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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완성자 칼빈은 가장 위대한 성령신학자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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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1  13: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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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종교개혁 완성자 존 칼빈이 성령을 몰랐다고 알고 있다. 칼빈이 성령에 대해 일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성령에 대해 칼빈처럼 깊고 탁월하게 가르친 신학자는 역사상 흔치 않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와 구원이 신자에게 전달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보았다. 성령의 사역 없이는 우리의 구원이 있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칼빈의 성령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정통 신학 안에서 개진되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고 개혁교회들을 성경적 신앙으로 더욱 무장시키기 위해 작성했던 첫 번째 교리문답서에는 삼위일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명명할 때, 이것은 삼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경건한 신앙이 그르쳐 주는 대로 절대적으로 단순한 유일한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하나님의 성령을 말하는 것이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을 하나님이 부르신 신자에게 전달하고 적용하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가르쳤다. 우리의 구원을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협력사역의 산물로 이해하였으므로 칼빈의 신학은 곧 성령신학이었다. 칼빈은 성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성자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이루신 속죄와 구속을 성령이 하나님이 신자에게 전달하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성령의 사역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칼빈의 신학이었다. 칼빈의 전체 신학의 모든 부분에 성령론이 함께 개진되어 있었다.  

칼빈의 신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들은 칼빈의 신학 전체가 곧 성령론이라고 말한다. 칼빈은 성경의 권위는 신자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증거로 말미암아 확증된다고 가르쳤다(기독교강요, 1.7.4~5). 신자와 그리스도를 연합하게 만드는 것도 성령의 사역이라고 보았다(기독교강요, 3.11, 3.11.10).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일으시키는 분도 성령이라고 가르쳤다(기독교강요, 3.2.7).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을 택하신 자들에게 적용하시고, 신자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이루어주신 용서의 확신을 부어주시는 분도 성령이라고 보았다(기독교강요, 2.3.10).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 바깥에 계시는 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분리되어 있는 한,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고난받으시고 행하신 그 어떤 것도 쓸모없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것을 우리와 나누기 위해, 친히 우리의 소유가 되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셔야 했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3.11)

이와 같이 칼빈은 신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신자에게 적용시키시는 분, 즉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해하였다. 성령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시는 분으로 이해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을 대신하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 갈 수 있다고 보았다.

칼빈은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하시어 그리스도를 닮게하신다고 강조했다.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면서 신자들이 은혜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신다고 보았다.

“신자들은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천상의 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직접 호소한다. 이는 하나님이 성경의 말씀으로만 약속하셨다 할지라도, 신자들이 믿음 바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 하나님이 복음으로 알려주고 우리가 믿음으로 응시하는 보화는 기도로 파낼 수 있다.”(기독교강요, 3.20.2)

칼빈은 성령께서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성례를 수단으로 삼아 신자와 하나님의 교제와 연합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신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기도와 말씀과 성례와 멀어지는 사람은 성령의 은혜와 멀어져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심하게 될 수 있다고 보았다(기독교강요, 4.11).

성령에 대한 칼빈의 이와 같은 가르침은 기독교 신앙에서 성령의 역할을 가장 바르게 설명하는 내용들이다. 오늘 날 기독교 신앙과 성령에 대한 이해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오순절 운동, 신사도 운동 등의 성령운동가들에서 결코 찾을 수도 없는 성령에 관한 성경적이고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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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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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울처럼 2018-03-01 15:46:59

    "칼빈은 성령께서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성례를 수단으로 삼아 신자와 하나님의 교제와 연합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신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기도와 말씀과 성례와 멀어지는 사람은 성령의 은혜와 멀어져서 결국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가르쳤다."

    => 이 부분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구원론적 이해가 필요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론에 비추어 이 사람(신자)은 애당초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위 문장을 보면 처음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가 점차 그 관계성이 틀어진다는 것으로 이해되며 그것은 '성도의 견인' 원리에 어긋나 보이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원리로 볼 때, "기도와 말씀과 성례에 멀어지는 사람(신자)"은 애당초 믿음의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한 전제라면 위 문장이 쉽게 이해되지만, 만약 위 문장에서 '신자'의 개념이 '믿음으로 중생한 자'를 의미한다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ㅠ
    그러나 위 문장에서 "신자'의 개념을 '교회 안의 알곡과 가라지' 모두를 포함한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문장에서 대해 제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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