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4 13:28 (목)
장로교회, 웨민고백, 에드워즈를 매우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상태바
장로교회, 웨민고백, 에드워즈를 매우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정이철
  • 승인 2020.02.05 08:55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는 장로교회와 웨민고백서와 에드워즈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저의 중심을 잘 알지 못하고 비평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장로교회와 웨민고백과 에드워즈에 대한 저의 마음을 모르고 쉽게 평가하는 분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1. 정이철 목사의 장로교회 사랑

정이철 목사는 장로교회를 사랑합니다. 장로교회에서 세례 받았고 구원받았습니다. 지금 섬기는 교회도 장로교회(앤아버 반석장로교회)입니다.
 

2. 정이철 목사의 웨민고백 사랑

정이철 목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매우 많이 사랑합니다. 신앙고백서들 가운데 제일 먼서 공부하면서 신앙고백서의 신학적 맛을 보았습니다. 정이철 목사가 웨민고백서를 부정한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거짓이고 사실왜곡입니다. 정이철 목사는 단지 하나님이 아담에게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획득하고 지옥에 가지 않는 하나님 백성이 되라고 제시하고 명령하였다는 웨민고백서 속의 '행위언약'(7장, 9장) 하나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행위언약을 받아들이면 자동적으로 아담의 원죄에 대한 거짓 신학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들을 지켜서 의를 얻었다는 더 무서운 거짓 신학(능동순종)을 수용해야 합니다. 정이철 목사는 웨민고백서의 옥의 티, '행위언약' 개념 하나를 거부합니다.

전체 웨민고백서에서 행위언약 내용은 기껏 1% 미만입니다. 행위언약 하나 거부한다고 웨민고백서를 거부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이철 목사는 행위언약 사상만 빼면 전체적으로 웨민고백서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모든 신학 저술들 가운데 단연 최고의 신앙고백서라고 생각합니다. 웨민고백서는 저의 영혼의  기쁨입니다. 웨민고백서는 저의 영혼의 생기입니다. 웨민고백서는 저의 천국의 소망입니다. 웨민고백서는 저의 예수님 신앙의 네비게이션입니다.

참고로 저는 성경을 100% 믿고 수용합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까지 100%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교회가 작성한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콘스탄티노플신경 등을 절대적 진리로 믿습니다. 그 다음에 종교개혁 완성자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개혁신학의 기준으로서 신앙고백서들보다 더 큰 권위를 부여합니다. 그 다음에 개혁교회가 작성한 웨민고백 등의 신앙고백서들과 칼빈의 성경 주석들을 중요하게 참조하면서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권위를 부여합니다.  
 

3. 정이철 목사의 에드워즈 사랑

1)정이철 목사는 남편이며 아버지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를 지극히 존경합니다. 에드워즈를 보면서 아주 많이 사랑하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에드워즈의 아내에 대한 자세를 읽으면서 특히 존경하고 귀하게 여기에 되었습니다.

에드워즈의 아내는 요즘으로 말하면 신사도 운동 거짓 영성에 사로 잡혔던 분이었습니다. 1742년 2월, 에드워즈의 아내 사라는 이틀 동안 세 번이나 황홀한 입신에 빠졌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하고 신비한 세계로 이끌리어 보지 못할 것들을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 때마다 그의 아내 사라는 온 문의 기운이 다 빠졌습니다.

사라는 마치 1960년대 미국의 유명한 여자 부흥사들, 에이미 맥퍼슨과 캐더린 쿨만처럼 다른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신하여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여성도들 사이에서 은근하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영계의 지존이 되었습니다. 사모가 그리되니 남편 에드워즈의 목회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날 에드워즈가 다른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사라는 황홀한 입신의 여파로 온 몸의 기운이 빠져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에드워즈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내를 지극히 사랑스로운 눈으로 바라 보았고, 여전히 극진한 사랑과 신뢰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사람들이 사라에게 일어난 그런 일들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자,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에드워즈는 아내에 대한 신뢰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것이 정신병이라면 나는 일평생 그 병에 붙들려서 살기를 원한다!”

부부는 이와 같이 영적으로 한 몸이 되어 살거나 죽거나 함께 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부부는 이왕이면 무슨 영이라도 같은 영을 받아서 싸우지 말고 합심하여 자기들의 신을 섬겨야 사는 동안 편합니다.  

또한 에드워즈는 자녀 교육을 위해 엄청나게 투자했습니다. 자녀를 11명인가 낳아서 길렀는데, 많은 자녀들을 하바드와 좋은 학교에 보냈습니다.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로는 힘든 일이었으나 에드워즈와 사라는 최선을 다해 자녀들을 교육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어떤 딸은 프린스턴의 학장의 부인이 되었고, 손자는 예일 대학의 총장이 되었습니다. 에드워즈가 힘을 다해 자녀 교육에 힘쓴 결과 그의 가문이 미국을 대표하는 성공적인 가문이 되었습니다.

에드워즈는 거짓 성령의 역사의 도구가 되어 괴상한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뉴잉글랜드 교회들이 양분되고 질적으로 저하된 것은 사실이나, 한 사람을 단면으로만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면을 보아야 합니다.

2)정이철 목사는 학자로서의 에드워즈의 글 쓰고 논쟁하는 자세를 아주 많이 존경합니다. 에드워즈는 구원론에서부터 성경으로부터 빗나갔습니다. 사람이 율법의 저주를 먼저 먹고 영적각성을 받아 스스로 예배, 기도, 회개, 율법준수에 힘쓰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구원을 주시기를 사모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회심준비론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목사로의 기본 자질마져 의심되게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의 학자적인 자세를 지극히 존경합니다. 에드워즈는 글과 논쟁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비성경적인 내용이라고 판단되면 반드시 글을 써서 반박하는 글과 논쟁의 사람이었습니다. 에드워즈는 알미니안 사상을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옆 동네의 한 교회가 하바드 출신 젊은 알미니안 사상을 가진 목회자를 청빙하려고 하자, 비판하는 글을 써서 청빙을 말으려고 했으나 애석하게도 막지는 못했습니다. 에드워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글과 논쟁에 임했던 학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거짓 영의 역사의 도구가 됨으로 사람들에게 무질서하고 광란적인 현상들이 일어나자, 그런 현상들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논증하는 <신앙감정론>을 썼습니다. 그 모든 원인을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들에게 돌렸고, 오히려 자신의 명성은 높아지게 했습니다. 이런 일은 신앙의 글을 쓰기 좋아하고 신학적 연구와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에드워즈의 학자적인 자세 때문이었습니다.

3)정이철 목사는 영성가였던 에드워즈에게 많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숲에서 홀로 명상하다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체험하고, 달콤하게 임재해 오는 성령의 역사를 느낀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맞고 안 맞고를 떠나, 그것은 영성가(도술가)로서 대단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체험하는 것입니다. 중세의 신비 영성가들은 그런 현상을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맛보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고 여겼는데, 에드워즈는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에드워즈는 사도들도 하지 못한 영성 목회의 지존자였습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리훈 2020-02-05 22:53:52
Strongly agreed !!! 좋은글 감사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2020-02-05 12:28:46
에드워즈의 아내에 대한 분별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분별은 정목사님의 비판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에드워즈의 신비체험 표현은 그보다 좀 더 살필 필요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많은 교부들은 필로처럼, 헬라철학과 성경을 대립적 관계로 보지 않고 서로를 조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고 이것이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어거스틴도 플로티누스를 "단지 몇 마디만 바꾸면 거의 기독교인"이라 말했고, 그가 제시한 상승 모델을 사용하여 기독교적 맥락에서 영혼이 상승하여 하나님을 보는 경험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고백록의 특징 중 하나로 언어적 시각화 또는 감각화 된 표현이 있습니다.

그래도 플로티누스를 계승한 버나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버나드의 기도는 관상기도이며 그의 영적 합일은 융합이고 결과로 신격화를 이루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에드워즈의 체험에 대한 기록이 어거스틴과 버나드 둘 중 어느쪽에 가까운지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