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채데 왜 그들은 이렇게 필사적으로 전도에 목숨을 거는 걸까요? ...(영상 시청) ... 그들에게서 전도는 곧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숫자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만희가 영상에 등장하여) ‘14만 4천을 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선물이 되어야 된다! 그러나 문제는 14만 4천을 만들어야 되구요’ ... (이만희가 또 다른 영상에서 등장하여) ‘여러분들, 뭐지 않아 14만 4천이 차게 되면 세상 모습은 확 달라질 것입니다.’ ... (이만희가 또 다른 영상에서 등장하여) ‘14만 4천 인치면 목적 달성아닙니까?’ 그들이 말하는 숫자는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숫자입니다.

(부산 이단상담실장 권궤남 목사가 영상에 등장하여) ‘14만 4천에 들어가는 자격만 되면 이 땅에서 육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데, 이게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거예요. 안 믿어지는 사람에게는 이게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이미 이 교리에 중독되어서 세뇌된 사람들에게는 올린(all in)할만한 것이 되지요. 좌우를 돌아보지 않는 거예요.’ 2014년 이후 신자 수가 14만 4천명이 넘게 되자 이만희 총회장의 설교의 내용도 슬쩍 달라지게됩니다.

(이만희가 영상에 등장하여) ‘14만 4천만 구원받는다고 우리가 안 그랬죠? 아이고 신천지는 14만 4천만 구원 받는다고 한다! 설마 14만 4천만 구원을 받겠느냐? 안 그러겠는데 ... 즈그가 보기는 했나? 듣기는 했냐고? 말이 안 맞지요. 듣지도 보지도 안했으면 ‘셧 더 마우스’(shot up mouse, 콩글리쉬. 원래 표현은 ‘shou up’)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냐 이말이야!’

신천지 신자들은 구원을 받기는 하지만, 14만 4천명 만이 제사장으로 선택을 받기 때문에 그 자격에 맞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전 신천지 신자가 영상에 등장하여) ‘신천지만큼 돈을 많이 걷는 데는 없을 거예요. 회비가 너무 많아요. 교회 뒤편에 보면 고유번호가 있는 헌금봉투가 있어요. 기본적으로 4-5개 많게는 6-7개가 꽂혀 있어요. 항상 오늘 십일조 날입니다 라고 연락도 오고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고 ... 12지파 간에 경쟁을 하거든요.’

(또 다른 전 신천지 신자가 영상에 등장하여) ‘제작년에는 전도하지 못한 사람은 110만원 씩 내라고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2019년에는 110만원을 내라고 하니까 성도들 중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 올해는 10만원 내라고 ...’

(탁지일 이단전문가가 등장하여) ‘그 14만 4천에 속하기 위한 신천지 신도들의 끊임없는 헌신, 종교적인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종교적인 착취가 가능했던 거지요. 말하자면 이 조직 자체가 14만 4천에 속하기 위한 무한경쟁 체제로 돌입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전도에 따른 결과로서 14만 4천이라는 숫자가 다가오면서 신천지는 이미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이러스 사태가 터진 후 신천지는 중국의 우한에 교회에 없다고 발표했으나 언론을 통해 여러 정황들이 드러나자 우한에는 단지 신자들만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우리는 신천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관찰 해 온 중국의 반 사이비 종교단체가 제작해 온 영상을 입수했습니다 ....”

위 영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신천지 신도들의 열성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교리는 종말에 14만 4천명만이 구원을 받는 다는, 또는 14만 4천 명에 들어가는 사람들만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린다는 교리이다. 이런 식으로 14만 4천 명을 강조하는 이단이 신천지만은 아니다. 여호와 증인, 안상홍, 정명석 집단에서도 이 숫자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사실 14만 4천이라는 숫자는 대부분의 이단들이 매우 중시하고 있고, 이 수에 해당하는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주장하고 있다. 신천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이단들이 자신들과 14만 4천이라는 수를 일치시키고 있다. 

십사만 사천(14만 4천)이라는 수는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서 등장하는데, 지상의 큰 환난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 성도의 수이다. 이 수가 등장하기 바로 전의 상황인 요한계시록 6장에서 일곱 인의 재앙이 등장한다. 바로 그 재앙 속에서 구원 받는 성도의 수가 14만 4천이다. 그 재앙이 벌어질 때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성도들의 이마에 인을 치시는데, 그 인을 받는 사람의 수가 14만 4천이다.

중요한 사실은 14만 4천의 성도가 살아남는 대재앙이 언제 벌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계시록의 대부분의 내용이 이 편지를 받았던 성도들의 실제 상황과 직접 연관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계시록의 대부분의 내용들, 즉 암호풀이 같은 신기한 내용들은 당시의 불신 권력자들에게는 구원의 진리를 감추고 오직 편지(요한계시록)를 받는 신자들만 알고 뜻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붙들게 만드는 내용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또 하나는 편지(계시록)를 받는 성도들의 실제 상황과는 직접 관련이 없고, 계시록의 대부분의 내용들은 먼 훗날의 세상 끝에서 이루어질 내용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을 취할 때의 문제는 계시록이 쓰여질 당시의 성도들이 역사상 전무후무한 핍박 하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아무런 위로와 소망이 되지도 않는 먼 훗날 역사의 끝에서 있을 일에 대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수의 학자들이 계시록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그 당시의 실제 상황과 직접 연관되었던 내용이고, 계시록의 후반부의 일부 내용은 먼 훗날의 세상 종말의 때와 관련된 내용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14만 4천이라는 숫자가 등장하기 직전의 일곱 인의 대 재앙(핍박과 환난)은 편지(계시록)를 받아서 읽는 성도들이 직면하는 실제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바로 로마 제국의 성도들에 대한 극심한 핍박이었다. 그 때의 핍박에서 믿음을 지키고 구원받는 그 당시 성도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을 신천지는 먼 훗날, 즉 2020년대의 한국의 상황에서 구원을 받을 사람의 수가 14만 4천이라고 가르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당시 편지가 쓰여질 때, 즉 로마 제국의 기독교 핍박이 극심하였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인을 받는 사람의 수가 14만 4천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이마에 인치기’(계 7:3), ‘인 맞는 자’(계 7:4)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구원받는 사람의 이마에 실제로 도장을 찍듯이 무슨 표시를 한다기 보다, 예수 믿게 되는 은혜를 입어 죄용서와 성령의 임재를 누리는 성도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4)

로마 제국의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이 보존되고 구원을 얻는 성도의 숫자가 14만 4천이라고 하였다. 역사의 끝에서, 즉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구원 받을 사람의 수가 14만 4천이 아니다. 로마 제국의 핍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지키고 구원을 얻을 사람의 숫자가 ‘십사만 사천’인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십사만 사천’이라는 수는 실제로 구원을 받는 성도의 숫자를 정확하게 지시하는 숫자가 아니고,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사람이 풍성하고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 임을 알 수 있다.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블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계 7:5-8)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열두 지파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12,000명씩 나오면, 이스라엘 전체에서 구원 받는 사람이 14만 4천명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말 이스라엘의 한 지파 당 12,000명씩만 구원받게 하셨을까? 내 생각에는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 그 정도로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일단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또한 예수 믿다가 유대교 당국자들의 핍박을 받아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한 지파 당 12,000명을 정확하게 정하여 구원받게 하신다는 것도 넌센스이다. 하나님께서 한 지파 당 구원을 받는 사람의 수를 12,000명으로 정하시겠는가?

예수님 믿고 극심한 환란을 당하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구원에 이를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맞다. 유대인으로서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 믿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어려웠으나, 참고 견디며 끝까지 주를 부인하지 않고 또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으로 이해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면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한 언급은 없었을까? 유대인들이 예수 믿은 후 유대교를 버렸음으로 인해 유대교의 핍박을 받는 성도들을 격려하신 후 하나님은 이방인으로서 예수 믿어 구원 받은 후 로마 제국의 극심한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9)

유대인으로서 예수 믿는 성도들을 위로하신 하나님께서 곧 바로 이방인으로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라는 말은 여러 이방 민족들을 뜻하는 말이다.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받고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 성도의 수가 풍성하게 많다는 뜻이다.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라는 말은 이방인으로서 예수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무수하게 많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당시 로마 제국의 여러 곳에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이 많았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어 믿음을 지키고 구원에 이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뜻이다.

14만 4천이라는 숫자는 당시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은 유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고 구원을 받는 성도의 풍성한 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그 외에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 백성이 많이 있었다. 당시 로마 제국의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던 성도들에게 (지금 신천지가 가르치는 것처럼) 2020년대에 (한국에서 이민희를 믿어) 구원을 받을 사람의 수가 14만 4천명이라고 하나님께서 편지를 보내셨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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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