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우주의 의미는 특별계시 안에서만 바르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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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우주의 의미는 특별계시 안에서만 바르게 드러납니다
  • 정이철
  • 승인 2019.08.18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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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암소, 암염소, 수양 등의 짐승을 잡아서 반으로 쪼개고, 쪼개진 짐승들의 몸이 서로 마주보도록 배치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서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현상이 꿈이었는지, 아니면 비몽사몽간에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특별계시 현상이라고 합니다. 계시라는 말은 하나님이 자기를 드러내신다는 의미입니다. 계시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일반계시(자연계시)가 있고 특별계시가 있습니다.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과 우주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과 우주를 연구하여 하나님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김홍도, 신윤복,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은 대충 아무렇게나 작업해도 저 같은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예술성이 나옵니다. 그 자신들에게 탁월한 예술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들보다 잘 그리는 것이 딱 하나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마징가 제트의 대가리를 그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그들보다 잘 그립니다. 그들은 마징가 제트를 본적이 없으나 저는 보았기 때문입니다. 피카소 같은 예술가가 그림을 그려 놓으면 그 속에 피카소가 묻어있습니다. 피카소의 정신세계와 인격이 묻어나옵니다. 어떤 화가가 매우 정신적으로 불안정했을 때의 작품과 정신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작품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묻어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손으로 만드신 우주와 자연을 보면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베여있습니다. 우주와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을 연구하는 신학을 자연신학이라고 합니다. 우주와 자연의 낮은 단계의 존재로부터 높은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연구하여 최고의 높은 존재인 하나님에 대해서 유추하는 것이 자연신학입니다. 그런데 자연신학의 명백한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낮은 존재의 단계인 돌이나 나무를 연구하면 단순한 물질성이 특징입니다. 조금 높은 단계의 존재들, 예를 들어 개나 고양이를 연구하면 단순한 물질성이 그 존재의 전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더 높은 단계의 존재인 인간을 연구하면 더욱 더 달라집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물질성을 특징으로하면서 동시에 고도의 정신성과 인격성이 함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연과 우주의 존재하는 것들을 낮은 단계로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에게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 방식의 특징은 물질성이 전혀 없다는 유추에 이르게 되고, 물질성의 정 반대 개념인 영성이 하나님 존재의 본질이고 특징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 존재의 본질이 물질성, 육체성의 완전 반대가 되는 영성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인간이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영성을 계발한다는 영성신학이 유래하였습니다. 성경에 수 없이 나오는 경건, 즉 인간이 말씀을 통해 은혜를 입어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경건 개념이 도외시되고, 인간이 자기의 본성과 싸워서 극복하여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영성수련 사상이 발전되었습니다. 영성 신학은 자연과 우주를 연구하는 방법 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자연신학의 산물입니다.

자연신학의 문제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타락,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부지런히 자기의 물질성, 육체성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영성을 계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거기에서 구원,즉 신인합일이 나온다고 합니다. 결국 가장 중시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명상, 금욕, 침묵, 내려놓음 등을 통한 신비적인 신인합일주의로 갑니다.  

자연신학으로는 아담의 타락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알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의 이유와 필요성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의 물질성, 육체성에서 탈피하여 하나님 수준에 이르는 고도의 정신의 세계, 즉 영성에 도달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육체성과 물질성에서 탈피하기 위해 육체에서 나오는 모든 욕망과 욕구를 거부하고 고상한 정신 세계를 계발하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되기 위해 훈련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 무엇인가요? 침묵하고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명상입니다. 특히 중세 시대에 이것이 수도원들을 중심으로 성행했습니다. 

문제는 기독교에서도 추구하는 이 영성 개념을 지구상의 대부분의 다른 종교들도 동일하게 진리획득의 방식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용어가 다를 뿐입니다. 동양 종교들에서는 영성에 이르는 것을 '도'를 터득한다고 하고, 득도, 열반, 해탈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모든 종교들이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구원론입니다. 자연과 우주를 연구하여 인간의 근원과 하나님과 구원의 길을 탐구하는 방식은 결국 이방종교와 같아집니다.

그러면 참된 기독교가 되기 위해 자연신학 외에 무엇이 더해져야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구원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여 주신 성경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자연과 우주를 통해 알 수 없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하나님은 태초부터 친히 말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인간은 자신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에 대해 설명해 주신 것을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왜 우주와 인간을 만드셨는지? 인간이 왜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는지? 저주와 죽음의 운명에 처한 인간을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구원해 주셨는지? 에 대해서는 자연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 주신 계시, 오직 특별계시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계시는 언제나 특별계시에게 종속되어야 합니다. 우주와 자연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과 의미부여는 오직 특별계시의 개입으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들들어 보겠습니다. 자연와 우주의 창조 목적이 자연계시 내에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자연계시 내에서는 단지 삼라만상의 원리, 자연의 이치로만 설명됩니다.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것이 진리이고 선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특별계시에 의해 자연계시가 해석될 때,  자연과 우주는 하나님 백성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과 삶의 무대와 배경으로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그것이 망가졌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별계시는 인간의 문자로 기록된 성경 66권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특별계시들 전부가 성경으로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말들은 성경 66권에 기록된 내용보다 더 많습니다. 그것을 다 기록하려면 하늘이라도 부족하고 바다라도 부족합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하나님이 하신 많은 하나님의 말들 가운데 우리의 구원과 신앙을 위해 꼭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만 간추려서 기록된 것이 성경 66권입니다. 특별계시의 중심과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자연과 우주를 일평생 연구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서 자연을 통해서 연구해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말해 주셔야만 알 수 있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특별계시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특별계시는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그 자체가 특별계시의 완성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하나님의 새로운 말의 계시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성경 66권이 전부이고 완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곧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의 계시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 1:1)


 

브라이언 박


브라이언 박이라는 이상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에게 갑자기 성경의 모든 은사가 나타났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각한 일입니다.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이단이거나 귀신들린 사람입니다. 성경의 모든 은사가 나타난다면, 틀림없이 성경의 대표적인 은사인 방언과 예언, 그리고 방언 통역의 은사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은사들은 하나님이 자기의 말의 계시를 교회에 주시거나 보충 설명하여 주실 때에 사용된 은사들이었습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모국어로 말씀을 주실 때 사용하는 은사였습니다. 방언은 타국어로 말씀을 주실 때 사용된 은사였습니다. 타국어로 말씀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그 타국어들을 실제로 말하는 이방 백성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 백성되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시대를 열었으니 이전의 구약의 완악한 유대인들과 같이 교만에 빠져서 이방인들을 멸시박대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교회의 멤버로 수용하라는 명령의 표적이었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고전 14:21)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버리신다는 심판의 표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이 유대인들의 언어가 아닌 생소한 타국어로 교회에 전해젔으므로 방언이 나타날 때에는 반드시 통역하는 은사도 함께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국어로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예언의 은사에는 통역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고전 14:27) 

하나님이 친히 말씀을 주시거나 주신 말씀을 설명하여 주실 때 사용된 이런 은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경 66권의 완성, 즉 특결계시의 완성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예언하고 방언하고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예언하고 방언하고 방언통역하였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것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났으나 모두 이단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대략 2000년이 지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오순절 운동이라는 지독한 이단운동이 등장하면서 다시 방언하고 예언하고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도 모두 예외 없이 이단들이거나 사기꾼들이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을 보았고 환상을 본다는 사람들도 전부 이단이거나 허풍쟁이이거나 사기꾼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특이한 현상들도 하나님이 말씀의 계시를 주실 때, 하나님의 직접 말씀하심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을 전달하는 특별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죄인과 하나님이 직접 소통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꿈과 환상, 음성 등의 방법으로 자기의 말을 인간에게 전달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성경 66권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말의 계시, 특별계시가 이미 완성되었으므로 더 이상의 새로운 말씀의 계시가 없습니다. 이전에 하나님이 친히 말씀의 계시를 전달하거나 설명하실 때 사용되었던 초대교회의 예언, 방언, 방언 통역의 은사들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하도록 돕는 성령의 조명의 시대입니다. 성령의 조명은 방언, 예언으로 새로운 말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주시고 기록된 성경의 말씀으로만 우리가 정상적이고 올바른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것과 같은 일은 우리에게 더 이상 벌어지지 않습니다. 왜 나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신비한 말이나 명령을 듣지를 못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4천년 전의 아브라함이 왜 나는 정이철 목사처럼 성경 66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고, 왜 정이철 목사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믿지 못하는 것인가 라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앤아버 반석교회 8월 18일 설교 앞부분)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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