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교수는 손기철의 성령이 정상이라 두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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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교수는 손기철의 성령이 정상이라 두둔해
  • 정이철
  • 승인 2015.02.15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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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박사님들의 어이없는 행보(1)
새로운 책 출판에 관해 기자들과 대담하는 김영한 박사. 숭실대 기독교학과 대학원 교수

김영한 박사의 그릇된 논리로 인해 한국 교회의 경계의 대상이 되어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숨통이 트이고 있다. 왜냐하면 위헌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영이 사탄에게 속했는가? 하나님께 속했는가? 의 문제를 심히 왜곡하여 ‘성령이 과도하게 나타나게 만드는 무절제’의 문제라는 식으로 그가 오도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분명히 교회에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예수가 침투하므로 경계하고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개척했던 모든 교회듫에??사탄의 부림을 받는 거짓 선생들이 침투했고, 그들이 뿌린 거짓 복음, 거짓 영, 다른 예수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고 성경을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이 저술한 모든 성경에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와 그들이 초래한 악영향들을 분별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한 유매한 신자들에 대한 바울의 책망이 나타나 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3-4)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6-8)

그러나 어떤 신학교수들은 신문에 개념없는 글을 올려 순진한 신자들에게 혼란과 오해를 야기한다. 마땅히 크게 책망받아야 할 이단에 속한 자들에게는 위안과 도움을 주고, 바른 복음의 길을 가려는 신자들에게 혼란과 고통을 주는 글을 쓰고 가르치는 신학교 박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주장과 가르침은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있으므로 가능한 속히 이단성 시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을 보호해 버린다. 거짓 영들의 미혹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고 신학자들의 조언과 가르침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약간의 태생적인 부족함의 문제로 오도하며 "잘 몰라서 지나치게 성령을 과도하게 끌어내기 때문"에 나타나는 약간의 혼란이라는 식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그들에게 ‘신학교수’, ‘신학박사’라는 굉장한 명패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그릇된 일에 일조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 나비 회장’, ‘숭실대 기독교학교 대학원 설립자’인 김영한 박사이다.

나는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김영한 박사의 글들을 종종 읽었다. 이 분의 글의 내용은 너무도 납득하기 어려웠고, 매우 방만하고 모호한 신학사고와 개념으로 모든 위험한 일들을 너그러이 용인하려는 위험성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진리의 싸움을 힘겹게 싸우는 사람들에게 김영한 박사의 글은 이중대 노릇하기에 충분하다. 반대로 한국 교회를 더럽히는 원수의 진영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방패막이가 되고도 남는다. 

지난 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였을 때 김영한 박사는 교황과 천주교에 대한 염려스러운 글을 몇 편이나 써서 신문에 올렸다. 교황들에 대한 찬미 일색의 내용들이었고,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들을 새로이 조성하신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가진 사람의 글이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교황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종교통합과 종교다원주의 사조에 대해서 우려하고 지적하는 일말의 내용도 그의 글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최근에 김영한 박사는 신학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은사중지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영한 박사의 은사중지론에 대한 말들은 거짓 복음과 거짓 영의 운동을 전개하는 불건전한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안전막이 되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상한 신학논리는 거짓 영들을 따르면서 괴이한 거짓 성령의 역사를 풀어내는 궤휼의 역군들이 사도 시대 이후 지금까지 성령의 은사가 계속 지속된다고 믿는 신실한 ‘은사지속론’자들로 둔갑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들의 악한 정체를 알아보고 힘겹운 진리의 싸움을 진행하는 의의 역군들은 성령의 은사가 사도시대 이후 중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신실하지 못한 ‘은사중지론’ 추종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김영한 박사가 한국교회에 신사도 운동을 퍼뜨리는데 매우 크게 기여한 손기철 장로에 대해서 두둔하고 기꺼이 그의 보호자가 되려고 작심한 듯 보이는 흔적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전에 김영한 박사는 신사도 운동과 손기철 장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손기철 장로의 치유 사역과 신학에 관하여’를 발표한 장신대 교수 현요한의 연구는 균형 잡혔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주 앤아버 반석교회 담임목사 정이철은 그의 저서 『신사도운동에 빠진 교회』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모든 은사운동을 모조리 정죄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은사자들을 선도(善導)하기보다는 더욱더 공교회에서 소격시켜 버릴 부작용이 있다.”(김영한)

오래전에 어떤 신문에 기재된 김영한 박사의 이 글을 나도 얼핏 보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고, 더 나아가 신학박사님이시니 나름대로 깊이 있는 말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조금씩 알고 보니 신사도 운동이 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하고서 섣불리 하시는 말씀들이었다. 장신대의 현요한 교수의 그 글도 읽어보았는데, 마찬가지였다. 신사도 운동의 정체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대뜸 손기철 장로를 두둔하는 말들을 내 놓았다. 현요한 교수가 무엇을 실수하였는지 이미 글을 정리해 두었으므로, 때가 이르면 설명하려고 한다.

오늘은 김영한 박사가 손기철 장로의 사상이 신사도 운동과는 다르고, 그의 성령론이 온건하여 성령을 추구하는 개혁주의 교회의 신자들도 수용할만하다고 말하는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김영한 박사는 손기철 장로의 방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면 그가 신사도 운동이나 신사도 운동의 뿌리가 되는 오순절 운동의 성령론과는 다르다고 평가하였다.

“손기철은 오순절 교파와는 달리, 방언이 성령세례의 표적으로서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방언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방언의 유익을 강조한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방언이 성령세례의 판단 기준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성령세례를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다 잠재적으로 방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그의 이런 견해는 성령세례를 중생과 구분하며, 방언이 반드시 표적으로 따라온다고 보는 소위 고전적 오순절 교파의 견해와는 다르다. 1960년대 이후 오순절운동이 기성 교회들 안으로 흘러들어간 소위 신오순절운동의 경향과도 좀 다르다. 또한 1980년대에 이르러 오순절운동에 비판적이던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성령세례 교리에 집착하지 않고, 성령의 은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소위 “제3의 물결운동”의 주장과도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그의 성령론은 대체로 은사에 대하여 열려 있는 개혁신앙의 신자들에게도 수용될 수 있다.”(김영한)

손기철 장로가 방언을 절대적인 성령세례의 조건으로 여기기 않는다고 하여 오순절 파에 속하지도 않고, 그 연장 선상에 있는 신사도 운동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김영한 박사는 주장했다. 과연 손기철 장로의 방언 사상이 신사도 운동과 무관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손기철 장로의 방언관은 신사도 운동 시대의 방언 개념과 정확하게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김영한 박사는 신사도 운동에 대해서 얼핏알고 있으면서 섣불리 한국 교회를 더럽히는 위험한 인물에 대해 두둔하는 글을 쓴 것이다. 

먼저 신사도 운동의 신학적 체계를 정립한 피터 와그너가 제 3의 물결시대에 방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 뭐라고 가르치고 있는지 직접 보도록 하자.

“그러므로 당신은 제 3의 물결 그룹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권한다든지, 다른 은사보다 방언을 중시하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피터 와그너, 제3의 바람, p.29)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 운동은 오순절 운동과 달리 신자들에게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피터 와그는 오순절 운동의 성령세례 주장은 그릇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할 것이 아니고,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가르쳐야 맞다고 했고, 방언도 오순절 운동가들처럼 절대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였다. 다음은 피터 와그너의 또 다른 말을 읽어보라!

“나는 성령으로 충만게되는 일은 한 번이며 마지막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 생애를 통해 자주 반복되도록 기대해야 할 어떤 것이라고 믿는다. 성령세례의 사건은 우리가 거듭 날 때 한 번이며 마지막 경험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피터 와그너)

“신약성서는 성령의 힘으로 가득 채워지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성령세례(baptism)란 표현보다는 성령으로 충만케 된다(filling)는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실 성서적으로는 오순절 날 신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보다는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다’(행 2:4)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피터 와그너)

이 말들을 보면 피터 와그너는 오순절 운동의 성령세례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고 개혁주의가 말하는 성령충만을 지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교묘한 트릭이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오순절 신학에서 성령충만은 성령세례의 반복과 누적의 결과이다. 항아리에 물이 몇 바가지 계속 채워지면 어느 덧 흘러넘치게 되는 것처럼, 성령세례가 반복되고 가득차서 흘러넘치게되는 것이 오순절 신학의 성령충만이다. 그러므로 와그너가 성령세례라고 부르지 말고 성령충만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순절 신학의 성령론에서 조금도 벗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피터 와그너는 중생을 일으키는 첫 번째 성령의 임하심만을 성령세례라고 불러야 하고, 그 이후에 체험되는 반복적인 성령세례는 체험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라고 다르게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피터 와그너의 신학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오순절 운동의 성령세례 용어는 사라졌다. 그리고 대신 기름부음 개념이 나타난다. 오순절 운동의 성령세례 주장은 사라졌으나 대신 기름부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가진 사람이 말하는 성령충만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기름부음이 반복되어 충만하게 넘치는 것이 곧 성령충만이라고 보는 것이다. 결국 오순운 운동과 은사 운동에서 성령충만이 성령세례의 누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듯이 신사도 운동에서는 기름부음의 누적으로 성령충만이 얻어진다고 본다. 

오순절 운동과 신사도 운동은 결코 다르지 않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나무이다.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 운동 신학에서 방언은 오순절 신학의 방언보다 위치가 약화되었을 뿐이다. 그는 제3의 물결 시대의 성령은 방언을 절대적으로 앞세우지 않고 대신 다른 능력들과 현상들을 다양하게 동반한다고 가르친다. 다음은 피터 와그너가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 말하는 내용이다. 피터 와그너는 제3의 물결 시대에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방언을 받지 못했으나 대신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아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방언의 은사를 받고자 신실하게 노력하고 구하였으나 끝내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매우 성숙한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자매들을 알고 있다. 방언을 말하지 못한다 하여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또한 목회적으로 매우 어리석은 일에 해당된다. 나의 아내 도리스(Doris)도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녀는 방언에 대해서 열려있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사람들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도움을 구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녀에게는 귀신을 내어 쫓는 은사는 있으나 방언하는 은사는 없는데, 오순절 은사주의 신앙을 가진 형제들과 자매들이 이러한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피터 와그너)

손기철 장로가 방언을 성령의 역사의 절대적인 징조로 주장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신사도 운동 시대의 새로운 성령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김영한 교수는 손기철 장로의 방언주장이 오순절 운동, 은사운동, 신사도 운동의 방언과 다르기 때문에 개혁주의 교회의 신자들에게서도 마땅히 수용될 수 있다고 이렇게 이어없게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손기철 장로)의 성령론은 대체로 은사에 대하여 열려 있는 개혁신앙의 신자들에게도 수용될 수 있다.”(김영한)

김영한 교수는 과연 성경이 방언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초대교회 시대에 성경의 방언이 왜 나타났는지에 대해 바르게 연구해 보았을까? 성경의 방언이 기독교 교회가 형성되는데 어떤 중대한 기능을 수행했는지? 에 대해 모르는 것 같다. 만일 김여한 교수가 성경의 방언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결코 손기철 장로의 방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신자들을 혼란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제3의 물결의 성령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구한 사람들은 모두 손기철 장로의 방언관이 신사도 운동의 방언이해와 정확하게 맞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은 한국 교회에 신사도 운동 사상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정당화시키는데 많이 공헌한 예영수 박사의 말이다. 그도 신사도 운동에서는 방언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의 손기철 장로의 말을 비교하면서 읽어보기 바란다. 손기철 장로가 자신의 사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옹알거리는 거짓 방언 현상을 피터 와그너 등의 신사도 운동가들의 신학 안에서정립하였음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제1, 2의 물결과 제3의 물결이 구별되는 중요한 변화는 성령세례의 의미와 성령세례의 표식으로서의 방언의 역할과 성령 충만에 대한 이해를 달리 하는데 있다.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 운동에서는 방언이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보지만 제3의 물결에서는 방언을 은사중의 하나라고 본다.”(예영수)

“성령세례를 받으신 분들 가운데는 방언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방언은 모든 은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언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 교회에서는 ‘방언을 받지 못하면 성령세례를 못 받은 것이다’라는 말까지 합니다. 방언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방언 받지 못했다고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손기철)

김영한 교수는 최근 새로운 책 <영적분별>을 출간했다. 기자들을 불러 이 책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김영한 교수는 또 다시 ‘은사중지론’, ‘은사지속론’을 운운하면서 은사가 중지되었다고 믿는 신학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개념 없이 말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기자가 신사도 운동가라고 비판받고 있는 손기철 장로에 대해서 묻자 “이런 이들이 혼자 있으면 안 된다. 학자들 있는 곳에 와서 비판도 받고 대화를 해 건전한 개진을 해야한다”라면서 손기철 장로의 성령론은 온건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 김영한 박사가 원장으로 있는 기독교학술원에서는 김재성 박사를 초청하여 “성령신학자 요한 칼빈”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 장을 마련했다. 신문을 보니 그자리에 손기철 장로도 참여하여 김재성 박사에게 성령의 역사에 대해 질문했다고 한다. 도대체 손기철 장로가 무슨 생각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으며, 또한 무슨 마음으로 김재성 박사에게 성령의 역사가 실제로 나타나는데 ... 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했는지 참 의아했다. 그래서 김쟁성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 자리에 손기철 장로가 어떻게 나오게되었는 물었다. 김영한 박사가 손기철 장로는 초대한 것 같다고 했다.

김영한 박사는 손기철 장로와 친분이 있고, 손기철 장로를 신학적으로 지고하고 조언하면서 이단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런 노력을 폄하하고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김영한 박사는 먼저 손기철 장로 안에서 역사하는 영이 사탄의 영인지? 하나님의 영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가르치고 조언하려들지 말고 즉시로 인연을 끊어야 하고, 단호하게 추방해야 하고, 철저하게 결별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미혹의 도구로 내 주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더럽힌 죄악을 철저하게 회개하라고 가르쳐야 한다.

손기철 장로, 건국대 부총장

그러나 김영한 박사는 손기철 장로를 통하여 역사하는 영을 사탄의 영이라고 보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영이신데 어떤 날에는 컨디션이 나쁘셔서 추잡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어떤 날에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니 흥분의 도가 넘쳐서 성령답지 않게 나타나시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손기철 장로의 성령에 대한 말들을 듣고서도 손기철 장로의 성령론이 '온건하다’고 평가하지 못할 것이다. 손기철 장로의 다음의 말을 보라!

“최근에 나는 100여 명이 참석한 대한항공신우회 수련회에서 1박 2일 동안 이 내용을 강의하고, 그 분들에게 기름부으심을 흘러보냈습니다. 2일째 실습시간에 놀랍게도 동일한 기름부으심이 그들 대부분에게 임했으며, 그들이 다른 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손기철)

“안수기도를 하자 성령님께서 즉시 임재하셨고 그는 곧 성령세례와 방언을 함께 받았습니다. 나는 내게서 기름부으심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격해하는 그에게 이 말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기름부으심을 꼭 흘려보내십시오.’”(손기철)

김영한 박사에게 묻고 싶다. 세상 어느 나라의 기독교에서 이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하던가? 어느 행성의 기독교에서 버릇없는 미꾸라지 같이 제 멋대로 귀신처럼 돌아다니는 성령이 나타난다고 하던가? 그리고 김영한 박사는 대체 기름부음을 무엇이라고,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는 신자에게 하나님이 친히 영속적으로 임재하시어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고 거하시는 일을 신약 성경은 신자들에게 임한 기름부음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 이것과 다른 기름부음이 있는지 김영한 박사는 말해보라!

개인들에게 오순절 체험이 수백번도 넘게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가르치는 오순절 신학과 오순절 운동가들이 각종의 인위적인 방식으로 이끌어 내는 성령세례 체험이 신사도 운동가들에 의해 기름부음이라는 개념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신사도 운동 사상이 아니면 손기철 장로의 이런 찌질한 체험들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김영한 박사는 이것도 모르면서 손기철 장로의 성령론이 온건하다고 판정하는가? 김영한 박사는 손기철 장로의 성령사상이 오순절 운동과 다르고 신사도 운동가들과 달라 모든 교회들이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개혁주의 교회들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김영한 교수는 국내에서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 사상을 전파하는 신사도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다음과 내용과 손기철 장로의 미꾸라지 같이 제 멋대로 흘러다니는 성령의 운동을 비교하여 다른 점을 알려주시기 바란다.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WLI(와그너 리더십 인스티튜트)는 미국 지역 및 세계 각국에 세워지고 있고, WLI KOREA는 2004년 4월, 세계에서 7번째로 문을 열었다. 2004년 1월, 피터와그너 박사는 홍정식 목사(과천 하베스트 샬롬교회 담임)를 본부로 초청, 총장으로 임명하였고, 2005년부터 매년 10월, 한국에 방문하여 WLI KOREA 졸업식을 이끌고 있다. 전통적인 신학교의 교육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 위에 세워진 WLI KOREA는 세계 각국에서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 받는 사역자들을 초청, 그들이 가진 최상의 정보를 나눌 뿐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전수(impartation)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WLI Korea 홈페이지)

신사도 운동가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사람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임파테이션이라고 한다. WLI Korean의 홈페이지에는 수업에 정식으로 참여하지 않는 청강생들도 강사들에게 임파테이션을 받을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이 공개적으로 홍보한다.

학위를 취득할 필요는 없지만 뛰어난 강사들의 강의와 은사의 임파테이션(impartation)을 원하는 일반인도 청강이 가능하나 학생과 동일한 수업료를 납부한 경우 강의 참석이 가능하다.”(WLI Korea 홈페이지)

손기철 장로도 동일하게 성령의 기름부음을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이한다고 주장하면서 가르친다. 대체 손기철 장로의 성령론과 신사도 운동의 성령론의 차이는 무엇일까? 손기철 장로를 아끼면서 지도하여 이단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김영한 박사는 손기철 장로가 다른 신사도 운동가들과 동일하게 성령(?)을 임으로 전이시키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성령의 능력(?)을 사람이 의도와 노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그런 괴이한 현상을 선보이는 손기철 장로에게서 역사하는 영이 기독교의 성령일까? 김영한 박사는 다음의 손기철의 말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기름부으심은 다른 사람에게 ‘전이’(impartation, 임파테이션)되기까지 합니다. 내가 기름 부으심이 넘치는 목사님에게서 안수기도를 받을 때, 나에게 기름부으심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름 부으심을 흘려보내는 기도를 하면 성령님의 능력이 전달되고, 그 기도를 받은 사람도 나와 같은 사역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단 기름 부으심이 무조건 전이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기름 부으심을 흘려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믿음과 마음의 상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손기철)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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