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는 프리메이슨의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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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는 프리메이슨의 구호
  • 김주옥
  • 승인 2017.05.15 22:45
  •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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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대학 후버연구소의 안소니 서튼 박사는 <미국의 비밀스런 건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혁명은 언제나 독재국가를 대항하여 정치적 또는 경제적 빈곤층이 일으키는 즉흥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있다. 서방의 교과서에서 당신은 혁명에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자금의 출처가 대부분 월가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볼 수 없을 것이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도 우리가 배운 것처럼 왕의 폭정에 못견딘 가난한 민중들이 일으킨 전쟁이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는 평화로웠고 경제는 풍족한 편이었으며, 국민들은 큰 불만이 없었다. 프리메이슨이 의도적으로 사회 혼란을 야기시키고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민심을선동하고 이를 해결해 주는 척하면서 왕정을 무너뜨리고 목적을 이룬 것이다.

혁명이 성공하자 그 동안 목적을 이루기위해 포섭되고 이용되었던 귀족 계급은 단두대로 보내졌다. 이후 수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며 극심한 공포정치가 시행되었다. 결국 민중은 가혹한 독재정치와 가난 속으로 들어가고 나라는 엄청난 피해를 보게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루미나티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증명할 수 있다. 일루미나티가 ‘빛’ ‘계몽’ ‘깨달음’을 주장하는 것처럼, 혁명의 정신도 계몽주의다. 또한 둘 다 자유, 평등, 박애의 구호를 외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혁명의 인권선언문을 새겨 넣은 기념비에서 천사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오른 손 끝에서 일루미나티의 상징인 ‘전시안’이빛나고 있다. 전시안은 프리메이슨이 숭배하는 이집트 호루스 신의 상징으로서 미국의 1달러 지폐의 뒷면과 기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라는 멋진 구호를 외치며 성공했으나, 결국은 독재, 공포, 분열, 가난을 초래한 것처럼, 소련 공산혁명도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평화와 빵과 토지’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결국 최악의 독재와 억압과 불평등과 가난과 전쟁과 죽음을 가져왔다. 그들은 전형적 수법인 분열, 협작, 전쟁, 배신의 전술을 사용해 목적을 이루어왔고, 대신에 무수한 대중들이고통받고 죽어야 했다.

그림자 정부, 그들은 궤변으로 자신의 거짓말과 악행을 합리화시킨다. 아담바이샤프트는 이렇게 말한바 있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악한 자가 악한 일을 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듯 현자도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비밀결사에 의하지 않고 서는 달리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들이 목표로 하는 ‘선한일’이란 모든 시민정부를 전복하고 기독교를 말살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천명했다.

“우리의 비밀을 밝힌다. 우리가 유일무이한 종교를 가진척했던 것은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를 없애기 위함이다…”

메이소닉 사전에 의하면 계몽주의자로서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볼테르도프리메이슨이다. 그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반기독교적 명언을 많이 남겼다.

“기독교는 노예출신 민족, 식민지 사상이 깃든 민족만이 수용및 발전 가능하다. 정상적인 역사와 사상을 보유한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기독교를 공포의 눈으로 바라볼것이다.”

“12명의 사람이 기독교를 세웠다는 말을 나는 지칠 정도로 반복해 들어왔다. 그러나 이것을 무너뜨리는데는 오직 한사람으로 넉넉하다는 것을 나는 증명할 것이다.”

반기독교적인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성경은 불태워지고 예배는 금지되었다. 대신 프리메이슨의 경신박애교(Culte Theophilanthropique)가 새로운 종교로 태어났다. 경신박애교는 국가차원의 후원을 받아한 때 노트르담 대성당이 이들로 채워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이성숭배’, ‘최고존재 숭배’, ‘혁명영웅 숭배’, ‘자유의여신 숭배’ 등이 기독교를 대체한 혁명종교로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김주옥 선교사는 성경은 신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안목에서 기록된 역사서며, 예수님은 성인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변증하는 일을 하고 있다.저서 <예수신화?예수실화!>는 기독교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임을 증거하고,<시대읽기>는 기독교를 왜곡하거나 경계를 허물어 혼합하려는 반기독교적 세상의 정체를 폭로한다.이들 내용을 정리하고 추가해서 <예수는 실화다>와 <성경적 시대읽기>를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
번역서 <당신은 괜찮습니까?>와 <회복프라소>는 성경적 회개와 용서와 예수 안에서의 치유와 회복을 주제로 한다.
저자는 서강대에서 신문방송학,산호제바이블컬리지에서 신학,산호제주립대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서울과 산호제에서 다년간 직장을 다녔고 산호제에서는 교회 전도사로도 일했다.현재는 인터넷을 통해 전도하면서 예수님과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 세상이 갖는 수많은 오해들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joook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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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처럼 2018-07-29 21:38:46
김은종님, 우리나라의 촛불혁명 상황과 비교해 볼까요?

#. 김은종님께서 말씀하시는 혁명의 발발 요건
1. 민중을 우매한 집단, 기본적인 사리판단도 못하고 속임수에 넘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어야 한다.

2. 민중의 보수성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먹을 만하고 살 만하면 떨쳐 일어나지 않는다.


#. 내가 바라보는 혁명의 발발 요건
1. 정치권의 집단화 된 카르텔로 배운 지식인 층은 물론 대다수의 우매한 민중에게 충분히 여론을 조작, 날조, 선동, 세뇌시킴으로써 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음을 현 대한민국이 촛불혁명이라는 것으로 적나라하게 증명하였다.
즉, 아무리 똑똑한 지식인들이 많아도 옳고 그름의 잣대가 없으면 그 지식은 무용지물이며 그들은 혁명세력의 홍위병에 지나지 않는다.

2. 현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은 프랑스혁명 당시의 상황보다 백 배 이상 잘 살고 있는 상황에서 발발하였고 또한 성공하였으며 그 결과 전 세계의 경제성장과는 전혀 반대의 길로 한국 경제가 몰락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권의 지지도는 변함이 없음으로(조작이든 뭐든), 그러므로 혁명은 먹고 사는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된다.


반박 바랍니다...^^

이영락 2018-07-29 1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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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종 2018-07-18 18:34:02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야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 프랑스 혁명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역사학자들이 자기 유리한대로 얼마든지 변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선교사님 말씀대로 프리메이슨이라는 집단의 선전선동 의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는 주장은 첫째 민중을 우매한 집단, 기본적인 사리판단도 못하고 속임수에 넘어가버리는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고 둘째 민중의 보수성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먹을만하고 살만하면 떨쳐일어나지 않는 경향을 무시한 것입니다. 민란, 혁명은 민중이 정말 이대로는 죽을 수밖에 없다 할때 일어나게 됩니다. 쿠데타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지요. 몇몇 지식인들이나 선동가들이 앞장설 수야 있겠지만 그것도 민중의 필요을 파악하고 민중의 처지에 공감이 되는 선도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면에서 김선교사님의 견해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바울처럼 2018-04-06 12:16:55
에릭 홉스봄(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에 의하면 프랑스혁명의 시기는 대략 1789년-1871년으로 봅니다.
그 시기에는 유럽대륙에 많은 사건들이 얽히고 설켜 단순하게 하나의 원인으로만 인해 어떠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혁명 기간과 겹치면서 발생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산업혁명(1760-1820)입니다.
산업혁명의 결과 오늘날 전 세계인이 물질문명의 호혜를 누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당시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리버풀에서 1840년에 상층계급, 젠트리, 전문인들의 평균수명은 35세였으며 사업가나 좋은 직장을 가진 수공업자의 경우는 32세, 기능공, 막노동자, 서비스 노동자의 경우는 15세였습니다. 노동자계급의 사망률이 이렇게 높은 것은 주로 노동자계급 자녀들의 높은 사망률 때문입니다. <역사고전강의> p349 ”

당시 도시 노동자 자녀들의 사망률은 농촌 지역의 사망률보다 높았으며 5세가 되기 이전에 죽는 비율은 농촌이 32%인데 맨체스터가 54%였다고 합니다.
산업의 발달로 농촌의 소작농들이 도시로 와서 도시빈민이 되고 노동자가 되었는데, 그것이 그들의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소작농의 이탈로 봉건영주체제도 서서히 붕괴 됨)

엥겔스는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총 봉기하면 부르조아 계층이 타도될 것이라고 보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은 이미 돈 줄을 쥐고 있는 부르조아 계층이 충분히 강했기 때문이며 과학혁명, 계몽주의,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등 최소한 300년 이상의 발전과정을 거치며 부르조아 계층은 19세기를 완전히 장악하였기 때문입니다.(화폐의 발달 역시 산업혁명기의 산업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 짐)

결국 당시 민중들의 생명력을 삶의 한 지표로 보았을 때, 그들은 산업혁명이든 프랑스혁명이든 어떠한 명목을 내세운 세력들의 이용 대상이었을 뿐이며 그들의 삶은 그러한 혁명기 이전의 삶보다 더욱 비참했다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지나가는이 2018-04-05 23:59:34
교과서로만 세상을 배운 bss2721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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