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에 도르트신조에 의해 이단 정죄된 사상을 주장하는 한국 청교도 목회자들의 능동적 순종과 회심준비론 세미나가 삼송제일교회(정대운 목사)에서 있었다. 김병훈 교수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강의 영상이 있어 잠시 살펴 보았다. 
 

 

“(1:01분부터)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논쟁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논점 하나가 행위언약 부분이예요. 행위언약이 (웨신) 7장에 보면, 사람과 맺은 언약 가운데 행위언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넘어가지요. 그 다음에 7장 2절에 가게되면, ‘사람과 맺으신 첫 번째 언약은 행위언약이었다. 이 언약에서 완전하며 개인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하여, 볼드처리 되어 있지요? 굉장히 중요한 단어예요. 그걸 인하여 아담과 아담 안에 있는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

자! 질문하겠습니다. 이 생명은 어떠한 생명일까요? 완전하고 개인적인, 그리고 뒤에 가면 영속적인이란 말이 나와요. perfect, personal, eternal, everlasting, 영속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하여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셨던 약속된 생명은 뭘까요? 1) 처음에 만들어진 에덴 동산에서 그대로 사는 것, 2) 그것보다 낳은 생명, 1번과 2번에서 뭘까요? 수동적 순종의 의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1번이라고 이야기해요. 능동적 순종을 포함하여 모든 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2번이라고 해요.

아담이 최초에 만들어졌을 때, 무흠하고 거룩한 의와 참된 지식으로 하나님 형상의 모습을 갖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아담이 여전히, 여전히 완성에 이르로서 누려야 할 더 큰 복이 있는데, 그것이 영원한 생명이요, 하나님께서 행위언약의 약속으로 주시고자 했던 바로 그 생명이다!라는 거예요.

이 생명의 대비가 굉장히 중요한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심으로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은 처음 아담이 만들어질 때의 상태로 돌아가는 생명이예요? 아니면 아담이 순종했으면 받았어야 할 하늘의 생명일까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생명을 주셔요? 아담 같은 생명이예요? 그거보다 더 낳은 생명이예요.

이 더 낳은 생명이 뭐냐하면, 다시는 죄를 범할 가능성이 없는 온전한 생명이예요. 아담이 누렸던 생명은 어떤 것이지요? 무흠한 상태로 아담은 지어졌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 의미하는 참된 의와 지식과 거룩을 가지고 있었어요. 너무 아름다워요. 그러나 아담은 죄를 범할 가능한 상태였어요” (김병훈 교수)

김병훈 교수의 이 부분의 강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병훈 교수의 요점을 1), 2), 3), 4)로 요약한다. 김병훈 교수의 핵심을 더 분명하게 요약하기 위해 약간의 필자의 말이 부연되었음을 밝힌다. 오늘은 1번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은 웨신(WCF)이 가르치는 행위언약 부분이다.

김병훈 교수는 여전히 능동적 순종-수동적 순종 논쟁의 가장 중요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실수와 허물이 가득했던 중세의  성현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웨신, WCF)에서 찾고 있다. 이것이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가장 심각한 부분이다. 웨신의 그 부분이 무너지면 김병훈 교수 등의 신학이 자동적으로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행위언약 이론이 청교도들의 고유한 신학이었고, 청교도들의 영향으로 웨신에 삽입되었다고 배웠다. 그러나 행위언약 신학은 <도르트신조>(1619)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어 사형, 재산몰수, 국외추방 등에 처해진 화란의 알미니안 이단들이 주장했던 이론이었다 (도르트신조 둘째 교리 오류반박 2,3,4).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아담과 행위언약을 맺었으나, 아담이 실패했고 아담의 후손들도 실패하기만 하니 하나님이 곤경에 처하셨다고 알미니안들은 가르쳤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율법준수에 성공하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공의를 만족시켰고, 십자가로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중보자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께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쉽게 구원을 주는 새로운 구원공식을 제안하여 승인받으셨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율법준수를 면제하고 구원을 얻게 한다는 은혜언약이라고 주장했다 (바우만 2016, 153-155, 187-189).

알미니안들의 이론에 의하면 신약의 백성들이 행위언약이 아닌 은혜언약으로 구원을 얻게 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능동적 순종(율법준수)와 수동적 순종(십자가 속죄)을 완전하게 수행했기 때문이다. 알미니안들이 웨신 7, 19장이 가르치는 행위언약-은혜언약 이론을 더 먼저 발전시켜 가르쳤다.

행위언약이 잉글랜드 청교도 쪽에서 1592년 퍼킨스의 <황금사슬>에서 본격적으로 주장되어 청교도 운동의 신학적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비슷한 때 화란에서도 행위언약이 알미니안들의 중요한 신학로 자리잡았으나, 1619년에 완성된 <도르트신조>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대체 청교도들이 어떻게 알미니안들과 동일한 칭의 신학을 가지게 되었을까? 패커는 화란과 잉글랜드에서 동시에 알미니안주의가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알미니안주의는 화란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독립된 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잉글랜드에서도 거의 동일한 때에 비슷한 반항적인 신학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패커 2019, 35).

패커는 청교도 신학의 칭의론이 알미니안 신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진단했다.

“청교도주의 안에서도 칭의에 대한 알미니우스주의적 교리가 침투했다” (패커 2019, 58).

 

아셀트 역시 청교도들과 알미니안들의 관계에 대해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1600년대 이후에 아르미니우스주의 사상은 영국 신학계를 서서히 장악하게 된 반면,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은 스코틀랜드 땅에 개혁주의 사상을 전파함에 있어서 마지막 보루로 공헌했다” (아셀트 2012, 172).

“오웬이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대학의 신학적인 분위기는 아르미니우스주의 사상에 장악되어 있었다” (아셀트 2012, 228).

“아르미니우스주의 사상은 국교도와 비국교도 모두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다” (아셀트 2012, 228).

이상으로 살펴 본 것처럼, 김병훈 교수 등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근거로 삼는 웨신의 행위언약은 성경이 가르치고, 칼빈이 가르친 신학이 아니다. 알미니안들이 가르친 이론이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아 청교도들이 수용한 이론이다.

능동적 순종은 칭의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칭의론에 의해 교회가 살기도, 죽기도 하는 것이므로 칭의론의 근거는 오직 성경이어야 한다. 그러나 김병훈 교수 등은 칭의론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지 않고 알미니안들이 주장했던 행위언약에서 찾는다. 그러므로 지금 그들의 신앙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능동적 순종의 근거로 주장되는 행위언약은 다음의 성경 구절들과 비교해도 맞지 않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하나님이 이와 같이 말씀하실 때는 (김병훈 교수의 주장대로 하면) 아직 아담이 행위언약을 통과하기 전이다. 율법준수에 실패하여 영원히 죽을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정상적이지 못하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김병훈 교수의 주장을 따르면, 이 말씀을 하실 때도 아직 아담이 행위언약을 통과하기 전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행위언약을 통과하여 죄를 지을 수 없는 하늘의 생명을 받은 후에 아담에게 자기를 대신하여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관리하라는 사명을 주시를 것이 정상적이지 않는가?

김병훈 교수 등이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근거라는 행위언약 이론은 성경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맞지 않다. 다음에 계속 김병훈 교수의 강의의 다음과 같은 핵심적 내용들을 이어서 살펴볼 것이다. 

2) 아담은 무흠한 상태로 지어졌고,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의와 거룩과 지식을 가진 상태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완성된 생명을 누리는 상태가 아니었고 스스로 노력하여 완성된 생명을 얻어야 하는 상태였다.

3) 하나님은 아담을 일단 죄를 지을 가능성 있는 생명으로 지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담이 죄를 지을 가능성이 없는 생명으로 격상시키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웨신(WCF)이 가르치는 행위언약을 아담과 맺으셨다.

4)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은 처음 아담의 생명이 아니고 아담이 행위언약(율법준수)에 성공했으면 누리게 될 완전한 생명이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이 능동적 순종으로 아담이 성공하지 못한 행위언약을 대신 성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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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신조

제임스 패커. 2019. 알미니우스주의(이스데반역). CLC.

클라렌스 바우만. 2016. 도르트신경 해설(손정원 역). 솔로몬.

빌렘 판 아셀트 외 3인. 1998. 개혁신학과 스콜라주의(한병수 역). 부흥과 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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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