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인물 > 김요한
김요한의 방언, 방언통변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다리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1.21  06:23:15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미국 미조리 주에 '아이합'(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라는 이상한 기도원을 운영하는 원장 마이클 비클이라는 사람이 있다. 마이크 비클은 신학교는 물론이고 일반 대학도 조차도 졸업하지 않았다. 스스로 많은 책을 구입하여 읽은 것이 그의 신학 연구의 전부이다. 이 사람이 20세를 갓 넘겼을 때 어떤 은사주의 루터교회가 청빙하여 목회를 하게했다.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령의 음성을 듣는 은사주의 교회였으므로 가능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나중에 미국의 오순절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마이크 비클은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아이합(IHOP)에서 24시간 이어지는 기도운동을 전개한다. 동시에 그곳에 상주하는 예언자들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예언을 받게 한다. 미국의 한인들도 아이합에 방문하여 그곳 예언자들의 예언을 접하였고, 그들의 예언 때문에 신앙과 삶이 망가지는 일들이 있었다. 뉴욕의 유명한 한인교회의 목회자도 아이합을 방문하여 예언을 받았고, 그 내용을 설교에서 언급하여 큰 문제가 되어 결국 그 교회를 사임하였다.

아이합의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하는 24/7 기도’는 마이클 비클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직통계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83년에 금식기도하다가 “24시간 예배하는 다윗의 장막을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최초로 들었다. 90년대에 이집트 카이로를 여행할 때 호텔 방에서 같은 음성을 또 들었다. 거짓 예언자 밥 존스를 통해 같은 예언을 받기도 했다. 99년 5월에 “이제 시작하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또 듣고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하는 24시간 기도’를 시작했다.

IHOP의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하는 24시간 기도’는 다윗이 지방 변두리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한 후 제사장들을 시켜 24시간 그 앞에서 기도와 찬양을 올리게 하였던 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궤에 거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그리스도의 피 뿌리심 받은 성도들의 마음과 몸 안에 거하신다. 법궤 앞에서 24시간 찬양과 기도를 드렸던 다윗의 방식은 이제 필요하지 않고, 맞지도 않다. 더군다나 한 장소를 정하여 그리한다는 것은 더욱 더 옳지 못하다.

아이합의 기도운동이 비성경적이므로 당연히 그곳에서 거짓 하나님의 미혹이 많이 나타난다. 처음부터 거짓 하나님이 준 계시를 따라서 시작되었으므로 그런 기도를 할수록 거짓 하나님과의 교제가 풍성해진다. 거짓 하나님이 베푸는 직통계시도 나타나고 있다. 

“하나의 예이지만 60년대에 조용기 목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한국 땅 서울에서 부흥을 일으키겠다!’는 말씀을 들었다. 이에 조 목사가 마음에 감동 받는다. 그가 다시 그 받은 마음을 갖고 ‘주님, 이 땅에 성령을 부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똑같이 다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이러면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인다. 하나님께서 손을 펴시고 그분의 능력이 이 땅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믿기로는 이전부터 영원까지도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움직일 것이다.”(마이크 비클)

마이클 비클이 한국에 왔을 때, 한 기자가 기도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이와 같이 말했다. 말을 쉽게 말하면,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직접 주거니 받거니 직통교제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맞는 말 같다. 왜냐하면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에게서는 실제로 그런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33:11)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9,10)

그러나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주어지던 계시가 신구약 66권으로 완성되고 종결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한다거나, 특히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성령은 더 이상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새로이 직접 받게하시지 않는다. 지금 성령께서는 '성령의 감동'으로 이미 주어진 특별계시, 즉 신구약 66권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게 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상황에서 올바르게 적용되도록 도우신다. 이것은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 ‘성령의 조명’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직통교제의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 즉 사람이 기도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의 초월적 세계로 넘어가는 일은 기독교에서는 없는 일이다. 다른 거짓 종교에서는 유체이탈 등의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결국 마이클 비클의 기도에 대한 이런 이상한 이야기는 불건전한 잡설이다.
 

김요한의 땅과 하늘을 넘나드는 기도

새물결 플러스 대표 김요한의 책 <지렁이의 기도>에서기도에 대한 똑 같은 이야기를 보았다. 김요한은 기도가 우리로 하여금 하늘과 땅, 영원과 시간을 넘나들게 만드는 사다리라고 이야기했다.

“기도는 하늘과 땅, 초월과 내재, 영원과 시간을 연결하는 사다리다. 기도의 사다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땅에서 하늘로, 내재의 세상에서 영원의 세계로, 시간의 영역 속에서 초월의 공간으로 들어설 수 없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 50)

김요한의 기도에 대한 이런 설명은 매우 심각하다. 하나님의 계시 수납자들이었던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의 기도를 이렇게 설명했다면 무방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사람의 이성과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초월적 세계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성경기록자들에게 임하였으므로 그들이 초월적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고, 그 내용을 성경으로 기록하였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요한 사도는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갔다. 사도 바울도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삼층천으로 올라갔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환상과 꿈을 꾸면서 초월적 세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기록하였다.

꼭 기도할 때만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겠으나, 그들의 기도에 이러한 특성이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특성이 따르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이제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신구약 66권으로 종결되었고, 이제 더 이상의 하나님의 계시가 없기 때문이다. 김요한이 주장하는 ‘땅에서 하늘로, 내재의 세상에서 영원의 세계로, 시간의 영역 속에서 초월의 공간으로’ 들어서게 만드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기독교 안에 없다.
 

기도에 관한 성경적인 이해

그러면 우리에게 기도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신구약 66권을 통해 약속하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위해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족하여 구할 자격도, 은혜를 누릴 자격도 없으나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간구하니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66권의 말씀의 의미를 가르쳐 주시고, 우리가 그 말씀을 붙들고 살도록 지혜와 힘을 요청하는 수단이다.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면 성령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말씀대로 살고,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신자들을 위해 기도했던 내용을 보면 이런 사실이 분명해진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새물결 플러스>, <새물결 아카데미> 대표 김요한

<김요한이 생각하는 신학과 기도>

그러나 김요한이 말하는 기도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기도와 전혀 다르다. 김요한은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기도는 최고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학이란 본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하나님에 대한 공부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학을 하나님에 대한 어떤 정보나 지식을 취득하는 학습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신학은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자신을 투신함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바로 그 일을 성취한다. 따라서 기도야말로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신학 공부인 셈이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 50, 51)

하나님을 알게 만드는 신학의 목적이 기도로 성취된다고 한다. 김요한이 하고 싶은 말은 신학이 구축하여 가르치는 목표가 기도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김요한은 ‘기도야말로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신학’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어느 산골짜기의 기도원 원장이 가장 탁월한 한국 최고의 신학자라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참 이상한 말이다. 어느 곳에서 기도의 제단을 쌓고 있는 여전도사들과 권사들이 진정한 신학자라는 말인데 ...

사실은 이렇게 말해야 정상이고 성경적이다. 기도 없이 말씀을 읽으면 이성의 한계를 넘지 못하니 말씀이 말씀되지 못한다. 기도하면 성령이 더욱 조명하시니 이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진정한 성경적 신학이 가능해 진다. 성경 66권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말씀의 뜻을 조명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기도로 말미암아 말씀을 온전하게 깨달을 수 있으므로 신학은 기도의 의존해야 한다. 올바른 신학은 기도와 함께 할 때 가능하고, 기도하면서 수립된 신학이 가르치는 내용이 우리의 신앙과 삶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야 신학과 기도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김요한의 말은 뭔가 다르다. 왜 그럴까? 김요한이 자신이 체험한 기도 안에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목회자들이 하지 않는 위험스러운 말을 하고 있다. 김요한의 기도에 대한 생각과 이해는 성경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의 책을 읽으니 그 원인이 보였다. 김요한은 실제로 기도를 통해 현실계와 영계를 그리고 땅과 하늘을 넘나드는 체험을 하고 있다. 신학이 희미하게 알려주는 하나님을 김요한은 기도로 더 쉽고 생생하게 경험한다. 말씀(신학)을 통해 희미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이 김요한의 기도의 세계에서는 SNS 화상통화처럼 생생하고 쉽게 연결된다. 
 

<방언과 방언통변으로 하늘로 들어가는 김요한>

김요한이 기도를 통해 하늘과 땅, 초월계와 현실의 세계를 실제로 넘나들고 있는 모습을 그의 책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성령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주셨다. ‘너희 가정은 서울로 들어와야 길이 열리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활동의 폭이나 길이 막힐 수박에 없으므로 성남을 떠난 봉담으로 이사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라.’ 그리고 나는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토씨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17)

김요한은 이사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난 다음 “사랑을 추구하면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을 인용한 것을 보면, 그는 이런 현상이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예언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17). 지금도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예언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김요한을 하늘과 땅을 넘나들게 만드는 더욱 특별한 기도의 방식은 방언과 방언통역이었다. 김요한은 현대의 거짓 방언과 방언통변 은사에 대해 많은 옹호하는 말을 자신의 책에서 자주하였다.

“방언은사의 진가를 알려면 방언통변을 받아봐야 한다. 방언통변을 받아보면 방언은사가 얼마나 깊고 오묘한 그리고 유창하고 수려한 기도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자연의 인식과 지성이 도달할 수 없는 매우 깊고 높은 수준의 기도이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24)

김요한이 체험하는 방언과 방언통변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면 하나님의 계시가 신구약 66권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다. 김요한이 성경 외의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저렇게 생생하게 받고 있다면 지금도 하나님은 직접 특별한 사람들을 통해 예언을 주시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들을 통해 비밀스러운 계시를 주시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요한은 자신의 방언과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이상한 여자들과 함께 하늘과 땅을 넘나들고 있었다. 

“내가 방언기도의 독특성과 효력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은 본격적으로 방언통역을 받고 나서다. 내가 처음으로 방언통역을 받은 날은 2013년 3월 20일이다. 이날 지리산과 섬진강이 맞닿은 전라도 남원의 한 교회를 방문하여 그곳 교회를 섬기는 사모님께 방언통변을 받았다 ... 어린 시절 집에서 할머니가 소위 영서라고 해서 집에 찾아온 사람들의 방언을 요상하게 생긴 글로 받아 적어 통변해주는 것을 자주보긴 했지만, 내가 육성으로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25-26.)

“그날 받은 방언통변 내용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다. 다만 대략적인 골자를 소개하다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한국의 중장년 세대, 특히 10대들에게 관심이 많으시다 ...(중략) 하나님께서 한국의 새로운 세대를 준비시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26-27)

“다시 한 번 수소문 한 끝에 이번에는 경남 진해의 한 작은 교회를 찾아 방언통변을 받았다. 그 날이 2013년 4월 28일이었다. 그런데 그곳 교회의 사모님께서 해주신 방언통변 내용은 남원에서 받았던 방언통변과 내용이 또 달랐다. 주로 한국교회 및 한국사회 개혁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27-28)

“우리는 LAX 공항 옆에 있는 크라운 호텔 1층 로비에서 탠 스니드 목사님을 만나 교제하게 되었다.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목사님이었다. 그런데 댄 스니드 목사님이 나를 보자 대끔 기도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더니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앞으로 한국에서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 한국에서 새로운 세대가 한국사회와 역사에서 새로운 일들을 이루어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8분가량 기도를 했다. 댄 스니드 목사님의 예언적 중보기도를 들으면서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 이건 남원 사모님하고 나눴던 방언통변 내용과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데 ...’”(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30)

“인천공항에 도착한 직후 나는 조용한 곳을 찾아 남원에 계신 사모님께 핸드폰으로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저 김요한입니다. 제가 직접 찾아뵈어야 하는데 너무 바빠서 시간을 못 내고 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핸드폰으로 방언통변을 받고 싶은데요?’ 사모님이 그러자고 하셨다. 핸드폰 수화기에 대고 방언을 시작하자마자 저쪽에서 이런 통변이 들려왔다. ‘아들아, 그래 네게 넓은 세상에 나가서 성령으로 감동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슨 생각이 드느냐? 내가 나의 뜻을 그만큼 소상히 알려주었으면 이제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충성하도록 하라.’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 사모님은 내가 미국에 다녀온 줄도 모르는데 말이다.”(김요한, <지렁이의 기도>, p.130-31)

개혁주의 출판사라고 알려진 새물결 플러스 대표 김요한이 이 모양인 줄 몰랐다. 나의 책이 새물결로부터 나오고 난 다음에 간간히 들려오던 말보다 더욱 심각하다. 이제 하나님이 그를 엎으시려고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신 것으로 보인다.

‘기도가 하늘과 땅, 초월계와 현실계, 영원과 시간을 넘나들게 만드는 비법’이라는 김요한의 주장은 자신의 생생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그 만의 사실이다. 김요한은 거짓 성령의 감동으로 미혹하는 예언을 전하는 사이비 예언자이다. 그는 거짓 영의 감동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신비한 변태적인 방언도 잘하는 자이다. 또한 동일한 거짓 영의 감동으로 김요한의 방언을 통역한다는 요사스런 여자들과 함께 ‘땅에서 하늘로, 내재의 세상에서 영원의 세계로, 시간의 영역 속에서 초월의 공간으로’ 자주 들락거리는 자이다.  

정이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바울처럼 2018-01-22 17:32:51

    '기도는 최고의 신학'이라...
    그래서 다들 최고의 신학을 하러 기도원을 가는건가...?
    그런데 왜 최고의 신학을 자랑하는 기도원이 많고많은 한국교회가 개독이라는 비아냥 소리를 들을까...?
    저들이 기독교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이해했다면 차마 저런 점쟁이나 무당이 하는 짓거리들을 낮뜨거워서라도 하지 못할텐데 말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기독인 2018-01-22 10:43:54

      "그 순간 성령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나는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토씨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

      김요한 목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고 있군요. 가증스런 죄악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나 느낌입니다. 자신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말하면서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큰 일 낼 사람이군요.신고 | 수정 | 삭제

      바른믿음
      최근 3개월 동안의 중요 기사 10
      후원방법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118 Ann Arbor-Saline rd, Ann Arbor, MI 48108(USA)
      대표(발행,편집):정이철(734 678 7133, cantoncrc@gmail.com)  |  편집자문: 정태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이철
      Copyright © 2018 바른믿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