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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 목사의 방언에 대한 설교는 매우 엉터리입니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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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6  05: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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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정이철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 사이트 <바른믿음>을 자주 보는 사람입니다.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바른믿음>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서울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님의 방언에 대한 설교의 동영상 주소를 보냅니다. 대형교회 목사가 하는 말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따르지 않을까 걱정이 되서 부탁드립니다. 덧붙여서 성공회 대천덕 신부의 성령세례 현상과 방언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목사님 사역에 함께 기도로 응원하겠습니다.

 

답변>
알려주신 서울만나교회 김병삼 목사의 설교 “기도의 언어에 대하여”를 잘 들어보았습니다. 김병삼 목사님은 성경의 참 방언과 현대의 거짓 방언의 차이에 대해서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함부로(억지로) 성경을 푸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계십니다. 자기 혼자만의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영혼들을 오류로 인도하고 있으니 훗날의 심판을 어찌 감당하시려는지 걱정입니다. 김병삼 목사는 아주사 거짓 부흥을 일으킨 이단들에 의해 시작된 오늘 날의 이단 방언이 성경의 방언과 아무 연관이 없는 거짓 현상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9:30초부터)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 사도 바울이 지금 방언에 대한 definition(정의)을 말하고 있어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영적인 언어이다.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 아시겠지요?

3절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영적인 기도의 언어이고 예언은 사람들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4절에서 방언과 예언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그러면서 5절에서 권면하기를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여기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방언과 예언의 가치를 두고서 무엇이 좋다! 나쁘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서 방언과 예언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방언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공동체 안에서는 예언이 더 중요하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이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18절에서도 드러납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많이 말하므로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김병삼 목사)

고전 14: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는 이단 방언 옹호자들이 가장 즐겨 써먹는 구절입니다. 방언으로 하나님께 비밀의 기도를 드린다는 억지 주장을 이 구절을 근거로 우깁니다. 대체 하나님이 모르시는 인간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무엇을 몰라서 우리가 방언으로 그 비밀을 하나님께 알려드린다는 것일까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 ‘비밀’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항상 하나님 편에 감추어진 비밀이지, 사람의 편에 감추어진 비밀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고전 4:1)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2:2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합니다. 고전 4:2절을 근거로 현대의 방언이 하나님께 비밀기도를 올리는 은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억지로 푸는 이단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방언이 초대교회 당시에 하나님이 직접 설교하시는 수단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방언은 아직 성경도, 설교자도 없었던 당시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방언이라는 특별한 수단을 통해 예배 등에서 직접 설교하셨던 수단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반드시 교회에서 공적으로 행해졌고, 또한 반드시 통역과 함께 행해졌습니다.

개혁신학이 이 방언이 중지되었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이 완성되어 교회에 주어졌고, 성경으로 신자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목회자가 등장하여 하나님이 방언으로 직접 설교하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방언을 통해 직접 설교하시면 성경 외의 직통의 계시가 있는 셈이고, 그러면 성경의 완전성, 종결성, 절대성이 무너집니다.

14: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은 당시 고린도에 잠입하여 거짓을 가르친 이단들이 퍼뜨린 거짓 방언에 대한 요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에 잠입한 이단들이 방언을 개인의 비밀의 기도의 은사라고 왜곡했으니 바울은 그들의 말을 거론하면서 바로잡았던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김병삼 목사님은 고린도의 이단들이 했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거짓된 방언 요설을 가르쳤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방언에 대한 definition(정의)을 말하고 있어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영적인 언어이다.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 아시겠지요?”(김병삼 목사)

이와 같이 성도들에게 가르친 김병삼 목사의 설교는 매우 나쁩니다. 성경의 방언은 하나님이 사람의 입을 이용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시는 은사였지, 절대로 개인이 비밀스럽게 기도하는 방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고린도 교회에 슬며시 다가와서 그런 거짓 이론을 가르친 이단들의 정체를 다음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고후 11:13)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의 시간 차이는 불과 5개월 정도이니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한 ‘궤휼의 역군’ ‘거짓 사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 고린도교회에서 거짓 방언까지 가르친 그 이단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가 고린도교회에서는 가장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김병삼 목사(서울만나교회 담임)

“사도 바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서 방언과 예언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방언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공동체 안에서는 예언이 더 중요하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이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18절에서도 드러납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많이 말하므로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김병삼 목사)

초대교회 당시의 예배에서 방언보다는 예언이 더 중요했다고 볼 가르침은 성경에 없습니다. 신약의 은사로서의 예언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현상이 아니고 사도들의 가르침 안에서 더 먼저 복음의 원리를 깨달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신약의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매우 종종 특별계시의 예언을 받기는 했으나, 그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로 제한되었고, 그 내용도 반드시 교회설립과 복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로서의 예언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방언은 하나님이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직통의 설교였으므로 당시 예배에서는 그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했습니다. 하나님이 방언으로 직접 설교하여 주시면 그 누구의 가르침보다 더 정확하고 권위있고 신령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 중에 방언이 나타나면 반드시 통역하여 전 교인이 함께 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예언은 성령의 조명의 은혜로 먼저 복음을 깨달은 신약의 선지자 등이 복음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말씀이었으나, 방언은 하나님의 직통의 설교였으니 방언이 예언보다 중하지 않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김병삼 목사는 기독교의 방언이 개인이 하나님께로 올리는 비밀기도라고 오해하고 있으니, 이렇게 어이없는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김병삼 목사님은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방언기도를 잘하므로 감사하였다는 식으로 가르쳤는데, 그것도 엉터리입니다. 방언에 대한 모든 성경의 구절은 방언이 사람을 향하여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행 2:4)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10:46)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19:6)
“방언을 말하는 자는”(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고전 14:4)
“방언으로 말하고”(고전 14:6)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고전 14:13)
“방언을 더 말하므로”(고전 14:18)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고전 14:19)
“다 방언으로 말하면”(고전 14:23)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고전 14:27)
“방언말하기를”(고전 14:39)

실제로 사도 바울은 터어키 말, 이스라엘 말, 그리이스 말, 로마 말을 유창하게 구사했고, 그리고 오매불망 스페인에 선교하러 가고자 소원했으므로 스페인 말까지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복음전파를 위해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므로 감사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상황에서는 '다른 나라의 언어'라는 개념은 약했고 '다른 지방의 언어'라고 이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온 세계가 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의 상황에서 '다른 지방의 언어'를 줄여서 말하면 '방언'입니다. 성경의 방언을 이러한 개념으로 이해야햐 합니다. (다음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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