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제시하는 복음선포가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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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제시하는 복음선포가 사는 길
  • 서철원
  • 승인 2015.05.0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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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교수의 '개혁주의와 장로교회'(2회)

칼빈은 성경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였다. 그래서 신학할 때 언제나 성경이 가는 데까지만 가야한다고 가르쳤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이므로 지금도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온 것으로 받아야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성경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신학하였다. 기독교강요도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길잡이로 펴냈다. 성경의 권위와 역사를 강조하면서도 성령은 말씀의 선포에 자동적으로 역사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성경이 직접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어도 말씀선포 때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권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바른 신학으로 여겼다.

루터는 말씀을 선포하면 성령은 언제든지 역사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일하신다고 가르쳤다. 기록된 말씀을 강조하면서도 칼빈은 선포된 말씀이 믿음을 일으키고 변화시키기 때문에 선포된 말씀에 더 큰 강조를 두었다. 선포된 말씀이 믿음을 일으키고 회개하므로 교회는 말씀의 창조물이라고 강조하였다.

또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율법을 열심히 가르치고 설교할 것으로 여겼다. 율법이 그 자체는 죽이는 일을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살리는 역사를 하는 것으로 판명하였다. 그래서 복음보다 율법의 강조가 더 많게 되었다. 칼빈은 율법을 삶의 규범으로 세웠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율법을 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개혁교회에서 율법주의적인 경향성을 낳게 하였다.

한국장로교회는 이 전통과 강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성경은 전체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모든 성경을 본문 그대로 설교하고 가르쳐야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성경 전체를 남김없이 다 설교하되 글자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설교할 때 글자대로 풀이하고 가르쳐서 교훈을 주는 것이 바른 설교로 여겨왔다.

그러므로 설교할 때 복음 선포를 해야 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였다. 복음을 선포해야 믿음이 일어나고 교회가 생긴다. 그런데도 성경전체를 설교하되 하나의 탈락도 없이 설교하고 가르쳐야 할 것으로 여겨서 성경본문 주해만을 주력하였다. 그래서 설교를 해도 아무런 감동과 변화를 가져올 수 없었다. 설교는 율법적인 문자적 해석에 불과하였다. 그리하여 설교를 통해서 아무런 감동과 감격을 맛볼 수 없었고 구원의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없었다. 성경대로 정통적인 설교는 하였지만 문자적인 해설에 불과하여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제시할 수 없었다.

성경의 문자적 설교로 아무런 변화와 구원의 감격을 맛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인들이 교회는 마지못해 가고 할 수 없이 다녔다. 복음 선포가 생명의 양식인데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자체란 가르침에 매여 복음을 선포할 줄을 알지 못하였다. 복음의 내용은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때나 필요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일단 교회에 나오면 복음을 들을 수 없어서 아무런 변화를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장로교회는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과 삶의 유일한 법칙으로 받았다. 그래서 율법의 강조가 신자들의 삶에 굳게 자리 잡았다. 자연히 율법을 지켜야 마땅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율법은 구약시대만 타당한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에도 동일하게 타당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때문에 제사만 하지 않을 뿐이고 모든 의식과 날자와 경절들은 그대로 다 지켜야할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율법을 열심히 지켜야 하고 율법대로 살아야한다고 가르침 받았다. 그래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율법대로 살 수 없으므로 마음은 늘 무겁고 평안함이 없었다. 또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잘 믿는 것은 교회 출석 잘하고 교회봉사를 많이 하며 목사에게 봉사를 많이 하면 되는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그간 영적 고갈과 기근 속에 죽지 못해 유지되어왔다.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얻고 그의 피로 죄용서 받아 영생을 얻었음을 들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이지 예수 믿는 것이 아니었다.

율법과 구약이 설교와 삶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다가 한국교회는 구약이 약속한 세상적인 복에 착안하였다. 그래서 선행을 많이 하고 교회봉사를 잘하며 목사를 잘 섬기면 세상적으로 복을 받아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물질적인 풍요가 넘쳐나게 되는 것으로 확신하였다.

그래서 복음 선포의 자리에 축복설교가 완전히 자리를 차지하였다. 따라서 간증도 예수 믿어 어떻게 복을 받아 잘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이 바른 간증으로 정착하였다. 주 예수를 믿어 죄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성령의 인도아래 사는 기쁨과 평안은 그리스도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부요해지므로 교회도 돈이 많아져 목회자들이 돈에 중독되어 돈을 위해서 목회하고 설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돈만을 추구하게 되고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물질로 많은 범죄를 하게 되었다. 또 돈이 많아지면 자연적으로 성적 범죄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목회자들로부터 평신도들에 이르기 까지 성적 범죄가 아무런 죄가 되지 않게 되었다.

또 복음의 내용을 선포하지 않아서 심령이 고갈되므로 이단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다. 또 신학은 아무런 효험도 없는 것이고 단지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배웠으므로 무엇이 바른 신학인지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이 한국의 신학교들을 다 점령하였다.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런데도 자유주의 신학은 학적으로 하는 신학 작업이어서 바른 학적 신학으로 높이 존경해야 할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따라서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해체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 교회는 쇠락해졌다. 심하게 말하면 해체의 벼랑에 와있다. 여기에다 자유주의 신학과 기복주의를 주로 가르치니 교회가 해체되어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뿐이게 되었다. 지금 같은 추세로는 한 세대 후에 한국교회는 반 정도 살아남으면 기적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를 향해서 아무런 선지자적인 외침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더구나 복음전도는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다. 교회가 빛을 잃었고,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발에 밟히는 가증한 존재가 되었다. 

루터는 말씀을 복음으로 이해하여 복음 선포에 성령이 꼭 역사하시는 것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그런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말씀의 선포는 복음 선포로 이해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성경전체를 글자대로 제시하고 해설하는 것이 목사가 할 일로 정하였다.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설교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사역을 선포하는 것이다. 설교를 바꾸어야한다. 복음만을 선포해야한다. 사도들이 했던 선포 곧 사도적 선포를 회복해야 한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세상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음을 선포하였다. 이 복음 선포에 성령이 역사하므로 듣는 사람들 가운데 기쁨과 감격이 터져 나왔다. 이런 일은 사도들이 선포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 선포에 성령이 역사하시므로 초대교회의 기적이 일어났다. 복음 선포로만이.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데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성육신하여 사람이 되시어 피 흘리시므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시므로 구원을 온전하게 이루셨다. 이 복음을 선포해야한다. 성령은 오직 복음 선포에만 일하신다. 복음을 선포하면 성령은 반드시 역사하셔서 큰 구원을 일으키신다.

이제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성경전체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 말씀을 글자대로 해석하는 단계에서 복음 선포로 넘어가는 것뿐이다. 축복설교와 글자풀이는 이제 중단하고 설교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구원사역을 선포해야한다. 그러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적들이 일어나 설교자도 놀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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