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물결프러스 김요한 목사(희망찬교회 금요성령집회 강사로 소개하는 장면 캡쳐)

새물결 풀러스 출판사 대표 김요한 목사가 예언을 잘 하시는 모양이다. 김요한 목사는 나의 첫 번째 책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여 주신 분인데, 이 분을 비판하는 말을 하려니 마음이 썩 즐겁지 않다. 어떤 분이 김요한 목사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예언기도를 받았다고 글을 올리셨다. 2년이 지난 후 그 내용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분이 김요한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예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아내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하라. 아내가 여자임을 느끼게 하라. 아내의 축복기도 속에 자신이 성장하고 치과의 물질이 풀리는 것을 기억하라.

남편이 영적 제사장되기 원하는 아내의 마음을 보아라. 본업에 충실하여 은밀히 많이 도우라. 좋은 목사 만나기 위해 기도하라. 삶으로 존경받는 장로가 되라. 이견있는 지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수용하고 품으라. 잠재적 능력이 자신의 의, 고집으로 꺽이지 않게 하라. 좋은 리더만나 동역하라

아내를 세심히 배려할 때, 아내의 긍휼함과 축복기도 속에 샤워기의 막힌 부분이 뚫려 치과가 번성한다. 기도 응답의 경험을 쌓으라. 거친 파도 후 잠잠함이 보인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끝까지 지켜라”(어떤 성도에 대한 김요한 목사의 예언기도의 내용)

나는 김요한 목사의 예언기도의 내용을 소개하신 분에게 예언기도라는 것은 성경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이해하시지 못하는 그 분과 나 사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화가 이어졌다. . 

“사실 그 기도는 예언기도라기 보다 충고였고 질책이었습니다”
"그러면 김요한 목사님이 상담해주셨다고 설명했어야지요”(정이철 목사)
“상담 후 기도하시면서 해주신 기도의 내용이라는 말씀(입니다). 제 개인적인 것을 드러내는 이유는 충분히 기도해 주고 그 기도를 받아 순종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증거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기도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오는 느낌을 전해주는 것을 소위 ‘예언기도’라고 하고 있는데, 성경 가지고 다니는 박수무당들이 하는 짓입니다. 다시는 만나지 마세요. 그 예언기도로 이익을 보았으면, 그 정도로 귀신에게 코를 꿴 것입니다. 나중에 손해 봅니다. 이미 많은 사례들이 교회사에 나타났습니다. 제 말을 나중이라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정이철 목사)
“말씀으로 분별하는 영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나요?”

현대의 예언에 대해서 위험성을 이야기하면서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해주면, 이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이 예언을 분별하라고 했다고 한다. 예언은사자들이 주는 예언을 분별하면 손해를 안 본다는 것이다. 김요한 목사의 예언기도 내용을 소개하신 분도 그랬다. 대체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예언을 받을 때 손해를 보지 않도록 말씀으로 분별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어디에 있는가?

비성경적인 예언활동을 그럴싸한 신학이론으로 백업하여 준 유치한 신학자가 웨인 그루뎀이라는 분이다. 그는 예언을 받으면 손해를 보지 않도록 분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게 가르친 웨인 그루뎀의 예언이론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그의 예언이론의 상당 부분은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 14:29)에 근거한다. 마침 오늘 아침에 예언에 대하여 쓴 글 속에 바로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웨인 그루뎀의 예언이론의 상당부분이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 14:29)와 연관되어 전개된다. 웨인 그루뎀은 사람들이 예언으로 인해 오히려 손해와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경의 이 구절을 매우 요긴하게 활용하면서 자신의 예언이론을 전개하였다. 예언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이유는 성경의 말씀처럼 예언을 받은 사람들이 예언의 내용을 ‘분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분별"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는 내용의 진위를 비판(분석, 분별)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고, 사람의 외적인 특징을 구별하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외적인 특징에 대한 구별의 의미로, 야고보서에서 부자 신자와 가난한 신자의 특징을 구별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고린도전서에서는 교회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성숙성을 가진 한 사람을 찾아내라는 의미로 쓰였다.

‘분별’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람이 말하는 내용(예언)의 진위를 분석하고 비판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이 말씀(예언)을 전하게 하시는 사람들(예언자)이 질서있게 전하도록 순서를 세우라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이 사실을 지적한 대표적인 개혁신학자는 팔머 로벗슨인데, 그는 웨인 그루뎀의 예언이론의 상당부분이 ‘분별’이라는 단어를 엉터리로 해석하면서 전개되고 있으므로 그의 예언이론의 상당부분이 자동적으로 허물어지고 만다고 진단했다”(정이철, “웨인 그루뎀의 예언 이론은 피터 와그너의 사상과 거의 동일”)

김요한 목사의 예언기도 형태를 성경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고 나니 또 다른 사람이 달라붙어 질문도 아닌 내용으로 시비를 걸었다. 그 분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예언기도’라는 것은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예언을 받았던 구약의 선지자들과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계시가 주어지는 과정 즉, 성경이 기록되는 과정에서 쓰임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완성된 이후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면서 예언을 받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직통으로 통하는 사람을 ‘직통계시자’라고 하는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단이라는 사실은 건전한 기본상식입니다. 김요한 목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직통으로 통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예언기도를 한다면 김요한 목사는 ‘직통계시 이단자’입니다.”(정이철 목사)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의 말대로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면서 또 나에게 달라붙자, 이렇게 말해주었다. 

“계시가 주어지는 과정에서 그러한 현상을 체험한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계시가 종결된 후에는 그러한 역사가 더 이상 없습니다. 성경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기도로 바로 통하는 사람을 직통계시 이단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김요한 목사에게서 나타나는 예언기도는 매우 위험한 사이비 현상입니다. 이것이 정통신학입니다.”(정이철 목사)

김요한 목사로 인해 하나님의 기독교가 왜곡당하고 있다. 김요한 목사 개인을 상대로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으나, 그가 하나님의 기독교를 왜곡하고 성도들에게 악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개혁주의 신학을 한다는 김요한 목사가 예전부터 현대 방언에 깊이 빠졌고, 어디엔가에 진정으로 방언을 통역하는 신령한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고, 신자들에게 심방가서 예언기도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개혁주의 신학을 한다는 말을 그만 하면 좋겠다. 나도 김요한 목사의 <지렁이의 기도>를 주문했다. 읽어보고 또 이야기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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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