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물결 플러스 대표 김요한 목사는 직통계시를 즐기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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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물결 플러스 대표 김요한 목사는 직통계시를 즐기는 사람인가?
  • 정이철
  • 승인 2017.11.30 11:08
  •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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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물결프러스 김요한 목사(희망찬교회 금요성령집회 강사로 소개하는 장면 캡쳐)

새물결 풀러스 출판사 대표 김요한 목사가 예언을 잘 하시는 모양이다. 김요한 목사는 나의 첫 번째 책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여 주신 분인데, 이 분을 비판하는 말을 하려니 마음이 썩 즐겁지 않다. 어떤 분이 김요한 목사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예언기도를 받았다고 글을 올리셨다. 2년이 지난 후 그 내용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분이 김요한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예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아내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하라. 아내가 여자임을 느끼게 하라. 아내의 축복기도 속에 자신이 성장하고 치과의 물질이 풀리는 것을 기억하라.

남편이 영적 제사장되기 원하는 아내의 마음을 보아라. 본업에 충실하여 은밀히 많이 도우라. 좋은 목사 만나기 위해 기도하라. 삶으로 존경받는 장로가 되라. 이견있는 지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수용하고 품으라. 잠재적 능력이 자신의 의, 고집으로 꺽이지 않게 하라. 좋은 리더만나 동역하라

아내를 세심히 배려할 때, 아내의 긍휼함과 축복기도 속에 샤워기의 막힌 부분이 뚫려 치과가 번성한다. 기도 응답의 경험을 쌓으라. 거친 파도 후 잠잠함이 보인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끝까지 지켜라”(어떤 성도에 대한 김요한 목사의 예언기도의 내용)

나는 김요한 목사의 예언기도의 내용을 소개하신 분에게 예언기도라는 것은 성경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이해하시지 못하는 그 분과 나 사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화가 이어졌다. . 

“사실 그 기도는 예언기도라기 보다 충고였고 질책이었습니다”
"그러면 김요한 목사님이 상담해주셨다고 설명했어야지요”(정이철 목사)
“상담 후 기도하시면서 해주신 기도의 내용이라는 말씀(입니다). 제 개인적인 것을 드러내는 이유는 충분히 기도해 주고 그 기도를 받아 순종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증거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기도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오는 느낌을 전해주는 것을 소위 ‘예언기도’라고 하고 있는데, 성경 가지고 다니는 박수무당들이 하는 짓입니다. 다시는 만나지 마세요. 그 예언기도로 이익을 보았으면, 그 정도로 귀신에게 코를 꿴 것입니다. 나중에 손해 봅니다. 이미 많은 사례들이 교회사에 나타났습니다. 제 말을 나중이라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정이철 목사)
“말씀으로 분별하는 영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나요?”

현대의 예언에 대해서 위험성을 이야기하면서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해주면, 이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이 예언을 분별하라고 했다고 한다. 예언은사자들이 주는 예언을 분별하면 손해를 안 본다는 것이다. 김요한 목사의 예언기도 내용을 소개하신 분도 그랬다. 대체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예언을 받을 때 손해를 보지 않도록 말씀으로 분별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어디에 있는가?

비성경적인 예언활동을 그럴싸한 신학이론으로 백업하여 준 유치한 신학자가 웨인 그루뎀이라는 분이다. 그는 예언을 받으면 손해를 보지 않도록 분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게 가르친 웨인 그루뎀의 예언이론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그의 예언이론의 상당 부분은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 14:29)에 근거한다. 마침 오늘 아침에 예언에 대하여 쓴 글 속에 바로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웨인 그루뎀의 예언이론의 상당부분이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 14:29)와 연관되어 전개된다. 웨인 그루뎀은 사람들이 예언으로 인해 오히려 손해와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경의 이 구절을 매우 요긴하게 활용하면서 자신의 예언이론을 전개하였다. 예언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이유는 성경의 말씀처럼 예언을 받은 사람들이 예언의 내용을 ‘분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분별"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는 내용의 진위를 비판(분석, 분별)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고, 사람의 외적인 특징을 구별하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외적인 특징에 대한 구별의 의미로, 야고보서에서 부자 신자와 가난한 신자의 특징을 구별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고린도전서에서는 교회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성숙성을 가진 한 사람을 찾아내라는 의미로 쓰였다.

‘분별’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람이 말하는 내용(예언)의 진위를 분석하고 비판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이 말씀(예언)을 전하게 하시는 사람들(예언자)이 질서있게 전하도록 순서를 세우라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이 사실을 지적한 대표적인 개혁신학자는 팔머 로벗슨인데, 그는 웨인 그루뎀의 예언이론의 상당부분이 ‘분별’이라는 단어를 엉터리로 해석하면서 전개되고 있으므로 그의 예언이론의 상당부분이 자동적으로 허물어지고 만다고 진단했다”(정이철, “웨인 그루뎀의 예언 이론은 피터 와그너의 사상과 거의 동일”)

김요한 목사의 예언기도 형태를 성경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고 나니 또 다른 사람이 달라붙어 질문도 아닌 내용으로 시비를 걸었다. 그 분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예언기도’라는 것은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예언을 받았던 구약의 선지자들과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계시가 주어지는 과정 즉, 성경이 기록되는 과정에서 쓰임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완성된 이후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면서 예언을 받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직통으로 통하는 사람을 ‘직통계시자’라고 하는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단이라는 사실은 건전한 기본상식입니다. 김요한 목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직통으로 통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예언기도를 한다면 김요한 목사는 ‘직통계시 이단자’입니다.”(정이철 목사)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의 말대로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면서 또 나에게 달라붙자, 이렇게 말해주었다. 

“계시가 주어지는 과정에서 그러한 현상을 체험한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계시가 종결된 후에는 그러한 역사가 더 이상 없습니다. 성경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기도로 바로 통하는 사람을 직통계시 이단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김요한 목사에게서 나타나는 예언기도는 매우 위험한 사이비 현상입니다. 이것이 정통신학입니다.”(정이철 목사)

김요한 목사로 인해 하나님의 기독교가 왜곡당하고 있다. 김요한 목사 개인을 상대로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으나, 그가 하나님의 기독교를 왜곡하고 성도들에게 악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개혁주의 신학을 한다는 김요한 목사가 예전부터 현대 방언에 깊이 빠졌고, 어디엔가에 진정으로 방언을 통역하는 신령한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고, 신자들에게 심방가서 예언기도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개혁주의 신학을 한다는 말을 그만 하면 좋겠다. 나도 김요한 목사의 <지렁이의 기도>를 주문했다. 읽어보고 또 이야기 하도록 하자!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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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사역 2018-05-12 19:48:18
한국교회가 거짓성령과 은사놀음에 미쳐가고 있지요.
어차피 이런 세태속에서도 보이는자는 볼수있을것이요,
들리는자는 들을수있을것입니다.
분별할 수 있을때,,
성령님이 진정으로 나와 함께하고 계심을 강하게 느끼게 되지요.
귀한사역 감사합니다.

진리의검 2018-01-15 17:52:00
정철이씨 귀하야 말로 지옥행이신데 의심나시면 귀하가 사는 동네에 무당점치기 하는 예언기도하는 목사들 차고 넘쳤으니 가서 안수기도 받고 맞는가 틀리는가 시험해보시길 대부분 사기쳐서 먹고사는 예언기도목사 환상 직통계시까지 들려주는 목사들 하나같이 하나님의 성령을 훼방하면 이라며 성령훼방죄 엄포놓는데 천만의 말씀 당시 성령훼방죄 경고하신분은 하나님의 아들 에수님이시고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고 생명을 살리는데 귀신들 역사라 하니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기가차지 않겠어요 그래서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이 예수님께서 나오신것이고 감히 비유할때다 비유해야지 성경의 말씀뜻도 모르는 사단의 종자들아 성령훼방죄 남발하는 놈들은 귀신 사탄들린 사단의 종놈들이고 지옥에 떨어져 용서받지 못할자들이고

정철이 2018-01-15 16:35:20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무조건 지옥행이다. 조심하라! 정이철아!

바울처럼 2017-12-05 22:43:22
루터가 비텐베르크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박아 놓은 이유는 종교개혁을 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서신으로 논쟁하는 방법과 더불어 당시의 흔한 논쟁의 한 방편이었습니다. 전혀 기분 상할 상황이 아니고 오히려 스스로의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1. "비신자에겐 영원한 비밀이라면, 전도를 받아 믿게 된 사람은 무엇입니까?"
=> 음... 이부분은 베드로님께서 '예정론'을 검색하시는게 빠를 것 같습니다.

2. "신학이 잘못되면 신학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합니까? 바른 신학을 해야겠죠. 은사가 잘못 사용되면 뿌리를 뽑아야 합니까? 바로 사용해야죠. 은사가 좋게 사용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 지금 베드로님께서는 [바른믿음]에서 논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개혁주의 신학을 기반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님께서 먼저 확인하셔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곳 즉, 개혁주의 신학을 수호하고 변증하는 [바른믿음]의 신학이 어떤 노선인지, 그리고 그 노선의 신학이 과연 바른 신학인지 연구하셔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옳다, 그르다 할 수 있겠습니까?

3. "이 토론을 하시면서 "어디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토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 이 곳 [바른믿음]의 존재 이유가 저런 사람들(어디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 않을까요? 어찌 보면 이 곳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의도: 바울이 정말 은사의 남용을 다루려고 있나요?"
=> 고린도전서를 다시 한 번 잘 숙독하시기 바랍니다.
4장부터 사도의 혹독한 힐책이 느껴지지 않으시는지요?
신약에 등장하는 교회들 중에 유독 각종 은사자들이 넘치도록 많았던 고린도교회에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간음과 교인들 간의 다툼으로 인한 법정 송사, 우상숭배, 술 취함,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 등등, 문제있는 사람들 역시 제일 많았습니다.
문제는 방언하며 예언한다는 사람들이 저런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교정하려하지도 않고 그저 옹알거리며 자신들의 은사(?)만을 자랑하기 급급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은사를 받았네 하는 사람 중에서도 저런 불법을 저질렀을지도 모르겠군요...ㅡ,.ㅡ
참다 못한 글로에라는 고린도교회의 교인에 의해 교회의 어지러운 상황이 사도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사도는 교회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편지를 쓰게 된 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은사자들이 은사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사용했다면 교회가 저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은사를 남용했으며 어린아이가 칼을 쥐고 휘두르듯 자신들의 자랑을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은사의 남용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들을 '육신에 속한 자', '어린 아이'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에 관해 12, 13, 14장에 걸쳐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며 그들의 은사의 남용과 은사의 바른 사용에 관하여 가르칩니다.
그런데요...ㅋ
현대의 은사자(?)들이 자신들의 은사를 옹호 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제시하는데, 이건 참 웃기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은사자들이 교인들의 수많은 불법 앞에 무기력했으며 아무런 덕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은사가 무엇때문에 필요할까요?(혹시 그들이 불법의 주동자일지도...ㅋ)

4. "은사에 대한 '언급'이 적을 뿐이지 은사가 쇠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죠."
=> 제가 앞에서 서술한 많은 증거는 인정되지 않는건가요?

"고전 12:4-11을 보십시오. 사도나 선지자들만 가진 은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이 가진 은사들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은사들이 중지되었다는 말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 이 부분은 사도가 교인들에게 은사의 바른 사용법에 대해 가르치는 부분입니다.
은사가 중지되었다니요? 헷갈리시면 안됩니다.
사도는 앞으로 은사가 중지될 것이라고 했지 저 때가 이미 중지된 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2017-12-05 17:19:26
저는 이 답변을 마지막으로 하겠습니다. 더 이상의 말은 불필요할 것 같습니다. 계속 의미 전달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입니다.

1. 비신자에겐 영원한 비밀이라면, 전도를 받아 믿게 된 사람은 무엇입니까?

2. 비성경적이거나 잘못 사용된 경우만 고려하며, 은사를 다 차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을 옹호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성경을 기반으로 은사가 과연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느냐를 토론하고 있습니다. 요리를 잘못해서 맛이 없으면 굶습니까? 제대로 요리를 해서 먹어야겠죠. 신학이 잘못되면 신학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합니까? 바른 신학을 해야겠죠. 은사가 잘못 사용되면 뿌리를 뽑아야 합니까? 바로 사용해야죠. 은사가 좋게 사용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3. 성경의 틀 안에서 때에 맞게 성령님께서 감동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 토론을 하시면서 "어디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토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은사의 지속성이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토론하고 있으니까요.

* 시대적 상황: 은사에 대한 언급이 적다고 해서 은사가 급격히 쇠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침묵으로부터 논증하는 것'입니다. 은사에 대한 '언급'이 적을 뿐이지 은사가 쇠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죠.
* 문맥의 앞뒤 상황: 선입견을 내려 놓고 본문을 다시 보시면 좋겠습니다. 문맥을 고려했을 때 가장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해석은 '온전한 것'이 '구원의 완성'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입니다. '철수' 비유에서도 맥락이 중요한데, 고전 13장 맥락에는 목사님이 말씀하신 의미를 찾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 저자의 의도: 바울이 정말 은사의 남용을 다루려고 있나요?

# 제가 12절을 언급하며 드린 질문(정경이 완성되었기에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명확하다면 왜 신자들 사이에 해석이 다른 것입니까?)은, 목사님이 이해하시는 '온전한 것'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 고전 12:4-11을 보십시오. 사도나 선지자들만 가진 은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이 가진 은사들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은사들이 중지되었다는 말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토론을 하면서 혹시 감정이 상하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몸부림치다 보니 다소 격해진 것 같습니다.
주님 안에서 강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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