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De Campos 2009, 90, 번역 정이철).

또한 베자는 1570년에 출판한 자신의 책 <질문과 답>에서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말했다.

“그러므로 당신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이 즉 의로운 자로 인정되고 선언된 이유가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인데, 이 순종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즉 우리 죄에 대한 만족과 모든 율법에 대한 완전한 완수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답: 그렇다” (이남규 2021, 178).

베자의 “우리 죄에 대한 만족”과 “모든 율법에 대한 완전한 완수”개념은 1600년대에 이르러 용어와 개념이 확정된 그리스도의 능동적-수동적 순종 교리의 중심적인 내용이다. 그렇다면 대체 베자는 칼빈이 가르치지 않았던 그리스도의 능동적-수동적 순종 개념을 누구에게서 배웠던 것일까? 신호섭 교수의 논문에서 그 해답을 알게 되었다. 신 교수는 독일계 미국인 데이비드 슈타인메츠(David Curtis Steinmetz, 1936-2015) 박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베즈가 루터파 신학자 프라시우스(Flacious)의 책에서 이 개념과 용어를 배웠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호섭 2016, 73).

“칼빈은 비록 죄 용서를 더욱 강조했지만, 칭의를 그리스도로 인한 죄의 용서와 전가로 간주했다. 그러나 베자는 루터파 신학자인 플라시우스의 저작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별하는 개념을 가져왔다” (Steinmetz 2001, 118).

 

맺는 말>

청교도운동은 결국 장로교회를 무너뜨리고 회중교회를 세운 운동이었다. 그리고 청교도들의 신학적인 뿌리는 칼빈의 신학이 아니었다. 퍼킨스와 청교도운동은 칼빈의 신학을 왜곡한 베자의 신학의 열매였다. 베자는 회중교회 정치 제도를 이단으로 규정하는데 앞장섰으나, 불행하게도 회중교회를 세운 청교도들에게 신학적 영감을 준 인물이다.

베자가 칼빈의 신학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주의 신학을 전개했으므로 결국 칼빈의 신학을 계승하는 장로교회 신학과 베자의 신학에서 영감을 받은 퍼킨스와 청교도운동의 열매인 회중교회의 신학은 같은 신학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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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inmetz, David C. 2001. Reformers in the Wings: From Geiler Von Kaysdersberg to Thodore Bez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신호섭. 2016. 개혁주의 전가교리. 지평서원.

이남규. 2021.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전기 정통주의 견해.” 안상혁, 이영래, 원태영 편집.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제33회 정암신학강좌. 2021년 11월 16일.

De Campos, Heber C. 2009. “Johannes Piscator(1546-1625) and The Consequent Development of The Doctrine of The Imputation of Christ’s Active Obedience”. Ph. D diss., Calvin Theological Seminary.

원종천, 2018.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대한기독교서회.

Perkins, William. 1626. The Works of William Perkins. 1 vol. London: John Legatt.

라은성. 2018. 이것이 교회사다: 가공된 진리. PTE.

서철원. 2021. 에베소서. 쿰란출판사.

정이철. 2022. 타락 전 선택설', '타락 후 선택설'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바른믿음. 2022년 7월 15일.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2648.

Beeke, Joel R. & Mark Jones. 2012. A Puritan Theology: Doctrine for Life. 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Books.

서요한. 2016. 청교도유산. 그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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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