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돈 교수님은 왜 벤자민 오 목사에게 이용당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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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돈 교수님은 왜 벤자민 오 목사에게 이용당했습니까?
  • 정이철
  • 승인 2017.12.15 13:05
  • 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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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정이철 목사님, 행위구원론자이고 신사도주의자인 미국 뉴저지의 벤자민 오 목사(사랑과 진리교회)가 왜 고신대의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박영돈 교수의 칭의론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었을까요? 믿음과 행위, 이 두 가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이 행위구원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벤자민 오 목사가 개혁주의 진영의 대표 학자인 박영돈 교수의 칭의론을 자기 교회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칭찬하는 이유가 매우 궁금합니다. 정이철 목사님께서 자세하게 분석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답변>
영상에서 나오는 벤자민 오 목사의 멘트와 인용되는 박영돈 교수님의 주장을 그대로 녹취하여 분석해 보겠습니다. 박영돈 교수님의 말에 아무런 하자가 없음에도 벤자민 오 목사가 자신의 행위구원 사상을 위해 억지로 악용하였는지, 아니면 박영돈 교수님이 행위구원론자가 좋아할 내용의 주장을 정말 하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벤자민 오 목사의 멘트 1>
“그렇다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 교회에 다니며 사람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지옥으로 보낸 거짓말은 뭘까? 그게 바로 거짓 구원론입니다.”(벤자민 오 목사)

벤자민 오 목사는 현대 교회의 거짓 구원론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벤자민 오 목사가 천주교나 이단들의 구원론을 거짓 구원론이라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므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벤자민 오 목사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에 정착된 정착된 '이신칭의' 구원론을 마귀의 거짓 구원론이라고 공격하였습니다. 벤자민 오 목사는 오래전 변승우 목사와 친분을 쌓으면서 신사도운동 사상을 전파할 때부터 강력하게 행위구원론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의 장로교 신학을 대표하는 고려신학교의 대표적인 조직학자 박영돈 박사의 칭의론이 벤자민 오 목사의 이단적 행위구원 사상을 보강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공개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므로 더욱 더 충격적입니다. 그가 박영돈 교수의 어떤 주장을 이용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인용된 박영돈 교수의 주장 1>
"칼빈은 믿기만 하면 순종하지 않아도, 순종의 열매를 맺지 않아도 구원받는 생각을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가 순종의 열매 때문에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는 것처럼, 순종의 열매가 없으면 구원을 못 받거나 다시 구원이 상실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만일 칼빈이 정말 그렇게 가르쳤다면 그를 훌륭한 종교개혁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은 아무 공로나 자격이 없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믿음을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여 주심으로 얻습니다. 인간의 순종과 회개가 구원을 만들거나,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된 후 순종과 행함으로 구원이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확실한 구원얻는다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롬 5:9)

순종은 구원의 원인이 아니고 결과입니다. 순종이 먼저 있었으므로 구원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순종이 부족하여 다시 구원에서 탈락되어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대체 얼마나 순종해야 구원이 유지되고 떨어지지 않는 것이지 누가 말할 있을까요? 박영돈 교수처럼 말하면 하나님의 복음의 영광이 훼손됩니다. 박영돈 교수의 주장은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지만, 이후 인간의 합당한 행위(회개, 순종, 성화)에 의해 구원이 완성된다는 행위구원론 또는 신인협력구원론의 내용이 떠오르게 합니다. 
 

벤자민 오 목사의 멘트 2>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다. 행함은 구원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상급에 관계된 것이다. (앞부분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맞지요? 행함은 상급에 관계된 것이다. 이것은요? 이것이 왜 그럴듯한 거짓말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성경은 한 번도 믿음과 행함을 분리한 적이 없다. 둘째, 믿음이 진짜 믿음이면 반드시 행함이 뒤따르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것을 아주 교묘하게 나눈 것입니다.”(벤자민 오 목사)

벤자민 오 목사는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행함이 구원의 근거가 되거나, 행함이 구원을 유지하는 근거라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내세우는 신앙을 다음과 같이 심히 책망하고 경고합니다.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롬 9:32)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3)

벤자민 오 목사의 말처럼, 행함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 구원을 주는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믿음이 진짜이면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벤자민 오 목사는 행함이 구원 이후 상급에만 관련된 것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이 마귀의 거짓 가르침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말은 곧 행함이 구원의 근거이고, 또한 행함이 구원을 유지하는 필수적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구원론 또는 신인협력구원론입니다. 성경은 행함으로 구원을 유지한다는 사상에 대해 이미 다음과 같이 책망했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성경 어디에도 행함이 구원을 얻게하거나, 구원을 지켜준다고 말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성경은 벤자민 오 목사의 주장처럼, 행위로 구원을 얻거나 행위로 구원이 유지(완성)된다는 사상이 하나님이 저주하시는 '다른 복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계속해서 벤자민 오 목사가 자신의 비성경적인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박영돈 교수의 어떤 말을 이용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인용된 박영돈 교수의 주장 2>
“행함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행함이 없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행함은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해 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검증에서 탈락한 죽은 믿음이지요.”(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의 행함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처음의 말을 맞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이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라는 그 다음의 말은 행위구원론자들이 즐거워하는 거짓된 가르침입니다. 박영돈 교수는 다른 뜻으로 말했을지라도 결국 이단에 의해 크게 이용되고 있으니 이 말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합니다. 해명하거나 사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박영돈의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박영돈 교수의 "행함은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해 줍니다"라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가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얼마든지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었고, 이후의 행위(회개, 순종)으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신인협력 구원사상을 설명하는 표현으로도 이용될 수 있습니다. 

박영돈 교수는 구원받는 자에게 반드시 따라오는 성화에 대해 강조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하신 것 같습니다. 구원받는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이 아담에게서 영적으로 유전되는 죄의 오염을 고치시기 시작하니, 구원받은 신자에게서는 반드시 삶이 변화는 성화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화를 설명하다가 조금만 잘못하면 행위구원론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성화를 강조하고 싶어도 다음의 몇 가지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서면 안 됩니다.  

1)성경은 하나님께서 성화를 확인하신 후 구원을 주셨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2)성경은 구원받은 자의 성화가 부족하므로 하나님께서 다시 지옥에 보낸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3)성경은 구원받은 신자가 이 땅에서 완전하게 성화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4)성경은 모든 구원받은 자의 성화가 동일하게 진행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성화됨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공로는 아닙니다. 성화는 구원받을 때 임하신 성령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므로 나타나는 구원의 열매입니다. 성화를 위해 우리가 마음으로 소원하고 노력해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근본적으로 성화는 구원받은 자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벤자민 오 목사(미국 뉴저지, 사랑과 진리교회 담임)

벤자민 오 목사의 멘트 3>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아멘! 그러므로 행함은 구원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것이 너무나 그럴듯한 거짓말이었고, 무수히 많은 교인들이 이 거짓말에 속에서, 아마 제가 아직 안 가보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억울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나누는 이야기는 똑 같은 맥락에서 정말 신학적으로 아주 치명적인 구원론의 오류인데, 그게 뭐냐하면 ‘구원은 칭의에만 관계된 것이고 성화는 상급에만 관계된 것이다’라는 거짓말이지요.”(벤지만 오 목사)

‘제가 아직 안가보았지만’...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벤자민 오 목사는 어쩌면 자신이 이후 지옥에 가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벤자민 오 목사는 행함이 구원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암시(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파괴하고, 반대로 구원 이후에 시작되는 ‘성화’를 구원의 근거(요소)라고 암시(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구원론이고 신인협력구원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완전하게 완성된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얻는 구원은 이미 완전한 구원입니다. 우리의 의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얻은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화는 구원 이후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죄의 오염을 치료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삶과 행실이 실질적으로 하나님 백성답게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이지 않고 또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처럼 완전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화는 구원의 열매이지 구원의 원인이 아닙니다. 성화가 부족하면 구원에 악영향이 들어간다고 암시하는 벤자민 오 목사의 말은 거짓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 만큼 성화되면 구원에 좋은 영향이 들어가고, 또한 어느 정도 이하로 성화되면 구원에 악영향이 들어간다는 것일까요? 성화가 부족하면 구원이 취소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벤자민 오 목사가 인용하는 박영돈 교수의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인용된 박영돈 교수의 주장 3> 
“칼빈에 따르면, 그리스도와 연합의 바탕 위에서 믿음과 회개, 칭의와 성화는 긴밀하게 연합되어 그리스도인의 삶 전 과정에 함께 갑니다. 따라서 성화없이 칭의에 근거해서만 구원받지 못하듯이, 행함없이 즉 순종과 회개의 열매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지도 못합니다. 칼빈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에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동시에 거듭나서 하나님의 법을(말씀을) 즐거이 순종하는 삶을 살게된다. 그러므로 우리를 의롭다하는 믿음은 반드시 순종의 열매를 산출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순종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가능케하는 유일한 은혜의 체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하는 교리를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큰 착오입니다. 여기서 한국 교회의 만연한 값싼 구원의 복음이 얼마나 종교개혁자 칼빈의 구원론과 거리가 먼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박영돈 교수)

위 내용 중에서 특히 박영돈 교수의 다음의 말은 큰 논란을 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화없이 칭의에 근거해서만 구원받지 못하듯이, 행함없이 즉 순종과 회개의 열매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지도 못합니다”(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의 이 말을 문자적으로 풀면 성화가 구원의 중요 근거이고, 또한 그 다음의 말도 순종과 회개가 구원의 필수 요건이라는 것입니다. 박영돈 교수는 자꾸 성화를 비정상적으로 강조하면서 구원의 원리를 훼손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위구원론자가 크게 기뻐하면서 이용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다른 뜻으로 이렇게 말했을지라도, 이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이용하고 있으니 스스로 책임을 져야합니다. 교회는 박영돈의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십자가 우편의 구원받은 강도를 보겠습니다. 그 강도는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에게 구원을 간청하였습니다. 그 옆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고난을 당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그 강도는 구원의 은혜를 얻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무 행함이나 순종없이 십자가 상에서 죽었습니다. 이 땅에서 성화의 과정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강도는 부족한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성화로 구원의 자격을 증명해야만 구원이 유효하다면,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구원하신 그 강도의 구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한 성화가 얼마나 많이 나타나야 구원에 악영향이 없는 것일까요? 성화와 행위가 칭의와 구원에 영향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위의 말이 박영돈 교수님의 진심이라면, 박영돈 교수님은 천주교로 가셔야 하고, 고신교단은 박영돈 교수님을 파직하여야 마땅합니다. 행위구원사상을 공식적으로 가르친다고 오해를 받고 있는 감리교에서도 박영돈 교수님 같이 말하면 신학위원회에 불려가서 조사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웨슬리 구원론 논쟁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감리교 교수님들 중에도 성화가 칭의와 구원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명백하게 가르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성령론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성화에 대한 강조이다. 성화는 구원의 여부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지만 구원받는 신자가 필연적으로 맺는 열매다”(감신대 임성모 교수, “웨슬리 관점에서 신사도 운동 비판”)

“행위는 결코 칭의에 있어서 아무런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이처럼 칭의에 있어서의 오직 믿음과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확고한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을 이어받은 감리교회의 중요한 유산이다.”(감신대 이후정 교수, 정이철 목사 문제에 대한 답변)

행위구원신학을 가르친다고 오해를 받고 있는 감리교단의 교수님들 중에도 행위와 성화가 구원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이처럼 분명하고 가르치고 있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개혁교단의 조직신학 교수가 행함과 성화없이 구원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는 것은 큰 낭패입니다. 이 말이 박영돈 교수의 본 뜻이 아니었을지라도 자신의 말이니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이단 목회자라고 알려진 사람이 이용하도록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하는 교리를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큰 착오입니다.”(박영돈 교수)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나,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결국 같은 위험성을 내포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행함이 구원을 좌우하는 요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고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칩니다.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2)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이 행해야 구원에 이르게 될까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완전한 행함이 나타나야만 구원이 지속된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요? 성령의 새롭게하심으로 구원과 함께 성화가 시작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환 성화를 이루게 된다고 성경 어디에도 말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행함이 아주 없으면 거짓된 믿음이고, 처음부터 구원을 얻지도 못한 믿음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만일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완전한 행함을 하나님께 보여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누가 완전한 행함을 하나님께 보일 수 있을까요? 

"여기서 한국 교회의 만연한 값싼 구원의 복음이 얼마나 종교개혁자 칼빈의 구원론과 거리가 먼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박영돈 교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값싼 복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흠없고 완전히 거룩하고 의롭게 사시다 우리 대신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므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어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사함받았고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우리의 의가 되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의 속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와 오래 참으심과 성령의 역사로 진정한 하나님 백성이 되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값싼 복음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사람이 보는 교회 안에 복음과 관련이 없는 거짓 교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다음에 나머지 부분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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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처럼 2018-06-11 13:01:50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지금의 논의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 외에 사람의 행위를 더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영역에는 신자들 뿐 아니라 비신자들도 누리는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주만물 모든 것과 모든 곳에 편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 믿음이라는 작은 카테고리가 포함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신자들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비신자들도 해와 달, 눈과 비, 땅과 바다의 소산물, 숨쉬는 공기와 지혜 등등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비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혜)은 여기까지만입니다.
비신자들이 받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비신자들은 믿음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 중 대다수를 신자들과 동등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믿음의 영역에서 그들은 선택받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의 상관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시편 8편]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평신도 2018-06-11 12:26:54
벤자민 오 목사의 문제점은 행위를 강조하다보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행위를 잘못하게 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라고 하면서 이로 인해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행위를 잘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의 조건에 믿음외에 행함이 들어가기 때문에 행위구원론으로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행함이 잘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은혜의 선물을 거두어 가신다는 논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무시하고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탄의 책략인 것 같습니다.

다시말하면 행위구원론과 정통 구원론의 차이는 구원받은 자녀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견인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은 자녀는 당연히 하나님이 성화를 이루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지만 그것이 각 사람마다 다 정도가 틀리고 이루시는 시간도 틀리기 때문에 한순간의 모습으로 사람들이 그것을 판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관점에서 구원을 바라보면 될 것 같습니다. 죽은 사람이 천국문 앞에 이르렀을 때 천국에 입성하도록 허락하시냐 마느냐를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볼 때 그 사람의 삶의 모든 행위를 판단해서 구원을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이미 은혜의 선물로 주신 믿음 그 믿음만을 보시고 천국문을 여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성화도 하나님이 이루시지만 그 성화가 적어서(믿지 않았다면 더 악하게 살았겠지만요) 불신자들과 비슷하게 살았다고 해서 믿음이 있는데도 지옥에 보내시는 그런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신도 2018-06-10 21:46:03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2:8-9절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and th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not by works, so that no one can boast.

워낙 이 말씀을 잘 아시는 분들 앞에서 평신도로서 그러긴 하지만 좋은 선물님의 글에 대해 답을 해보고 싶습니다.

8절에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할때 이것은 앞의 구절을 가르키는데 믿음입니까? 구원입니까?

답은 둘다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니까요. 즉 이것은이 의미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즉 내가 믿음이 생긴 것은 내가 안믿어지는데 믿을 결심을 하고 믿어야지 하고 해서 된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들을 때(전도를 할 때 믿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에 감사할 수 밖에 없고 그 분을 구원의 주님으로 마음에 영접하는 믿음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 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어서 자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지 믿음외에도 행함이 0.00000000001%라도 있어야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행위구원이구요.

이미 구원받은 믿는 자는 또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닮게 되는 성화에 이르게 하신다고 해야지 구원의 조건에 행함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은 행위구원론입니다.

즉 믿음이 있는 자는 행함이 따르지만 그 행함을 우리가 판단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아시겠죠. 행동만 보는 우리는 그 마음내면까지 볼 수 없고 그 사람의 모든 변화를 다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이 사람은 믿는 것 같지만 행함이 없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은 행함이 있기 때문에 구원받았다 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짐작은 하지만).

신인협력설? 2018-06-10 20:37:45
"개혁주의 교회 목사나 신자들은 신인협력설을 지독하게 거부하면서도, 설교 할 때나, 전도할 때는 신인협력설로 말합니다. "복음이 은혜로 주신 선물이니, 너가 받아 들여라. 문을 열고 영접해라. 받아들이면 구원 얻고, 거부하면 지옥이다."라고 행위를 강조하지 않습니까? 신인협력설을 거부하면서, 왜 신인협력설로 전도하고 설교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

이에 대한 답을 드립니다. ...........

하나님은 모든것을 다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사용하여 일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도구가 바로 인간입니다. 즉 인격이 없는 무생물이 아니고 인격이 있는 인간을 사용하여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인간이 하는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믿음으로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헛갈리는것이지요. 그것이 교만이고요.

바울처럼 2018-06-10 00:48:02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그 행위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그러한 행위를 격발시킨 동인이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역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를 때 바로와 그의 백성들은 왜 바르지 않고 있다가 장자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들이 죽임을 당하는 참화를 겪었을까요?
그 답이 출 11:10에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출 11:10]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의 백성들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에,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바로와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좋은 선물님께서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아시지요?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어린양을 잡아 문설주에 피를 바르게 한 동인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없었다면 할 일없이 귀한 재산인 어린양을 죽여가며 괜한 포퍼먼스를 하겠습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은 믿음으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거부할 수 없으며 또한 스스로 쟁취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라고 고백했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나의 노력이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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