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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는 존길(John Gill)의 극단적 칼빈주의와 논쟁했다
김홍만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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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8  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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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가 이렇게 칼빈주의에 대해서 공격적인 이유는 그 당시 과도한 칼빈주의의 성향으로 인한 것이다. 그 당시의 웨슬리와 논쟁적 위치에 있었던 과도한 칼빈주의자는 존 길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웨슬리가 그토록 칼빈주의를 혐오하게 하였던 이들의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1. 선택, 유기, 견인 교리

웨슬리가 그토록 칼빈주의에 대해서 공격하였던 것은 선택의 교리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선택의 교리에 대해서 웨슬리는 휫필드와의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과격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존길이라 할 수 있다. 존 길은 선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삶에 대한 예정인 선택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고, 불변의 뜻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부터 택하신 것이며, 모든 인류 가운데로부터 어떤 이들을 혹은 그들 가운데 특정 숫자의 사람들을 영적인 축복을 이곳에서 참여하게 하셨고, 나중에는 행복을 갖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렇게 존 길은 선택을 설명하면서, 선택의 실행인 유효한 부르심 혹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이 없다. 따라서 선택 교리의 남용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따라서 선택된 자는 결국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든지 구원을 얻을 것이며, 더욱이 선택된 자는 한 사람도 낙오된 자 없이 나중의 행복까지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웨슬리는 바로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격렬하게 비난하였던 것이다. 존 길은 유기 교리가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아니며, 선택이 주된 관심이며, 유기는 단지 선택의 부산물 정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기된 자는 자신의 죄 때문에 정죄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유기된 자를 인식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존 길은 유기 교리를 적용하는 것에 있어서 과도함이 나타난다:

“유기 교리 때문에 어떤 사람도 우리의 기도에서 제외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유기된 자인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유기된 자들의 회심과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모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 길의 이러한 태도는 결정론적 (deterministic) 하나님의 주권으로 기울어져서, 유기 교리를 잘못 적용하는 길을 열어 두고, 심지어 복음전도의 필요성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한 기회를 제공한다. 웨슬리와의 논쟁 가운데 존 길은 성도의 최종적 견인을 강조한다. 존 길이 주장하는 것은 성도의 최종적 견인 교리가 성경적이며, 성경 속에서 많은 증거들이 있다고 하면, 이 교리는 하나님의 완전성과, 특별히 하나님의 불변성과 지혜, 능력, 선하심, 공의, 진리와 신실하심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정하신 자신의 목적을 결국 이루시기 때문에 이 교리는 영적인 평화와 위로를 준다고 하였다. 존 길은 이 교리를 설명하고 결론으로 빌립보서 1장 6절과 이사야 45:17절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처음에 시작한 일을 마지막까지 완성시키는 것을 말하였다.

즉, 존 길은 성도의 견인 교리를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만 언급하였다. 그가 특별히 빌립보서 1:6을 언급하였는데, 이것에 반해서 웨슬리는 인간의 책임인 빌립보서 2:12절을 언급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균형있게 설명되어야 하는데, 존 길은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치우쳐 버린 것이다.
 

2. 예정론

존 길은 웨슬리의 예정론에 대한 고찰에 대해서 다시 반박의 글을 썼다. 이 글에서 존 길은 “이 세상에서 일어났으며, 일어나고 있으며, 또한 일어나야 하는 일들 즉, 모든 일은 하나님의 결정 (determination)과 정하신(appointment) 아래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지혜로우시며, 자유롭고, 거룩하며 뜻에 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존 길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표현한 것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였다고 말한다. 존 길이 예정론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인용하여서 설명하였는데, 사실 존 길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즉, 은혜의 수단 (means of grace)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구원에 있어서 예정부터 시작하며, 정해진 은혜의 수단을 놓침으로 인간의 책임 부분이 없어지고, 결국 결정론으로 흘러가서 예정된 백성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이들은 마지막 견인까지 적용되어서 구원에 대해서 안전하다고 하는 논리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존 길의 예정론은 은혜의 수단을 배제하기 때문에, 결국 나중에는 복음 전도의 불필요성을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과도한 칼빈주의 양상에 대해서 웨슬리는 맹공을 펼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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