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등 예언은사 받았다는 사람들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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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등 예언은사 받았다는 사람들은 뭔가요?
  • 정이철
  • 승인 2015.08.01 22:21
  •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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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예언을 믿는 사람은 다른 더 많은 부분에서 거짓 영의 역사가 나타나
이용규 선교사

질문>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목사님이 쓰신 칼럼을 보게 되었고 궁금한 점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궁금한 것들인데, 목사님의 글을 보니 많은 질문이 있지만 한 두 가지 여쭈어 보고 싶어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이용규 선교사의 <내려놓음>이란 책을 저도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올 때 쯤 읽었고, 그 이후 <더 내려놓음>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이라는 것이 구약시대 때 끝났고, 신약시대 잠시 있다가 사라졌고 성경이 쓰일 당시 이후론 중단 되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한국에서 예언의 은사라고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의 장난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 것인가요? 오늘날 예언은사를 받았다는 자들은 그러면 다 뭔가요?

 

정이철 목사 답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이 죄악에 빠진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주시는 말씀을 뜻합니다. 예언과 같은 뜻의 다른 말은 ‘계시’입니다. 세상에서는 앞날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하기 때문에 세상의 예언 개념에 익숙한 우리들은 하나님이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미리말해 주시는 것이 예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부패하고 소망없는 죄인들이 자연적 방법으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지식을 전혀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들에게 구원얻을 길을 보여주시는 말씀을 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구원얻도록 주시는 말씀 그 자체를 계시 또는 예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을 하나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을 ‘예언자’, ‘선지자’라고 부르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먼저 주신 예언을 그들이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행동을 “예언한다”라고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 주신 계시와 예언은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 신약 시대에는 사도들과 사도들에게서 가르침 받은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들을 통해 주신 예언은 곧 성경의 말씀이고, 우리의 신앙과 구원을 위한 절대적 권위를 가지는 예언이고, 또한 모두 성경으로 기록되어 종결되었고, 우리의 구원과 하나님 섬김을 위한 말씀으로서 충분하고 완전한 예언입니다. 더 이상 이러한 예언은 이어지거나 추가되지 않습니다. 만일 이러한 예언이 더 추가된다면 성경은 자주 추가되고 계속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주신 특별계시의 말씀은 완성되었으므로 더 이상 추가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는 이러한 예언과 다른 종류의 예언을 했던 선지자들이 나옵니다. 빌립의 딸들도 예언(행 21:8,9)하는 사람들이었고,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천하에 흉년(행 11:28)이 올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유다와 실라도 예언하는 선지자(행 15:32)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말한 예언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문제입니다. 드물게 이들이 전했던 예언 속에도 하나님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에게 직접주신 특별계시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천하에 흉년이 올것이라는 아가보의 예언의 내용은 정확하였고 성경에도 기록되었습니다. 신약의 선지자들도 매우 종종 하나님이 직접주시는 예언을 받아 하나님 백성들에게 전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사례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우리는 그 내용이 성경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에 한하여 하나님께서 아가보와 같은 신약의 예언자들에게 직접 특별계시의 말씀을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신약의 선지자(예언자)들의 예언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전했는지 짐작은 할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말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의 말씀을 통해 신약의 예언자들의 예언이 성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고 굳게하고”(행 15:32)

선지자(예언자)였던 유다와 실라가 다른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신앙을 굳세게하는 말을했다고 합니다. 유다와 실라는 당시 기독교의 큰 논란거리였던 이방인 신자들과 구약의 율법의 관계를 이방인들에게 설명하고 바르게 정립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예루살렘의 사도들에 의해 이방인 교회에 파송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했던 일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전해 준 예언과 아직 완성되어 교회에 주어지지 않았던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주어지는 예언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종합적으로 이해하여 이방인 신자들에게 올바른 신앙의 길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예언에 대해 성경은 ‘권면하고 굳게하고’라고 기술하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환상, 꿈, 음성 등의 방식으로 하나님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주신 우리의 신앙과 구원에 관한 특별계시의 말씀은 성경으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는 과정이었던 초대교회 시절은 과도기였습니다. 구약의 예언을 잘 아는 유대인들 신자들은 사도들을 통해 주어지고 있는 신약의 예언에 대해 잘 몰랐고, 새로이 신자가 된 이방인들은 구약도 신약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온갖 고난과 핍박도 많아 신자들이 주를 믿고 따르는데 많은 방해와 장애가 있었습니다. 

이때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먼저 신.구약의 예언에 대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구비하여 신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원리와 이치를 가르치고 설명하면서,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더욱 담대하게 주를 따르고 교회 섬기도록 가르치고 위로하는 특수한 말씀 사역자들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신약 초기의 선지자들은 바로 그런 목적으로 세워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기록하는데 쓰임받은 특별계시 수납자들에게는 성령이 '감동'하셨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속에 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을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기록한 말씀의 내용이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감동을 체험하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특별계시가 성경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이 아닌 성령의 '조명'을 받아 일하였습니다. 성령의 조명은 하나님이 계시를 직접 그들의 마음에 심어주시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주어진 신구약의 특별계시를 바르게 해석하고 교회의 상황에 적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의 조명의 시대이지 성령의 감동(영감)의 시대가 아닙니다.   

 

이용규 선교사와 하나님 음성

그러면 왜 이용규 선교사가 사이비 가짜 신자이고 거짓 영을 모시고 전파하는 불량한 선교사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 시대의 예언자들을 통해 개인에게 점하는 듯한 방식으로 직접 예언하여 주신다는 사이비 사상에 푹 빠져있습니다, 규장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비 예언자들을 통해 개인적인 예언을 받았다고 스스로 설명하였고, 그것을 마음에 깊이 담고 계속 묵상하고 자신의 사역에 적용하였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지의 중요한 일들을 진행하는데 그들의 예언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여기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예언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문제가 없겠으나, 그 예언을 준 신이 사탄이었다면 이용규 선교사는 사탄숭배 행위를 지속하면서 마치 신실한 선교사인양 좋은 인상과 학력과 베스트 셀러들을 통해 많은 교회들과 신자들을 속이고 더럽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이용규 선교사에게 예언(대언)한 그 예언자들을 통해 말을 해준 신은 하나님이 아니고 사탄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성경을 기록하는데 쓰여진 사람들은 성경이 완성된 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약 시대의 초기에 예언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구약 계시를 더 먼저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서 신앙이 미약한 새신자들이 기독교인으로 마땅히 가야할 신앙과 삶의 길을 설명하며 가르치는 말이었습니다. 잘 모르는 신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원리와 이치를 가르치면서 핍박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길을 계속 가도록 위로하고 권면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은 이용규 선교사에 예언해 준 그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이 직통으로 전할 말을 그들의 마음에 심어주는 형식의 예언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원리와 이치를 더 바르게 깨닫게하시는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알고 이해하게 된 신앙의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설명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롬 12:6)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신약의 선지자가 신구약의 예언에 대해서 무지했다면, 그는 올바르고 성숙하게 신앙의 원리와 이치를 가르치는 말(예언)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모르면서 아는체 하는 것은 분수를 모르는 행동입니다.

만일 신약의 예언자들의 예언이 하나님께서 직통으로 마음 속에 심어주시는 말씀계시였다면 바울 사도가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발람의 나귀가 하나님이 자기의 마음에 심기워주시는 말을 주인에게 그대로 기계적으로 전했던 것과 같은 예언(대언)이었다면,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하라는 말이 성립되지 못합니다. 그냥 주시는 대로, 임하는 대로 내 뱉으며 전달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이 완성되고 교회가 조직되면서 이러한 말씀 사역을 감당했던 신약의 선지자들은 사라졌고, 대신 성경으로 훈련되어 신자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는 장로, 즉 오늘 날의 목회자 직분이 등장하여 그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이용규 선교사에게 예언을 해 준 사이비 선교자들과 이용규 선교사가 신뢰하였던 이 시대의 외국의 유명한 예언자들의 예언이라는 것은 전혀 성경적 존립근거가 없습니다. 이용규 선교사가 거짓 영들에게 속아 사탄이 주는 사이비 예언에 심취되었던 것입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으로 위장하는 사탄에게 붙잡혀서 남의 신앙가지 더럽히는 거짓된 불량선교사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이용규 선교사가 독일에 가서 부흥집회를 인도하고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이번 여행 중에 개인적으로 기도해 주는 가운데 예언적인 메시지가 많이 흘러나왔고 그것이 기도 받는 사람들을 치유와 확신으로 인도함을 보았다.”(이용규)

‘기도해 주는 가운데 예언적인 메시지가 많이 흘러나왔고’ 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어떤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할 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개인적 예언이 자신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예언이 섞여서 뭉개지는 이런 현상은 예언한다는 사이비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예언기도’라고 부르는 이런 행태는 너무도 흔하고 많아 일일히 언급할 수가 없는 지경입니다. 이것은 점하는 거짓 영에게 붙드린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이 아무리 그럴싸하고, 또 실제로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고 해도 성령의 역사로 인정하면 크게 망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직접 누구에게 예언을 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다”라는 말도 정말 위험스럽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자녀로 부르신 사람에게 역사하여 복음을 믿게하는 분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파되지 않으면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말씀을 모르는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한다면, 산신령이 아무에게나 금도끼와 은도끼를 기분대로 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역사하여 기묘한 일을 부리는 영은 성령이 아니고 현대의 산신령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말은 이용규 선교사를 통해 개인사를 점치게하는 신령이 부지런을 떨었던 것으로만 해석됩니다. 

이용규 선교사가 어떤 교회에서 특별집회를 인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듣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다음의 영상을 보면 이용규 선교사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실감하시게 될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용규 선교사에게서는 기껏 한 계집과 밤새 잡담하며 조잘거리는 이상한 하나님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자! 이 안에 라디오 주파수가 흘러요? 안 흘러요? 흐르지요? 어떻게 알아요? 보셨어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가져와서 주파수를 맞춰보면 알지요!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못 듣는다는데 문제가 있어요. 몽골 국제대학교에서 집회가 있었는데, 그때 많은 지체들이 방언, 예언, 통변의 은사들을 받았어요. 한 자매에게 방언, 통변, 예언의 은사가 임하면서 (집으로 가는데) 하나님이 계속 말씀을 주시더래요. 조곤조곤 말씀하시더래요. 집에 가서 이불펴고 자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계속 말씀을 하시더래요. 계속 듣다보니까 새벽 4시가 되었어요. 자야될 것 같은데 하나님이 멈추시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 자매가 이렇게 고백했어요. ‘하나님! 저에게 이렇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으셨어요? 그 동안 갑갑하셔서 어떡하셨어요?’ 다음날 학교에 와가지고 저한데 ‘선생님! 하나님이 밤새 저에게 말씀하시는데요, 알고 보니까 하나님은 굉장히 수다장이시던대요!’ 하나님은 말씀이 많으세요. 특히 말 많은 자매들에게는 더 말씀이 많으신것 같아요!”(이용규) 

이렇게 밤새도록 어떤 사람과 조잘거리는 신이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일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마치 사람과 사람이 마주 대하듯이 대하시면서 많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언제 모세에게 잡담하면서 조잘거렸고, 언제 바울에게 밤새 조잘대셨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말해주시는 예언이나 귀에 바로 들려오는 하나님 음성듣기에 대해서 너무 쉽게 말하는 이용규 선교사는 이 정도로 심히 변질되었습니다. 그가 철썩같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는 신은 사탄입니다. 

성경의 방언도 통변되는 즉시 하나님이 직접 말해주시는 내용을 수납하게 되는 것이므로 예언과 같습니다. 오늘 날 이러한 성경의 진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진짜 방언이 없으므로 진짜 통변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같은 소리현상을 녹음하여 여러 통변자들에게 주고 해석해 보라하면 알 것입니다. 모두 제 각각입니다. 방언, 통변, 예언의 은사가 임했다는 것 자체가 거짓 영이 임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성경의 진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어디엔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에게나 밤새 잡담하면서 조잘거리는 거짓 하나님이 따라붙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철저하게 미혹된 사람들에게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예언이나 하나님의 음성듣기에 대한 이용규 선교사의 말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우스운 소리입니다.

 

안수하여 성령을 조종하고 귀신의 냄새도 맡는 이용규

이용규 선교사가 얼마나 영적으로 변질되었지는 다음의 내용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독일에 가서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난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직접 쓴 글 속에서 다음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번 집회에서는 전과는 달리 7번의 말씀 시간 모두 마무리를 안수 기도로 했다. 많은 독일 분들이 앞에 나와 안수를 받았다. 눈물이 있었고 우울증의 치유가 일어났고 질병이 떠나갔다. 한 독일 분을 위해 김화경 목사님과 같이 안수하는데 몽골에서 기도 가운데 악한 영이 떠나갈 때 맡을 수 있었던 악한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그 형제가 악한 영에 씌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발작을 하며 옷을 찢던 형제가 잠잠하게 쓰러졌다.”(이용규)

안수기도하는 이용규 선교사

대체 안수기도는 왜 하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선교사와 목회자를 구별하여 세우기 위해 안수하는 예는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기독교 설립자들인 사도들이 특별계시의 방편으로 안수하여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도 했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계시하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루어진 안수가 성경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다른 신자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입하기 위해 시행된 안수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믿는 자가 다른 믿는 자에게 성령을 더 얹어주기 위해 시행하는 안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그런 식으로 역사하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이 특별한 사람의 안수기도에 의해 조종된다고 성경은 전혀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반대로 안수에 의해 거짓 영이 다른 사람에게 주입되는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안수로 거짓 성령을 부리는 행태는 거짓 영의 수종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용규 선교사가 안수하였더니 사람들이 쓰러졌고, 더욱 더 놀랍게도 그때 악한 영의 냄새를 맡았다는 말은 정말 우습지도 않습니다. 영의 냄새가 사람의 코에 느껴진다는 정말 금시초문입니다. 영에게는 모양, 형체, 크기, 질량이 없는데, 어떻게 물리적인 냄새가 있겠으며 또한 개도 못 맡는 그 냄새를 어찌 인간의 코로 맡겠습니까? 

이용규 선교사가 없었던 일을 꾸며 거짓말한다는 것이 아니고 이런 비정상적인 체험을 할 정도로 심히 신앙이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용규 선교사가 굉장히 겸손하고 유순한 인상을 풍기고 있으나 사실을 엄청나게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함부로 사람들에게 안수를 합니까? 자기가 무엇이라고 감히 안수하여 성령을 부리고 유도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거짓 예언에 빠지고 심취한다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고 이처럼 엄청난 것입니다. 하나의 거짓 영의 역사를 친근하게 수용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더 많은 거짓 영의 이론과 장난질에 정신을 팔게됩니다. 악한 영은 자신이 잡은 사람을 곱고 고상하게 부리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많이 써먹고 여러 가지로 이용해 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 예언을 한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다양한 종목에서도 사탄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 예언을 신봉하거나 전파하는 모든 사람들은 메르스 확진자들과 같이 취급되어야 합니다. 메르스를 종식시키기 위해 메르스 확진자들을 엄히 관리했던 것 같이 취급하고 관리해야만 합니다.  안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망하게 됩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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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타 2019-01-28 19:09:00
평신도님! 저의 최근 습관은 거주지 옥상과 회사 건물의 옥상을 찾아 거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최소한 서로 분쟁하는 게 기분좋지 않은 일임은 분명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사용하는 성령의 조명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한발 더 용감하게 기도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생선을 찾는데 전갈을 주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예수님이 성령에 관해 주신 말씀입니다. 바울이 내린 결론도 성경에 있으니, 내 주장과 생각을 강화하는 일부 목사나 이 곳의 지지자보다 성경 자체에서 답을 찾으세요.

반타 2019-01-26 12:59:52
현시대 성령의 역사는 오로지 깨달음으로만 역사돠는 걸까요. 편견을 버리고 성경을 대한다면 이런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조명의 형태로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이 제가 받아들이는 성경적인 해석입니다. 예언과 방언, 치유의 현상들을 악의 역사로 규정하는 이상 전쟁을 벌이는 게 당연하겠읍니다. 제 입장에서는 그 반대입니다. 마녀 아닌 한명의 이교도를 가려내고 아홉명의 선향한 시민을 죽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알기에 제 주장을 폐기할 마음이 당연히 없습니다. 성령을 믿고 기도하며 교통하기 때문입니다

반타 2019-01-26 12:48:32
부분에 대해서는 특히 인간의 지성한계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푸는 게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요. 지성을 짜낸다고 해서 답이 불쑥 나오지 않습니다. 링크를 보고 골방에서의 기도에 대해 사탄이 임했을 수 있다는 조심스럽게 보이지만 여전히 단정적인 평가를 해 주셨군요. 그 근거로 개인의 체험을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는 오류 가능성과 함께 전도를 위한 방언 외의 방언기도는 전무하다는 여전한 주장도 여느 때와 같습니다. 왜 누구에게는 방언이 없어져야 할 사이비, 심지어 이단으로까지 인식될까요. 기도와 자제가 필요해 보입니

진리의검 2019-01-26 12:47:19
귀하의 링크글 열어보니 별로 보고싶지 않는데
반타 귀하께서 감리교집사라는 구절이 의미심장하네요

감리교집사님이시라니 결이 틀릴수 밖에 없습니다

귀하께서
성경 해석조차 다양할수 있으니
참 우스운 결론입니다

성경의 해석은 하나이지 둘이 될 수없습니다
그러니 귀교단의 감신대 학장이었던 변선환씨가
예수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창조주하나님을 욕보였고
그후학들 이현주 안병길 김일부그리고 민중 해방신학자들
종교다원주의자들 어지럽게 많은현실 아닌가요?
혹시 반타 귀하는 귀하를 어느 범주라고 판단하시는지요?

반타 2019-01-26 12:33:48
성경말씀은 분량도 방재하지만 한가지로 해석되기에는 비유와 추상적인 부분이 다양하고 개인마다 자신의 배경과 지식, 환경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예언이나 방언이 성경 말씀에 비추어 전혀 위배되지 않는데, 성경에 비추었을 때 절대적으로 위배되는 이단적 형태로 단정해서 결국은 사탄과 연결하고 싶어하는지가 통 의문스럽습니다. 이런 문제는 말씀하신 칼럼의 수나 많은 강조가 대수가 아닙니다. 단정적 성경해석이 개성의 문제를 넘어 악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여러사람에게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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