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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민고백을 성경에 비추어 상고하는 것은 개혁교회의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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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민고백을 성경에 비추어 상고하는 것은 개혁교회의 당연한 일
  • 정이철
  • 승인 2020.10.05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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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을 장로교회 신앙의 표준 문서라고 말한다. 그 내용의 단 한 줄, 또는 어떤 부분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하면 장로교회에서는 매우 심각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특히 한국 교회에서 이런 분위기는 더욱 강하다. 목사, 장로 안수 시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을 성경에 준하는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겠다고 서약하는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비록 그 속의 내용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을지라도 일단 손을 들고 서약하였으므로 이후 맹목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97년 필자도 목사 안수를 받을 때, 노회 앞에서 오른 손을 들고 그리하겠다고 서약했다. 이후 나에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의 말씀과 같은 것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그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았으나 그런 마음과 정신으로 살았다. 성경적 신앙을 변증하는 강의를 할 때, 자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가르치는 내용이 이러하므로 이것과 다른 내용의 신앙과 사상은 이단이거나 거짓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신앙고백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섣불리 토를 달면 크게 문제가 된다는 선입견과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신앙고백서의 권위를 빌리는 나 자신이나 강의를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잘 모르므로 질문이나 이견을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 거의 대부분은 성경적이다. 장로교의 신앙과 신학의 시조인 칼빈의 가르침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 100%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 문서를 만든 사람들이 완전히 성경적이지 못한 죄인들이었으므로 100% 완전히 성경과 일치하는 내용의 신앙 해설을 할 수가 없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로 모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약의 모세와 신약의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에게 베푸신 ‘성령의 감동(영감)’을 주셨던 것이 아니다. 성경 저자들은 성령의 영감으로 하나님의 의도와 완전히 일치되는 정확무오한 문서를 우리에게 남겼다. 그리고 성경 66권의 완성으로 성령의 영감은 종결되었고, 이후부터 ‘성령의 조명’이 임했다.

성령의 조명은 성령의 영감을 받았던 성경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어진 말씀이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해석되게 하는 성령의 역사이다. 성경이 기록되었던 때와 전혀 다른 시대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게 돕는다. 성령의 영감은 하나님의 마음(숨결)이 저자의 마음으로 전이되게 하시는 역사이니, 인간 저자의 오류가 개입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의 조명은 사람의 지성이 성경의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영적인 빛을 비추어 주시는 역사이므로 사람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오류가 개입된다.

구원 받은 사람이라도 지성과 인격에 여전이 어두운 구석이 남아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자기 시대의 문명과 정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시대의 아들들이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과는 달리 이후 교회 시대의 모든 신학자들의 성경에 대한 이해와 해석과 적용에는 크고 작은 오류가 동반되었다. 지금까지의 언제나 성경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설명한 신학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로 모인 17세기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의 탁월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아무리 뛰어났을지라도 그들은 그 시대의 한계에 갇혀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성경처럼 정확무오하게 성경과 신앙을 해설하는 문서를 기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도 지금 우리와 같이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았고, 지금 우리처럼 시대의 눈과 지성의 한계 안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하였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이 작성한 신앙의 문서를 성경과 동등하게 취급한다면, 과연 그것은 누가 의도하고 바랬던 일인가? 그들을 사용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는가? 그 문서를 만든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였는가?

“장로교회 목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많은 장로교회 목사들이 이렇게 쉽게 말한다.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 줄 모르고 쉽게 말하고 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더 탁월한 신앙의 자세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장로교회의 신앙의 표준문서이다!”

장로교회는 궁극적으로 성경에 기초하는 기독교 교파인가? 이전 사람들이 만든 신앙의 문서에 기초하는 교파인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에 성경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0.01%도 없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와 영생 안에서 창조된 하나님 백성으로 출생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내용이 기술되고 있다. 영생이 없이 태어난 아담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영생의 자격을 만들어 내면, 하나님이 아담의 공로에 근거하여 영생을 주기로 했다는 인간의 행위에 근거하는 구원론 사상이 들어가 있다. 영생도 없이 출생된 아담이 영생 획득을 위해 성공했어야 할 선행에 실패했으므로 하나님이 그에게 회개해도 소용없는 영원한 저주와 사망의 형벌을 내리셨다는 어이없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아담 창조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창조된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한 원죄에 대해 그와 같이 성경과 다른 진술을 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무비판적으로 신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그로 인해 장로교회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성경과 멀어지는 저주를 받게된다는 우려는 근거없는 염려일까? 다른 모든 내용이 아무리 우수하고 탁월할지라도 기독교 신앙의 출발 지점에서 발생한 그 오류로 인해 기독교 신앙의 전반에 심각한 이단성이 유발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출 32:8)
 


성경에 반하는 심각한 내용이 기술된 문서를 성경과 같이 취급하면서 높이고 찬송하는 자세는 바로 이와 동일한 모습이다.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라고 선포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인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 100%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이것이 성경에 준하는 우리 장로교회 신앙의 표준문서이다”라고 맹목적으로 고백하기를 강요받아야 하는 것인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영국의 청교도 운동 시대의 산물이다. 영국의 청교도 운동이 없었다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생겨나지 않았다. 청교도 운동은 자신들의 시대와 삶 속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실천하고자 일어난 기독교 2천년 역사의 많은 신앙회복 운동을 가운데 하나이다. 청교도 운동이 기독교를 만들었는가? 아니다. 기독교의 역사 속에 더욱 성경적인 신앙을 실천하기를 원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 신앙회복 운동들 가운데 하나가 16,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운동이다.

신앙회복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에게서도 심각한 오류들이 나타났다. 오래 전에 필자가 빌려서 지금의 교회를 개척하였던 미국인들의 루터교회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 루터교회 사람들은 성찬식을 자주 시행했고, 강대상 뒤에 진설된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를 하얀 천으로 덮어 놓은 모습을 자주 보았다. 이상한 광경도 자주 목격했다. 미국인들이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는 것이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그리하였다.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에게 경배를 드리고, 조용히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단 한 사람도 뒤로 돌아 엉덩이를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 쪽으로 향하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체 무슨 현상인가? 성찬식 신앙에 대한 루터의 심각한 오류가 후대의 루터교회 신자들의 기괴한 우상숭배(이단성)로 자리 잡은 것이다. 루터는 떡과 함께, 떡 안에, 떡 위에, 떡 아래에 그리스도의 실제 살이 함께 있다고 가르쳤다. 천주교의 성찬 사상의 이단성을 크게 바꾸지 않고 거의 그대로 답습하였다.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실제 살과 피가 함께 있다면, 거기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루터교인들이 그리스도에게 바쳐야 할 경배를 떡과 포도주에게 바치고 있다. 분명한 이단현상이고, 우리가 용납하고 공존할 수 있는 성경적인 일이 아니다.

위대한 루터에게도 그러한 오류가 있었고, 그 때문에 루터교회에 이런 이단성이 자리 잡았다. 16,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에게는 그런 일이 하나도 없었을까? 우리는 종교개혁을 통해 이미 개혁된 교회의 신자들이고 목회자들이다. 개혁교회의 중요한 정신은 언제나 성경에 비추어 교회의 신앙을 개혁한다는 것이다. 시대의 정신에 맞게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맞게 교회의 신앙을 개혁하는 것이 개혁교회의 기본 정신이다. 청교도 운동 시대의 산물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도 성경에 비추어 상고하는 것은 개혁교회의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16-17세기에 작성된 신앙고백서에 율법주의적으로 묶일 위험성을 피해야 합니다. 신앙고백서는 부차적인 기준에 불과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로이드 존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고백서를 지침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폭군이 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고백서들이 어떤 항목도 손을 대거나, 바꾸어서는 안 되는 엄격한 규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로이드 존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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