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혁 교수의 '언약신학' 2장 : 윌리엄 퍼킨스 부분에 대한 일곱 번째 소감

(이전에 올렸던 글을 다시 보니, 제가 바르게 설명을 못했습니다. 몸이 곤고한 상태에서는 쉬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억지로 한다고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제가 전하는 논지가 분명하지 못하여 제목과 내용을 대폭 손질하여 다시 올립니다. 이 글의 주 내용은, 구원을 받기 위해 예정된 사람이 구원 전에 성화를 드러낸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퍼킨스가 주장하는 '믿음을 증명하는 성화'는 구원 받기 전에 사람이 믿음과 성화를 준비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회심준비론의 일부입니다.

먼저 믿음과 성화를 이루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확신에 도달한다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독자님들이 이 글을 통해, 청교도 운동의 구원에 대한 특이한 강조는 결국 사람이 구원의 자격을 구비하여 스스로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 펠라기우스, 천주교, 알미니안 신학의 가르침과 같은 내용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시기를 바랍니다.)
 

안상혁 교수(합신, 교회사)의 저서 <언약신학>을 독서하는 이유는 잉글랜드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신앙이 기독교에 해를 미치고, 특히 안 교수가 옹호하는 그들의 ‘행위계약’ 사상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현저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글은 안 교수의 책 2장의 행위계약 입안자 윌리엄 퍼킨스 부분에 대한 일곱 번째 소감이다.

"여기서 퍼킨스는 성화를 ‘믿음의 문서’(증명서)라고 부르며, 그것을 일종의 선택의 가시적인 지표로 인정한다. 또한 모든 신자에게 요구되는 순종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 이웃을 세우는 수단이다."(안 교수의 말/ 117, 118 페이지)

안 교수는 퍼킨스가 성화를 믿음의 증명서로, 그리고 성화를 그 사람이 선택되었음을 증거하는 지표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오늘은 성화가 믿음의 증명서라는 퍼킨스의 주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성화가 믿음의 증명서라는 퍼킨스의 도식은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을 파괴하는 그릇된 주장이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의 궁극적 목적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만드시기 위함이라고 한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성경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기 백성을 생산하기 위해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고, 그리고 역사 속에서 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구원하셨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신 자들을 실질적으로 거룩하게 만드시는 방법은 무엇일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청교도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킴이 성화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 성화되기 위해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은 한 줄도 없다. 신약 성경은 성령의 지배하심이 성화의 길이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권세를 적용하는 성령의 사역으로 성도는 거룩해진다. 신약의 성도는 구약의 백성들처럼 의지로 율법의 지시 사항을 행하여 거룩하여 지는 것이 아니다. 죄를 도말하기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시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적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우리는 죄를 이기고 거룩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모든 사람에게 죄의 소원이 있고, 모든 사람이 죄의 소원을 거스리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죄의 소원을 이기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적용하시기 위해 오신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는 죄의 소원을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되어 졌기 때문이다. 신약의 성도는 자기의 힘으로 죄의 욕망과 대결하지 말고 언제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대해야 한다. 그러면 죄의 욕망을 이길 수 있고, 조금씩 거룩으로 나아가는 성화를 이루게 된다. 성화는 성령의 지배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사람의 의지와 행위(율법준수)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그리스도의 십자가 권세를 적용하는 성령의 법이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운명지어진 죄의 법과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창세전에 택하여 주심도 하나님의 은혜,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 구원과 함께 성령의 사역으로 성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교회에 30년 동안 착실하게 다녔을지라도 실질적인 거룩이 한 치도 진전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으로 그 사람은 구원과 무관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증명된다. 왜냐하면 성화로 이끌지 않는 구원은 없기 때문이다. 퍼킨스가 그런 뜻으로 ‘성화 = 믿음의 증명서’라고 주장했다면 문제 되지 않는다.


청교도 운동의 그릇된 성화 강조

그러나 청교도들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에게 믿음을 선물하심으로 구원이 임한다는 성경의 가르침, 즉 오직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종교개혁 이신칭의 신앙을 실질적으로 부정했다. 청교도들은 사람이 기도, 회개, 예배, 율법 준수 등의 성화 상태에 머무르면서 구원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바로 청교도 회심준비론의 핵심이다. 회심준비론은 사람이 먼저 믿음과 성화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이 언젠가 주실 구원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이므로 택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에게 믿음을 선물하시어 즉시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성경의 진리를 회복한 종교개혁 이신칭의를 대적하는 악한 사상이다.

퍼킨스도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성화를 믿음의 증명서라고 하였으니, 성화에 대한 그의 주장은 우리가 받을 수 없다. 사실 퍼킨스 같은 사람이 성화를 강조하면 오히려 기독교는 더 파괴된다. 구원 받기 전에 사람이 성화에 도달해야 한다는 회심준비주의는 성경이 가르치지 아니기 때문이다. 안 교수가 소개하는 성화에 대한 퍼킨스의 사상을 다시 보자.

"여기서 퍼킨스는 성화를 ‘믿음의 문서’(증명서)라고 부르며, 그것을 일종의 선택의 가시적인 지표로 인정한다."(안 교수의 말/ 117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그린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퍼킨스 역시 선택과 예정에 관한 문제를 두고 고뇌하는 행위와 상태 즉 통회하는 심령, 하나님께 대한 개별적인 범죄로 인한 한탄함, 육과 더불어 투쟁하며 비통해 함,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를 진실하게 갈망함 등을 일종의 성화의 효과들 혹은 선택의 지표들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킨다는 사실이다."(안 교수의 말/ 118 페이지)

위에서 안 교수가 소개한 퍼킨스가 성화와 관련하여 강조한 다음의 것들은 청교도 회심준비론에서 구원 받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이 먼너 갖추어야 할 중요한 특징들이다.

'통회하는 심령'
'하나님께 대한 개별적인 범죄로 인한 한탄함'
'육과 더불어 투쟁하며 비통해 함'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를 진실하게 갈망함'

퍼킨스가 일종의 선택의 가시적인 지표, 일종의 성화의 효과들이라고 가르친 내용들은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그리고 종교개혁의 핵심 사상과 완전히 다르다. 왜냐하면 성화를 구원 이후의 성령의 열매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성화가 구원을 사모하는 사람이 구원 전에 미리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칼빈은 구원 받기 위해 성화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청교도들의 사상이 주장하는 믿음에 대해서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성화로 드러나는 구원 받도록 예정된 사람의 믿음의 준비에 대한 논의는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에서 전적으로 불가능하였다. 선택 받은 사람이 율법을 따라 자신의 성화를 이루면서 구원을 준비한다는 주장은 펠라기우스, 천주교, 알미니우스 등의 신학, 즉 신인협력 구원론이다. 칼빈은 1)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받고, 2)성화는 구원 받는 것과 아무 관련이 없고, 3)구원의 열매로서 일평생 진행되는 성화가 시작된다고 가르쳤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생명의 기업을 받도록 양자로 삼으신 모든 사람을 완전히 회복시키기를 기뻐하신다. 그리고 이 회복은 한순간이나 하루나 한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평생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어떤 때에는 느린 걸음으로, 선택받은 사람들 속에서 육의 부패를 씻어버리며, 그들의 죄책을 깨끗이 없애며, 그들을 성전으로 주께 바치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온 마음을 새롭게 하여 진정한 순결에 이르게 하시며, 그들이 평생을 통하여 회개를 실천하며 이 싸움은 죽음이 와야만 끝난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기독교강요, 3.3.9)


신비주의

퍼킨스의 성화가 믿음의 증명서라는 설명은 신비주의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성화를 통해 사람의 믿음(구원)이 증명된다는 주장은 결국 신비주의와 연관되어 진다. 뉴잉글랜드의 신비주의 영성의 대가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에드워즈는 자기 아내 사라를 매우 성화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자기의 논문에서 자신 있게 소개했다. 그의 아내가 사라가 1741년 1월에 '성령의 신적인 빛'을 진하게 체험하여 입신에 들어가는 등의 신비적인 성령체험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사라는 1960년대 풍미했던 미국의 오순절 운동의 신녀 캐더린 쿨만보다 더 화끈하게 입신에 들어갔다. 괴상한 성령에 압도되어 온 몸의 힘이 빠졌고, 몸을 지상에 남겨둔 그녀의 미친 영혼은 자유로이 천국의 황홀경을 마음껏 경험하였다. 그녀의 미친 영혼이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육체와 연합하면 이미 기운이 다하였으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미친 영혼의 우주 비행을 대단하게 생각했던 무지한 주변 사람들이 우상을 모시듯이 그녀의 영혼과 합치된 육체를 들어서 침대에 눕혀야 했다. 그러면서도 사라는 목회자의 부인으로서 교회 봉사를 잘했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자기 부인의 체험을 최고의 성화체험이라고 칭찬하였다. 사람들이 사라에게 나타나는 것이 큰 문제(이단성, 정신병)가 아니냐고 수군거리면, 자신은 일평생 그 보다 더 한 것에 사로잡혀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화를 믿음(구원)의 증명서로 취급하게 되면 이와 같은 신비주의의 유혹에 넘어지기 쉽다. 사람에게 귀신의 신비 현상이 나타날 때 그것이 더럽고 간악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곧장 미혹된다. 오히려 그 사람이 은혜를 입어 굉장히 거룩한 사람으로 상승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든다. 그래서 비성경적인 성화 강조는 사람들이 신비주의로 쉽게 넘어가게 만든다.


율법주의

성화를 구원 받을 믿음의 증명서라는 방식으로 강조하는 퍼킨스의 사상은 율법주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율법주의의 본질은 구원을 위해, 그리고 얻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노력하여 필요한 자격과 소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통회하는 심령'
'하나님께 대한 개별적인 범죄로 인한 한탄함'
'육과 더불어 투쟁하며 비통해 함'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를 진실하게 갈망함'

안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퍼킨스는 구원 받도록 선택받은 사람들에서 이런 성화의 모습들이 나타난다고 가르쳤다. 구원을 받기 위한 일종의 자격인 것이다. 구원 전에 사람이 이러한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심각한 율법주의이다. 퍼킨스와 청교도들은 사람이 이런 성화 상태에 도달하여 구원을 기다리다가 받는 구원이 진짜 구원이라고 했다. 사람이 구원의 자격을 준비하는 것이므로 정확한 율법주의이다. 그런데 퍼킨스와 청교도들은 사람이 이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보다 율법의 저주 선포를 먼저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변화가 일어나 이런 상태에 도달하면, 그때부터 복음을 처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퍼킨스와 청교도들의 구원론 자체가 심각한 율법주의였다.


참된 믿음의 증명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의 확신(칭의)

그러면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믿음의 증명서는 무엇일까?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내적인 확신이라고 해야 옳다.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과 은혜를 받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확신과 감격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이 주시는 죄용서의 확신과 감격, 즉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롭다하심(칭의)에 대한 확신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죄용서의 확신이 진정한 믿음의 증명서이다. 죄용서에 대한 확신이 진정한 믿음의 증명서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을 주시려고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친히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죄용서과 칭의를 주시려고 하나님이 죄없는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를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으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죄용서와 칭의를 주신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서철원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성령은 형성한 인성을 로고스의 위격에 연합시켰다. 출생 때 연합시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한 인성의 형성시까지 역사하셔서 완전히 연합되게 하셨다. 신적 인격에 연합됨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이다. 이처럼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인성이 형성된 것을 말한다."(그리스도론, 67)

"주 예수는 완전한 의인으로 출생하셨다. 죄책과 오염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인성은 중생의 역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무죄하고 거룩하였다(막 1:24, 눅 4:34). 그리스도는 완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출생하여 죄성과의 투쟁을 알지 못하였다. 그의 인성이 성령의 역사로 완전히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죄의 오염과 죄과가 개입되지 못하였다."(그리스도론, 72)

그리스도는 첫 사람 아담과 달리 모든 상황마다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셨고 아무 죄를 생각하지도 범하지도 않으셨다. 흠 없고 완전한 삶을 사셨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 값으로 자신을 십자가의 제물로 드리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받으시고 진노를 푸셨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에게 죄용서, 곧 의롭다하심을 주시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시어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참된 믿음의 증명서는 죄사함의 확신, 곧 의롭다 하심의 확신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맺는 말

퍼킨스가 장로교와 개혁신학의 조상이라는 그간의 주장은 청교도 히로뽕에 취한 사람들의 거짓부롱이다. 장로교회의 조상 칼빈은 한 번도 성화를 구원 받도록 예정된 사람에게서 구원 전에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뜻으로 성화는 믿음의 증명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먼저 성화를 이루어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 없다. 그래야만 구원을 받는다면, 대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는가? 

청교도 목회자들은 우리들에게 교회 다니면서, 예배드리면서, 기도하면서, 회개하면서, 율법도 지키면서, 심지어 자선활동에도 힘쓰면서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대체 누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청교도 신앙을 좇아가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곧 이단되는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보다 더 좋은 믿음을 가지게 되는 '천상천하 최고의 종교 고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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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