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정이철 목사가 한 가지 실수를 했다고 한다. 능동적 순종 문제를 이단 문제로 접근한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 신학적인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이단 문제로 접근했으므로 당사자들이 화들짝 놀라고 분개하여 오히려 회개하지 않고 생사를 걸고 더 싸우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자. 능동적 순종 칭의 교리의 핵심을 다시 돌아보면서, 이것이 큰 문제가 없는 다양한 신학 이론 가운데 하나인지 아니면 기독교를 성경과 다르게 변경하는 이단 문제인지 생각해 보자.

성경은 율법과 죄인의 구원은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죄인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과 하나님이 기원전 1,500년 경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이 직접 관련되었다는 말씀이 성경에 전혀 없다.

성경은 죄인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자기를 믿게하시는 은혜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죄인에게 자기를 믿게하심으로 구원을 주실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시어 자기 백성들의 죗값을 대신 갚으실 작정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곧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는 권세이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작정과 뜻을 꺾을 권세가 없다. 그래서 친히 사람이 되시어 자기의 몸과 피로 자기 백성의 죗값을 갚으시려는 작정을 가지신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죄인을 자기에게로 부르시고, 죄인이 자기를 믿게 하심으로 먼저 구원을 주실 수 있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가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과 구원에서 정확하게 드러났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얻은 구원의 원리를 기독교의 영원하고 참된 구원의 원리로 설명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구원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에 대한 만고불변의 진리를 로마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1-3).

성경과 기독교의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구약의 십계명과 아무 관련이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희생제물로 삼아 우리의 구원을 만들어 내셨다. 하나님이 자기의 거룩과 의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 구원을 주시기 위해 친히 몸을 가지시었다. 하나님은 자기의 몸이 죽음 당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어 자기와 우리 사이를 막는 죄의 담을 무너뜨리셨다. 그리고 친히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어 거룩하신 자기에게 우리가 연합되게 하심으로 완전한 구원을 주셨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2).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사용하신 수단은 곧 자기 자신의 거룩하심(의)이다. 하나님이 자기의 거룩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친히 자기의 거룩을 가지는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죗값을 대신 완전하게 갚으셨다. 그리고 자신을 우리에게로 연합시키어 죄인이 하나님의 의를 가진 의인으로 변하게 하셨다.

그러나 능동적 순종 교리는 하나님이 자기의 거룩과 의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위대한 진리를 부정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미 훗날의 자기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된 백성으로서 이루어 가야할 거룩한 삶의 원리로서 십계명을 주셨다고 설명한다. 성경에 의하면 십계명은 하나님이 구원을 일으키는 수단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된 자들을 거룩하게 살게 만드는 수단이다.

그러나 능동적 순종 교리는 구원을 일으키는 유일한 수단이 십계명이라고 주장한다. 처음 아담도 마음에 기록된 십계명을 잘 지킴으로 구원을 얻었어야 할 인간으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아담이 그리하지 못했으므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십계명을 완전하기 지키시어 먼저 자기를 칭의되게 하셨고, 또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칭의를 주시게 되었다고 한다.

십자가에 대한 능동적 순종 주장자들의 주장은 더욱 괴이하고 놀랍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우리의 구원은 오직 십자가로 말미암았다고 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3,24).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고) 박형룡 박사
(고) 박형룡 박사

 

성경은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고)박형룡 박사를 비롯한 한국과 외국의 능동적 순종 교리파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력은 단지 범죄 이전의 아담, 즉 십계명을 지켜서 스스로 구원을 얻어야 하는 임시적 상태의 아담의 입장으로 돌아가게 할 뿐이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을 위한 소극적인 요인이고, 우리의 구원을 위한 적극적인 요인은 그리스도의 십계명 준수하고 한다. 이것은 기독교를 변경하는 이단 문제인가 기독교 신앙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신학적 토론의 문제인가?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교회들이 알미니안들을 물리치고 신앙을 수호하기 선포한 도르트신조(1618-1619) 속에 이미 알미니안들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주요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합동이 욱신각신 토론하는 능동적 순종, 회심준비론 문제는 칼빈주의 신앙의 기초를 정립한 도르트신조가 이단으로 규정한 알미니안들이 주장한 신학사상이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자! 능동적 순종 문제는 모두 문제 없이 구원받는 성도들 간의 신앙을 증진하기 위한 신학 토론에 해당되는 주제제인가? 아니면 사도 바울이 저주한 다른 복음, 즉 성경의 신앙을 왜곡하는 이단에 속하는 문제인가?

정말 이것이 이단 문제가 아니라면 당장 모든 토론과 설전을 중지하고 서로 한 몸을 이루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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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