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섭 목사님, 시중에 흩어진 책을 수거-폐기한다 약속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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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섭 목사님, 시중에 흩어진 책을 수거-폐기한다 약속해 주십시오.
  • 정이철
  • 승인 2019.10.09 21: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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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신호섭 목사님!

저는 회중파 청교도 신학이 퍼뜨린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사상을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능동순종 교리는 논란이 되는 정도의 차원을 넘어 구원의 복음을 허무는 매우 위험한 사변입니다. 그 이유는 능동순종 교리가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의 목적까지 변개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저내사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게 하신 구원의 방법을 성경과 다르게 가르침으로 결국 하나님 섬김의 신앙을 성경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개 월 전에 능동순종 교리 등의 회중파 청교도 신앙과 관련된 신호섭 목사님의 행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때 불쾌하시게 했던 점들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당시 목사님과 저를 아는 분들의 만류로 인해 멈추었으나, 저는 결코 목사님과 목사님의 책을 보는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이 내신 책 <개혁주의 전가교리>가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오류에 빠지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의 주변에서 우려하였던 일들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벌써 몇 번째인데, 오늘도 어떤 분이 목사님의 책 사진과 책 내용의 일부를 올리면서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능동순종 교리를 존귀하게 여기면서 배우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이 올리신 목사님의 책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옮겨올 때 그것이 우리의 공로가 된다고 하는 것이 개혁주의 전가 교리의 핵심이다.

우리에게 전가된 의는 '그리스도의 순종'이라는 義이다 …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신학적으로 구분하였지만) 결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그분의 수동적 순종과 분리한 적이 없다.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순종은 그분의 삶과 죽음을 통해 나타난 완전한 순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죄의 용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전체 율법에 소극적(수동적)으로 순종하셨을 뿐 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전체 율법에 적극적(능동적)으로 순종하셨다. 이런 국면에서 그리스도의 칭의는 죄의 사면 그 이상이며, 영화(천국과 영생의 보장)의 적극적인 결과를 포함한다.

메이첸은 머레이에게 “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내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메이첸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하고도 능동적인 순종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죄와 그에 따른 형벌을 사면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완전히 순종적이고 의로운 자로 하나님 앞에서 용인되고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한 것이다. -신호섭 목사님의 <개혁주의 전가 교리> 중에서-”

그 동안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신호섭 목사님께서도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신학적으로 구분하였지만) 결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그분의 수동적 순종과 분리한 적이 없다”라고 하신 것처럼, 능동순종 교리는 청교도들이 발전시킨 신학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청교도들 중에서도 오직 '회중파 청교도' 인물들이 주장하고 발전시킨 사상입니다.

당시 영국에 장로파 청교도 등 4개의 청교도 분파가 있었으나,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서 청교도로 불리우는 인물들은 모두 회중파 청교도들입니다. 신호섭 목사님의 책 <개혁주의 전가교리>에서도 존 오웬, 윌리엄 퍼킨스, 토마스 왓슨, 리처드 십스, 토마스 굿윈 등이 능동순종 교리를 발전시켰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회중교회의 조상들입니다.

회중교회(회중파 청교도)의 조상들은 칼빈을 만난 적이 없고,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중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칼빈과 다른 내용의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발전시켰고, 그들의 어떤 면들은 심각한 거짓 신학입니다. 그들의 대표적인 주장인 능동순종 교리도 성경의 가르침과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이 기술된 <기독교강요>와는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칼빈도 수 없이 그리스도의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은 성육신부터 십자가의 죽으심까지의 성부 하나님의 모든 뜻에 대한 순종이지, 결코 그리스도께서 아담 대신에 철저히 율법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의’를 얻게 하였다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 아닙니다. 

제가 감정적으로 인격적으로 신호섭 목사님을 욕보이려고 이런다고 매도하지 마시고, 본인의 영혼과 신앙 그리고 본인 교회 신자들의 영혼 그리고 목사님의 책을 보고 성경에 대해 오해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다시 돌아보시고 점검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1>
성경과 어거스틴, 칼빈 등의 기존의 정통 신학자들은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의 뜻, 그리고 하나님이 기껏 흙으로 지어진 자신에게 넘치도록 충분하게 베푸신 은혜(영생, 하나님의 형상과 모든 은사들)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즐거이 섬기지 않고, 즉 믿음으로 살지 않고 믿음을 버리고 감히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을 품고 선악과를 범함으로 하나님이 저주하시고 죽음에 이르는 형벌을 내리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회중파 청교도의 조상 윌리엄 퍼킨스와 그 후배들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시고 아담에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주었다고 합니다. 아담도 그 하나님의 그 제시에 동의하여 쌍방간에 영생을 위해 행위의 언약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담이 그 율법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저주와 죽음의 형벌을 받았고, 아담과 아담의 후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못 지킨 율법을 완전하게 순종하시어 자신과 우리 죄인들의 영생에 필요한 하나님의 의(자격, 권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신호섭 목사님이 강하게 주장하시는 이 능동순종 교리의 근원에 바로 이런 성경 해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인간의 부질없는 사변에서 비롯된 위험한 신학주장이라고 확신합니다. 신호섭 목사님! 아담에게 영생을 획득하게 하는 율법이 주어졌다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성경의 가르침, 예수 그리스도, 어거스틴, 칼빈 등의 모든 정통 신학자들은 아담이 원죄를 범할 때에 '지키고 말고 할 율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율법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도입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신호섭 목사님! 우리의 신앙은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해야 합니다. 목사님이 믿으시는 원죄의 내용과 그리스도의 원죄 해결 방식, 즉 능동순종 사상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목사님이 주장하실 수 있는 근거는 오직 회중파 청교도 인물들의 사변들뿐입니다. 원죄에 대한 설명과 이해가 성경과 다르면, 이후의 모든 것들이 성경에서 더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 천부교 같은 이단들은 원죄를 말하면서도 성경과 다른 내용의 원죄를 가르칩니다.

신호섭 목사님!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 아담이 못 지킨 그 율법, 즉 아담을 저주받고 망하게 만든 그 율법을 준수했다고 하는데, 대체 그 아담이 지켜야 했던 율법이라는 것의 근거를 성경을 통해 설명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
위에서 소개된 목사님의 책의 일부 내용에서도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욕보이는 심각한 내용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도 영생을 얻기 위해 율법을 준수해야만 했다는 사상입니다.

“우리를 위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전체 율법에 적극적(능동적)으로 순종하셨다.”(신호섭 목사의 책 <개혁주의 전가교리>의 일부 내용)

신호섭 목사님! 이 문장은 그리스도께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율법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셨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혹시 다른 뜻이 있으신가요? 목사님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죄와 죽음의 법칙에 종속되어 있었던 분, 즉 영원한 생명을 가지지 못하셨던 분이었다고 보십니까? 그리스도께서도 영생을 얻기 위해 아담이 실패한 율법준수에 완전히 성공하셔야만 했다는 것입니까?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죄 없는 한 인간을 지으셨고, 성자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죄 없이 지어진 그 사람과 일치시키심으로 하나님의 성육신 자로 이 땅에 나타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아담이 못 지킨 율법을 다 지키셔야만 했다는 목사님의 신앙은 과연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이고, 어거스틴, 칼빈 등의 정통 신학자들이 가르치는 내용인가요?

칼빈이 그리스도의 생명의 영원성에 대해 말한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반대하여 생명과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께로 주입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원받은 분이 아니라 바로 구원 자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1.13.11)

“롬바드(Lombard)와 스콜라학자들(the Schoolmen)처럼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어떤 공적을 쌓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 대체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자신을 위해 자신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지상에 내려오셔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존 칼빈, 기독교강요, 2.17.6)
 

3>
위에서 소개된 목사님의 책의 일부 내용에서도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교란하는 위험한 사상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목사님의 다음의 말입니다.

“이런 국면에서 그리스도의 칭의는 죄의 사면 그 이상이며”(신호섭 목사의 책 <개혁주의 전가교리>의 일부 내용)

신호섭 목사님! 칭의가 죄의 사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셨는데, 그것은 회중파 청교도들의 사변신학이지 성경의 가르침과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성경의 핵심을 대적하는 위험천만한 내용입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들이 칭의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시어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심이 곧 ‘하나님의 의’, ‘칭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리스도께서 피로 우리를 사면하여 주심만으로는 칭의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 외에 무엇이 더해져야 우리가 칭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신호섭 목사님은 사도 바울의 복음과는 다른 복음을 주장하시는 것인가요? 
 

종교개혁 교회의 신학의 기초를 세운 칼빈도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가 우리에게 칭의를 주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 (기독교강요, 3.11.3)

“4. 칭의는 곧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용납이며 죄의 용서이다(소제목). 용어에 대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 표현하려는 내용 자체를 주시한다면, 거기에는 아무 의심도 없다 ... 이것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고 한 것과 똑같은 뜻이다.” (기독교강요, 3.11.4)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사함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7, 시 32:1)고 말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칭의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를 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윗이 죄를 값없이 용서받은 사람들은 행복하다고(시 32:1-2) 그 선언한 그 정의에 찬성한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말하는 의는 단순히 죄책의 반대 개념인 것이 분명하다.” (기독교강요, 3.11.4)

“22. 칭의와 죄의 용서 사이에 있는 긴밀한 관계를 성경에 의하여 증명함(소제목)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여기서 바울은 의와 화해를 서로 구별하지 않고 말하여, 서로 한 쪽이 다른 쪽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 의를 얻는 방법은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가르친다 ... 바울은 다윗의 증거를 인용하여 로마 교회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행위와는 별도로 의를 돌려주신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윗은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다(롬 4:6-8, 시 32:1-2).” (기독교강요, 3.11.22)

“누가가 보고한 것을 보면, 바울은 설교를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는 말로 끝맺는다. 바울은 죄의 용서와 의를 연결하여, 둘이 똑같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기독교강요, 3.11.22)

“어거스틴도 그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의 의는 완전한 덕성에 있지 않고 죄의 용서에 있다.’ 베르나르드의 유명한 말도 이와 부합한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의다. 그러나 사람의 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는 전에도 ‘그리스도는 죄의 사면에 있어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 그러므로 그의 자비로 용서를 받는 자들만이 의롭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독교강요, 3.11.22)
 

정통 종교개혁 신학자 서철원 박사도 하나님의 의(칭의)와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심으로 주신 죄의 사면은 동일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의롭다 하심의 중요한 점은 바로 죄책을 제거하심이다. 죄책 혹은 죄과의 제거는 죄인을 의인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무죄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범죄하였지만 죄책이 제거되었으므로 죄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 없어진다. 곧 완전한 의로 인정되는 것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124)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29)

신호섭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모욕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목사님을 영적인 암흑과 수렁에서 건져드리는 것입니다. 아담의 원죄와 그것을 해결하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식은 성경의 핵심입니다. 목사님처럼 회중파 청교도의 사변신학의 산물인 능동순종 교리를 추종하면, 성경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방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이전 잘못된 사람들이 주장했다고 목사님께서도 무작정 따라하시면 목사님과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망하게 됩니다.

바로 그 점이 안타까워서 오늘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도 목사님의 책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대적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배우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디 오늘 저의 질문을 진지하게 숙고하셔서, 목사님이 잘못되었다고 깨달아지시면 용기있게 시중에 흩어져 있는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수거하여 폐기하고 더 이상 출판하지 않겠다고 공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목사님과 저와 모두가 승리하는 길입니다.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 올림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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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n 2019-10-10 17:14:15
찾아보니까 신목사님은 싱클레어 퍼거슨 교수의 지도하에서 The Imputation of Christ's Active Obedience in Puritan Theology라는 논문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합니다. 퍼거슨이 존 오웬 신학을 무척 칭찬하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조엘 비키가 퍼거슨을 많이 존경하는 것으로 압니다. 성경보다는 학식있는 사람이 쓴 글과 책이 더 소중한 사람들이 요즘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혁신학의 최고라는 사람들이 가톨릭의 사제들이나 바리새인들과 비교했을때 그리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더이상의 종교개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또다시 개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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