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순종과 웨민(WCF)의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설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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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순종과 웨민(WCF)의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설명해 주세요
  • 정이철
  • 승인 2019.04.30 13:3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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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정이철 목사님, 능동순종과 웨민(WCF)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설명을 바랍니다. 예수를 구원자로 믿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과 깊은 상관이 있는 것입니까? 다 예수 믿자고 하는 것이면, 굳이 따지고 가를 필요가 있습니까?

정이철 목사님 때문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성경처럼 절대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목사님을 미워하는 어떤 사람은 유대교의 제도와 율법에 도전한 예수님을 유대교의 교리로 잡아 죽였던 것처럼, 정이철 목사님을 웨스트민스터를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는 장로교단의 이단으로 만들어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고 하면서, 여기 저기에 카톡을 보내는 것이 저에게도 흘러 들어왔습니다.  

능동순종과 WCF에 대해 목사님이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성경은 하나님께 완전하게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배상하시기 위해 흘리신 피로 우리가 얻은 '죄 사함'이 곧 우리의 '의'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저의 형님(저는 장남이라 형님이 없음)이 저를 위해 피 흘리셨다면, 저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를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형님은 죄가 많은 분이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 저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모든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의 피는 저의 죄를 사하지도 못하고, 그를 구주로 믿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의'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부터 죄 없으신 분이었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시는 순간부터 십자가에서 숨이 멎으실 때까지, 완전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대신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하여 졌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즉 성령 안에서 예수와 연합됨으로 얻는 '의', 즉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는 권리와 자격, 그리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생존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성경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와 연합되어 그의 피 흘리심의 효력을 덧입는 것이 우리의 '의'라고 말씀합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도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죄사함, 즉 죄책에서 벗어남이 우리의 '의'라고 했습니다.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 사함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7, 시 32:1)고 말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칭의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를 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윗이 죄를 값없이 용서받은 사람들은 행복하다고(시 32:1-2) 그 선언한 그 정의에 찬성한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말하는 의는 단순히 죄책의 반대 개념인 것이 분명하다.” (기독교강요, 3.11.4)

한국의 정통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도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얻는 죄사함이 성도의 의라고 합니다.
 

“의롭다 하심의 중요한 점은 바로 죄책을 제거하심이다. 죄책 혹은 죄과의 제거는 죄인을 의인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무죄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범죄하였지만 죄책이 제거되었으므로 죄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 없어진다. 곧 완전한 의로 인정되는 것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124)

그런데 칼빈이 죽고 대략 70-80년이 지나면서 칼빈의 후학들에게 ‘개신교 스콜라주의’(Reformed Scholosticism)라는 신학 방법이 도입되었습니다. 중세의 천주교 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체계화한 것이 스콜라주의라는 방법인데, 칼빈주의자들이 그 방법으로 신학을 체계화시키려 한 것입니다. 칼빈의 신학을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던 그들이 서서히 사변적인 신학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얻는 '의'의 원리를 탐구하기 위해 성경이 말하지 않는 방법으로 사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론에 도달하였습니다.

1)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율법을 다 지키시어 하나님 백성 되기 위한 ‘의’(자격, 권리, 생존권)을 얻었고, 2)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로 인해 죄 사함(형벌 받아야 할 책임)에서 면제되었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믿어서 얻는 '의'를 이렇게 사변적으로 이분화시켜 설명하는 내용을 성경에서 단 한 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사변적인 칭의-구원론을 발전시킨 영국의 종교개혁 세력은 훗날의 신대륙의 조나단 에드워즈로 대표되는 회중파 청교도라는 집단이었습니다. 초기부터 회중파에서 존 오웬 등의 걸출한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들이 발전시킨 사상이 자연스럽게 칼빈의 종교개혁으로 나타난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의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로교 신학의 교과서라고 여겨지고 있고, 장로교에서 성경과 거의 동동한 권위를 인정받는 웨민고백서(WCF, 1646년) 속에도 이 사람들의 신앙의 특징들이 있음을 그 동안 우리는 간과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가 정말 위험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백성의 ‘의’(자격, 생존권, 권리)를 얻었다는 교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영생하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과 함께 창조되었다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사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영생을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 안에서 아담을 창조하셨는데, 아담이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었고 저주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아담을 대신하여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서 하나님 백성되기 위한 '의'(권리, 자격, 생존권)을 얻어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 어디에서 아담이 영생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과 함께 창조되었다는 말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창세기 어디에도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과 함께 창조되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사변을 만들면서 기독교 신앙을 추론에 근거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지켰어야 할 율법이 처음부터 아담의 마음에 심겨져 있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의 영향으로 웨민고백서에도 아담이 영생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과 함께 아담이 창조되었고, 그 내용이 나중에 모세를 통하여 기록으로 주어졌다고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것은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257)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율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 (프롱크, 257)

1. 아담에게 주신 법: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고하셨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2. 도덕법(Moral Law): 이 법은 그의 타락 후에도 계속 의(義)의 완전한 규칙이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십계명에 그렇게 선언되었으며 두 돌판들에 기록되었는데; 처음 네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그리고 그 나머지 여섯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다.” (WCF 19 장 1,2항)

이런 내용은 너무도 무리한 성경해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지어졌고, 하나님 섬김의 사명을 안에서 피조물들의 왕으로 지어진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아지기 위해 반역함으로써 창조주로부터 저주받고 영원히 죽게 된 것으로 원죄를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이후 전개되는 성경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런데 사변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창세기에 있지도 않은 율법을 가정하고, 아담이 그 율법을 지키지 않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이해함으로, 성경과 기독교를 심하게 비틀어 버렸습니다.

능동순종 교리를 믿으면, 필연적으로 신앙의 기형이 초래됩니다. 능동순종 교리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심각한 신앙의 기형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높이는 사도 바울과 신앙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를 찬양하는 이상한 현상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1)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

이와 같이 율법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계시에 관한 최고의 해설자인 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능동순종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신앙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한 모든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자신의 죄의 짐을 느끼는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코르닐리스 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268)

“복음은 죄인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떻게 회개가 일어납니까? 그때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금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시고, 우리는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입니다.” (프롱크, 264)

심지어 능동순종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원 받은 성도가 율법을 지킴으로 성화를 이룬다고 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받은 증거라고 하고, 지금도 십자가 복음보다는 율법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회개하고 구원에 이른다고도 합니다. 결국 '율법', '예수' 등의 성경적 용어를 같이 사용하면서 성경과는 다른 내용의 종교를 만들어 버립니다.

칼빈과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아담이 욕망과 교만에 포로 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역하여 저주받았고,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을 불쌍히 여기시어 죽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 백성으로 삼기 위한 은혜의 복음의 효력을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지난 지 불과 100년 되기도 전에 다시 기독교를 율법 종교로 바꾸는 변질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 능동순종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공연히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힘으로 율법 지켜서 영생을 얻도록 창조한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저주받았다. 그리스도가 대신 율법을 지켜 인간을 하나님 백성되게 해 주셨다. 구원받은 성도는 더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구원의 증거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과 십자가의 보혈의 권세로 인간을 재창조하는 성령의 능력을 좇아서 살아야 재창조된 새 인류(교회)가 다시 구약의 율법의 멍에를 메게하는 마귀의 속임수가 이미 개혁된 교회의 개혁신학 속으로 일찌감치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웨민고백서(WCF, 1646년)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 만들어진 영국 국교회의 신앙의 고백 '39개조'(Thirty-Nine Articles, 1556년)에 대항하고자 영국의 다양한 종교개혁 그룹들이 신앙의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 낸 공동의 신앙고백서였습니다. 성향이 다른 종교개혁 그룹들이 영국 국교회를 상대로 한 목소리로 단결하여 싸워야 할 필요성 앞에서 서로의 신학을 절충하여 만들어 낸 신앙고백서입니다. 회중파 청교도였던 크롬웰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의회에서 장로파의 세력을 약화시킬 때까지, 즉 웨민고백서가 탄생할 때까지는 장로파 청교도 세력이 가장 우세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로파 청교도가 선호하는 내용으로만 웨민고백서가 작정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하였습니다. 저도 최근까지 웨민(WCF)이 장로교만의 신앙고백서로 만들어졌다고 오해하고 있었고, 웨민의 내용의 한 줄이라도 의심을 품으면 장로교의 배반자(이단)로 정죄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로교 청교도들과 처음부터 신앙의 특징이 달랐으나, 일치된 목소리로 영국 국교회의 '39개조'를 대적하기 위해 웨민고백서 작성에 참여했던 회중파 청교도들은 12년 후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 1658년)를 따로 작성하였습니다. 그때 회중파 청교도들은 능동순종 교리를 다음과 같이 명문화했습니다.

율법 전체를 향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그의 죽음을 통한 수동적 순종을 그들의 모든 행위와 유일한 의로서 그들에게 전가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신다.” (사보이 선언, 11장)

회중파 청교도들은 자신들만의 사보이 선언을 채택함으로 장로교 청교도 와는 다른 성향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했고, 훗날 그들의 계보에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와 로이드존스(David Martyn Lloyd-Jones, 1899-1981)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영국 국교회에 속한 회중파 청교도였던 존 스미스(John Smyth, 1570~1612)에 의해 시작된 침례교 청교도도 신학적으로 회중파 청교도와 비슷한 내용의 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1689년에 작성된 '침례교신앙고백서'에도 능동적, 수동적 순종 교리가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는데, 그들의 신학의 뿌리가 회중파 청교도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체 율법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전가하시고, 죽음을 통해 수동적 순종을 전가하신다" (침례교 신앙고백서, 11장 1항)

비성경적인 능동순종 교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종교개혁 교회들의 신학에 들어와서 종교개혁 사상을 파괴하는 율법주의를 다시 끌어드렸습니다. 칼빈의 신학을 변형시킨 후기 개혁파들에 의해 우리가 장로교 신학의 교과서라고 여기는 웨민고백서에도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웨민고백서를 전적으로 거부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웨민고백서는 여전히 장로교회의 신학의 바탕임을 저도 당연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일부 내용에 미진한 부분이 있음을 보게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부르심을 따라 그것을 알리자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저 혼자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웨민고백서에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지적했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지적을 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황대우 교수(고신대 역사신학)의 소논문 “개혁파의 선택론과 언약론”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았습니다.
 

“칼빈의 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창조언약, 행위언약'과 같은, 후기 개혁파의 언약신학을 특징 지우는 개념들은 어떤 의미에서 바로 이러한 불링거의 언약사상에 의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황대우 교수)

후기 개혁파들(회중파 청교도)이 만든 행위언약 사상은 칼빈이 죽은 지 약 90년 후에 탄생한 웨민고백서 7장에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웨민 7장의 행위언약 사상이 없으면, 비성경적인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황대우 교수도 웨민고백서에도 기록된 행위언약 사상을 칼빈의 신학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이런 지적을 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교단 차원에서 웨민고백서에서 칼빈의 신학과 다른 점들을 수정하는 날이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저는 웨민고백서를 큰 틀에서 마땅히 인정하면서, 동시에 지금처럼 성경과 칼빈의 정통 개혁신학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을 계속 말할 것입니다.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이 변질되고 않고 살아았을 때, 칼빈의 동료 볼링거에 의해 작정된 '제 2 스위스 신앙고백'(1556년)은 칭의를 율법과 연관시키는 자들을 '썩은 복음'을 전하는 거짓 사도, '이단자'라고 극렬하게 정죄하였습니다.

“거짓 사도들은 썩은 복음을 전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음을 율법과 뒤섞음으로 마치 그리스도께서 율법 없이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이단자들을 정죄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는 자들이 율법에 의한 칭의가 아니라 복음에 의한 칭의를 받는다고 하는 순수한 복음을 설교하기 때문이다.” (제 2 스위스 신앙고백, 13조)

그런데 '제2스위스신앙고백서' 90년 후에 작성된 웨민고백(WCF)에는 이런 귀중한 진리를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102년 후인 1658년 칼빈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회중파의 거두 존 오웬이 중심이 되어 작성된 사보이 선언에는 노골적으로 율법에 의한 칭의 사상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을 거부했던 세력은 16세기부터 쉬지 않고 도전하였습니다. 그들이 종교개혁을 파괴하는 중요한 방법은 '거룩을 강조한 율법주의(신율법주의)'였는데, 그것이 종교개혁 100년 후에 개혁교회의 중심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 참고 자료 ---

존 칼빈, 『기독교강요』

서철원, 『교회신학전집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쿰란, 2018).

코르넬리스 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황준호 역)(그 책의 사람들, 2015).

제2 스위스 신앙고백(1556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6년)

사보이선언(1658년)

침례교 신앙고백(1689년)

황대우, “개혁파의 선택론과 언약론”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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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에 대해 2019-05-01 14:39:09
신학적으로 행위언약 부분에서 율법과 명령들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누구나 명령들[the commandments of God(ESV)]을 지켜야만 합니다. 이것은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본문 속의 제2차 런던침례교 신앙고백서(1689년) 11 장 칭의에 관하여 1항 관련 부분을 율법과 명령들의 차이를 구별하여 빌 2:6~8 말씀에 가장 가깝게 수정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또한, 신앙 자체나 믿음의 행동이나 그 밖에 어떤 복음적 순종을 그들의 의로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빌 3:8,9; 엡 2:8,9,10) 모든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이르는 수동적 순종을 그들의 전적이고 유일한 의로 전가함으로써 그들을 의롭다 칭하시는 것이다.

(가상 수정)---> 또한, 신앙 자체나 믿음의 행동이나 그 밖에 어떤 복음적 순종을 그들의 의로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빌 3:8,9; 엡 2:8,9,10)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이르는 모든 명령들에 대한 순종을 그들의 전적이고 유일한 의로 전가함으로써 그들을 의롭다 칭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웨민의 순종부분과 비슷해지게 되나요.

우선 이제는, 신학적으로 행위언약에서 율법과 명령들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김리훈 2019-05-01 11:54:19
매우 좋은 글 입니다. 저도 능동순종 사상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롬 10: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상을 지지 할것인가 아니면 말것인가 ‘가 달려 있는것 같습니다. 매우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합신 목사 2019-05-01 11:50:54
다 맞는 말이네요. 흠 잡을 곳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흠을 잡으려고 노승수 목사 정이철 목사가 신학적으로 이단성이 있다고 헌의안을 올리고, 고신의 친구을 통해서도 시도했다는 말이 들립니다. 일이 커지면 커질 수록 능동순종은 이단사상이고, 능동순종의 근거는 오직 이전 시대의 학자들 뿐이고, 성경과 기독교의 원리와는 안 맞는다는 것이 더 증명되겠네요. 노승수 목사는 더 망신을 당하고, 이미 신학으로 안되어서 고소한 것도 찌질한 짓이라고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데 ... 김병훈 교수님도 구원받은 분이라면, 자신의 신학이 사람이 만든 교리에서 나왔음을 고백하고 다시 종교개혁 정통 신앙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 계속해서 박사학위도 없는 사람의 글이니 무시하다고 하고, 그러면서 은근히 누가 앞장서 정치적으로 정 목사를 잡아주기를 기대하는 듯 .... 일이 커지면 커질 수록 파장은 더 커지고, 결코 정치로는 정 목사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테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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