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모 목사의 성경 오역(誤譯), 오석(誤釋) 바로잡기(1)


글을 시작하며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헬라어 원문을 읽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바르게 번역된 성경의 중요성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예배에 사용하며, 또 가장 많이 읽고 있는 한글 개역 성경이나 개역 개정 성경의 번역은 부분적이기는 하나 원문과 거리가 먼 엉터리 번역들이 꽤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번역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얼토당토 않는 오역(誤譯)이나 거의 복음의 진리를 부정하는 수준의 악역(惡譯)은 지향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면에서 새 번역, 공동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이 한글 개역 성경이나 개역 개정 성경보다는 번역이 조금은 더 정교하다(물론 일부를 제외한 영어 성경은 우리 성경들보다 원문을 좀 더 정교하게 번역했다).

이전에 <바른믿음>에서 다루었던, 김성로의 [부활 복음]이나, 유석근의 [알이랑 민족] 같은 이단적인 주장들은 사실상 엉터리 성경 번역에 근거하거나, 엉터리 성경 해석을 근거로 세운 엉터리 주장들이었다.

김성로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한글개정에서는 ”인정“으로 번역되었다)되셨으니(o`risqe,ntoj/호리덴토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개정개역 롬1:4)에서 원문의 “o`risqe,ntoj”를 “선포(인정)되었다‘로 오역한 것을 근거로 부활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었다.

또 유석근은 창10:30(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에서 원문의 히브리어 ‘qedemah’를 오역한 ‘동쪽’을 근거로 욕단의 후손이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동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소설을 썼다(물론 히브리어 ‘qedemah’에는 ‘동쪽’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의미는 나중에 더해진 것이며, 창세기가 기록될 당시에 ‘qedemah’는 “앞쪽” 또는 “위쪽‘ 등의 의미로만 사용되었다. 그것은 고대인들에게는 동, 서, 남, 북의 정확한 방향이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성경의 오역(誤譯)과 오석(誤釋)들은 이단적인 위험한 주장들이 마치 성경인양 양산되는 근거가 되기도 하며, 교회로 하여금 바른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미력하기 그지없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업들을 통해 정이철 목사님이 추구하는, 바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바른 믿음이 <바른믿음> 사이트를 통해 더욱 확대되기를 소원하면서 우리 성경에서 꼭 수정해야 할 잘못된 번역이나, 또 번역은 바르게 했지만 해석을 잘못한 성경 본문들을 살펴서 시리즈로 엮어 <바른믿음>에 연재하려고 한다. 필자의 미력한 이 작업들이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바른 믿음을 갖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오역(誤譯)을 넘어선 이단적인 악역(惡譯)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멈추신지 400여년 만에 세례자 요한을 통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이스라엘을 향해 외치게 하신 첫 말씀은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는니라”였다(마3:2). 이 말씀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수께서 처음 외치신 말씀이기도 하다(마4:17). 이런 이유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그리고 그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불행하게도, 물론 필자가 모든 번역 성경을 다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모든 번역 성경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를 원문대로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번역은 번역이라는 한계 때문에 원문의 뜻을 100% 반영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원문의 헬라어 “h;ggiken”(엥기켄)을 “가까이 왔느니라”로 번역한 것은 오역 정도로 끝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전체를 흔들어버리는 이단적인 악역이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그러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가 왜 이단적인 악역인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막1:15의 세례자 요한 외침을 가지고 살펴보자.

먼저 번역 성경들이 이 부분을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 몇 가지 번역 성경의 사례들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개정개역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2)공동번역
"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3)새 번역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4)현대인의 성경
"드디어 때가 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기쁜 소식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5)NIV
"The time has come," he said.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6)KJV
"And saying, The time is fu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repent ye, and believe the gospel."

7)NASB
"and saying, 'The time is fu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

위의 번역 성경들에서 ‘가까이 왔다’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의 “h;ggiken”(엥기켄)은 “evggi,zw”(엥기조/가까이 오다)의 ‘완료형’이다. 이렇게 동사가 완료형일 때, 보통은 ‘과거형’으로 번역하면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번역 성경에서 ‘가까이 오다’를 별 생각 없이 통상대로 ‘가까이 왔다’로 번역한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오역이다. 왜냐하면 ‘가까이 오다’의 동작이 완료되면 ‘가까이 왔다’가 아니라 ‘왔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evggi,zw”(엥기조/가까이 오다)의 ‘완료형’인 “h;ggiken”(엥기켄)의 의미는 “가까이 왔다”가 아니라 단연코 “왔다”이다. 또 “h;ggiken”(엥기켄)이 히브리어 “카라브”를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면(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카라브’의 의미를 세밀하게 풀어서 표현하면, ‘이미 왔지만 완전히 온 것은 아니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 성경에서 “h;ggiken”(엥기켄)을 번역한 ‘가까이 왔다’는 ‘거의 다 왔지만, 그러나 아직 온 것은 아니다’의 의미이다. 이렇게 “h;ggiken”(엥기켄)의 의미가 ‘가까이 왔다’가 맞는다면, ‘가까이 왔다’와 어울리게 “때가 찼고”도 “때가 차 가고”, 또는 “때가 거의 다 찼고”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때가 찼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Peplh,rwtai o` kairo.j”(페플레로타이 호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예정된 시간(kairo.j/카이로스)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의 근거를 제시하는 말씀이다. 우리 성경에서도 “때가 찼고”는 잘 번역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때가 찼고”와 어울리도록 “h;ggiken”(엥기켄)을 “왔다”로 번역하지 못하고, “가까이 왔다”로 번역하는 엄청난 실수를 해 버렸다.

왜 이것이 심각한 오역인가 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번역 성경대로 하나님 나라가 아주 가까이는 왔지만, 아직 오지는 않았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아니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왕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그가 오셨을 때 하나님 나라는 그분과 함께 임했고, 그 나라는 그분과 함께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 나라는 임했고,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h;ggiken”(엥기켄)은 ‘가까이 왔다’가 아니라 단연코 ‘왔다’로 번역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번역 성경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세례자 요한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의 나라와 함께 보내신 메시아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며, 또 예수께서 하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도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번역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번역은 너무나 위험한 이단적인 악역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h;ggiken”(엥기켄)을 ‘가까이 왔다’가 아니라 단연코 ‘왔다’로 다시 번역해서 막1:15을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로 고쳐야 한다.
 

글을 마치며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는 아직(not yet)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성육신)으로 이미(already) 왔다. 또한 그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공생애로 역동적인(dynamic) 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h;ggiken”(엥기켄)이 말하는 성경의 메시지이다. 아무튼 지금은 아니지만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될 것이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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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모 목사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한국 교회를 신물 나게 체험하며 갈등하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교회를 꿈꾸며 1999년 김천에서 ‘제자들 경배와 찬양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창모 목사는 한국교회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이 단지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 등이 아니고 이미 한국교회에 만연된 잘못된 신학에 있음을 확신하고서 무엇이 바른믿음인지 신학적으로 깊이 고민하는 목사이다. 이창모 목사는 자신이 중2때 수련회에서 방언을 받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것을 ‘영의 기도의 언어’라고 가르치므로 의심없이 수 십년 동안 옹알거리는 방언현상으로 기도(?)하였던 대표적인 방언기도자였다. 김우현, 김동수 등이 저술한 거짓 방언을 미화하는 한심한 서적들을 접한 후 방언에 관한 깊은 신학적인 성찰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오늘 날 방언이라고 알려진 소리현상과 성경의 참된 방언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되었다. 이전의 자신처럼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다른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진정한 복음으로 돌이키기 위해 <방언, 그 불편한 진실>(밴드오부퓨리탄,2014)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