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을 완성한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에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두 가지를 연구해야 한다.

첫째, 칼빈 이후에 자리잡은 구원을 위한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행위언약 신학과 유사한 내용이 칼빈에게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지지하는 모든 학자들은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정하면 행위언약도 부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근거로서 행위언약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태초의 아담에 대한 설명은 매우 이상하다. 그들은 태초의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에 수반되는 하나님의 거룩과 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아담의 생명은 죄를 범하여 죽을 가능성을 가진 불안정한 생명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땅의 몸으로 창조된 아담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과 같은 하늘의 몸을 주시기 위해, 또한 범죄하여 죽을 가능성이 없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담과 행위언약을 맺었다고 주장한다 (Kim 2024).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논쟁에서 제일 중요한 논점 하나가 행위언약 부분입니다. WCF 7장을 보면, 사람과 맺은 행위언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72절을 보면, ‘사람과 맺으신 첫 번째 언약은 행위언약이다. 완전하며 개인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하고’ ... 그 조건에 의해 아담과 아담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

! 질문하겠습니다. 이 생명은 어떠한 생명일까요? 완전하고 개인적인, 그리고 영속적인이란 말이 나와요. perfect, personal, eternal, everlasting, 영속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하여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셨던 약속된 생명은 뭘까요? 1. 처음에 만들어진 상태로 에덴 동산에서 그대로 사는 것, 2. 처음의 그 생명보다 더 낳은 생명. 어느 것일까요? 수동적 순종의 의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1번이라고 이야기해요.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2번이라고 해요.

아담이 최초에 만들어졌을 때, 무흠하고 거룩한 의와 참된 지식으로 하나님 형상의 모습을 갖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아담이 여전히, 여전히 완성에 이르러서 누려야 할 더 큰 복이 있는데, 그것이 영원한 생명이요, 하나님께서 행위언약의 약속으로 주시고자 했던 바로 그 생명이다는 것입니다(김병훈 교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지지하는 헤르만 바빙크도 행위언약에 대해 동일하게 주장하였다: “In the first covenant, which was established prior to the Fall, God came to man with the demand of perfect obedience. He promised man eternal life and heavenly salvation, but only after man perfectly fulfilled the law. This covenant, therefore, dealt with the will and with the work of man; it rested partly in his hand and was thus unstable and breakable” (Bavinck 2019, 6).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맺어진 첫번째 언약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위한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이 완전하게 율법을 실천하면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구원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그 언약은 사람의 행위와 의지에 달린 불완전하고 깨지기 쉬운 언약이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지지하는 루이스 벌코프도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서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행위언약을 강조했다: “Some deny that there is any Scripture evidence for such a promise. Now it is perfectly true that no such promise is explicitly recorded, but it is clearly implied in the alternative of death as the result of disobedience ... If Adam stood the test, this life would be retained not only, but would cease to be amissible, and would therefore be lifted to a higher plane” (Berkhof 1949, 233). (어떤 사람들은 시험을 통과하는 아담에게 주어진 약속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약속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불순종의 결과인 죽음에 반대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암시되었습니다 ... 만일 아담이 행위언약 시험을 통과했다면, 그의 생명은 계속 유지되었을 것이고 또한 죽거나 잃어버릴 수도 없는 더 높은 수준의 생명으로 격상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은 태초의 아담이 완전한 생명으로 변하기 위해 하나님의  행위언약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보지 않았다. 칼빈은 태초의 아담이 완전한 생명으로 창조되었고, 에덴동산의 생명나무가 그 사실을 증거한다고 가르쳤다. 칼빈은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아담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완전한 생명과 복을 기억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성례 같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Sacraments, moreover, are so much confirmations of our faith that the Lord sometimes, when he would remove confidence in the very things that had been promised by him in the sacraments, takes away the sacraments themselves. When he deprives Adam of the gift of immortality and withdraws it from him, he says, “Let him not take of the fruit of life, lest he live forever” [Genesis 3: 22 p.]. What can this mean? Could that fruit restore to Adam his incorruption, from which he had now fallen? Not at all! But this is just as if the Lord had said, “Lest he enjoy vain onfidence by clinging to the symbol of my promise, let that which could bring him any hope of immortality be removed from him” (Institutes, 4.14.12).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더 강화시키는 것인데, 때로 하나님은 성례로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확신하지 못하게 그 성례 자체를 우리에게서 거두어 가신다. 하나님께서 아담으로부터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다시 돌려주지 않으시며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창 3:2)라고 하셨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생명나무 과실이 아담에게 잃어버린 순결성을 회복하여 타락한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회복되게 할 수 있을까요?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내가 그에게 주었던 약속의 상징물에 집착하여 잘못된 믿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그에게 헛된 영생의 희망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없애라!”라고 말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칼빈의 아담 이해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아담 이해와 완전히 다르다. 칼빈은 인류의 불행이 영원한 생명과 모든 하나님의 복을 다 가진 아담이 감사하지 않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고, 결국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다. 칼빈에게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더 완전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율법준수를 요구하셨다는 행위언약 개념은 전혀 없었다.

둘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말하는 칭의를 위한 ‘적극적 의’ 개념이 칼빈에게서 발견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준수하심으로 우리의 칭의를 위한 적극적인 의를 얻으셨다고 주장한다 (Jeong Seong 2022, 4; Lee 2021a; Park 2000, 390; Berkhof 1949, 420).

그러나 칼빈은 시종일관 칭의와 율법준수는 무관하고, 칭의는 오직 죄의 사면으로 말미암는다고 강조했다: “And this ought not to seem an unusual expression, that believers are made righteous before God not by works but by free acceptance, since it occurs so often in Scripture, and ancient writers also sometimes speak thus. So says Augustine in one place: “The righteousness of the saints in this world consists more in the forgiveness of sins than in perfection of virtues” (Institutes, 3.11.22).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용서에 의해 의롭게 된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그 가르침은 성경에서 자주 나타나고, 또 고대교회의 지도자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어거스틴도 이 세상의 성도들의 의가 완전한 행실에 근거하지 않고 죄의 용서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또한 칼빈은 죄의 용서로 말미암는 하나님과 신비적인 연합으로 칭의의 원리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Therefore, that joining together of Head and members, that indwelling of Christ in our hearts—in short, that mystical union are accorded by us the highest degree of importance, so that Christ, having been made ours, makes us sharers with him in the gifts with which he has been endowed. We do not, therefore, contemplate him outside ourselves from afar in order that his righteousness may be imputed to us but because we put on Christ and are engrafted into his body—in short, because he deigns to make us one with him” (Institutes, 3.11.10).

(그러므로 머리와 지체의 결합, 즉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내주하는 상태,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신비적 연합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됩니다. 연합의 상태에서 우리의 것이 된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부여된 은사들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기 위해 멀리 그리스도 밖에서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옷 입었고, 그의 몸에 접붙여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신과 연합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죄용서와 죄용서로 말미암는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칭의가 이루어진다는 칼빈의 칭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칭의 신학과 완전히 다르다. 칼빈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에게 전가된 의는 로마서 1:17, 3:22절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의’, 즉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본래의 의이다. 그러나 능동적 순종 신학에서 우리에게 전가된 의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율법의 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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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Hyung-Ryong. 2000. Christology. Seoul: Reformed Publishing.

Jeong, Seong-Won. 2022. “Holistic Obedience of Juksan Hyung-Ryong Park”. Paper presented at the Juksan Theological Society, Seoul, Korea, 25th May.

Berkhof, Louis. 1949. Systemic Theology. PDF. https://www.academia.edu/30978719/Systematic_Theology_by_Louis_Berkhof

Bavinck, Herman. 2019. The Sacrifice of Praise: Meditations Before and After Admission to The Lord's Supper, Translated and edited by Cameron Clausing and Gregory Parker Jr.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Kim, Byung-Hun. 2024. “Understand concepts and arguments related to Christ's obedience and imputation of righteousness.” You Tube video, 1:46:28. https://www.youtube.com/watch?v=O1vRgTROads&t=3851s.

Lee, Seong-Gu. 2021a. “The Righteousness of Jesus' Active Obedience.” You Tube video, 5:15. https://www.youtube.com/watch?v=Bpotyf4ZsWA

Calvin John.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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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