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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개혁교회가 청교도들의 회중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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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개혁교회가 청교도들의 회중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 정이철
  • 승인 2020.08.05 14: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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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알려진 청교도 사상(청교도주의, puritanism)는 엘리자베스 여왕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는 국교회에 칼빈의 장로교 제도를 도입하는 것, 즉 토마스 카트라이트가 주장하는 대로 국교회를 장로교회로 바꾸려는 것이 그때까지 청교도 개혁운동의 목표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과 국교회 감독들은 결코 장로교회 제도를 도입할 수 없었다. 장로교회주의는 하나님이 국가와 교회를 각각 분리시켰고, 왕이 교회를 주관하게 하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국가와 교회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게 하셨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장로교회 사상이 국교회 속으로 밀려들어오면 국교회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절대 권력이 붕괴되고 여왕의 후원을 받는 국교회의 기반도 다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1580년대에 들어 국교회를 장로교회로 바꾸는 일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상에 불과하다고 판명되었다. 이때부터 청교도 운동의 방향이 달라졌다. 이때부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청교도 사상이 본격적으로 발전되었다. 청교도 사상은 크게 두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1)하나는 국교회를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고 시도한 로버트 브라운의 분리주의 회중파 청교도 교회 운동이다.

2)또 하나는 국교회에 그대로 머무르고 국교회의 목회자 신분도 유지하면서 표시나지 않게 새로운 방향의 개혁운동을 시작하였던 윌리엄 퍼킨스주의 청교도 운동이다.

오늘은 로버트 브라운의 분리주의 청교도 운동의 특징을 살펴보자. 브라운은 잉글랜드의 국민들이 자동적으로 국교회의 멤버가 되고 있는 상황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보았다. 국교회의 모든 일들이 여왕이 임명한 소수의 고위직 성직자들에 의해 좌우되었다. 계급이 낮는 하급 성직자들과 일반 신자들은 그냥 따르기만 하는 실정이었다. 브라운은 국교회와 단절하고 새로운 교회를 시작할 때 바로 이 점을 개선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신앙의 자발성’

브라운의 새로운 교회 설립의 모토는 이것이었다.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국교회의 멤버가 되고, 소수의 고위 성지자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피동적인 신앙 자세에서 벗어나게 만들고자 시도했다. 브라운은 처음부터 다음의 두 가지를 실시했다.
 

1)교회언약 제도

브라운이 시작한 ‘교회언약 제도’란 신앙의 순종과 실천에 대해 자발적으로 서약하는 사람만 교회의 멤버로 받아들이는 제도였다. 교회가 집단적으로 하나님께 언약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교회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신앙의 실천에 대해 서약하는 제도였다. 브라운은 교회언약 제도를 통하여 각 사람의 신앙의 자발성에 근거하는 온전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브라운이 시작한 분리주의 청교도 회중교회의 교회언약 제도는 다음의 두 가지 비성경적인 문제를 동반하였다.

첫째, 성경은 사람이 고안하는 좋은 제도나 프로그램을 통해 교회가 세워진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는 분은 오직 성령이다. 성령이 택자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여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고백하게 하심으로 교회가 탄생한다. 교회의 멤버가 된다는 것은 곧 성령께서 택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시고 믿게 하심으로 구원된 사람들이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게 하심이다. 오직 성령이 하시는 이 일을 사람의 제도나 프로그램이 대신할 수 없다. 성령과 교회의 관계를 서철원 박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가 하늘로 가셔서 성령을 보내심이 교회를 다스림의 시작이고, 교회를 통하여 만물을 다스림의 시작이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구속사역에 근거하여 성령을 아버지께 청구하여 세상에 보내심으로 교회를 조성하셨다. 성령이 오셔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사람들에게 적용하심으로 주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모아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구성하셨다.”(서철원 박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294-95)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시어 사람들로 주 예수를 믿어 새사람이 되게 하신다. 그리고 그 믿는 사람들을 자기에게 연합시키신다.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킨 것이 교회가 되었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어 모든 믿는 사람들을 자기의 지체들로 자기에게 연합시키신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지체들로 서로 연합한 것이 교회이다.”(295)

브라운은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으로만 교회를 세우려고 교회언약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사람의 방식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로만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진정한 교인이고 누가 거짓된 교인인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직 성령만이 그것을 아신다. 그래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아는 것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특권이다(딤후 2:19). 이것은 사람들의 경솔한 판단을 억제하시려는 조치였다. 또, 평상시의 경험으로 보더라도 하나님의 은밀한 판단은 우리의 이해력이 도저히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완전히 멸망해서 아무 소망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해 부름을 받아 바른 길로 돌아오며, 누구보다도 굳건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넘어 진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이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밀한 섭리에 따라 ‘밖에도 양이 많고 안에도 이리가 많다.’ 주께서는 주를 모르고 자신도 모르는 자들을 아시며 표를 해 두셨다. 주님의 눈만이 주의 휘장을 달고 다니는 자들 가운데서 진정으로 거룩한 사람들과 구원의 종점에 이르기까지(마 24:13) 참고 견딜 수 있는 자들을 알아보신다.” (기독교강요, 4,1,8)

브라운이 만든 제도는 결국 많은 부작용을 잉태하였다. 브라운의 후배들이 신대륙에 정착하여 번듯하게 회중교회를 세우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았다. 그런데 이민 1세대가 지나면서 교회언약 제도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따라하고 정식 교인이 되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교회의 정회원이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중도언약이라는 것을 도입하여 그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교인들의 자녀들에게 유아세례를 주어 영적 이방인으로 취급되지 않게 스스로 자신들의 교회언약 제도를 바꾸었다. 그러나 조금 후에는 그것도 저것도 따지지 않고 교회에 길게 다니면 누구나 성찬에 참여하게 허락하였다. 성찬에 참여하게 한다는 것은 교회의 정회원이 되어 목사를 청빙하고 추방하는 것 등의 모든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지금 미국의 한인 이민교회들의 실정과 같아졌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문제를 제기하여 교인들과 불화하였다. 에드워즈가 하자는 대로 엄격하게 자격을 심사하여 성찬에 참여하게 한다면, 이미 성찬식에 참여하고 있는 그의 교회의 교인들 대부분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에드워즈가 그 교회에 추방당하게된 주된 원인 중 하나였다. 

둘째, 교회언약 제도가 비성경적인 율법주의를 조장하고 강화하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신자들에게 언약하라고 시키는 내용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 백성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청교도들은 의외로 성경 이해가 매우 부족하였다. 율법을 지키는 선행에 실패하여 영생을 얻지 못하고 저주받은 아담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선행으로 자신과 우리의 구원의 자격을 얻어 전가함으로 구원을 얻었을지라도(행위언약에서 은혜언약으로 이동), 율법 순종의 요구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이 분명해지고 유지된다고 가르쳤다.

신약 성경이 엄히 경계하는 율법주의를 조장한 것이다. 구원 받은 성도를 다시 구약의 율법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단적인 사상을 신자들에게 주입했다. 물론 신약의 사도들이 율법을 멸시하고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무율법주의를 가르쳤던 적은 없다. 오히려 신약의 사도들은 말씀과 성령의 법으로 율법의 겉모양과 내면의 정신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쳤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지 않고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의 정신까지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롬 8:4)

브라운이 시작한 분리주의 회중파 청교도 교회의 교회언약 제도는 말씀과 성령으로 율법의 깊은 의미와 정신을 이루어가라는 가르침을 알지 못하여 육신으로 율법을 지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만들려고 시도했다. 위험스러운 율법주의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2)개혁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해 버린 회중교회주의

국교회의 모든 중요한 일들은 소수의 감독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최상위 소수의 감독들을 중심이었으므로 낮은 계급의 성직자들에게도 자율성, 자발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부 계급의 성직자들은 상부의 눈치만 보고 명령을 따르기만 했고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신자들의 신앙과 삶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일에는 무능했고 무관심했다.

그래서 브라운은 국교회처럼 소수의 감독들의 권위적인 명령과 성직자들의 계급 조직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모든 신자들이 평등한 가운데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교회가 운영되는 교회의 통치 방식을 고안하였다. 브라운은 교회를 구성하는 ‘한 회중’이 교회의 모든 일들을 함께 결정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어떤 권위 있는 외부의 조직에 의해 목회자가 파송되는 것이 아니라 회중이 스스로 선택한 목회자를 중심으로 신앙을 유지하고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브라운이 선택한 교회 정치 제도는 ‘회중교회정치’(congregationalism)였다.

브라운은 유럽과 스코틀랜드에서 자리 잡고 있었던 장로교 제도를 알고 있었으나 좋게 여기지 않았다. 장로교제도는 모든 목회자들이 동등하였고 각 지교회의 신자들에 의해 선출되었으므로 회중교회주의가 추구하는 교회 민주주의와 유사하였다. 그러나 각 지역의 교회들을 관할하는 노회가 있었고, 노회들 위에 대회가 있었고,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는 총회가 있었다. 장로교 제도의 이와 같은 모습이 브라운에게는 잉글랜드 국교회의 감독제도의 계급적 조직과 유사하게 여겨졌다.

무엇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모든 국민들을 교회의 멤버로 만들고, 모든 아이들에게 유아세례를 행하고, 모든 국민들이 예배에 참석하고 십일조 헌금을 내도록 가르치는 것도 잉글랜드의 국교회와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그래서 브라운은 장로교 제도가 국교회와 마찬가지로 신자들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생각하고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교회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교회 통치를 이루어가는 회중교회 정치를 택하였다.

브라운이 선택한 회중교회 정치의 특징은 목사와 장로가 있을지라도 그들 소수의 사람들에게 교회의 중대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맡기지 않는 것이었다. 모든 신자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교회의 중대사를 결정했다. 훗날 신대륙에서 회중교회에서 시무했던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 교회에서 추방되는 과정을 보면 회중교회의 통치 방식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난다. 에드워즈의 시무 연장에 대한 결정을 위해 교회의 모든 멤버들이 투표에 참여하였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에드워즈의 추방이 결정되었다.

만일 에드워즈가 시무했던 교회가 청교도들의 회중교회가 아니고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이 세운 장로교회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노회가 에드워즈의 신학 사상과 그 교회에서 가르친 내용들을 살펴서 혹시 어떤 이단성이 있었거나 올바르지 못한 내용이 있었는지를 판단하여 교인들에게 설명하고 에드워즈의 거취에 대해 올바른 말로 권고하였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체 교인들의 투표에 의해 에드워즈가 그렇게 비참하게 추방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성경은 전 교인이 교회 운영의 직접적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 방식의 교회 정치를 지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인들 대부분이 여전히 신앙적으로 미성숙하고 성경적 진리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재덕이 겸전한 자를 빼서 그들로 백성의 두목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출 18:25)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일반 백성들 보다 더 신앙과 인격이 성숙하여 다른 백성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을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중대한 일들을 감당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사도들은 이 원리가 신약의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지켜지도록 가르쳤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 6:3)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신구약 성경은 말씀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하기에 합당한 자질과 은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합당한 직분 맡아 일반 교인들을 가르치고 통치하도록 가르친다. 칼빈은 성경의 이 가르침을 그대로 시행하여 교회에 목사와 장로들을 세웠고, 그들이 교회를 다스리고 가르치게 하였다. 장로회 제도는 칼빈이 처음 창안하여 시행한 것이 아니고 사도들이 시작한 것을 칼빈이 다시 복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1560년대에 프랑스에서 모렐리라는 인물에 의해 처음으로 회중교회주의 정치에 대한 주장이 대두되었을 때 프랑스 개혁교회는 즉각 그 주장을 이단 사상으로 규정하였다. 1562년 모렐리의 회중주의 정치 제도 문제를 다루었던 오를레앙 지역 노회는 모렐리의 사상이 “교회에 혼란과 분열을 가져오는 사악한 교리”라고 판정하고, 그를 파문하였다. 그의 책을 수거하여 불태웠다. 그리고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을 불러 엄히 경계하고 제네바 시로부터 영구히 추방했다.

1571년에 개최되었던 프랑스 개혁교회의 라로셀(LaRochelle) 총회와 1572년에 개최된 님므(Nimmes) 총회에서도 회중주의 교회 정치의 위험성을 다시 중요한 사안으로 다루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일반 교인들에게 교회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일에 직접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개혁교회들에게 한 번 더 강조했다.
 

맺는 말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청교도주의와 청교도 운동으로 탄생한 회중교회의 기본 판을 만들었던 브라운의 분리주의 회중파 청교도 교회는 두 가지 이단적인 사상 위에 세워졌다.

1)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교회언약 제도를 실시했다는 것이고, 또한 교회언약 제도가 가장 강조했던 핵심은 율법주의였다. 교회언약 제도 자체가 비성경적이었지만, 교회언약을 통해 율법을 충실하게 지킴으로 하나님 백성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서약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심각한 율법주의 이단사상이었다.

2) 이미 프랑스 개혁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해버린 회중주의 교회 정치를 도입했다. 성경은 신자들 가운데 더 성숙하고 신앙과 성경을 잘 아는 지도자들에 의해 교회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모든 신자들이 동등한 권한으로 교회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회중주의 교회 정치를 성경은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프랑스 개혁교회가 일찌 감치 회중주의 교회 정치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조금 후에 윌리엄 퍼킨스에 의해 시작된 온건한 청교도 운동의 특징과 브라운의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브라운은 이미 구원 받은 신자와 하나님과의 바람직한 관계가 율법 준수로 유지된다고 이해하고, 율법을 잘 준수하겠다고 서약하게 했다. 퍼킨스는 인간의 구원이 율법에서 나온다고 가르치는 행위언약, 그리고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그리스도가 대신 지키신 공로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은혜언약을 도입했다. 그리고 구원 이후에도 율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가르쳤다. 브라운과 퍼킨스는 율법주의라는 공통의 자산을 공유하였다.

퍼킨스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국교회 감독들의 비위를 거스리는 일체의 정치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오직 구원을 위한 개인들의 경건, 헌신, 노력을 촉구하는 신학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과 후배들이 훗날 모두 회중교회와 연결되었다. 1615년 경 국교회를 모교회로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독립된 회중파 청교도 교회를 세운 헨리 제이콥스도 율법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언약하는 교회언약 제도를 도입했고, 회중주의 교회 정치를 바탕으로 하였다. 결국 이들은 모두 영국을 떠나 신대륙에서 회중교회를 이루었다.

지금 개인들의 권한과 자유가 극도로 존중받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회중교회 정치에서 비롯되었다. 국가로부터의 개인의 자유가 회중교회주의의 특징이다. 그래서 전염병을 퍼뜨리지 않도록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한다고 총질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청교도 회중교회보다 장로교가 미국에서 더 빨리 발달했다면 전염병 때문에 마스크를 쓰라고 한다고 총질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장로교회는 일반 신자들이 당회의 지도를 받고, 그 위로는 노회, 대회, 총회가 더 높은 권위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로교회는 국가(정부)와 교회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식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마스크 쓰라한다고 분개하여 총질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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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탈탈 2020-08-07 01:00:45
시간이 갈 수록 청교도 운동 신앙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네요! 탈탈 털린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 싶네요. 청교도에 미친 놈들이 오히려 유명해지고 대접받고 존경받은 것을 생각하면 ... 세상은 마귀의 역사라 많는 곳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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