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강함과 부드러움(1)

이승구 교수(합동신학교, 조직신학)

1562년에 준비되어서 1563년 1월 19일에 공식적으로 출판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 내용을 잘 살피면 아주 강한 개혁신앙의 선언이다. 그러나 이 교리문답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 본 거의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듯이 이 문답은 매우 부드럽게 진술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아주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고, 이를 읽는 사람들은 작성자들의 의도대로 진정한 기독교적 위로를 받게 된다.

이런 두 가지 상반되어 보이는 듯한 성격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큰 특성이라고 여겨서 이 논문에서는 이 요리문답의 강함과 부드러움을 여러 측면에서 드러내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의 신학함과 기독교적 삶에 주는 함의를 이끌어 내고자 한다.

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선언의 역사적 배경

먼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이 세상에 나타난 배경을 살펴볼 때도 강함과 부드러움이 같이 있다는 점을 논의하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공표된 1563년이면 이미 아우그스부르크 협약(1555)이 이루어진 이후라 독일을 포함한 신성로마제국에서는 통치자의 종교가 그 주민들의 종교가 되는 일(cuius regio, eius religio)이 관례화되었다.

그러나 그 때 선택 가능한 종교라는 것이 천주교회냐 루터파 교회냐 둘 중의 하나였다. 그 외의 다른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은 제국회의에서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563년 강력한 개혁파적인 신앙을 천명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제국회의 참여자들 모두에게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 새로운 요리문답에 대한 반대는 출간 직후부터 시작되어 1566년에 이르러서는 그 극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해(1566)에 하이델베르크에서 통치하는 팔라티네이트 (Palatinate, 독일에서는 Pfalz라고 한다)의 선제후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작성과 배후의 든든히 정치적 후원자였던 프레데릭 3세(the Elector Frederick III of the Palatinate, 1515-76, 선제후로서의 재위기간은 1559-76)는 아우그스부르크 제국 의회(the Diet of the Augsburg)에 소환되었다. 물론 상황은 다르지만 이것은 1521년 루터가 챨스 5세(Charles V)가 소집한 보름스 제국회의(The Diet of Worms)에 소환된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 때(1521) 루터는 한명의 신부의 자격으로 소환되어 자신이 개혁하고자 한 신앙의 내용을 성경과 합리적 이유에 근거해 끝까지 붙든다고 선언하고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당시 교황으로 이미 1520년에 루터를 출교한다는 칙서(the Bull of Excommunication)를 발표했던 레오 10세(Leo X, 1475-1521, 1513년부터 재위)와 교황의 교회 문제 대리인인 제롬 알렉산더(Jerome Alexander, 1480-1542)가 요구하는 대로 이제까지 3년여(1517-1520) 말한 바를 철회하고 잘못했다고 할 것인가를 드러내어야 할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고, 이번에는(1566) 팔라티네이트 공국의 통치자인 선제후 프레데릭 3세가 다른 독일 지도자들의 천주교냐 루터파냐 하는 압력 앞에서 자신의 개혁파적 신앙을 천명하고 선제후 지위에 위협을 받을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에로 소환된 것이다.

아우그스부르크 제국회의 기간 중인 1566년 5월 14일에 프레데렉 3세는 개혁파적 개혁을 다 고치라고t(he abolition of the changes) 이미 여러 번 명령한 강력한 통치자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Emperor Maximillian II, 1564-1576 재위) 앞에 서서 황제와 다른 제후들 앞에서 다음 같은 도전을 하였다고 한다;

“제가 일전에 모든 제후들이 모인 앞에서 폐하 앞에서 공적으로 선언했던 바, 즉 그 어떤 시대, 어떤 계급의 사람이, 비록 그가 가장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성경으로부터 무엇인가 더 나은 것을 내게 가르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심정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하고, 그 신적인 진리에 기꺼이 순종하려고 한다는 그 말을 이제 제국 전체가 모인 앞에서 다시 반복하려고 합니다. 여러 제후들과 친구들 중에서 성경으로부터 더 나은 것을 가르치시는 분이 있으면, 나는 그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 성경이 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친히 그리하신다면, 나는 그것을 큰 호의로 여기고 아주 감사할 것입니다.”

이 도전에 대해 당시 제국 회의 장소에서 그 누구도 프레데릭 선제후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 후에 작센의 선제후 아우구스투스는 “프리츠 여!, 그대는 우리들 모두 보다 더 경건 합니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 용감한 선언이 오히려 그가 성경을 떠나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는 혐의를 풀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고, 역사(歷史)는 그를, 아우구스투스를 따라서, 경건한 프레데릭(Frederick the Pious)라고 칭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 당시 “천주교회냐 루터파냐?”의 선택만이 가능한 상황 가운데서 프레데렉 3세와 그의 통치지역인 하이델베르크에서 나온 이 신앙의 선언은 칼빈주의적인 것이라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이런 혐의에 대해서 프레데릭은 두 가지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1)자신은 칼빈의 글을 읽은 적이 없다. 따라서 자신은 사람들이 칼빈주의라는 말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2)자신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성경으로부터 성경에 근거하여 도출된 신앙을 표현한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이 두 번째 부분을 선언하는 그의 말을 다시 들어 보자:

“성경 이외의 그 어떤 다른 근거에서 내가 이 신앙을 확고히 붙잡는 것이 아니니, 나는 이 신앙이 신구약 성경에 수립되어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는 그 신조에 반대되는 것을 하거나 받아들였다고 그 누가 성공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도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 요리문답은 그 한마디 한마디가 인간적 원천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신적인 자료에서 이끌어져 나온 것이니, 이는 그 아래에 붙어 있는 성구들의 언급들이 잘 보여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프레데릭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선언하는 신앙의 내용이 철저히 성경적이어서, 이는 성경이라는 신적인 자료에서 나온 것이고, 따라서 이를 믿고 고백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를 믿고 고백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소위 “칼빈주의”가 무엇인지를 아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칼빈주의 또는 개혁주의는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여기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하여 우리가 흔히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라고 부르는 “오직 성경”의 원리가 아주 잘 천명되고 있다. 우리들은 언제나 성경에서 나온 것만을 우리 논의의 최종적 근거로 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종적 결정은 항상 성경이 말하는 것으로 한다는 이런 태도와 신조가 결국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아주 분명히 하는 프레데릭의 태도는 우리 시대에 더 필요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부터는 성경과 신조를 대립시키는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그 연관성 가운데서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을 대립시키는 태도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레데릭 선제후가 드러낸 태도야 말로 진정한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분명하고 강한 태도여야 한다. 비록 부족함이 있을 찌라도 신조에 표현된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잘 표현하려고 시도한 것이라는 이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프레데릭이 이 요리문답의 직접적 작성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프레데릭의 이 고백은 참으로 좋은 그리스도인의 옳고도 바른 태도이다.

하이델베르크의 신학자인 교의학 교수 자카리우스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 독일어로는 Zacharias Bär, 1534-1583)와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 (Heiliggeistkirche)의 담임목사였던 카스파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 1536-1587)가 앞장서고, 다른 신학부 교수들과 교회회의 위원들이 협력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요리문답에 대해서 이 고백서의 정치적 생성 원인이 된 프레데릭 선제후가 이 요리문답이 천명하는 신앙은 오직 성경으로부터 이끌어져 나온 것이며, 성경 외의 인간적 원천에서 온 것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한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정통적 교리의 내용이 성경적인 것임을 확신하고 그렇게 천명해야 할 것이다. 신조를 따라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을 고백하는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처음 고백자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우리들에게도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확신을 가진 신앙을 고백하는 방식은 매우 부드럽다. 그리고 다른 이들까지를 포괄할 수 있는 듯이 진술되고 있다.그래서 이 신앙고백을 하면서 성경을 잘 공부하다 보면 점점 더 성경적인 사상에로 확고한 신념이 나타나게 되어 있으니, 이것은 매우 교육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이런 측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성찬 이해에 대한 고찰”로 나가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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