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유언을 가만히 보면, 힘써 대장부가 되어서 말씀을 잘 지켜 행한다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칭찬할 자는 칭찬하고 벌할 자는 벌해야 한다는 말씀도 공의로운 하나님을 생각하면 마땅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말한 공의의 수행으로 솔로몬의 나라가 영원했습니까? 그의 왕위가 견고했습니까?

정적을 제거했기 때문에 당장에 대항하는 원수가 없었기 때문에 태평성대를 이루었겠지요. 그래서 솔로몬은 13년 동안 초화와 궁전을 건축했고, 7년 동안 대성전 건축도 이루어냈습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많은 이방인들이 솔로몬의 지혜와 그의 업적을 보기 위해 방문단이 몰려왔습니다.

이러한 외적인 성공은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는, 조금 맛보기하는 인생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나라의 내면 그 이후의 역사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거룩한 성전을 짓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솔로몬의 가정, 솔로몬이 어떻게 됩니까? 엉망진창이 되었고 그의 나라는 온갖 우상들로 가득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마지막에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지게 되었지요.

다윗의 유언처럼 눈에 보이는 정적을 제거하여 일시적인 평안을 누렸는지를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거룩함을 포기함으로 결국 솔로몬을 그 나라를 망하게 하는 주범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에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십니까? 세상은 자기의 권리를 지켜내고 ...” (여성현 목사)

교회가 오래 목회하실 목사님을 정하시는 상황에서 벌어진 갈등인 것 같아 부득이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성도들에게 신앙의 양식과 힘을 공급하는 설교를 전담하실 담임 목사님 청빙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대한 상황이 아니면 전혀 나서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 설교 하나를 볼 때, (제 생각으로는) 여성현 목사님의 성경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능력에 하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윗이 임종을 앞 두고 아들이며 후계자인 솔로몬에게 요압이 편히 수명을 다하고 죽도록 두지 말고, 지혜롭게 처형하라고 유언하는 장면을 다시 보겠습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왕상 2:1-6).

아마 여성현 목사는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 부분을 문자적으로 오독한 것 같습니다. 요압이 다윗을 괴롭게 한 일들이 있었으로 다윗이 아들 솔로몬 왕을 통해 앙갚음을 했다고 해석한 것 같습니다.

다윗과는 사촌 관계이었던 요압은 이스라엘 건국, 안정, 확장을 위해 많은 공을 세운 탁월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개인의 감정, 이해, 이익을 따라 하나님의 큰 일을 대적하고 훼손한 죄악을 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울 왕 사후에 다윗은 유다지파의 왕이었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다른 지파들의 왕이었습니다. 그때 전체 이스라엘 12지파들이 한 나라가 되어 다윗을 임금으로 섬기게 만드는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북이스라엘의 군대장관 아브넬이었습니다. 아브넬도 죄가 있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여 12지파를 한 나라게 되게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압이 다윗을 만나고 돌아가는 아브넬을 속여서 안심하게 한 후 살해했습니다. 이전 전투에서 자신의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에네게 경솔하게 덤볐고, 아브넬이 그 형 요압을 보아 죽이지 않으려고 계속 타일렀으나, 아사헬은  계속 무모하게 덤볐습니다. 아브넬은 어쩔 수 없이 아사헬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요압은 아브넬에게 사적인 원한을 가졌고, 그래서 이스라엘 12 지파의 통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큰 일에 쓰여지는 아브넬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직 개인적 원한을 갚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그것은 다윗을 괴롭히는 일이기 전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오만과 교만의 죄악이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에게 반역했을 때, 반란군 진영의 군대장관은 아마사였습니다. 아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다윗은 아마사를 중용했습니다. 둘로 나누어진 이스라엘의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다윗이 아마사를 중용하는 것이 요압에게는 불쾌했습니다.  자신에게 경쟁자이자 정적이 생기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압은 또 다시 다윗과 상의하지 않고 사적인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다위을 괴롭히는 일이기 전에 하나님의 큰 일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죄악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요압은 아도니야가 솔로몬을 제치고 왕이 되려고 반역하였을 때에도 가담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보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어야 자신에게 이익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언약하시고 다윗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경영하고 있음에도 다윗을 제치고 자기 뜻대로 나라를 만들어 보려고 요압이 의도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도 다윗을 괴롭히는 일이기 전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요압은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요압을 지혜롭게 처형하라는 다윗의 유언하고 솔로몬이 그리한 것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요압에게 임한 것으로 해석하고 설교해야 마땅합니다. 성도들은 그러한 성경해석과 설교를 통해 성도의 의롭고 진실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윗이 솔로몬에게 요압을 지혜롭게 처형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집행하라고 유언한 것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이 솔로몬에게 계시된 것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다윗의 보통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노래하는 시인이었고 동시에 선지자였습니다. 다윗의 그 유언이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자기의 뜻을 솔로몬에게 계시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나중에 요압과 함께 반역을 도모했던 아도니야가 자기 죽을 일을 벌였고, 그 일로 솔로몬은 아도니야와 요압을 처형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요압이 처형되었을 때 성경은 다음과 같이 그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그를 쳐죽이매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왕상 2:32-34).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성경을 기록한 저자는 요압이 처형되어 죽은 것을 이와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다윗의 사적인 앙갚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큰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사적으로 살인을 두 번이나 저지른 요압의 큰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행되었다고 성경 저자는 해석하였습니다. 저자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내용이므로 곧 하나님 자신의 해석인 것입니다.

설교자가 이 모든 내용을 바르게 설교함으로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합당한 의롭고 진실된 삶의 가치와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죄악된 삶이 어떠한 불행을 자초하게 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여성현 목사는 그러한 기회와 은혜를 망처버렸습니다.

솔로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분열되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된 것은 다윗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미 죽은 다윗을 보시고 그 심판을 나중으로 미루셨습니다. 솔로몬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분열되게 된 것은 솔로몬이 믿음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신의 부와 권력에 취하여 서서히 율법을 버렸습니다. 주변 여러 이방 나라의 공주들(여인들)을 첩으로 맞이한 것은 율법을 버렸으므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 일이 이스라엘에 온갖 우상숭배가 시작되게 만들었습니다.

신약의 성도도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 동일하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약의 성도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구약에서 명령하신 율법의 정신과 요구가 실현되어지는 삶을 산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힘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그리되는 것이 아니고, 죄의 욕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거룩을 향하여 나아가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성령,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적용하시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의 은혜와 도우심을 받아 그리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에 대해 잘 설교하면 이와 같은 중요한 가르침과 교훈이 성도들에게 전달될 수가 있었는데, 여성현 목사님을 엉뚱한 해석으로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설교 하나로 여성현 목사님이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저는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님들이 여러 면들을 종합하여 잘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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