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남 교수가 <총신원보> 279호(2022년 10월 18일, 화)에 올린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왜 성경적이며, 필연적인가?"를 공부하는 중입니다. 오늘은 그 여섯 번째 글입니다. 김효남 교수님의 글로 더 많은 연구를 하게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정이철 목사)
 

 

김효남 교수(총신신대원, 역사신학)
니김효남 교수(총신신대원, 역사신학)

 

“또한 아담 이후의 범죄한 후손인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 등등의 사람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을 부르셔서 의인으로 세우시는 분이 여호와, 우리 구주이십니다.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조건이 아니라, 주를 믿고 의지하며, 주의 말씀을 들으며 지키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율법이 아니라, 주의 사자에게서 나오는 복음이며,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계 2-3장).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악과를 통해서 맺은 행위언약과 아주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조건이 있고, 인간에게는 순종의 의무가 있으며, 그 행위 혹은 순종의 유무에 따라 상과 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파 신학자들은 이를 창조의 법 (jus creationis), 자연언약 (foedus naturale), 혹은 행위언약(foedus operum)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통한 언약은 이 자연언약이 에덴이라는 특정한 상황에 명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행위언약에 대한 일종의 실정법(positive law)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효남 교수. 총신원보의 글의 일부).
 

김효남 교수는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의 구원과 율법준수 자력 구원에 실패한 첫 사람 아담의 행위언약 구원의 원리를 비교하였습니다. 김효남 교수는 구약의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 등이 얻은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악과를 통해서 맺은 행위언약과 아주 유사합니다”라고 비약하였습니다. 다음의 김효남 교수의 말을 보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악과를 통해서 맺은 행위언약과 아주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조건이 있고, 인간에게는 순종의 의무가 있으며, 그 행위 혹은 순종의 유무에 따라 상과 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김효남 교수).

구약의 인물들의 구원에 대해 말한 후, 아담에게 구원을 위해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행위언약의 원리가 그들에게서도 발견된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조건적인 명령이 있고, 인간의 순종이 따름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원리가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의 신앙에서도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명령하였고, 또 그들이 그것에 반응하여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김효남 교수를 비롯한 대부분의 칼빈 이후의 (사실상 칼빈의 신학에서 벗어난) 칼빈주의자들은 아담의 구원을 행위언약(WCF 19:1,2)으로 설명합니다. 행위언약은 아담이 자기 마음에 기록된 십계명을 완전하게 실천하면, 하나님이 그 공덕을 인정하여 아담에게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는 내용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구원을 위해 맺었다는 행위언약과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 등 구약의 사람들이 얻은 구원 사이에 같은 원리가 나타난다는 김효남 교수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구약 사람들의 구원은 하나님이 자기를 믿게하심으로만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행위언약 신학의 아담에게 부과하셨다는 것 같은 조건적 행위는 일체 없었습니다. 아담에게 구원을 위해 주어진 행위언약이라는 것에 의하면, 창조와 함께 마음에 기록된 십계명을 완전하게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조건을 아담이 성취하면 구원을 얻게되었습니다.

"이것(범죄한 아담의 후손들에게 임한 구원을 뜻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악과를 통해서 맺은 행위언약과 아주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조건이 있고, 인간에게는 순종의 의무가 있으며, 그 행위 혹은 순종의 유무에 따라 상과 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김효남 교수).

김효남 교수의 말은 행위언약 신학이 말하는 아담의 구원과 노아 등의 구약 인물들의 구원의 원리가 전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일관성과 연속성이 나타난다는 주장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구약의 인물들에게 구원을 위해 어떤 조건을 요구하셨다면, 김효남 교수의 주장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를 구원하기 위해 무슨 행위나 준비를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자기를 믿게 하셨고, 아브라함이 자기를 믿는 것을 보시고 아브라함에게 완전한 칭의를 선물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99세 노인이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니,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진지하고 확실하게 믿는지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칭의와 영생을 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칭의를 얻은 원리가 신.구약의 모든 하나님 백성들의 칭의 방식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임시적인 상태' 또는 '시험기간' 안에서 창조된 아담에게 자기를 하나님으로 믿으라고 요구하시고, 아담이 믿으니 그 믿음을 보시고 영생의 자격을 부여하셨다는 것이 행위언약 신학의 아담 이론이라면 김효남 교수의 신학이 맞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구원을 위한 행위를 요구하셨다는 웨신서의 행위언약 이론과는 달리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 등의 구약의 인물들은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만 칭의와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김효남 교수는 아담의 마음에 주어진 구원을 주는 십계명이 그들에게도 자연적으로 계시되었고, 그들은 그것을 지키고 행함으로 구원을 준비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구약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위해 사전에 스스로 무엇을 행하고 준비하게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까?

만일 김효남 교수가 창조와 함께 자연적으로 아담의 마음에 구원을 주는 십계명이 주어졌다는 이론을 계속 주장한다면, 참으로 큰 일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흐려지기는 했어도 모든 인류의 마음에도 동일한 구원을 주는 율법이 새겨져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 을지문덕 장군에게도 그것이 주어졌고, 그들은 그것에게 진실되고 성실하게 반응함으로 구원을 얻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 2:15).

실제로 구원을 위해 창조 시 자연적으로 구원을 주는 십계명이 아담에게 주어졌다는 행위언약 이론을 주장하는 칼빈 이후의 (사실상 칼빈에게서 멀어진) 칼빈주의자들은 위 성구를 제시하면서 그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구절의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이 아담에게 영생을 주는 십계명이라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알 수없었던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길이 주어졌다고 가르쳤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 이론은 사도 바울을 이단으로 만드는 주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내용을 말하거나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단지 죄악되게 살아온 이방인들이 율법을 몰랐을지라도 자기 속에 남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기인하는 양심에 의해 어느 정도 자신의 죄를 스스로 자각할 수 있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김효남 교수가 아담이 창조와 함께 자연적으로 자기 마음에 새겨진 십계명 준수로 구원을 만들라고 하나님이 명령했다는 행위언약 신학과 하나님이 구약의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에게 주신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 사이에 원리의 연속성이 있다는 신학은 철회되어야 합니다. 전혀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이 아닙니다.

행위언약 신학의 아담은 율법준수로 스스로 구원을 얻으라고 요구받았고,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는 자기를 부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죄용서를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 원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훗날에 있을 자기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제사의 공로를 자기를 믿는 그들에게 앞당겨 적용하심으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의 시대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수 천 년 전이었으나,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죽으심을 통해 그들의 죄를 사하려고 작정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시는 권세이니, 훗날에 일어날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의 공로를 미리 적용하여 구원을 주시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는 순간까지 그들의 행위와 성품은 전혀 그들의 구원을 위한 가산점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구원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으로 말미암는 그들의 삶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김효남 교수가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행위언약 신학의 아담의 구원과 노아, 아브람, 이삭, 야곱, 모세의 구원의 원리가 같다는 이론은 일방적 주장입니다. 

“그래서 개혁파 신학자들은 이를 창조의 법 (jus creationis), 자연언약 (foedus naturale), 혹은 행위언약(foedus operum)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통한 언약은 이 자연언약이 에덴이라는 특정한 상황에 명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행위언약에 대한 일종의 실정법(positive law)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효남 교수).

김효남 교수의 에덴동산의 선악과에 대한 위의 설명은 더욱 어색합니다. 김효남 교수의 이론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구원을 얻도록 두 종류의 법을 잘 지키라고 명령한 것이 됩니다. 하나는, 창조로 인해 자연적으로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어진 영생을 주는 하나님의 법(십계명)입니다. 또 하나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특별한 계명입니다. 아담은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 십계명도 잘 지키고, 선악과 먹지 말라는 특별한 계명도 완전하게 지켰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그러나 엉생과 하나님의 모든 은혜 안에서 창조된 아담의 장래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 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김효남 교수가 주장하는 하나님과 이성적 피조물의 존재론적 차이로 인해 자연적으로 아담에게 주어졌다는 영생을 주는 하나님의 법(십계명)에 대한 말씀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이성적 피조물에 대하여 그 존재론적 차이 (창조주-피조물)로 인하여 필연적인 요구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율법이라고 부릅니다" (김효남 교수).

타락 이전의 에덴동산의 아담에게 영생을 주는 법(십계명)이 자연적으로 주어졌다는 김효남 교수의 이런 이론은 비성경적인 사변입니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내용이 1600년대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에 의해 신학(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행위언약)으로 정립된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당시 신학자들이 그 시대에 당연시되었던 철학과 사조의 영향 하에 기독교와 성경을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칼빈과 루터가 배척한 중세 로마교회의 스콜라주의가 다시 칼빈 이후의 유럽의 종교개혁 신학자들에 의해 채용되어 '개신교 스콜라주의'로 정착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시대의 학문에서 정설로 여겨진 '자연법 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범죄 이전의 아담의 운명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하신 것으로 보아, 범죄하지 않는 한 아담은 죽음이 없는 몸으로 창조되었다는 일반적 성경 해석이 옳습니다.  대체 하나님은 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에 대해서 서철원 박사가 잘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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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

 

이 목적으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와 언약을 체결하셨다. 창조주만을 섬기도록 하려고 선악과 계명으로 언약을 체결하셨다.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선으로,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는 것을 악으로 정하셔서 언약을 체결하셨다(하나님론, 295).

이렇게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하려고 하나님은 선악과 계명으로 언약을 맺으셨다 (2:17). 하나님은 선악과 계명을 한 나무에 매셨다. 그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명하셨으니 그 실과를 먹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이 되었다. 산악계명은 선악을 아는 지혜와 지식이 한 나무에 있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하나님론, 220).

하나님께서 아담이 지속적으로 즐거이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또는 하나님 섬기기를 그치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선악과와 결부시키신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 섬기기를 중단할 것임을 나타내고, 선악과를 계속 범하지 않음으로 즐거이 하나님 섬기기를 계속 지속할 것임을 스스로 나타내도록 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김효남 교수는 선악과를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선악과를 통한 언약은 이 자연언약이 에덴이라는 특정한 상황에 명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행위언약에 대한 일종의 실정법(positive law)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효남 교수).

김효남 교수는 선악과 계명이 자기 마음에 기록된 십계명을 지켜 스스로 자기를 구원하라고 명령받은 아담에게 주어진 하나의 실정법, 즉 에덴동안 상황에서의 실정법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성경의 의미를 살려내지 못하고 오히려 성경의 의미를 망치는 이론입니다. 성경과 신앙을 해치는 인간의 사변입니다.

김효남 교수의 매우 말은 난해합니다. 아마 총신신대원 학생들이 무슨 뜻이지 파악하여 배우지 못했을 것이니 다행입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비성경적인 글이 <총신원보>에 실렸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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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