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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삼 목사, 방언을 하면서 날마다 영적으로 즐기고 즐거움을 만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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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삼 목사, 방언을 하면서 날마다 영적으로 즐기고 즐거움을 만끽하라!
  • 정이철
  • 승인 2020.01.11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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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삼 목사가 운영하는 싸이트 '진리와 사랑'
김 삼 목사가 운영하는 싸이트 '진리와 사랑'

 

김 삼 목사의 방언에 대한 세 번째 글 “방언, 그리고 그 다음은?”(2008.4.24/Posted by 김삼)에 대해 살펴보았다. 서두에서 김 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이 교회/성도에게 방언을 하게 하신 목적은 한 마디로 우리가 영적으로 즐기기 위함이다.”

“방언은 ‘일회용 체험’이 아니다. 결코 자랑거리도 아니다! 폼으로 끼고 있을 장식품도 아니다. 계속 활용해야 할 삶의 평생도구이다. 방언이 괴롭고 번거로운 짐이 돼선 안 된다. 날마다 즐기고 만끽하는 기쁨의 채널이어야 한다.”

김 삼 목사의 방언에 대한 이런 말들은 사이비 수준이고, 그 이상이다. 성경은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교회를 온전하게 세우려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고전 12:7)

“Now to each one the manifestation of the Spirit is given for the common good.”(1 Co 12:7, NIV11)

성령께서 방언과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을 주시는 이유는 교회를 온전하케 세우려 하심이다. 결코 그 개인의 영적인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김 삼 목사는 방언을 받은 개인들이 영적인 즐거움을 누리게 하려고 방언을 주셨다고 주장한다. 김 삼 목사가 받은 방언이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방언이라면 저런 말을 해 보라고 해도 하지 못할 것이다.

“(방언은) 날마다 즐기고 만끽하는 기쁨의 채널이어야 한다.”

김 삼 목사는 방언을 날마다 즐기고 만끽하며 기쁨을 얻게하는 은사라고 하였다. 방언 은사를 받은 사람이 날마다 방언을 통해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영적인 쾌락을 만끽한다는 김 삼 목사의 주장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 다른 내용이다. 성경은 방언이 다른 사람들이 듣도록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고, 듣는 사람들이 뜻을 알도록 통역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의 봉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고전 14:28)

성경적인 방언은 그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 즉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다. 그러므로 통역하는 사람이 없다면 교회에서는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통역이 없는 방언을 자기에게나 하고 또 하나님에게 하라고 한 것은 실제로 그 자기에게, 또는 하나님을 상대로 방언을 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가에게 하는 방언은 성경에 없고, 방언을 주신 하나님이 들으라고 하는 방언도 있을 수 없다. 바울의 고약한 말은 통역이 불가능한 방언은 거짓 방언이니 다른 사람들 있는 곳에서 지껄이지 말라는 의미이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강력하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통역되게 방언을 말하라고 가르치는 이유는 방언이 그 결코 그 개인의 영적 쾌락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언은 언제나 듣는 다른 공동체 가족들을 위한 은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삼 목사는 방언의 은사가 그 개인들의 영적인 즐거움을 만끽하게 만드는 도구하고 주장한다.

“사도 파울은 거의 24시간 방언을 즐겼다(코린토A서 14:18).”

김 삼 목사는 사도 바울이 24 시간 방언을 즐겼다고 주장한다. 대체 무슨 근거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일까? 이미 설명한 것처럼, 사도 바울은 방언은 반드시 다른 교인들이 있는 곳에서 통역과 함께 하라고 가르쳤했다. 그렇다면 바울이 24시간 동안 늘 방언할 때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잠도 자지 않고 24시간 언제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인가? 김 삼 목사는 정상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

“초기교회 성도들은 방언을 하자마자 하나님의 크신 일을 찬미하기 시작했다(행전 2:11). 방언을 하다 보면 영적인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 역시 믿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성도들은 함께 방언노래(=신령한 노래)로써 서로 화답할 수 있다(코린토A 14:15; 에페소 5:19; 콜로새 3:16).”

김 삼 목사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방언과 함께 방언 찬양의 은사도 받았고 사용했다고 주장하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방언으로 찬양하면서 화답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김 삼 목사의 주장은 정상적인 성경 해석에서 심각하게 벗어났다. 김 삼 목사와 의견을 같이 하는 위험한 은사주의자들은 다음의 구절이 방언 찬양의 근가라고 주장한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전 14:14,15)

위 구절이 말하는 사람의 영은 알고 사람의 마음은 모르는 영적인 기도의 언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속의 영과 마음이 분리되어 따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영과 마음이 종종 분리되어 따로 작동한다는 주장은 유체이탈을 주장하는 이방종교의 사상에서 나온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이라는 표현을 통해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방언 기도와 무관하다는 것이지, 자신이 방언 기도에 익숙하다는 것이 아니다. 만일 바울이 김 삼 목사가 주장하는 영언으로서의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이었고, 자기의 방언 기도의 내용을 자신의 영은 아나 마음을 모른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신비주의 이단이었다.

위 내용은 바울이 성경적 방언에 대한 자신의 소신과 신학을 기술한 것이라 보면 안 된다. 고린도교회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 거짓 사도들과 이단들의 신비주의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비판하는 내용으로 보아야 한다. ‘영으로 기도’‘마음으로 기도’는 각각 다른 기도 형식의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전인격적인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영으로 찬송’ ‘마음으로 찬송’도 각각 다른 형식의 찬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적이고 진실한 믿음의 찬송을 의미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19)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김 삼 목사는 위 구절들의 ‘신령한 노래’가 방언으로 찬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필자가 김 삼 목사에게 묻고 싶다. 한국어로 진실한 믿음과 감사를 담아 하나님을 찬양하면 ‘신령한 노래’가 되지 못하는 것인가?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라고 한 부분은 우리 입장에서 한국어로 진행되는 것이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는 김 삼 목사의 영언이라는 방언으로 진행되는 부분인가? 김 삼 목사의 이런 심각한 주장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방언에 대한 이야기 일 것으로 짐작된다. 김 삼 목사는 성경의 방언과 무관한 거짓 방언을 주는 거짓 성령에게 속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언은 (주로) 혼자일 때 완전한 감사의 방편이다(코린토A 14:16,17). 모국어와 함께 식사기도로 애용할 수 있다. 방언은 믿음으로 할 때 음식중독을 해독/제거하는 사례도 있다.”

성경은 혼자서 독백하듯이 방언하라고 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통역이 없을 때에는 교회에서 하지 말고 자기에게나 하라고 했으나,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거짓 방언임을 암시하는 장난끼있는 역설적 표현이다. 김 삼 목사는 한국어로는 감사를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자신도 뜻을 알지 못하는 영언으로 완전하게 감사할 수 있다는 주장하는 것인가? 김 삼 목사의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방언기도가 음식중독을 제거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는데, 성경 어디에 음식중독을 제거하는 방언에 대한 말씀이 있는가? 지금 김 삼 목사는 깊고도 깊은 사이비 영계에서 헤메고 있어 보인다. 

“방언은 남을 위한 축복을 하는 완벽한 채널이다.”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면서 완전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한국어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하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김 삼 목사의 말은 도무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괴변이다.

“방언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 개인의 몫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다양한 은사들을 향한 관문 역할을 한다(코린토A 12:4~11,31, 14:1).”

방언이 다양한 은사들의 세계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성경에는 그런 가르침이 전혀 없다. 만일 그렇다면 방언은 더 깊은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낮은 수준의 수단이라는 것인데, 그런 주장은 성령의 은사를 모독하는 발언이다. 많은 유명한 이단 사이비들의 신앙 여정을 보면 비교적 초창기에 김 삼 목사가 주장하는 영언으로서의 거짓 방언을 체험한 후 점차 더 깊은 미혹의 세계로 들어갔음을 볼 수 있다. 방언이 다른 은사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김 삼 목사의 주장은 이단 사이비들이 하는 말이다. 

“성령침례(=성령세례)의 표징으로서의 일반방언(또는 개인방언/표징방언/기도방언)은 교회/대중을 위한 은사방언(코린토A 12:10, 14:26~28)과는 다르다. 일반방언은 성령님의 9 은사를 여는 지름길이 된다. 즉 성령님의 9 은사들 중에 한 가지 이상이 나의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성령세례의 표징으로 나오는 방언에 대한 가르침이 성경에는 없다. 김 삼 목사는 총신대학을 나왔다고 하는데, 무슨 공부를 했기에 신학에 대해서 이리 무지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인가. 방언이 성령세례의 표징이라는 주장은 아주사 거짓부흥과 오순절 은사주의로부터 시작되어 현재의 신사도 운동에 이르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온 거짓 신학이다. 김 삼 목사의 이런 주장과 특히 방언이 다른 아홉가지 은사를 여는 지름길이라는 주장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괴변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방언기도가 도움을 줄 수 있다. 더욱이 방언은 알지 못할 현재와 미래의 위험을 피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개인의 방언은 (통역되지 않는 이상) 싸탄과 악령들, 심지어 천사들도 뜻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께 급한 상황을 알리는 무전통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

김 삼 목사는 또 다시 방언기도가 사탄과 악령들, 심지어 천사들도 뜻을 알지 못하는 비밀의 언어라는 주장을 하였다. 자신의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의 근거가 성경의 어디에 있는 것인지 대답하기를 바란다. 김 삼 목사가 한 때는 거짓 신학을 파헤치며 싸웠고 상당한 재능을 보였다고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자신이 비판하였던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는 모습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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