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9 05:01 (수)
박수무당의 학당에 최갑종 총장도 출연하니 심히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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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무당의 학당에 최갑종 총장도 출연하니 심히 아름다운가?
  • 정이철
  • 승인 2018.02.09 03:41
  •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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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의 <새물결 아카데미>에 예장 백석의 백석대학교 최갑총 총장이 출연하는 장면

이제 더 이상 ‘김요한 목사’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목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요한은 원래 예장 합동의 목사였으나, 소속 노회(한서노회)로부터 이미 면직되었다고 한다. 김요한이 무슨 이유로 면직 당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참된 일꾼에게 ‘면직’이라는 처분이 내려지도록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천주교 측이 루터와 의로운 사람들을 파문하고 이단으로 몰았다. 그러나 김요한 씨가 합동의 소속 노회로부터 받은 면직 처분이 그러한 경우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김요한이 거짓 영의 부림을 받는 거짓 선지자라는 사실이 드러났으므로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면직 처분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김요한을 기뻐하시지 않으므로 허락하신 일로 이해될 수도 있는 것 같다.

김요한은 처음부터 성령과 유사하게 활동하는 다른 영, 즉 거짓 영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김요한을 '박수무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다음은 김요한이 자신의 책 <지렁이의 기도>에서 90년대 중반부터 자신에게 나타난 성령(?)의 체험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그날은 1999년 6월 8일 저녁 9시 무렵이었다. 이 날이 내가 생애 처음으로 ‘불의 밤’을 경험한 날이었다. 그때의 체험이 너무 강렬하고 생생하여 18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29 페이지)

“1999년 6월 8일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그날 나는 평상시처럼 저녁 기도를 하기 위해 서재에 들어가 무릎을 꿇자마자 곧장 불을 체험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어떻게 손을 써볼 도리가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가령 한참 기도를 하는 중에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몸이 떨리는 것 같으면 기도를 중단하고 일어나 나와버렸기 때문에 그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는데, 그 날은 워낙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어서 달리 어떻게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불 체험은 시작되었다.”(30,31페이지)

​“(그 당시의 일기장의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엎드리자마자 엄청난 진동이 온 몸을 쥐어짜듯 흔들어댐. 지진이 난 것처럼 몸이 요동치며, 손을 내저으며, 감당치 못할 은혜 앞에서 몸 전체가 바닥에 내동이쳐진 상태에서 데굴데굴 구름. 온 몸을 감싸는 불길에 뜨거워서 견디지 못함."(33 페이지)

성령이 지상에 강림하는 때 불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있다. 그러나 성령이 실제로 뜨거운 불이 되어 사람의 몸을 뜨겁게 한다거나, 그와 유사한 신체적 느낌을 동반하면서 신자들 속으로 오신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전혀 없다. 그런 불과 같은 성령체험 또는 불세례를 받고서 미치광이처럼 굴렀고 공처럼 튀어 올랐다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이단의 길로 갔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성령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알게하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는 등의 일을 하신다고 성경에 나와 있다. 김요한이 경험한 것처럼, 몸이 진동하고 바닦에서 떼굴떼굴 구르게 되는 등의 요상한 성령체험(?)은 무속인들의 신내림 현상과 같다. 그런 일을 일으키는 성령에 대해 성경은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김요한 자신도 성령이 하시는 그런 일을 피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왜 김요한은 성령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피하려고 했었을까? 마치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피신하는 연약한 여인처럼 성령의 역사하심을 피하려고 했다고 한다. 김요한과 성령의 관계는 매우 이상하다. 이와 같은 김요한과 성령의 관계를 성경의 모든 내용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으니, 참으로 괴이하다.

김요한은 90년대 중반에 특이한 성령을 체험을 한 후 다음과 같은 점쟁이 무속영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순간 성령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주셨다. ‘너희 가정은 서울로 들어와야 길이 열리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활동의 폭이나 길이 막힐 수박에 없으므로 성남을 떠난 봉담으로 이사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라.’ 그리고 나는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토씨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17)

특히 김요한에게 성령(?) 하사하신 비밀의 미장의 무기는 현실계와 영계를 넘나들면서 하나로 소통하게 만드는 방언과 방언통변이다. 김요한은 자신의 방언을 녹음하여 방언통변하는 신령한 여인들에게 찾아가서 통변을 받는다. 때로는 전화로 자신이 방언을 하면 그 여인이 통변을 해 준다. 다음은 김요한의 책에 나오는 방언과 방언통변에 대한 내용의 일부이다.

“내가 방언기도의 독특성과 효력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은 본격적으로 방언통역을 받고 나서다. 내가 처음으로 방언통역을 받은 날은 2013년 3월 20일이다. 이날 지리산과 섬진강이 맞닿은 전라도 남원의 한 교회를 방문하여 그곳 교회를 섬기는 사모님께 방언통변을 받았다 ... 어린 시절 집에서 할머니가 소위 영서라고 해서 집에 찾아온 사람들의 방언을 요상하게 생긴 글로 받아 적어 통변해주는 것을 자주보긴 했지만, 내가 육성으로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25-26.)

“그날 받은 방언통변 내용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다. 다만 대략적인 골자를 소개하다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한국의 중장년 세대, 특히 10대들에게 관심이 많으시다 ...(중략) 하나님께서 한국의 새로운 세대를 준비시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26-27)

기독교에 대한 약간의 상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모습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무당들과 함께 일하는 영이 성령으로 위장하여 교인들 속으로 들어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김요한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한민국의 보통의 교인들 다수가 이런 일을 열열히 환호한다는 사실이다. 이전에 접집을 드나들면서 경험했던 일을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 버젓하게 경험하게 해 주니 너무도 친근하고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김요한이 무슨 글이라도 써서 페북에 올리면 ‘좋아요’가 보통 400-700개 나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교회에 망조가 진하게 드리웠다.

김요한을 지지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그가 새물결 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출판사의 대표이니 상당한 수준의 기독교 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많은 책을 출판하여 한국교회에 보급하는 기독교 지성 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므로 김요한이 하는 말이라면 일단 통하는 것 같다. 설마 출판사 대표인 김요한이 박수무당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속는다. 사탄의 또 하나의 작품은 이렇게 탄생했다.

김요한이 운영하는 <새물결 아카데미>라는 것도 김요한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데 일조하였다. 공부 좀 한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을 책으로 써서 내고 싶어 한다. 일평 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책 한 권을 가진다는 것은 상당한 기쁨이고 자랑거리이다. 그래서 김요한이 운영하는 <새물결 플러스>를 통해 책을 내려는 사람들이 아마도 줄을 섰을 것이다. 내가 김요한의 새물결 플러스를 을 통해 첫번재 책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를 출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김요한과의 관계가 혹시 책을 낼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이 박수무당 김요한이 유명해진 가장 주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공부 좀 한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한다. 김요한은 <새물결 아카데미>라고 하는 일종의 상설 세미나를 운영하는 대표이기도 하다. 김요한과 친해지면 상설 세미나의 강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점을 생각하면서 김요한을 좋아하였고 지지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김요한은 더 유명해졌고, 김요한이 무조건 따르고 밀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김요한이 이런 인물이므로 그냥 둘 수가 없다. 김요한이 반드시 이단으로 규정되어야 할 중대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독교의 옷을 입고서 박수무당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신경쓰지 않아도 될 자들이다. 그러나 김요한은 다르다. 제법 이름난 교수들도 자기 책을 내려고 김요한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공부 좀 한 사람들이라면 <새물결 아카데미>라는 곳에서 강의를 해 보고 싶어 한다. 김요한에게 이렇게 큰 영향력이 있으므로 김요한은 특별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새물결 아카데미>의 실제 강의 모습을 담고 있는 한 영상을 보았다.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장 백석에서 운영하는 백석대학교의 총장 최갑종 교수가 김요한의 <새물결 아카데미>에 출연하여 함께 칭의론을 토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요한이 운영하는 <새물결 아카데미>는 신학교의 총장도 오라고 하며 거절하지 않고 가는 곳이다. 그러니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물결 아카데미>에 강사가 되어보기를 꿈꾸고 있을까?

최갑종 총장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도 행위에서 거룩함이 나타나지 않으면 구원이 취소된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신약학 교수이다. 김요한이 행위구원론자 최갑종을 부르고 “사람들이 총장님을 알미니안이다! 행위구원론자이다!라고 하는데 ...”라며 거드는 모습을 보았다. 박수무당이 벌이는 굿판에 예장 백석의 신학교의 총장까지도 함께 뛰면서 방울을 흔드는 모양새이다. 이러니 김요한이 죽지 않고 살 재간이 있을까? 누가 다음의 영상을 들어보고 김요한과 최갑종이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말해주면 좋겠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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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음성따라 갑니다. 2018-02-10 08:00:34
모두 흥분을 가라 앉히세요. 다 음성 따라 가는 겁니다. 주님의 양은 주님의 음성을 따라 갈 것이고, 사단의 양 무리는 아무리 그 길이 아니라 해도 그 길을 따라 갈 것이고...마지막날 누군가는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 소리를 듣겠죠...이 땅에서 귀하게 쓰임 받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쓰임은 쓰는 쪽의 의도가 중요한거죠...누군가는 선한 도구로, 누군가는 다른 영혼을 살리는데 쓰임 받고는 지옥으로 갈 자도 있겠죠...지금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이름에 너무 목 매지 마세요. 그가 아무리 소위 큰 교회를 하고 있고 유명한 신학교 교수라 할지라도...그들이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닙니다.

진리의검 2018-02-09 20:04:11
그리스도안에님! 귀하가 미혹되어 분별하시지 못하시는 사안사안의 무지한 글에 답변을 달자면 날이새도 부족하겠습니다 그리아시고 오늘은 이만 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어서 빨리 진리와 비진리의 말씀을 구분할수 있는 은혜가 귀하에게 속히 임하시길 기도하며 오늘은 이만 마칩니다.

진리의검 2018-02-09 20:00:59
방언 통변은 성경에서 분명히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로 언급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국어로만 여길 경우 마치 은사가 없이도,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통역대학원에서 외국어 공부를 잘 마친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 외국어를 통역할 수 있는 것처럼 비칠 경우가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나 현대 교회에서 방언은 반드시 이땅에서 실행되는 외국어여만 한다는 교리적 틀에 매이면 이런 딜레마가 생긴다고 봅니다:::::>그리스도 안에서님! 유대교 선민들의 복음은 외세를 물리치고 다위왕조의 옛 제국을 재건해줄 정치적 메시아라고 믿었고 반면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선민이나 로마인이나 똑같은 죄인이고 구원의 대상이다는 만민구원 영생구원의 복음이라고 하시자 자기들의 신앙의 정체성과 맞지 않자 그리스도를 십자가 못박아 죽게 하셨지만 죽음을 이기시고 인자의 몸에서 영생구원의 몽으로 재창조되신 에수님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사명을 주시며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보헤사 성령님 오시길 기도하시라 하셨고 늦은비로 오신 성령님의 첫사역은 120명의 제자들을 통하여 각국의 외국어 방언을 통하여 하나님께 에수님을 이땅에 인자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게까지 감수시키면서 전하고자 하셨던 이방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복음 말씀의 전파로 구속사역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통한 방언의 은사를 통하여 그토록 이루고자 하시었던 주된 사명은 유대교 선민들에게 난공불낙의 여리고성으로 구축되었던 이방인들과 만물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 당신이 창조하셨던 피조물들에 대한 애정 끝이 없으신 사랑의 발로라고 이해하지 못하면 방언의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주된 사명을 모르게 됩니다 부디 회심하시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속하시고 부활하셔서 그토록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만민을 구속하시고자 당신의 아들까지 피흘리게 하심으로 이루고자 하셨던 만민구원의 복음인데 지금은 이단 복음자들에 의해 미혹당하니 얼마나 쓸프고 애통한 현실입니까?

진리의 검 2018-02-09 19:42:46
일부 신학자들은 오순절 당시부터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참으로 무지함의 극치를 달리는 목사님이신 귀하를 생각하니 평신도인 제가보기에도 불쌍하고 측은하시기도 합니다 무엇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귀하가 성경말씀은 적당히 알면서 이단 복음 신학자들의 잘못된 주장" 오순절 당시부터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었을수도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라는 성경말씀을 호도하는 사단에 속한 자가 아니면 있을수 없고 악영의 사단이 준 방언이라는 바른 진리의 주장에 대해서 물타기하는 저급한 성경의 역사를 다시 쓸려고는 변개시키려는 사단의 간교한 미혹함에 단단히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귀하께 질문합니다 성경말씀 어디에 귀하가 주장하는 방언이 외국어가 아니었을수도 있다고 적혀져 있는가요? 적혀 있지 아니하면 믿지를 마시고 누구의 주장인지 검증해보셔요? 무엇때문에 두루뭉실 분별치 못하고 주장하여 사단의 방패막이가 되는 어리석음을 자처하십니까? 사도 바울이 말슴하신 자기는 더 방언함을 자랑함이라는 표현은 고린도 교인들이 주절거리는 사단의 방언이 아니라 각국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사도바울 당신이 각국의 방언을 말할수 있음을 나타내신것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알것은 우상 숭배에 찌든 고린도교회 하나님앞에 내세울것이 없는초라한 교회입니다 그 고린도교회를 복음의 말씀으로 살리려는 사도바울의 고린도 교회를 향한 외침 귀담아 듣기를 소원하십시요.

진리의검 2018-02-09 19:27:18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전도의 컨텍스트에서 외국어로 언급되고, 고린도전서 14장은 교회의 컨텍스트에서 알지 못하는 영의 언어로 언급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 :::::>
귀하의 주장은 아직도 미혹당하는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말함이"라는 사도바울께서 말씀하는 주체는 사도바울이 아니라 타락한 우상 숭배의 상징인 뜻도 의미도 모르는 방언기도를 고린도 교회안에 가지고 와서 교인들을 미혹시켜 행하는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된 실태를 직언한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왜? 귀하같은 방언과 방언기도 추종자들은 그렇게 열광을 하듯 환영하는것일까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과 방언기도를 하나님께서 알아듣는다고 사도바울이 말씀하신 의미를 곡해해도 180도 완전히 곡해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에수님께서도 기도할때는 비오듯 피눈물을 흘리시며 힘들어 하셨는데 당신들은 며칠을 기도해도 힘들지 않다고 한다니 누가 예수님의 기도와 반대인가요?

아울러 성경 어느 구절에 방언이 하나님께 한다고 말씀하는는가요 참으로 한심한 이단 복음 추종자들만이 그렇다 합니다 어서 속히 미혹함에서 깨어나셔서 어머니를 간음하고 온갖 우상숭배속에 찌든 고린도교인들의 잘못된 신아을 사도바울은 꾸짖엇건만 귀하들은 성경적이다고 하니 에휴 한숨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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