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으로 가십시오 (1)

 

(이번 주 갈라디아서 본문 강해 설교를 준비하다 함께 읽으면 좋을 내용이겠다 싶어 그 부분을 조금 바꾸어 올립니다.)

바리새파 유대교는 각 사람이 자기의 율법 준수의 공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믿는 율법주의 이단 종교였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칭의를 얻고, 또 율법을 지켜서 얻은 구원을 계속 유지한다고 믿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경을 크게 대적하는 율법주의라는 이단 사상입니다.

지난 주에 제가 어떤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카나다 개혁교회의 웨스 브레덴호프라는 신학자가 쓴 “Federal Vision”이라는 소논문을 보았습니다. 원문은 미국에서 절판된 상태이고, 카나다에서는 아직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달하는 주소를 입력하는 창에 카나다 외에 다른 나라를 선택할 수가 없어서 주문하지를 못했습니다.

 

 

대신 한국에서 익명의 사람이 번역한 것이 있어서 보았습니다. 그 속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 칭의를 얻는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적 위치를 고수한다: 칭의는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신 것에서 나온다.”

Federal Vision이라는 은근히 행위가 칭의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신학을 비판하는 이 문서의 저자는 각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칭의를 얻는다는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깔보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대신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신 공로가 우리에게 칭의를 준다는 이론(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해서는 “복음적”이라고 칭송합니다.

각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칭의를 얻는다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는 틀렸으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우리에게 칭의를 주었다는 이론은 복음적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개혁교회-장로교의 현실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칭의에 연관된 것이면, 우리 각 사람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예수님 혼자에게만 다 지웁니까? 우리가 최선을 다해 율법을 지키다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야지, 왜 처음부터 칭의를 준다는 율법준수를 예수님에게 떠 맡깁니까?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칭의의 길이라면, 바리새인들이 왜 그렇게 심한 비판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오히려 그들의 자세를 본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개혁교회- 장로교회라는 최고로 정통이라고 자부하는 교회(사람들) 속에 이런 엉터이 거짓 신앙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가 그리스도에게 율법준수의 멍에를 씌우는 악독한 사상이라고 많이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 칭의를 얻는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적 위치를 고수한다: 칭의는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신 것에서 나온다.”라고 말하는 논문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런 기독교는 바리새주의자들의 꼬리에다 예수를 강제로 붙인 것 아닙니까? 그것이 진리라면, 우리는 더 이상 바리새주의를 지금처럼 비판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의 율법준수 사상은 옳았으나 단지 완전한 율법준수자이신 예수를 거부한 것이 잘못이라고 비판의 강도를 낮추어야 합니다.

믿음과 율법준수를 동시에 다 하라고 가르친 갈라디아 이단을 정죄한 사도 바울도 잘못했다고 우리의 입장을 바꾸어야 합니다. 믿음과 행위로 구원이 완성된다고 가르친 로마교회에 감히 대항한 루터와 칼빈에 대해서도 존경하는 자세를 그치고,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생을 위한 칭의는 오직 하나님을 믿음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3).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때에는 율법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독자 이삭을 죽여서 번제를 드리는 특별한 행위를 하기도 전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부르시어 자기를 믿게 하심으로 의롭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아브라함이 얻은 칭의의 원리가 신.구약을 관통하는 칭의론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기독교 신앙의 칭의를 설명할 때, 이 말을 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3).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입니다.

이것이 신구약의 하나님의 칭의의 원리입니다. 칭의를 얻는 것과 율법의 행위나 다른 종류의 사람의 수고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6).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과 사람의 노력은 0.1의 관계도 없습니다. 칭의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모든 수고는 헛됩니다.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 즉 하나님과 더불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 자격을 얻는 것은 사람의 노력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고, 오직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어 구원을 주시려고 택하시고, 자기를 믿게하신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준수와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은 완전히 무관합니다. 대체 바리새인들이 자기를 자랑하려고 짊어졋던 헛된 율법 준수의 멍에가 왜 예수님에게로 이동되었습니까? 우리를 살리는 의가 되고자 창조주 하나님이 자기의 의를 가진 사람을 우리에게 보냈습니다. 성육신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처음부터 우리를 의롭게 할 의가 넘쳤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를 대신 희생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자기를 우리에게 연합하여 우리를 자기와 같은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라고 했습니다.

바리새파 예수 그리스도교를 만드는 합동의 교수들은 속히 자신에게 맞는 합신으로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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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