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산 목사 신학 이야기 1

 

백금산 목사는 <부흥과개혁사>라는 출판사 사역으로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을 이끌고 지키는 개혁주의 거목의 이미지를 얻었다. 그러나 이제는 백금산 목사의 신앙과 신학에 대해 검증을 해야만 할 때가 되었다.

오늘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그릇된 신앙과 신학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한국 장로교회가 에드워즈를 이용했던 사단에게 사랑과 믿음을 바치게 한 백금산 목사의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1735년 무렵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목회하는 교회와 그의 부흥의 영향을 받은 이웃 교회의 교인들 속에서 자살하는 괴이한 열풍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그 이유는 단지 그 개인들과 사단이 했던 일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에드워즈의 회심준비론 목회 때문이었다.

에드워즈는 자기 교회에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회심하지 않고 교회만 다니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들을 회심시켜 영생을 얻게 만들기 위해 에드워즈는 자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를 강하게 선포하는 설교를 했다. 그의 설교를 들은 교인들은 그때부터 구원을 얻기 위해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율법준수 ... 등을 열심으로 하면서 자신에게 구원이 오기를 준비하고 사모하였다. 이것이 청교도 전통에서 신앙과 신학을 배웠고, 특히 청교도들의 회심준비론에 깊이 심취하여 회심준비 목회을 열심히 했던 에드워즈의 목회의 실상이었다.

그러나 신약의 사도들 가운데 에드워즈처럼 회심준비론 목회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독교는 먼저 율법과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되어 사람들이 죄책감으로 벌벌 떨면, 그 다음에 성령이 복음으로 구원을 일으킨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향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후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뿐이고, 성령이 믿게 하심을 따라 믿는 사람은 곧장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율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낮추고 겸비하게 하면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믿음에 이르러 구원을 얻는다는 회심준비론 신학은 신.구약 성경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다. 구약 시대에도 그 방식을 따라 구원을 얻은 사람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원래 율법은 이미 하나님의 가족이 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방법으로 주어졌지, 한번도 구원의 수단으로 주어진 적이 없다.

윌리엄 퍼킨스에 의해 골격이 만들어진 청교도 율법주의는 율법이 먼저이고 복음이 나중이라고 한다. 언제나 율법이 먼저 선포되어야 믿음이 들어설 준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신앙에서는 언제나 복음이 먼저이다. ‘복음과 율법’이지 ‘율법과 복음’이 아니다.

퍼킨스 등에 의해 발전된 청교도 율법주의의 제자였던 에드워즈는 이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회심되지 못한 사람들로 보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죄인을 향한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여 비성경적인 영적 각성(대각성 부흥)을 일으키기를 잘하는 선수였다. 청교도주의에서 말하는 영적 각성은 구원이 아니다. 죽은 영혼이 중생되지는 않았으나 각성되어 스스로 구원을 얻는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든다는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이상한 개념이다. 

이단사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잘 먹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떠난 김기동 목사의 안수를 받을 때, 벌렁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절대 안 넘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이단사상이 모든에게 항상 균일하게 잘 먹히지는 않는다.

에드워즈의 회심준비론 목회 사상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변화를 경험하는 이단 체질을 가진 사람도 많았고, 한편으로 전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에드워즈의 이단사상 목회에 동화되지 않는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아무리 회개를 하고, 율법을 지키면서, 구원을 사모하고, 준비하여도 구원이 일어나는 성령의 회심 체험이라는 것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체험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기와 좌절과 괴로움이 극심했다. 

그 사람들 중에서 우울증이 있고, 정신이 미약한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생각이 일어났다. 

“어차피 구원을 못 받을 바에 차라리 일찍 죽어서 죄를 덜 짓는 것이 내가 지옥에서 받을 하나님의 진노를 줄이는 것이다!”

에드워즈의 이모부가 주일 오전에 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그보다 먼저 시도했던 사람은 깊이 긋지 못해 피만 낫고, 큰 소동만 일어났다. 그러나 에드워즈의 이모부는 스스로 목을 그어 자살에 성공했다.  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그런 자살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났다. 그것이 1730년대 중반, '벨리 계곡의 부흥'이라고 불리우는 에드워즈의 1차 부흥의 결말이었다. 

에드워즈의 목회에서 왜 이런 흉악한 악한 열매가 타나났을까? 회심준비론 목회 때문이었다. 정죄하고 죽이는 율법을 선포하여 영적으로 각성되어 스스로 구원을 준비하게 만든다는 이론의 목회의 열매였다. 그러나 그런 이론과 목회는 성경에 없다. 하나님이 가르치지 않는 구원을 추구하게 만들었으므로 사단에게 유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드워즈는 16세기 종교개혁 신학을 이어받아 계승한 청교도신학의 완성자입니다. 청교도신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 혹은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구원론 특히 회심론 부분에 있었습니다. 에드워즈는 청교도 구원론, 특히 청교도 회심론을 절정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백금산,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 없을까?, 27-28).

그럼에도 백금산 목사는 에드워즈를 이렇게 예찬하였다. 백금산 목사는 회심준비에 대한 에드워즈와 청교도들의 이론을 접하고서 아무런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죄인을 향한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함으로 성령이 불신자들에게 영적 각성을 일으키면, 불신자들이 간절하고 사모하는 자세로 구원을 얻기 위해 교회에 더 잘 나오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목회자에게 찾아가서 구원에 대해 상담하고, 힘써 율법을 준수하고 ... 이런 내용이 백금산 목사에게는 이질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체 백금산 목사의 영적인 코드는 무엇일까? 청교도들의 회심론의 핵심 사상이 바로 펠라기안주의이고, 로마교회 신학이고, 그리고 알미니안주의라는 것을 백금산 목사는 몰랐는가? 그 동안 <부흥과개혁사>가 좋은 책들도 펴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을 허무는 청교도들의 율법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관심이 일어나는 좋은 때가 드디어 도래하자, 백금산 목사는 청교도 율법주의 아성을 더 받치는 외국 저자들의 책을 더 열심히 번역하여 출판하고 있다.

그러므로 백금산 목사의 공과 과를 확실하게 따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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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