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이 잘 듣지 않는 일의 하나로, 종교개혁 시기 개혁 교회에서는 사순절을 폐하였다고 강조하고 칼뱅과 청교도들은 사순절 등 특별한 절기를 지키지 않고 매일매일 십자가의 빛에서 살아가야 함을 강조했다고 해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일을 언급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려고 한다.장 칼뱅은 그의 주저 ‘기독교 강요’에서 천주교에서 사순절을 미신적으로 지켜 나가는 것의 폐해를 지적한다. 그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를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해야 하는데, 성경에는 사순절을 지키라는 규정이 없으므로 이를 지키는 것은 성경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인간의 규례를 따르는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칼뱅은 양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
질문>이승구 교수님!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으시나 우리와 동일한 피조된 인간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죽으신 후 예수님의 몸이 땅의 무덤에서 잠시 부패의 과정을 겪고 계실 때(행 13:34), 예수님의 인성의 영혼은 어디에 계셨을까요? 이것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신성이 인성을 취하신 후에는 항상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실 때 취하신 인성은 예수님의 몸과 영혼을 지칭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에서 내려져 준비된 무덤에 계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인성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는가? 라고 사람들은 자주 묻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추론에 근거하여 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한편 강도에게 "오늘
마지막으로 이 모든 교리적 실천적 주장과 함의들이 모두 성경에서 나왔다는 것을 아주 자명하게 하면서도 이것을 현저하게 밖으로 드러내 놓고 논의하고 있지 않음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특유의 강함과 부드러움을 드러내는 것이다.내용으로 보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못지않게 오늘 우리에게는 성경에 있는 것만이 하나님의 특별 계시이고, 따라서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의 계시(啓示)가 다 주어지고 난 후에는 더 이상의 새로운 계시(啓示)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를 아주 명백하게 천명한다.아마 한 세기 후의 개신교회(1647)는 좀 더 분명하게 이를 분명히 천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강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하나님께서 자
다른 것에 비해 권징 문제에 대해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83문-85문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읽어 보면 성경을 따라서 그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잘 드러내어 우리가 말하는 강함과 부드러움의 전형적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이것이 과연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83-85문답을 그대로 인용하는 일로부터 시작해 보자:(제 83 문)(천국의) 열쇠의 직임(職任)(The Office of the Keys)이란 무엇입니까?(답) 거룩한 복음의 선포와 교회의 권징(勸懲)입니다. 이 둘로써 천국이 신자(信者)들에게는 열려지고, 불신자(不信者)들에게는 닫히는 것입니다.(제 84 문) 어떻게 천국이 거룩한 복
겉으로 보기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어떤 한 문답을 선택 문제에 대해 할애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마치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선택에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첫째는 선택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가 무엇인지와 관련해서 “거룩한 공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에 대해서 당신이 믿는 바는 무엇입니까?”라고 묻고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다:(답) "나는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온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그의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참된 신앙의 연합 가운데 있는 선택된 공동체를 당신님을 위하여 영생을 하도록 모으시고, 보호하시며, 보존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성찬에 대해서 진술할 때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루터파의 입장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성찬에 대한 적극적 진술에서도 명확히 개신교적 입장 가운데서 어떤 쪽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그래서 오랫동안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성찬론이 칼빈적인가? 쯔빙글리적인가? 불링거적인가? 멜랑흐톤적인가? 아니면 그것들 중 일부를 결합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를 논의한 학자들은 이 중의 어느 하나의 명칭으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성찬론을 규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그래서 평생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연구하고, 모으고, 널리 논의하는 일에 헌신 했던 화란의 ‘빌렘 베르붐’교수는 팔리티네이트 공국의 다양한 신앙 고백적 흐름들의 ‘최대
1562년에 준비되어서 1563년 1월 19일에 공식적으로 출판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 내용을 잘 살피면 아주 강한 개혁신앙의 선언이다. 그러나 이 교리문답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 본 거의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듯이 이 문답은 매우 부드럽게 진술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아주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고, 이를 읽는 사람들은 작성자들의 의도대로 진정한 기독교적 위로를 받게 된다.이런 두 가지 상반되어 보이는 듯한 성격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큰 특성이라고 여겨서 이 논문에서는 이 요리문답의 강함과 부드러움을 여러 측면에서 드러내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의 신학함과 기독교적 삶에 주는 함의를 이끌어 내고자 한다.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선언의 역사적 배경먼저 하이델베르크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