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남 교수(총신신대원, 역사신학)
김효남 교수(총신신대원, 역사신학)


(김효남 교수가 총신신대원 신학생들이 읽는 <총신원보> 279호(2022년 10월 18일, 화)에 올린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왜 성경적이며, 필연적인가?"를 읽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오늘은 열 번째 글입니다. 김효남 교수님의 글로 더 많은 연구를 하게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정이철 목사).

“15.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은 대부분 아담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도록 시험받는 기간은 정해져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성경에 그 기간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정한 기간 동안 아담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했고, 만약 아담이 선악과의 시험을 포함해서 자신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던 모든 율법을 지켰더라만 그 시험 기간이 지난 후에 아담은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통해 구원에 이르고 영생을 얻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이 동의했습니다. 다만 그 영생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스위스의 프란시스쿠스 튜레티누스(Franciscus Turretinus)와 같은 신학자들은 아담이 영생을 이 땅이 아닌 천국에서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잉글랜드의 토마스 굳윈(Thomas Goodwin)과 같은 이들은 땅의 사람인 아담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연적인 능력으로 언약을 지켰으니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절대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 가능성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들은 무죄한 아담이라도 아직 영생을 얻지 못했다는 것에는 거의 모두 동의했습니다” (김효남 교수가 총신원보에 올린 글의 일부). ​

오늘의 기사는 바로 직전의 기사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600년대의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 다수가 아담에 대해 칼빈과 다른 신학을 발전시켰고, 그것이 정통 개혁신학이라고 김효남 교수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칼빈의 아담 신학을 다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곧 영혼의 죽음을 말한다. 아담이 하늘과 땅의 전체적인 자연 질서에 위배했을 때, 그 반역으로 인해서 인류를 파멸에 다다르게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독교강요, 2.1.5).

칼빈은 처음 아담에게 주어진 영생을 아담과 하나님의 올바른 관계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상태를 영생이라고 보았습니다. 반대로 피조물 아담이 범죄하여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된 것을 죽음이라고 보았습니다. 아담의 영생에 대한 칼빈의 이해가 매우 바르고 성경적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성경은 아담의 죽음이 죄의 결과, 즉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틀어짐으로 죽음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아담이 범죄하지 않아도 죽을 사람으로 창조되었다고 보는 신학은 거짓신학입니다. 대표적인 두 종류의 신학이 그런 유형의 신학입니다.

하나는 행위구원주의의 조상이 되는 펠라기우스 신학이고 또 하나는 청교도 개격신학입니다. 펠라기우스는 죽음은 창조의 일부였고, 죽음과 함께 지어진 아담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협력함으로,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선택함으로 영생을 얻었을 수있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청교도 개혁신학은 창조의 일부인 죽음과 함께 창조된 아담이 주어진 시험기간 안에 자기 마음에 기록된 영생을 주는 율법에 순종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있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에 죽음이 없었다고 가르칩니다. 죽음은 범죄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망가지지 않았으면, 인간에게 죽음이 없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칼빈도 동일하게 보았습니다. 칼빈은 아담의 영생의 본질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시작된 아담이 계속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고 반역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아담에게 영원히 죽음이 없었다는 것이 칼빈의 아담 신학입니다.
 

 

“첫째 종류의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영생의 보증으로서 생명나무를 주시고 그 열매를 먹는 동안은 영생을 확신할 수 있게 하셨다(창 2:9, 3:22). 또 노아 그 후손들을 위해서 무지개를 두시고 홍수로 땅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표를 삼으셨다(창 9:13-16) 아담과 노아는 이런 것을 성물로 생각했다. 그 자체로서는 영생을 줄 수 없는 생명나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었다는 것이 아니며, 반대쪽에 있는 구름에 반사된 태양 광선에 불과한 무지개가 홍수를 막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생명나무와 무지개에 표징을 새겨 두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의 증명과 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4.14.18).

보시다시피, 칼빈은 아담의 인생이 처음부터 영생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자신에게 보장된 영생을 생명나무를 통해 확인하고 기념하게 하셨다고 칼빈은 이해하였습니다. 생명나무를 먹음으로 영생이 아담의 몸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창조된 아담이 계속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지키면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생명나무로 보증하셨다고 칼빈은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김효남 교수는 총신신대원 학생들에게 아담의 영생에 대해 뭐라고 가르쳤을까요?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아담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했고, 만약 아담이 선악과의 시험을 포함해서 자신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던 모든 율법을 지켰더라만 그 시험 기간이 지난 후에 아담은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통해 구원에 이르고 영생을 얻었을 것” (김효남 교수).

김효남 교수는 아담이 영생 획득을 위해 하나님이 정한 시헌 기간 동안 자기 마음에 새겨진 율법을 잘 지켰다면, 아담의 행동으로 말미암는 의에 근거하여 영생이 아담에게 주어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김효남 교수의 이 말을 정말 심각하게 여겨야 합니다. 

“아담은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통해 구원에 이르고” (김효남 교수).

하나님께서 영생이 없는 아담을 만드신 후, 스스로 영생에 합당한 선한 행동을 요구하신 후 아담이 성공하면 '그 행위로 말미암는 의'에 근거하여 영생을 주시려고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말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과 조금이라도 맞는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  “너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보고 구원을 주겠다”고 하셨던가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구원을 주실 때 그 어떤 행위의 의를 요구하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오직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만 보시고 아브라함을 구원을 누릴 자격을 가진 의로운 사람으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창 4:3).

하나님은 자기의 은혜와 사랑으로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입니다. 혹시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경의 하나님은 다른 분이실까요? 아담의 타락 전의 하나님과 타락 후의 하나님은 다른 분이실까요?

김효남 교수의 아담 신학은 참사이고 사변입니다. 사람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이중인격을 말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인간에게는 구원을 위한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요구하셨고, 그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에게는 오직 자기를 믿게하시는 은혜로만 구원을 주신 이중인격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구약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로 구원을 얻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구약의 모든 사람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후 하나님 백성답게 행위의 의(율법준수)를 이루며 살라고 요구받았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성경의 어디를 근거로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은 의에 근거하여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할까요? 김효남 교수의 다음의 말은 더욱 더 해괴합니다.

“스위스의 프란시스쿠스 튜레티누스(Franciscus Turretinus)와 같은 신학자들은 아담이 영생을 이 땅이 아닌 천국에서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잉글랜드의 토마스 굳윈(Thomas Goodwin)과 같은 이들은 땅의 사람인 아담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연적인 능력으로 언약을 지켰으니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효남 교수).

땅의 흙을 원료로 하여 창조된 아담, 즉 김효남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죽음이 예정된 임시적 생명과 영생을 위한 시험기간 안에서 지어진 아담이 자기 마음에 기록된 율법을 잘 지켰으면 '천국에서' 영생을 누렸을 것이라고 어떤 학자가 주장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학자는 아담이 율법준수에 성공했다면 계속 땅에서 영생을 누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입니다.

칼빈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영생) 안에서 시작된 아담이 계속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했다면 그 영생이 영원히 이어졌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아야 그리스도께서 죄로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찾아서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씀이 설명됩니다. 

율법을 잘 지킨 아담이 지상을 떠나 천국에서 영생을 누렸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을 아담에게 대입시키는 성급하고 엉뚱한 사변입니다. 죄로 인해 죽음이 들어왔으므로 부득이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늘의 천사와 같은 부활의 몸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안에서 죄로 인해 죽음에 종속되어진 처음의 몸을 극복하기 위해 부득이 부활이 도입되었고, 결과적으로 범죄하지 않으면 죽음이 없는 흙으로 지어진 처음의 몸보다 더욱 뛰어난 영의 몸의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 15:49).

아담이 범죄하지 않고 율법을 잘 지켰으면 자동적으로 그의 흙으로 지어진 몸이 그리스도처럼 부활의 몸으로 변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었을 것이라는 이론은 사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무대로서 지으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 외에 다른 어디에 특별한 천국이 있었다는 것인가요?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살게하신 곳,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동거동행하는 성전으로 지어진 에덴동산과 지금 이 땅이 아닌 다른 특별한 천국에 또 있었다는 이론은 이단사상입니다.

아담의 반역 죄로 인해 바로 그 천국(성전, 하나님 나라)이 파괴되었으나 자기 백성과 자기의 나라를 가지시려고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성육신자로의 속죄사역과 부활로 아담의 죄로 망가진 천국을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결국 종말에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이 땅에서 죄와 악의 흔적이 완전히 제거될 것이고, 이 땅이 완전한 천국(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꾸어진다는 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담이 살게하신 곳 외에 다른 천국, 즉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처음부터 따로 지어서 아담이 율법준수 잘하였으면 변화된 몸으로 그곳에서 영생을 누리게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비성경적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은 죄로 인해 죽음이 인류의 철칙이 되어버린 후 하나님께서 그리스로의 피 흘리심으로 자기 백성을 재창조하심으로 인해 있게 된 것입니다.  

스위스의 ‘프란시스쿠스 튜레티누스’(Franciscus Turretinus)와 잉글랜드의 ‘토마스 굳윈’(Thomas Goodwin) 같은 자들이 뭣이라고 김효남 교수는 이런 자들의 이름을 말하면서 감히 성경을 비트는 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런 류의 쟁쟁한 이름들을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다음의 쟁쟁한 청교도 신학자들 대부분이 김효남 교수가 말하는 허무맹랑한 아담 영생론을 신봉했거나 동조하고 있을 것입니다.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
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
폴 베인즈(Paul Baynes, 1573-1617)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1577-1635)
존 코튼(John Cotton, 1585-1652)
존 프레스톤(John Preston, 1587-1628)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리챠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
윌리엄 브릿지(William Bridge, 1600-1671)
존 하우(John Howe,1630-1705)
스티븐 차녹(Stephen Charnok, 1628-1680)
존 번연(John Bunyan, 1628-1699)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
토마스 브룩스(Thomas Brooks, 1608-1680)
메튜 폴(Matthew Poole, 1624-1679)
토마스 맨톤(Thomas Manton, 1620-1677)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헤르만 바빙크(Johan Herman Bavinck, 1895-1964)
리차드 멀러(Richard Muller, 1948-현재, 김효남교수의 선생)
조엘 비키(Joel Beeke, 1952-현재, 김효남 교수의 선생)
김효남(현,총신신대원 역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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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