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능동순종 9번째 영상을 시청한 후 비평(1)

 

정태홍 목사의 능동순종 9번째 영상을 시청한 후 비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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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호 교수는 '불멸성의 선물'이 아니라 '불변성이라는 선물' 아닌가요? 정확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문병호 교수는 영생의 선물이라는 의미인 거 같은데요? 불변성이 육체적인 불멸성이라면 선물이 아니거든요? 또한 정태홍 목사처럼 네거티브를 하면 육체적인 불멸성이 선물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생불사의 영생교가 됩니다.

문병호 교수와 원광연 목사가 영생교를 믿는자는 아닐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원광연 목사는 호주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분 입장에서는 immortality가 영생으로 자연스럽게 해석이 되어서 그냥 불멸성이라고 번역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불멸성이 믿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육체적인 불멸을 의미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과 성경에서는 영적인 불멸 즉 영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gift는 선물이기 때문에 영생이 선악과 언약 준수로 주어진다면 선물이 아니기에 이미 은사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능동순종자들도 인정을 하는 것으로 성경을 근거로 한 완전한 논리로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것도 네거티브를 하던데, 그냥 성경이나 상식을 믿지 않는 자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성경에서는 gift가 은사입니다. 은사 즉 그져 주시는 선물이기에 완전한 영생입니다. 가변성이 있는 불멸성은 자연적인 것이므로 은사가 아니기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선물로 주시지 않습니다. 또한 영생이 선악과 언약 준수로 주어진다면 이미 은사가 아닐 것입니다.

정태홍 목사는 누구나 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위의 gift에 대한 설명을 일단 무조건 네거티브하면서 은사가 인간이 전혀 개입할 수 없는 것이며, 근본적인 이유가 의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혹시 로마서 5장 16절 말씀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즉 은사=의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요? 은사와 의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죄에 은사가 뒤따라와서 죄가 없다는 무죄 선언을 받은 것입니다.

<기독교강요> 4.14.12에서 'the gift of immortality'는 gift라는 단어가 있어서 이건 '완전한 영생'이 맞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쟁점이었는데, 정태홍 목사는 네거티브에 이어서 무엇을 주장하는지 알 수 없네요? 그냥 이유없이 네거티브를 한 것이고, <기독교강요> 4.14.12에서 'the gift of immortality'는 '완전한 영생'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까? 이걸 보려고 49분짜리 영상을 본 건데, 너무 허무합니다. 정태홍 목사는 네거티브 외에는 할 말이 없나요? 아니면 혹시 영생불사를 믿는 영생교 목사입니까?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 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롬5:15).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왜 죽었을까요? 인류가 죽었다가 다시 영생을 선물로 받았다고 했으므로 인류는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냥 아담의 육체적인 불멸의 소멸이라면, 자연적인 것이므로 은사가 아니기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선물로 주시지 않고 인류 전체의 영이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차원의 영생을 선물로 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된 것입니다. 아담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전가가 되어서 인류가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롬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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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목사는 육체적인 불멸을 의미하는 immortality가 능동순종자들이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라 원래 육체적인 불멸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immortality가 완전한 영생을 의미하는 것을 증명을 해보라고 합니다. 구글에서 ‘the gift of immortality’나 ‘immortality’를 검색을 해보면 고등학생 영어 수준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서 영어를 배웠던 학생들도 이런 질문은 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일부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eternal life는 영생의 의미로 각인이 되어있는 편이지만, immortality는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eternal life와 차이가 없습니다immortality는 일상 생활에서는 육체적인 불멸의 의미로 사용할 때도 있겠지만 사람의 구원을 다루는 성경에서는 영생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성경에서 immortality가 완전한 영생의 의미로 쓰인다고 5구절 중에서 2개를 해석했습니다. 박사라면 이 정도는 굳이 이렇게 제가 해석을 하여 증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 아닌가요?

“To them who by patient continuance in well doing seek for glory and honour and immortality, eternal life” (2:7).

말씀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로마서 2:7의 개역개정 번역은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입니다. 또는 능동순종자들은 "불멸(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사람에게 영생으로 하셨다"로 번역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능동순종자들은 영어 'immortality'만 의미를 개인적으로 정의하여 고착화를 시킨게 아니라 한글 '불멸'까지 개인적으로 정의를 하여 고착화를 시킨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불멸(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사람을 능동순종자들은 가변성이 있는 불멸 즉 육체적인 차원의 죽음이라고 생각하기에 아담이 완전한 영생이 없었다고 생각한 것처럼 로마서 2:7을 육체적으로 죽지 않음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을 할 겁니다.

그러나 썩어 없어질 땅의 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기독교가 영생불사를 믿고 육신이 죽지 않음을 구하는 영생교 같은 종교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위의 로마서 27절 말씀은 immortalityeternal life를 동격으로, 즉 하늘에 속한 영적인 차원의 영원한 것 즉 완전한 영생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의미로 해석을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능동순종자들은 'immortality''불멸'이라는 단어에서 영적인 의미인 영생이라는 것은 없고 오직 육체적인 불멸만 의미한다고 단어를 임의로 조작하여 스스로 영생교가 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In the way of righteousness there is life; along that path is immortality” (Proverbs [NIV]12:28).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12:28).

공의로운 길은 의인의 길이겠지요? 의인의 길에는 생명이 있고 악인의 길에는 사망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망은 immortality로 되어있고 이를 고착화된 의미인 육체적인 불멸로 번역을 한다면 말이 안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의인의 길에도 육체적인 불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인의 길에 육체적인 불멸이 없다면 영생불사 영생교가 됩니다.예수님을 믿으면 영생불사가 되나요?

그런데 eternal life는 완전한 영생이라고 고정을 하고 생각을 하네요? eternal life는 완전한 영생으로 고정된 의미가 아닙니다. eternal life, immortality 둘다 같거나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누가 어떤 관점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이라면 그냥 육체적인 죽지않음을 생각할 수 있고 성경은 구원을 이야기하는 책이기 때문에 완전한 영생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정태홍 목사는 위키드피아에서 기독교가 아닌 종교 카테고리에서 검색해서 나오는 존재의 지속을 칼빈이 immortality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개념을 정태홍 목사 자신도 믿고 있다고 합니다. 다원론자인가요? 적어도 구글에서 기독교나 성경을 다루는 사이트를 검색을 해봐야 되는 거 아닐까요?

지금까지 정태홍 목사의 능동순종에 관한 9번째 영상의 20~30분까지를 시청하고 비평을 한 것입니다. 이 이후의 영상은 쟁점을 많이 벗어나기 때문에 정태홍 목사가 기독교강요 4.14.12에서 'the gift of immortality'를 완전한 영생으로 인정을 한다면 토론을 할 것입니다.

이 이후에도 정태홍 목사가 기독교 강요나 로마서 주석 등에서 번역된 글을 인용해 놓고 제대로 된 분석없이 횡설수설 하는 것에 대하여 바로 잡을 건 바로 잡고 정확한 해설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큽니다. 요즘에는 능동순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으로 (감동이라고 하고 싶지만 저는 신비한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글을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 홍정환 성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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