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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번영 복음에 대한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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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번영 복음에 대한 불편한 진실
  • 정양호
  • 승인 2020.11.11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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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신학의 허와 실 ( I )

 

정양호 (KPM)

“당신도 할 수 있다” “당신도 거부가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 “Yes, You Can” ”불가능이란 없다”, 책표지만 보아도 금방 돈을 벌 수 있고 당장 거부(巨富)가 되는 지름길이 보이는 데 가난했던 시절 누구나 한 번 쯤은 빠질 수 있는 미혹거리가 분명하였다.

40여년전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 ~ 1919), 노만빈센트필(Norman Vincent Peale, 1898~ 1993) 로버트슐러(Robert Harold Schuller,1926~2015) 등의 긍정적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번영 성공시리즈의 책이 나오기가 무섭게 읽었는데 그 중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로버트슐러 목사의 작은 책에 쑥 빠져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거의 외우다시피 읽었다. 마침내 로버트슐러 목사가 여의도 순복음교회 부흥회 강사로 왔었을 때 ‘이 분이 도대체 어떤 분인지 얼굴이라도 보아야겠다’ 고 생각하고 서울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현재 이 번영신학이 어디에서 발생하여 얼마만큼 더러운 거짓복음으로 전 세계교회를 심각한 영적 질병으로 끌고 가고 있는지, 어떤 목사들, 어떤 교인들이 매료되는지 경험한 분들도 많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눈먼 시절의 번영신학의 실제 경험담

45년전 교직 발령을 대기하면서 농촌에서 용돈이라도 벌목적으로 모내기 작목반을 운영하였다. 학교만 다녔기 때문에 동네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여 대원모집도 쉽지 않았고, 누구네 논을 어떻게 등록 접수를 하여, 어떻게 값을 매기고, 어떻게 모내기철 기한내에 신속하게 모내기 일을 진행할 것인가 쉽지 않았지만 긍정적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교과서대로 “불가능이란 없다!”를 손바닥, 방벽, 천장까지 써붙이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無不能於信者也”를 인장(印章) 둘레에 세겨 넣고 다니면서 말씀을 중얼거리면서 열심히 일하였다.

어디서 힘이 나오는지 잠을 못 자도 피곤하지 않았고, 성공적으로 일을 잘 마쳤고, 내 손으로 처음 번 큰 돈을 만져보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섬기는 교회 소강댓상을 헌물을 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약통을 어깨에 메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농약을 벼논에 주었다. 약의 독성 때문에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주어야 상식인데, “나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마스크도 없이 바람의 방향에 관계없이 거침없이 일을 밀어붙였다.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은 후 교회의 수요 밤예배에 참석하였다. 예배 중간에 갑자기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서 구토증세가 심하였다. 형제들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정신은 또렷한데 혀가 굳어져 말도 못하고, 온 전신이 마비증세가 심하여 일어설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차도 다니지 않는 시골의 한 밤 중인데 느닷없이 택시 한 대가 나타나 다행히 병원에 입원을 하여 해독제를 맞고 살아났다. 그러나 긍정적 적극적인 사고에 중독되어 하나님의 경고의 싸인인 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교사로 재직시에 남들은 명절 때마다 고향 귀성 차표 예매로 줄을 서고 난리를 쳤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 마디로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것을 믿고 사는데 그까짓 차표 쯤이야 문제될 리가 없었다. 한번은 추석 명절 고향 가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무작정 강남터미널로 나왔다. 예매가 끝난 지가 한달 전인데 예매 창구는 닫혀 있었고, 표가 있을 리 만무하였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여러 궁리 끝에 익산까지 가는 전혀 모르는 차를 타려고 대기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연극을 하기로 하였다. 검표원 앞에서 그 할머니는 감사하게도, “우리 아들과 꼭 함께 가야한다.” ”우리 어머니와 꼭 함께 이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고 역할극이 검표원을 감동했던지 열외 의자를 하나 붙여 주어 가게 되었다.

돌아올 때도 이미 기차표가 매진된 상황이라 역 가까운 지역의 티켓이나 사서 기차 역 문만 통과하면 되고, 그후 방향을 수원행으로 도둑차를 타도 기차역 안에서 승무원에게 표만 끊으면 되는 시절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명절 후라 표를 끊는 승무원이 아예 기차 칸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기차 안에 서있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달리는 기차는 멈추지 않고 수원 역까지는 도착하였다. 수원 역을 통과하면서 차표도 없이 도둑차를 탔기 때문에 벌금을 물어야 하는 데, 돈이 없어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주면서 나왔다. 어떤 목표가 세워지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목표만 도달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결과였는데 좌우지간 목표는 도달했지만, “이런 내 모습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정상적인 교사의 태도인가? 예수쟁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자기 반성을 하기 시작하였다. 매사에 이런 스타일로 접근하면서 그 삶이 성경적인지 아닌지 분별하지 못하고, 심지어 법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사고방식을 정당화하였는데, 이 사고 방식의 심각한 함정이 있었다.

교사시절 교실 뒷문 입구에 큰 거울을 내걸어 놓고 아이들이 교실을 들어올 때마다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너, ***(자기이름)는 할 수 있어!” 라고 거울과 대화를 의무적으로 하게 했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특히 의기소침하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통하여 좋은 교육 효과를 보기도 하였다.

한번은 방학기간에 집집을 순회하며 책을 파는 친구 따라 아침부터 비즈니스 훈련에 참여하였다. 비즈니스 교육 내용이 성경말씀 인용만 없을 뿐 대부분 긍정적 적극적 사고방식 책들에 나와 있는 내용과 똑같은 내용을 보며 자못 놀랐다.

한국 교회의 번영신학의 대가인 조용기 목사는 “The Fourth Dimension”(1984, 4차원의 영적세계)에서 자기가 필요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반복해서 자기자신이 선포 예언 하면서 기도하라고 한다. 예컨대 차가 필요할 경우, “나는 이미 차가 있다” 여러 차례 반복 예언 선포를 하면서 자기 암시, 세뇌를 시키라는 뜻이다. 그러면 그 기도 목표가 선포 예언한대로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당시에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앞을 다투어 이런 교회성장학(Donald Anderson McGavran) 목회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평신도로서 번영신학이 무엇인지도 아무것도 모르고, 다른 성경 말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10여년을 푹 빠져 그것이 제일 잘 믿는 바른 신앙이라고 찰떡 같이 믿었다.

이와 같이 당시엔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나 번영신학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거의 없어 개인적인 적용 단계에서 아동 심리 상담 측면에서 보듯,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신앙이 한갓 욕망(慾望)을 채우는 도구에 불과하게 만들게 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가면서 영어 성경을 읽는 가운데,

“For the desires of the flesh are against the Spirit, and the desires of the Spirit are against the flesh, for these are opposed to each other, to keep you from doing the things you want to do.”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Against”라는 이 단어가 내 마음을 세차게 찔렀다. 나의 신앙적 욕망이 과연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소욕, 그 바램을 따라가고 있는지, 아니면 성령을 의지하고 따른다고 말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 채우기, 즉 성령의 의지와 상관없는 실제적인 성령님의 적(敵, Against)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며 심각하게 회개하였다. 그후 서재 맨 앞부분에 자랑스럽게 버티고 있던 긍정적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나 번영신학에 관계되는 많은 책들을 모두 쓰레기통으로 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번영 복음의 가면을 벗기다

번영신학의 가장 큰 문제는 기록된 성경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눈에 보이는 번영과 기적을 산출하기 위해 긍정적 적극적 사고방식을 동일시하고 무아지경에 빠뜨리는 암시, 체면술까지도 다 동원한다.

몇 년전 베트남 한 선교사가 펫 북에서 “축복 시크릿 3법칙, 선포-바라봄-감동”을 반복하여 주장하였다. 이미 알고 있는 “4차원세계, The Fourth Dimension” 번영 신학의 내용을 그대로 전하고 있어서 번영신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잠깐 댓글 논쟁을 하였었다. 그는 주장하기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선포하시고 보시고 좋았더라”(창1) 하나님께서 선포하자 빛이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하나님은 좋다는 느낌을 가진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어떤 축복이든 일단 말(Proclaim 언어적)로 선포 예언을 하여 만들어지는 시각 이미지, 생각, 환상 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그려 바라보고(Seeing, 시각적) 그 그림에 몰입되어 패러다임이 전환되어 그 감동, 기쁨과 감사의 감정(Emotion 감각적)이 느껴지는 단계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실제로 일어난다.(눅4:18,행2;17)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회복되고, 탁월한 능력, 복된 환경, 좋은 관계, 하나님의 완벽한 인도, 용서의 명분과 능력, 전천후 평안, 불굴의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 백만 불짜리 미소와 감사까지 회복되었다. 행복을 위한 모든 것이 예수 안에서 회복된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이니”(히11:1) 우리가 가진 이 위대한 믿음으로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누림으로 천국을 만끽하라”고 아주 그럴듯하게 말한다.

한 줄만 보아도 번영신학의 속이 다 들여다 보인다. 창세기의 “가라사대”의 선언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의지, 의지의 적용, 그 결과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동시에 다 보여주신 것이지, 하나님이 “가라사대” 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면 축복이 이루어진다는 해석은 마치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앉아 흉내내는 웃기는 발상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을 선택함으로 이 땅에서 부와 권력을 만끽하지 못한 모세의 믿음은 잘못된 선택인가?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성경 전체를 축복과 번영의 사고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보기 때문에 이런 해석을 하게 된다. 어떻게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하나님이 주신 엉터리 예언 메시지로 의도적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면 이것도 자기생산 직통계시인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렘23:16)

한번은 은사주의자 베니힌(Benny Hin)이 남아공 케이프타운 큰 운동장에서 집회를 하였다. 동료 선교사의 강권에 의해 참석하였는데 찬양대를 향해 “할렐루야” 소리를 지르자 한 300여명 되는 찬양대가 한꺼번에 모두 쓰러졌고 앞에서 안내하던 사람도 쓸어졌다. ”Good Morning, Holy Spirit!!!”라면서 설교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조건 쓸어 뜨려 황홀경 엑스타시를 경험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하였다. 헌금 봉투를 나눠주면서, 현금, 카드도 좋다, 하나님이 몇배로 불려줄 종자돈을 내라” 라고 헌금을 강요하였다. 한마디로 심령부흥회가 아니라 번영신학 돈벌이 비즈니스 쇼 현장이였다.

“누군가 그를 비판하면 성신 기관총을 들고 머리를 날려 버리고 싶다”고 말했던 이 번영의 기수, 장풍의 사나이가 장사가 잘 안되는지, 작년에 “초점이 빗나가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 번영복음을 인정하고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향하는 구원메시지에 초점을 맞춰 남은 생애를 보내고 싶다”(2019.9)고 반성하는 투로 말하였다.

“복음에 가격을 매기는 일은 성령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다. 만약에 내가 ‘$1,000으로 당신의 빚을 해결하세요”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그들을 꾸짖을 것이다. 이건 복음과 축복을 사는 행위이며 성령님을 슬프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헌금(심음의 법칙)은 속임수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이 너무 역겹다.” 그의 조카인 코스티 힌(Costi Hinn)목사는 “회개가 아니라 터무니없고 화려하게 떠들었지만 새로운 것이 없다” 라고 깎아내렸는 데 상당히 일리가 있다.

한국에서 200만부가 팔렸다는 “긍정의 힘- 믿는 대로 된다” 조엘 오스틴 (Joel Osteen,1963~, Lakewood Church)은 현재 번영신학의 대가로 달리고 있다. 그는 주장하기를, “부정적인 것은 절대로 떠올려서는 안 되고, 어떤 경우에나 마음 속에 긍정 암시, 마인드컨트롤을 계속 심어야 한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전능하신 우리의 아버지시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좋아하신다. 그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번영하기를 원하신다. 땅 위에서 크게 번영해야 자신에게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번영을 원하고 말하기만 하면 즉각 다 이루어 주신다" 라고 강조한다.

이는 지극히 듣기 좋고, 믿음 충만한 것 같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 같은데 최면적 암시에 하나님의 전능하심까지 이용하는 지극히 비성경적 주장이다. 과연 성경의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인가? 죄악을 품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정당화시켜도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시는 분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때도 하나님께서 보시고 판단하여 “ Yes! No! Wait!” 선별적으로 이루신다. 성경에 어디에 심리학적, 자기 최면적인 긍정의 힘, 성공을 강조하는 말씀이 있는가?

Joel Osteen은, “1. 믿음대로 된다. 2.내 안의 긍정성이 행복과 성공을 부른다. 3. 나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한다.” 즉, ”긍정적 고백운동을 하는 “Word of Faith” 라는 비성경적 단체의 교리를 추종하고, 번영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고, 낙태와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몰몬교를 진실한 기독교로 인정한다는 말할 필요도없이 이단적 인물이다.

그의 설교는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는 것이 아닌, 설교 주제를 위한 인용(引用)일 뿐, 성경의 전후 문맥을 무시하고 문자 하나를 연결해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주제에 맞도록 끌고 가는, 인간의 죄성(罪性)을 전혀 지적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품는 하나님만을 강조하는 그의 가르침은 반쪽 복음(sub-gospel)이 아니라 반 복음(anti-gospel)에 가깝다. 성경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무조건 사랑하는 신을 결정해놓고 그것에 성경의 하나님을 맞춰 끼워넣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류 응열, 총신)

번영신학은 성경을 설교 수단으로 이용하지만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절대적인 가치는 무너지고 성경은 번영을 위한 증거도구. 그 복음의 자리에 건강과 물질, 그리고 자신을 최대한 계발해 인생을 극대화(極大化) 하고, 삶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최고 행복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행복은 상대적인 우위에서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사명을 향해 순교자로 살아갈지라도 하늘을 바라보며 천상의 미소를 짓는 사람들, 이들이 하늘에 속한 참 그리스도인이다. 성도들의 촛점이 오직 예수가 아닌 세상 것, 무엇이나 믿고 구하면 소원성취, 무병장수, 일확천금, 달콤한 기분 좋은 말만 듣고 아멘 하려 한다면 아직도 어린애요, 병든 신앙일 뿐이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하나님은 건강과 부를 약속하셨는가?”

존 맥아더 (John MacArthur)는 ”Does God Promise Health and Wealth?”에서 다음과 같이 번영신학을 해부하였다.

번영신학은 성경신학도, 복음도 아닌 사이비종교(cult)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카리스마 운동은 다양한 컬트를 낳았다. 그것은 세분화하여 성령운동, 긍정고백(Positive confession)등으로 불리우지만 미신적이고, 물질적이다. 거룩함을 요구하지도 않고, 긍정적 믿음만 있으면 일확천금도 벌고 무병장수를 약속하는 인기 있는 메시지로 그런 교회들이 산불처럼 번성할 수 있다. 인간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공리적 이유로 항상 신(神)을 발명한다. 번영신학은 기독교를 인간이 만든 가장 낮은 종교 체제로 바꾸어 인간의 목적을 위해 신(神)을 강요하고, 속이고, 조종하고, 통제하고, 착취할 수 있는 일종의 무속 부두교가 되어버렸다. 이런 신자들은 하나님을 자기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반대로 성경은 성령께서 신자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분이라고 하였다. 이런 번영신학은 초대교회를 황폐화시킨 파괴적 탐욕의 일부와 매우 흡사하다. 사도바울은 거짓선생을 수용하거나 결코 화해하지 않았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딤전6:5~17)

이 컬트는 돈에 대한 사랑에서 생성되고 그 정욕을 수용하기 위해 종교를 발전시킨다. 유다는 그 시대의 탐욕 행위자들에 대해,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11-13)

베드로는 이렇게 썼다. 교회 안에 탐심으로 지어낸 말, 즉 돈 사랑, 돈 복음, 돈 메시지, 부의 설교로 이득을 삼는 타락한 거짓선생들, “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벧후2:1~3)

바울은 탐심이 우상 숭배라고 말했고,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이 부도덕의 메시지나 탐심의 메시지를 가져오는 사람과 함께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에베소서 5: 5-7)

이 번영 신학을 만지는 모든 사람을 이단적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있는 모든 요소가 이단적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왜곡된 신론,그리스도론, 왜곡된 인간론, 인간의 작품에 기반을 둔 신학이다. 탐욕의 죄를 정당화하는 성화과정 등으로 기독교의 중요한 신학을 오해, 오염, 왜곡, 타락케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라는 개념이 없다. 오순절 지도자중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중 하나인 하긴 (Kenneth Hagin, The Authority of the Believer)은 말하기를, “예수님은 지상에서 권위가 없는데 그것은 모두 교회에 위임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103:19)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딤전6:15)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백 능력” 분야의 톱으로 알려진 찰스 캡스 (Charles Capps)목사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주인이 아니고, 인간이 일할 수 있도록 풀어주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도구와 믿음에 의존한다. 그분은 그분의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인간의 말에 응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해제하는 것은 당신의 힘에 있다. 당신은 강력한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 “방언”(The Tongue : A Creative Force)에서 “하나님은 그의 주권을 사람들에게 넘겨 주었다.” 즉 그가 말하는 것은, “당신은 충분한 믿음이 있다면 당신의 말로 창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당신은 돈을 원한다면, 믿음으로 가득 찬 말로 그것을 만들어라. 치유를 원한다면, 믿음으로 가득 찬 말로 그것을 만들어라.” 이것이 번영신학 설교자들의 실체이다. 따라서 “믿음, 축복, 번영” 이라는 단어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기도하고 아예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를 없애 버렸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왕좌(王座)를 빼앗아 새로운 우상인 자아(自我)를 섬기는 것이다.

방송 설교자로 유명한 케네스 코플랜드 (Kenneth Copeland, Hagin의 아들)은, “당신이 거듭났을 때 우리는 신성한 본성의 참여자가 된다. 절대 완전한 영이 인간에게 주입되어 하나님의 자녀, 즉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신(神) 클라스 레벨이 되었다. 그리스도예수의 영광 가운데 그의 풍성에 따라 나의 필요를 채워 주겠다고 말씀하셨고, 재정적 번영, 정신적 번영, 육체적 번영, 가족 번영을 얻었다.”라는 신성 모독 이단 교주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 놓았다.

트리니티 방송 네트워크 (Trinity Broadcasting Network)의 수장이면서 온에어 호스트이 자 오늘날 종교 방송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Paul Crouch는, “새로 태어날 때 오는 그 새로운 창조물은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그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아버지, 아들, 성령이 연합하는 것은 그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러한 관점에서 삼위 일체의 일부가 된 것이라고한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 우상이 되어버렸으니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이다.
 

나가는 말

선교사역을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이 성령께서 주장하시고 원하시는 사역인지, 아니면 성령님과 상관없는 내 욕망을 채우고만 있는지 수시로 점검한다. 열등감이 많고 용기없는 학생들에게 자기 체면을 통한 치료 효과나 세일즈맨들이 고객에게 어프로칭할 때, “안 산다고 할 때가 최고의 기회이다”라면서 도전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얼마나 정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인간의 원초적 무능력, 죄인의 욕망과 한계를 망각하고 “불가능이란 없다!”고 계속 큰 소리치다가 큰 코 다칠 날이 닥칠 것이다.

이 달콤한 번영 복음은 그 기본적인 오류에서 모든 오류가 흐르고 있다. 건강과 번영이 모든 기독교인의 신성한 권리라고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자신이 하나님 신(神) 이니까 그럴 권리와 자격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번영신학의 시스템에서 신자들은 모두 신이 되어버린다. 대화의 상대가 절대 아닌 사탄에게 입을 연 그 순간,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아심이니라.”(창3:4-5)

창세 에덴동산으로부터 지금까지 마귀의 가장 치명적인 유혹은 너희가 "신(神)과 같이 되리라!!!"는 바로 이 한방의 미혹이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기 원하여 능력전수에 미혹된 자들은 누구나 마귀의 이 한방에 바로 넘어가기 십상이다. 목회자든 그 누구라도 아직 초자연적 능력을 구하고 있다면, 무서운 영적 전염병, 마귀의 슈퍼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슈퍼맨 망상 신드롬에서 벗어나기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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