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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대 장기영 교수 논문에 웨슬리의 신학적 오류 내포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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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9  07: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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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의 행위구원론 논쟁을 접으려고 하는데, 누가 어떤 분의 글을 꼭 보라고 알려주었다. 무슨 글인가 보니, 장기영이라는 분이 링크를 걸어준 글이었다. 장기영이라는 분이 나에게 자신의 글을 꼭 읽어달라고 당부하는 글을 남겨둔 것을 보았으므로 이미 기억하는 이름이었다. 장기영 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았더니, 서울신학대학 웨슬리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평택대학교와 서울신학대학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명망있는 교수님이라고 한다.

내가 감리교 목사님들에게 부탁한 것은 웨슬리가 단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모든 종파의 목사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고 있으나 구원 이후에 대해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행위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작은 '그리스도를 믿음'이나 그 이후에는 인간의 신앙적 행위, 즉 철저한 회개와 성화를 이야기한다. 회개화 성화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정착시킨다는 것이 행위구원론이다. 달리말하여 행위구원론은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결단하여 그리스도를 믿으니 하나님이 구원을 주셨고, 또한 그 이후부터 인간이 회개와 성화의 발전으로 구원 안에 머무르기에 합당하게 살므로 하나님이 구원을 유지하여 주신다는 '신인협력구원'이다.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되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법적으로 사하여 지고, 영원하고 완전한 칭의와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성경적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만 신자의 구원이 영원히 완성되었다고 본다. 구원 이후의 인간의 아름다은 신앙의 행위는 구원정착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은 신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라고 보아야 성경적이다. 결코 구원 이후의 신자의 신앙적 행위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가르치면 기독교가 아니다. 종교개혁의 핵심도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자에게 덧입혀 주심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가 이미 완전하고 영원한 칭의과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교회가 아니고 신자가 기독교가 되지 못한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그리스도를 믿음에 회개와 신앙의 선행이 추가되어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 영구하게 지속되고 완전해진다고 가르친 이단에게 미혹된 갈라디아 교회에게 바울은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여 행위로 마치겠느냐? 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믿음과 행위를 구원유지의 근거로 가르친 그 이단을 향하여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끊어지고 떨어진 자들이라고 판결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웨슬리는 행위구원론자였다. 웨슬리는 믿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구원이 유지된다고 가르친 행위구원론자였다고 온 세상이 알고 있다. 장기영 교수가 웨슬리를 많이 연구했다고 하니, 혹시 믿음 + 사람의 행위(회개, 성화)가 구원을 유지하는 근거라는 행위구원 사상을 자기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웨슬리를 많이 연구하면 분명히 그 웨슬리 행위구원론의 핵심을 지지하고 주장하는 내용이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기영 교수의 학위 논문을 보니 초반에는 웨슬리의 사상이 상당히 성경적인 것 같았다. 그의 논문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웨슬리는 ‘믿음에 의한 칭의’(1746)라는 설교에서 칭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칭의란 무엇입니까? … 그것은 실제로 올바르고 의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화입니다 … 칭의에 대한 성경적인 명백한 견해는 사면, 즉 죄 용서입니다.’ 이처럼 웨슬리는 루터, 칼빈과 함께 성화가 칭의의 조건이라는 로마 카톨릭의 칭의론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성화는 칭의의 뿌리가 아니라 칭의의 열매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장기영 교수의 이 내용에 의하면 웨슬리는 실제로 올바른 존재가 되지 않았어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다고 가르쳤고, 인간이 실제로 의롭게 변화되는 성화를 칭으로 근거로 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웨슬리는 매우 성경적인 신앙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훌륭한 지도자였음이 분명하다.

“웨슬리의 칭의론은 이처럼 루터와 칼빈의 칭의론을 수용하고 맥을 같이 한다. 구원과 선행에서 죄인의 무능 및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통한 칭의, 그리고 칭의의 결과로서의 성화와 선행을 가르친다. 이제부터는, 루터와 칼빈의 가르침과는 맥락을 달리하는 웨슬리의 칭의론의 특징을 살펴보자.”

장기영 교수는 웨슬리가 매우 성령적인 칭의론 구원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서서히 웨슬리의 우려스러운 사상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믿고 칭의받을 때 오직 그때가지의 과거의 죄만 용서

장기영 교수는 루터나 칼빈의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들에게 전가되고, 신자들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는 ‘이중전가’(Double Imputation) 신학은 그리스도의 피로 신자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고 보지만, 웨슬리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고 설명하였다. 바로 이 부분이 매우 위험한 내용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도 그 사람의 이후의 행위, 즉 회개와 선행으로 이루어가는 성화이 계속 유지되어야 처음 그리스도를 믿을 때 받은 구원이 유지되고 영구하게 정착된다는 행위구원론의 핵심내용이다. 강기영 교수는 웨슬리가 신자가 구원받을 때 그때를 기준으로 과거의 죄만 용서받았다고 이해하고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루터, 칼빈과 달리 웨슬리는 칭의에서 용서받은 죄를 ‘과거의 죄’로 제한하면서, 동시에 ‘죄를 자백’함으로 회개할 것(요일 1:9)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함’(마 3:8, 눅 3:8)을 강조했다.”

이것이 웨슬리를 많이 연구한 사람이 가르쳐주는 웨슬리 사상의 진면목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셨고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덧입혀주시어 ‘법적인 의인’이 되게하심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다.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되어 이미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진 구원백성이 된 것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 대신 웨슬리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정하고 믿고 구원받을 때, 그 순간을 기준으로 과거의 죄만 용서되었다고 가르친 심각한 거짓 선생이었다. 

그런 식이면 그리스도가 2,000년 전에 죽으셨으니 그 이전의 사람들의 죄만 용서되었고, 그 후에 태어난 사람의 죄는 용서되지 못했다는 말도 가능할 것이다. 참으로 유치하고 어리석은 말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이 우리를 완전히 거룩하게 만든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법적으로 사하였다고 믿어야 성경의 기독교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이미 거룩하게 하였으니 우리가 범하는 죄를 회개하여 주신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며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가르침이다. 웨슬리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까지의 죄만 용서되었고 그 후의 죄는 용서되지 않았다고 가르치면, 그 후의 죄를 어떻게 회개하느냐에 따라 구원이 흔들리게 된다. 웨슬리가 가르친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행위구원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앞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하고, 뒤에서는 구원받고 난 후에 범하는 모든 죄와 허물을 스스로 다 토하고 회개하여 지속적인 선행가 성화를 이루어가야 구원을 놓치지 않는다고 하니, 결코 성경의 구원사상이 아니다. 그런식의 비정상적 회개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디 이상한데 가서 그런 행위구원론, 율법주의 회개 사상을 접하였음이 드러난다.

웨슬리 역시 동일한 내용을 가르쳤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을 때까지의 죄만 그리스도의 피가 다 용서하였고, 그 후에 범하는 죄와 허물과 못된 행실을 신자 본인이 부지런히 회개하고 또한 선행으로 자신의 성화를 이루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아무 공로가 없음에도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전가받아 완전한 구원을 받고, 그리고 그때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실질적 새로운 피조물로의 변화, 즉 성화가 일어난다는 성경의 가르침인데, 웨슬리는 그 이전의 많은 거대한 신학이단들의 영향을 받아서 이와 같은 이단사상에 자신의 신앙을 건축한 사람이었다.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강기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웨슬리는 회개의 열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회개는 여러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죄로 인한 슬픔, 2)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겸손케 됨, 3) 죄를 미워함, 4) 죄의 고백, 5) 간절하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함, 6) 하나님께 대한 사랑 7) 죄를 멈춤, 8) 확고한 목표로서 새로운 순종, 9) 부정한 방법으로 취한 소유를 되돌려 줌, 10) 우리에게 지은 이웃의 죄를 용서함, 11) 자선 행위 등입니다.’”

또한 장기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웨슬리가 믿고 구원받을 때 신자의 그때까지의 죄가 용서되었으므로 이후 회개하고 성화를 이루어가야 구원이 보장된다고 가르친 웨슬리의 신학이 옳다고 강변했다.

“웨슬리가 죄 용서를 ‘과거의 죄’로 한정한 것은 그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라고 말씀한다. 또 베드로도 베드로후서에서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 1:9)라고 말씀한다.”

분명한 사실은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이전까지의 죄만 사하여졌다는 주장은 지극히 자의적이고 위험스러운 성경해석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의적인 성경해석을 통해 기독교 신앙이 변질되고, 그릇된 구원관을 전하는 이단이 출현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하고, 무슨 증거를 더 구할 필요가 있을까? 믿고 구원받아도 이후의 삶이 엉망이면 다시 구원을 잃고, 구원받은 사람도 다시 믿음이 떨어지고 죄에 빠지면 다시 구원을 잃는다는 감리교 목사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장기영 교수 같이 웨슬리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분의 논문에서 그 내용이 그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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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민 2017-09-09 08:29:32

    정이철씨, 당신은 나와의 논쟁을 피하기 위해 페북을 차단했소. 내가 분명한 웨슬리 설교문을 보냈는데도, 자료를 받은 것이 없다고 위의 글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소. 당신의 글에 제일 분노하고 슬퍼하실 분은 살아계신 예수님이요. 당신은 별로 아는 것도 없이, 아니 당신 말대로 "웨슬리의 책을 읽어보지 않고" 주님의 교회와 전도자들을 매도했소.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당신에게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오.
    당신이 차단하여 페북에 쓰지 못한 글을 여기 남기오. 부디 회개하고 천국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를 바라오. 감리교신학대학교 이성민 교수.신고 | 삭제

  • 이성민 2017-09-09 08:30:14

    정이철씨, 당신이 쓴 <바른믿음>의 "과연 웨슬리에게는 신학적 이단성이 없었던 것일까?"라는 제목의 글을 내리시오. 그러면 나도 아래의 글을 취소하겠소. (나는 현재로는 당신을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 있는 건전한 목사로 인정할 수 없다.)
    -------------------------------------

    나는 당신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복음을 무너뜨리는 자인지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1. 당신의 글을 전체적으로 보니까, 웨슬리와 감리교인들을 "개"라고 비유하는 것 같다. 아래는 당신의 글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침투한 그 이단의 가르침을 저주받을 '다른 복음'이라고 판정하였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그리고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라고 가르치는 자들을 ‘개’라고도 하였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빌 3:2)>"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유대인 할례주의자들을 "개"라고 욕설을 퍼부은 것은 맞다. 그 이유가 무엇인줄 아는가? 1) 율법의 행위(할례)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기에, 2) 갈라디아 교회 성도를 이간질 하여 교회를 허물었기 때문에.

    ++ 그럼 웨슬리와 웨슬리의 영향을 받은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나사렛 하나님의 성회(순복음) 교단과 이에 속한 목회자와 신자들이 "개"인가? 그렇지 않다.

    1) 웨슬리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있다고 선언했다. 어떤 인간의 행위도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다음은 이미 당신에게 보낸 웨슬리의 선교문이다.
    "그러면 죄 지은 인간이 무엇으로써 죄에서 완전히 대속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공로를 가지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에게 공로가 많고 또한 이와 같이 공로가 거룩하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진실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아주 불결하며 죄로 물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모든 행위는 새로운 대가를 요구합니다. 좋지 못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2) 웨슬리는 성도를 이간질 하거나 교회를 훼방하지 않았다. 그는 성공회 신부였지만, 그리고 성공회에 대한 불만도 많았고 핍박도 많았지만, 끝까지 성공회 안에서 성공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하려고 노력했으며, 영국 전역을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영국 전역에서 부흥운동을 전개 하였다. 그는 분열주의자가 아니었다.

    ++ 내가 보기엔 당신이 오히려 바울이 독설을 퍼부은 "개"로 비유 될 수 있다.

    1) 당신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는 "개"는 아니다.

    2) 그러나 갈라디아교회에 침투한 "할례파"처럼, 당신은 거짓으로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교회를 건전한 교회들을 물어뜯고 있다. 분명히 웨슬리는 행위로 구원받지 않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그의 첫번 설교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웨슬리가 행위로 구원받는다 말했다고 거짓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찢고 있다.
    (계속)신고 | 삭제

  • 이성민 2017-09-09 08:31:12

    정이철씨, 당신이 쓴 <바른믿음>의 "과연 웨슬리에게는 신학적 이단성이 없었던 것일까?"라는 제목의 글을 내리시오. 그러면 나도 아래의 글을 취소하겠소. (나는 현재로는 당신을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 있는 건전한 목사로 인정할 수 없다.)
    -------------------------------------

    나는 당신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복음을 무너뜨리는 자인지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계속)

    2. 당신은 어떤 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위글에서 당신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나는 웨슬리가 지옥에 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리교인들이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웨슬리의 성경 이해의 어떤 부분이 매우 비성경적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과연 웨슬리는 신학적 이단성이 없었던 것일까?"

    이 말이 얼마나 이단적이며 교만하며 적 그리스도적인지 설명하겠다. 당신은 웨슬리가 지옥에 같는지 아닌지 판단하고 있다. 또한 감리교인들이 구원받는지 못받는지 판단하고 있다. 칼빈과 웨슬리에 따르면 구원의 절대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다. 당신은 누구이기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천국갈 사람 지옥갈 사람을 판단하는가? 중세시대에 사제들과 교황이 한편으로 매일 미사를 집례하면서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앉아서 교회와 세상을 다스렸다. 그래서 루터는 교황을 향해 적 그리스도라고 선언했다. 나는 당신에게서도 적 그리스도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하고 충성스럽게 전한 사람들에게 지옥 운운 할 수 있는가?신고 | 삭제

  • 김한표 2017-09-09 11:48:02

    웨슬리의 신학을 이해하려면 종교 개혁과 관련된 영국 역사도 함께 공부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공부해 보셨나요? 웨슬리의 설교에 대해서는 얼마나 읽고 분석을 하셨나요? 다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로 웨슬리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마세요. 당신은 분명 웨슬리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 말씀드렸고, 웨슬리의 설교문을 인용해 드렸는데도 아무런 답장도 없이 이렇게 하시니...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당장 멈추세요. 그리고 교회의 분열을 조장한 것에 대해 회개하세요. 아, 회개하지 않아도 천국에 가니 괜찮은가요?신고 | 삭제

  • 장기영 2017-09-09 13:02:25

    정이철 목사님, 목사님의 의도적인 오독과 왜곡으로 잘못된 선입관을 갖게 될 분이 계실 듯하여 저의 글을 링크하겠습니다. (아래의 주소로 들어가시면 정이철 목사님이 오독, 왜곡한 저의 글을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groups/640220312784453/999444146862066/신고 | 삭제

  • 김한표 2017-09-09 13:16:10

    웨슬리는 당신이 말하는대로 행위 구원론자가 아닙니다. 웨슬리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필요하면 그의 설교문을 보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웨슬리가 말하는 행위는 구원에 도달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이 있는 경우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선행입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하는 선행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에서 행위가 나올 때 그것은 지속적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 웨슬리의 주장이었습니다.신고 | 삭제

  • 비전지기 2017-09-09 14:53:42

    믿음 좋으시다는 합동 목사들 중에...
    성추행부터 시작해서 교회 사유화, 돈문제 등등...
    온갖 잡범들이 수두룩한데~~
    그분들은 그렇게 좋은 믿음으로 삶은 개판이라도 구원 받았으니
    행위가 없는 죽은 믿음으로 다 천국가서 좋겠네. 쯧쯔....신고 | 삭제

  • 여러분 2017-09-10 18:58:42

    웨슬리의 의견은 지극히 성경에 기반돼 있습니다.

    신자의 올바른 믿음이 진실된 믿음인지, 거짓된 믿음이 판명되는 것은 그 사람의 열매, 즉 행동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선생이 말하길 믿음으로만 의롭다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도 의롭다함을 얻는다 했습니다. 오늘 날 한국 기독교,신학 대학교를 보십시오. 말로는 자신이 믿는다하면서 행위는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여기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과 글을 작성해 주신 작성자에게 제가 질문하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께서 글을 적는 것이 자신의 교단의 명목을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진정 웨슬리의 이 발언이 성경에 위배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찾기 위해서 입니까?
    글을 읽다보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분들이 각자의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친다 생각하니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성경부터 제대로 읽고 웨슬리를 비판하던 칼뱅을 비판하던지 하십시오. 성경에 대해서, 그 안의 깊은 진리에 대해서 말했던 종교개혁자들의 논지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성경을 연구했다고 말하는 그 양심은 어떠한지 한번 본인들의 눈으로 들여다 보십시오. 웨슬리 칼뱅 루터의 신학이 사람을 구원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있으며 그 복음이 성경인 것입니다. 어느 책, 어느 곳에 웨슬리,칼뱅,루터가 자신의 신학이 정통이다, 자신의 신학을 믿으라 라고 써놨습니까? 그들의 공통점은 오직 성경의 올바른 뜻을 찾은 것 뿐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논리도 모른 채 신학신학 해대니 오늘 날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학문적으로의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날 한국신학의 권위를 보십시오. 학문연구자들 사이에서 신학논문은 이미 창조'설' 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폄하된지 오래입니다. 왜 그럴까요?

    -올바른 근거에 서있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진실인척 거짓위장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남에게는 아는 척 자랑하고
    -자신도 지키지 못할 여러 무거운 짐들을 남에게 지우려하는 이 이기심

    때문아니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이라도 제발 부탁이니, 자기 자신부터 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성경을 제대로 보는 법을 알 수있도록 기도하며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여기서 떠들어대봐요 세상 학문은 우리 신학논단의 학문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에 더 귀를 기울이지요. 어느 선생을 따르는 파, 어느 신학자를 따르는 파 등 제대로된 열매도 없는 신학자들을 따르느라 이 지경이 된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다시한번 여러분들에게 전하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신고 | 삭제

  • 양정석 2017-09-16 08:42:47

    글이 삭제되거나, 포스팅이 되지 않네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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