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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주의의 거짓 방언은 강한 중독성이 있다.이창모 목사의 <방언, 그 불편한 진실>(30회)
이창모  |  rhicm1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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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6  11: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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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기도는 강한 중독성이 있다

피방언자(방언의 은사를 받으려고 하는 자)가 처음 방언을 했을 때, 방언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황홀경을 경험하게 된다. 이 황홀경이 피방언자가 방언에 중독되는 일차적인 원인이 되는데, 처음 방언을 했을 때 피방언자가 경험하는 황홀경의 자극이 강하면 강할수록 방언에 중독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왜냐하면 피방언자의 뇌는 자극이 강하면 강할수록 강한 그 자극으로 인한 황홀경을 더욱 또렷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가 황홀경을 기억하는 이유는 황홀경에 빠졌을 때 뇌에서 ‘도파민’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자극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이 분비되는데 도파민이 분비되면 될수록 황홀경의 쾌감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도파민의 분비를 정상인의 1800배로 촉진시켜주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은 사람을 상상할 수 없는 황홀경에 빠지게 하며, 또 며칠을 자지 않고 일해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게 하며, 모든 일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슈퍼맨으로 변신시켜 주기도 한다. 중독이란 어떤 황홀경을 한 번 경험한 뇌가 이런 황홀경의 쾌감을 기억하고 있다가 반복적으로 그 쾌감을 몸에게 요구하는 증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방언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없음에도 주변 사람들이 하니까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혀를 적당하게 꼬부려 보다가 방언을 시작한 사람들은 방언에 잘 중독되지 않는다(필자가 알기로는 방언을 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다). 이런 자들에게는 방언을 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그다지 강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방언 중독자들이 방언을 처음 시작할 때 나타나는 방언을 절제하지 못하는 과정도 겪지 않는다. 단지 방언 집회에 간다거나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방언으로 기도하는 상황이 되면, 별 거리낌 없이 혀를 꼬부리며 함께 방언으로 기도하는 정도다.1)

그러나 처음 방언기도를 했을 때, 강렬한 황홀경을 경험한 사람들은 적당하게 방언을 시작한 사람들과는 달리 방언에 중독되기가 쉽다. 필자는 처음 방언을 했을 때 경험했던 그 황홀경을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처음 그때 경험했던 황홀경이 너무 강렬했고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신비한 말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니, 아, 나도 이럴 수 있구나! 아, 이제 드디어 나도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는구나!’

필자는 나중에 신학생 시절에 어떤 강사에게 방언에 대한 강의를 들었을 때 ‘내가 하는 방언은 정말로 성령의 은사가 분명하다’는 확신을 다시 한 번 했다. 당시 강사는, 방언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는 방언은 학습된 방언으로 이런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60-70% 정도 되고, 소수(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5%정도라고 말한 것 같다.)는 마귀방언을 하며(마귀 방언은 방언 소리가 음습하고 음험하기 때문에 들어보면 안다고까지 말했다.), 나머지는 참 방언을 한다고 했다.

필자는 방언을 처음 할 당시 방언을 사모하지도 않았고, 방언을 연습하지도 않았으며, 방언을 강조하는 집회 같은 데서 방언을 받은 것도 아니고, 방언 이야기가 전혀 없었던 학생회 수양회에서 마지막 날 혼자 산 속 바위 옆에서 기도하다가 방언을 했으므로 ‘내가 받은 방언은 성령이 주신 참 방언이다’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필자의 방언이 성령의 은사라고 더욱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방언을 처음 했을 때 성령이 주신 놀라운 황홀경의 체험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달았다. 그 체험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필자의 착각이었으며, 중독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필자는 여러 번 모친을 따라 은사 집회에 갔으며, 거기서 사람들이 방언하는 모습을 보면서(특히 강사가 마이크에 가까이 입을 대고 하는 방언 소리는 어린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모친과 모친의 방언 동지들이 필자의 집에 모여 함께 방언으로 주고받으면서 기도하는 황홀한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나도 저런 것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런 바람이 잠재의식 속에 잠자고 있다가 중학교 2학년 어느 여름날 산속 바위 옆에서 기도하다가 혀가 꼬부라질 때 ‘아, 이것이 방언의 은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 다음 다시 혀가 꼬이는 순간에 바로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 방언에 대한 지식이나 암시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결코 방언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2)

그러나 오순절주의자들은 방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고, 하물며 성경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가 방언을 하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런 자들도 자신은 몰랐지만 언젠가 적어도 방언에 관하여 들은 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단지 과거의 필자처럼 지금 기억이 없을 뿐이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자의 말대로 어떤 사람이 정말로 방언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방언에 대한 아무런 암시가 없었음에도 방언을 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정말 성령이 주시는 방언을 받았든지(이때는 옆에 외국인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마귀가 주는 방언을 받았든지 말이다.

피방언자는 지금까지는 남이 하는 방언기도를 옆에서 듣다가(이것도 놀랍도록 신비한 소리다), 자신이 하는 방언기도 소리를 직접 들으면, 그 소리가 너무 신비해서 한 마디로 “뿅 가게”(사람들은 이런 때를 가리켜 보통 “홍콩 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되어 있다. 왜냐하면 옆에서 하는 방언소리는 100% 공기를 통해 자신의 고막으로 전달되어 들리지만, 자신이 직접 하는 방언소리는 그 소리의 일부는 몸의 울림을 통해 고막에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신비한 소리가 자신의 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독자들 중에는 처음 자기 음성을 녹음하고 그것을 들었을 때 내 목소리 같지 않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자가 있을 것이다). 이 신비한 소리가 자신이 하고 있는 방언소리라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뿐만 아니라 천사들이나 하나님과 대화할 때 쓰는 하늘 언어로 감히 내가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신비감! 그리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이런 천상의 소리를 내가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에 대한 감격! 그 동안은 여러 가지 나쁜 여건들 때문에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열등감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너희들보다 낫다. 이제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신령한 세계를 안다’라고 하는 최고조의 우월감! 내가 신이 된 것 같은 미묘한 기분! 이때 필자의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졌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황홀감에 빠져들었다.

당신은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필자에게 방언으로 말미암은 첫 황홀경은 지금까지의 삶 중에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렇게 처음 방언으로 기도할 때 상상할 수 없는 황홀경을 맛보는 것은, 이때 뇌에서 도파민이 다량으로 분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뇌는 그 황홀경의 쾌감을 잊지 못하고 또렷하게 기억하게 된다. 인간의 뇌는 이 황홀경의 쾌감을 기억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그 쾌감을 다시 얻기 위해 그때 받은 자극을 몸에게 요구하게 된다. 이때 방언을 처음 하는 사람은, 뇌가 방언으로 인해 얻었던 황홀경을 다시 맛보기 위해 강하게 혀에게 방언을 요구하면, 장소가 어디든지 간에 절제하지 못하고 방언을 하게 된다. 그러면 뇌에서 많은 양의 도파민이 분비되고, 방언하는 자는 원했던 쾌감을 다시 얻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처음 방언을 시작할 때 강렬한 쾌감에 중독된 사람이라면 대부분 하게 되는 경험이다. 오래 전 필자의 모친도, 또 필자도 이런 경험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성령의 역사로 착각한다는 데 있다. 방언기도를 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마음! 도저히 절제할 수 없어서, 길을 걸으면서도 방언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 방옹자들은 이런 현상을, “처음에 방언을 받으면 아직 미숙해서 절제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 성숙하면 방언기도를 자유자제로 절제하며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틀렸다. 왜냐하면 이런 현상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방언 중독으로 인한 중독 증상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 그 방언이 성령이 주신 은사라면 절제하지 못하는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절제’의 열매가 있다(갈5:23).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하시는 방언이 사실이라면 처음이든 나중이든 무절제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방언을 처음 받았을 때 방언하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그 방언이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다.

그러면 왜 이들은 처음에는 절제를 못하다가도 나중에는 절제가 가능할까? 그것은 피방언자가 처음 방언기도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어색하고 서툴러서 방언기도를 많이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뇌는 처음 방언했을 때의 황홀경의 쾌감을 얻기 위해 피방언자에게 자꾸 방언을 하도록 요구하지만, 시간이 자나가면서 피방언자는 처음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자주 방언기도를 하게 됨으로 자연스럽게 뇌는 충분한 황홀경의 쾌감을 반복적으로 얻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처음처럼 뇌가 방언의 쾌감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절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증상과 동일할 것이다. 처음 도박에 중독된 자는 도박을 하지 못하면, 하고 싶은 충동으로 어쩔 줄 몰라 하지만, 계속 도박을 하는 사람은 도박하고 싶은 충동으로 안절부절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 도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의 방언이 중독 증상을 유발시키는 이유

방언기도의 강한 중독성은, 빠른 속도와 큰 소리, 그리고 강한 비트(진동수가 약간 다른 두 개의 소리가 간섭을 일으켜 소리가 주기적으로 세어졌다 약해졌다 하는 현상)가 있는 기도 소리에 그 비밀이 있다(방언의 내용을 방언하는 자가 전혀 모른다는 것도 중독성을 배가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 된다).

이런 방언기도 소리의 특징적인 요소들은, 먼저는 기도하는 자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즉, 기도하는 자의 생각을 멈추게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성이 마비되면 감성만 살아 있는 상태(이성이 잠자면 감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 진다)에서 같은 사운드가 반복되는 강한 비트의 빠르고 큰 소리, 그것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자신의 신비한 소리를 들을 때, 방언자는 쉽게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이때 뇌에서 다량의 도파민이 분비되고 중독은 시작된다.<3)각주: 방언기도를 하면 기쁨이 충만하고 새 힘이 솟고, 아무리 오래 기도해도 피곤하지 않는 것은 뇌에서 분비되는 다량의 도파민 때문이다.> 만약 이때 방언자가 자신의 방언기도의 내용을 알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이성이 덜 마비될 것이기 때문에 황홀경은 반감된다. 그래서 방옹자들은 방언자에게 방언으로 기도할 때는 우리말을 섞어서 기도하지 말고, 또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도록 주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현대 교회의 방언은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데 대단한 강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4)

최근 아이돌 뮤직이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해외에서까지 K-팝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이돌 뮤직이 갖고 있는 강한 중독성 때문이다. 아이돌 뮤직은 다른 장르의 음악에 비해, 한 번 들으면 자꾸 다시 듣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게 일어난다. 왜냐하면 사운드에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들었을 때 얼마간의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때 뇌가 그 쾌감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귀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그 사운드가 듣고 싶어지고, 결국 다시 들으려고 시도하게 된다.

아이돌 뮤직에는 중독성이 강한 소리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방언기도의 특징과 마찬가지로 크고 강렬한 사운드와 빠른 템포와 강한 비트 등이다. 그리고 가사 전달이 불분명한 것도 중독 효과를 높이는데 한 몫을 한다.5)

2012년 4월 6일 베트남 수교 20주년 기념 축하 콘서트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다. 이 콘서트에서 수퍼 주니어가 “쏘리 쏘리”를 불렀다. 이때 베트남 청소년들은 한국어 노랫말을 이해할 수 없을 텐데도 쉴 새 없이 입으로는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몸을 흔들어 대며, 눈물까지 흘리면서 열광했다. 다음은 베트남 수교 2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수퍼 주니어가 불렀던 “쏘리 쏘리” 노랫말의 일부다.6)

sorry sorry sorry sorry 내가 내가 내가 먼저 네게 네게 네게 빠져 빠져 빠져 버려 baby Shawty Shawty Shawty Shawty 눈이 부셔 부셔 부셔숨이 막혀 막혀 막혀 내가 미쳐 미쳐 baby 바라보는 눈빛 속에 눈빛 속에 나는 마치 나는 마치 뭐에 홀린 놈 (이젠 벗어나지도 못해) 걸어오는 너의 모습 너의 모습 너는 마치 내 심장을 밟고 왔나봐 (이젠 벗어나지도 못해) 어딜 가나 당당하게 웃는 너는 매력적 착한 여자 일색이란 생각들은 보편적 도도하게 거침없게 정말 너는 환상적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네게 빠져 버렸어 sorry sorry sorry sorry 내가 내가 내가 먼저 네게 네게 네게 빠져 빠져 빠져 버려 baby Shawty Shawty Shawty Shawty 눈이 부셔 부셔 부셔 숨이 막혀 막혀 막혀 내가 미쳐 미쳐 baby 딴딴 딴따다 따 따란딴 딴딴 딴따다 따 (네게 반해버렸어 baby) 딴딴 딴따다 따 따란딴 딴딴 딴따다 따 따라빠빠라

독자들은 위의 노랫말을, 내용은 무시하고 소리에만 집중해서 강한 비트로, 빨리 그리고 크게 발음해 보라. 방언기도 소리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때 당신은 방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돌 뮤직에 의해 쾌감을 얻은 젊은이들은 그것이 자연스러운 감성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쾌감이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방언자들은 방언할 때 얻는 황홀경의 쾌감이 성령이 주신 신령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방언은 이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순절주의자의 말대로 방언을 받고 나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은 사실이다.7)

당신이 어느 날 아주 대단하신 분에게 수천억짜리 보석을 공짜로 받았다고 가정해 보라. 아마 당신은 그분에게 받은 수천억짜리 보석을 보고 또 보고, 만지고 또 만지면서 황홀감에 빠져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지 모른다. 어디 그뿐이랴! 이전까지의 당신의 구질구질했던 삶의 태도도 갑자기 확 달라질 것이다. 작년 추수감사절 때는 돈이 궁해서 감사헌금 봉투에 단돈 만원을 넣으면서도 노심초사했던 당신이, 올해는 몇 백만 원쯤은 쉽게 헌금할 만큼 변하게 될 것이다. 그 수천억짜리 보석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당분간은 말이다. 당신이 받은 보석이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가짜인 줄 모를 때는 그 가짜 보석 때문에 당신은 놀랍게 변하게 된다. 그러나 당신의 삶이 변했다는 이유로 그 보석이 진짜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보석이 진짜가 아니어도 진짜라고 믿고 있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언기도로 말미암아 사람이 변하는 것도 이와 같다.

방언자들 모두는 방언으로 말미암은 이런 현상들을 성령이 주시는 체험으로 믿는다.8) 그리고 이런 체험들은 방언기도를 성령의 은사로 믿게 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9) 그래서 방언으로 신비한 체험을 더 강하게 한 사람일수록, 성령이 바울을 통해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든지 간에, 방언을 버리지 않을 가능성은 더욱 높다(고전14:36-38을 참고하라).

그러나 속지 말라! 그리고 잊지 말라! 방언기도가 주는 체험은 성령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방언 소리가 주는 중독 증상이며, 방언으로 인해 사람이 변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방언이 주는 중독 효과 때문이라는 사실을!

 

-- 각 주 --

1) 이런 자들도 계속 방언기도의 경륜이 쌓이면 어느새 자신의 방언이 인위적인 방언임을 잊어버리고 강렬한 체험 없이도 점점 방언의 고수가 되어 간다. 마치 거짓말도 자꾸 하면 자기도 모르게 진실처럼 믿게 되고, 또 능숙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러다가 더러 방언의 강렬한 체험을 하고 중독 상태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2) 로이드 존스, 성령의 주권적 사역, 정원태 옮김(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p.125; 배덕만, 성령을 받으라(서울: 대장간, 2012), p.93도 참고하라.

3) 방언기도를 하면 기쁨이 충만하고 새 힘이 솟고, 아무리 오래 기도해도 피곤하지 않는 것은 뇌에서 분비되는 다량의 도파민 때문이다.

4) 과거 천주교에서 사제들이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말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에 상당수의 신자들이 미사에서 신비감이 사라졌다고 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를 들으며 미사를 드렸던 옛날이 더 좋았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사람은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에서 더 큰 신비감을 느끼고, 더 쉽게 황홀경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5) 아이돌 뮤직의 노랫말은, 그 내용보다 소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아이돌 뮤직의 노랫말은 듣고 생각하기 보다는 느끼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노랫말 전달이 분명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 뜻을 생각하게 된다면, 혹시 노랫말로 인한 감동은 있을지 몰라도 소리로 인한 감각적인 흥분은 반감된다. 그래서 콘서트 현장에 있는 젊은이들은 노랫말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소리를 듣고 느끼는 대로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몸을 흔들어 댄다.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옆 사람 눈치도 보지 않고 말이다. 왜냐하면 황홀경에 있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집단적으로 방언기도를 하고 있는 집회 현장도 부끄럼이 실종된 록 콘서트나 아이돌 뮤직 콘서트 현장과 유사하다). 이런 이유로 TV에서 아이돌 뮤직이 방영되면 대체로 방송국에서는 화면 아래에 노랫말 자막을 내보낸다. 그것은 시청자가 노래 소리만 듣고서는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인데, 이런 서비스는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중장년층을 위한 것이다.

6) 아이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원더걸스의 ‘텔미’나 ‘노바디’ 등의 노랫말도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7) 물론 이 변화는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것은 방언의 약효가 그리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자들은 방언의 약효가 떨어져서 방언에서 더 이상 화끈한 쾌감을 얻지 못하면, 서서히 다른 은사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것이 방언이 모든 은사의 통로가 되는 이유다.

8) 방언기도를 성령의 은사로 믿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혀가 저절로 움직이며 방언할 때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방옹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몸에서 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메카니즘에 대한 무지에서 생겨난 오해다. 자율신경계의 기관들을 제외하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몸의 기관은 무엇일까? 우리가 잠 잘 때라든지 의식을 잃었을 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잘 움직이는 신체 기관은 바로 우리의 혀다!

9) 사단은 거짓 방언의 힘으로 에큐메니칼 집회 같은 데서 많은 대중들을 단시간에 하나로 동질화시키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로 열심을 내고, 사람이 변하고, 하나가 되고, 조직이 비대해지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한 부흥이 아니라 사탄의 기만전술에 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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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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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 2017-07-28 10:06:22

    아하 그렇군요. 저는 학습방언을 했던 자입니다. 방언을 못하는 것에 대해 열등감을 갖다가 인도자를 따라했는데 그게 바로 방언이라고 추켜주었습니다. 방언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했지요.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중단했습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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