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수 목사의 블로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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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박형룡 박사의 저작 전집 4권 351-352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에 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박형룡 박사님의 책에서 제가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고, 노승수라는 분이 올리신 글에서 인용했습니다. 여기를 크릭하십시오. 

“중보로서의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하여 영생의 공로를 세울 목적으로 아담이 완전상태에서 가졌던 언약 관계에 들어가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구성하나니 그가 영생 획득을 위한 조건으로서 율법의 언약적 방면을 준수하심에 행하신 모든 것을 그 내용으로 행한 것이다.

히 2:10-18, 5:8-10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묘사함에 눈부시는 표현으로 하였다. 그 중에도 그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었다한 말씀(히 5:8,9)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그의 인성으로 시험, 고통의 모든 수난을 통하여 학습하신 일이었다. 지상 생애 중의 모든 수난은 그의 인성을 연단하는 풀무가 되어 그를 완전한 구주로 되시게 하였다.

그리고 그가 구원의 근원이 되심도 오직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그의 피동적 순종을 하나님께 열납되게하기 위하여 필요하였다. 오직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타락자의 수난에 대한 그의 평가보다 다른 것이다.

뿐만아니라 만일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을 행치 않으셨더면 그의 인성 자체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에 충분히 응수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속죄가 불가능하셨을 것이다.

또 최종으로 그리스도가 만일 사람에게 부과된 형벌을 받을 셨을 뿐이면 그의 사역의 열매를 분참(分參)한 자들은 아담이 타락되기 전에 있던 바로 그곳에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사죄보다 이상(以上)의 것을 위하여 공을 세우셨다... (중략).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가르치는 성구들은 마 3:15, 5:17, 18 요 15:10, 갈 4:4,5, 히 10:7-9 등이다.” (박형룡 박사)
 

 

위 박형룡 박사의 말씀 속에 조금 이상한 내용이 있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상 생애 중의 모든 수난은 그의 인성을 연단하는 풀무가 되어 그를 완전한 구주로 되시게 하였다.” (박형룡 박사)

이 말씀은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처음부터 무죄하고 거룩하고 의로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지상에서 추가적으로 뭔가를 배워야 하거나, 경험해야 하거나, 연단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거나, 성령을 받아야 한다거나, 능력을 받아야 한다거나, 성화가 되어야 한다거나 ... 등의 주장이나 사상은 이단사상입니다. 

지상에서 당하신 고난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연단하는 풀무가 되어 그리스도를 완전한 구주가 되게 했다는 설명은 제 생각으로는 전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자격(의)이 되어주시고자 성령께서 동정녀의 태중에 죄와 무관한 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자기의 인격을 그 사람에게 일치시키시어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렘 33:16)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28-30)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성경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부터 우리의 구주였고, 처음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완전한 자격과 능력을 가진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왜 박형룡 박사께서는 지상에서 받으신 고난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단련하여 우리의 완전한 구주가 되시게 했다고 말하셨을까요?

그리스도의 인성은 무죄하고 의로웠으나 십자가의 길을 감당하시기에는 여리고 나약했다고 말하시기를 의도하셨을까요? 그리스도의 인성은 죄만 빼고 우리와 동일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의 구세주로서 완전하게 사역하기 위해 지상에서 고난으로 단련 받았다는 설명은 그리스도의 신성의 사역과 역할을 축소하거나 배제하는 오류라고 생각됩니다.

성육신 때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완전하게 연합되었고 이후 영원히 분리되지 않습니다. 우리와 동일한 그리스도의 인성이 모질고, 치욕적이고, 외로운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신성의 지혜와 능력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야 맞지 않을까요? 

박형룡 박사님처럼, 그리스도의 인성이 지상의 고난으로 연단받아 구세주 사명을 완전하게 감당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면, 그리스도의 신성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완전한 신-인이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공적 메시야 사역과 석가모니의 득도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그의 피동적 순종을 하나님께 열납되게하기 위하여 필요하였다.” (박형룡 박사)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이 십자가의 제사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박형룡 박사님의 설명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예루살렘 뒷골목을 배회하며 도둑질하였던 어떤 강도나, 매일 투전판에서 소일하는 어떤 건달이 십자가에 달려 피를 철철 흘렸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셨을까요?

아담과 우리 죄인들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올려드리는 의롭고 거룩하고 무죄한 사람이 우리대신 자기 목숨을 바칠 때, 우리 죄인들에게 실망하시고 진노하신 하나님은 만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어야 하나님께 우리 대신 죗값을 지불할 수 있었습니다.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생활의 목적은 그리스도에게 없었던 생소하고 낯설은 의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켜 드리고 완전한 만족을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삶과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생활은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한 메시야 사역에 속하였습니다. 절대로 그리스도 자신에게 없는 어떤 의를 얻기 위한 사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연관된 메시야의 속죄 사역이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8)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순종 생활과 십자가를 일치시켰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지옥형벌이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했고, 율법 순종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했다는 능동순종 교리는 이단사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순종의 삶과 사역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칭의를 얻게 하셨다고 가르치고 믿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만으로 우리에게 죄용서와 칭의가 완전하게 주어진다고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칼빈도 십자가로 완성되는 그리스도 순종의 삶으로 우리를 구원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는 복종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는 이를 위해 평생 동안 복종을 실행하셨다(소제목).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묻기를 그리스도는 어떻게 죄를 없애 버리며,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없애며, 의를 얻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여 은혜와 친절을 품으시게 만드셨느냐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데 곧 그의 복종 생활 전체에 의하여 우리를 위해 이 일을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2.16.5)
 

서철원 박사도 그리스도가 순종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아담의 불순종을 속상하여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었다 (롬 5:17-19)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사망에서 돌이켜 생명 곧 영생에 이르렀다 (롬 5:21).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이 의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론, 165)

다음의 박형룡 박사님의 말씀은 매우 난해하고 또한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최종으로 그리스도가 만일 사람에게 부과된 형벌을 받을 셨을 뿐이면 그의 사역의 열매를 분참(分參)한 자들은 아담이 타락되기 전에 있던 바로 그곳에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다.” (박형룡 박사)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은혜만 우리에게 주셨다면, 우리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 상태로 돌아갈 뿐이고 하나님 백성이 되어 영생을 누리지는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박형룡 박사님이 하신 말씀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박형룡 박사님의 성경 이해와 신학 사고를 모략하려고 조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타락하기 전의 아담의 몸과 마음과 영혼은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으신 목적은 그 백성과 함께 거주하면서 그 백성의 찬송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죄가 없고 의로 충만한 사람으로 창조하셨고, 친히 그를 자기의 거소로 삼고 친밀하게 동행하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칼빈, 루터, 서철원 등 성경 연구에 탁월한 재능을 받은 사람들이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즉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살기만 하면 영원히 죽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타락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후에 부활의 영적인 몸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살지만, 원래 아담은 육체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아담이 그렇게 창조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자기를 대리하여 피조 세계를 다스리게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다음과 같이 명하신 것은 아담을 자기 백성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셨을까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박형룡 박사님의 위 말씀은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신 아담에게 베푸신 은혜를 곡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만으로는 우리가 참된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단지 가변적이고 불안정한 영적 상태로 상승될 뿐이라는 매우 잘못된 주장입니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아담이 지금까지 태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아담은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죽지 않는 몸으로 창조되었다고 칼빈은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강요, 2.1.4)

아둔한 저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늘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총신의 심장인 개혁신학의 정신이므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총신 신학의 아버지에게는 오류나 실수나 틀림이 없고, 모든 글과 말씀들이 성경이나 진배 없었다고 그 동안 배웠습니다.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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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