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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신서의 행위언약 사상은 사도들과 칼빈의 신학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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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신서의 행위언약 사상은 사도들과 칼빈의 신학이 아닙니다
  • 정이철
  • 승인 2020.08.12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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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교도사상가들과의 토론 1

그 동안 정이철 목사는 '그리스도께서도 율법을 지켜 자신과 우리의 영생의 의를 얻었다는 능동순종 교리'에 대해 많이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 되시고자 친히 죄와 무관한 사람으로 오시어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심으로 우리에게 의와 구원이 되시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사람 대신 율법을 지켜 구원의 의를 취득하기 위해 성육신하였고, 아담이 못한 율법의 선행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여 자신과 우리의 구원의 의를 얻었다는 가르침이 없다. 이런 그릇된 사상은 청교도 운동 시대에 영국의 회중교회 청교도들에게 처음 발생하여 서서히 장로교회 청교도 등에게도 전파되었다. 그리고 청교도 혁명 시대에 생겨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이러한 사상의 흔적이 들어가 있다.

정이철 목사의 비판으로 시작된 청교도 신학 논쟁이 이미 일어났다. 한국의 청교도 사상가들(한청사)이 정이철 목사를 비판하는 주요 내용이 알려지고 있다. 정이철 목사의 주장에 의하면, 세계 교회가 청교도 운동으로 인해 왜곡된 기독교 교육을 받았고 이제 청교도 신학의 문제들이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이철 목사를 비판하는 한국의 청교도 사상사(한청사)들의 주장에 의하면 정이철 목사는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깊은 오류에 빠져 있으므로 괜히 정이철 목사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누구를 괴롭히기 위한 연구를 삼가해야 한다는데 우리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므로 양측의 주장의 요지를 비교하면서 무엇이 성경적 신앙으로 바르게 인도하는 설명인지 각자가 판단하게 하자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정 목사의 주장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도 삽입되어 있는 행위언약 사상은 이와 같이 기독교의 근본을 허물고 하나님의 성품까지도 왜곡한다."

한청사의 판단>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행위언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 이해의 토대이며 성경적 원리와 동일하다.”

청교도 신학교는 웨신서 7장의 행위언약 개념이 성경적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면 이 부분의 논쟁에 대한 핵심은 무엇일까?  다음의 두 가지이다.

1)하나님이 흙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아담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이었는가? 아닌가?

2)창조 당시 아담은 처음부터 영생과 하나님 백성하나님의 신분과 모든 하나님의 복된 은사들과 은혜를 받았었는가? 아닌가?


한청사는 창조 당시 아담이 온전한 하나님 백성이 아니었고 그에게 영생도 없었다고 보았다. 창조 이후 아담이 완전하게 율법에 순종하면 장차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생과 하나님 백성됨을 주시겠다고 계약했다고 보았다. 문론 아담이 창조부터 얼마나 오래 순종하는 기간이 요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창조 당시의 아담을 이렇게 보는 시각은 영국의 청교도 운동 시대에 처음 등장했다. 창조 당시의 아담을 이렇게 보는 시각은 그 이전부터 있었으나, 이 사상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널리 신학화 한 사람은 회중교회 청교도 운동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였다. 퍼킨스는 엘리자베스 여왕 당시 국교회에 장로교회 제도를 도립하려는 개혁안이 좌절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다. 제도의 개혁을 불가능하고 오히려 제도의 개혁을 시도하면 설자리마져 위태로워지는 현실을 보았다. 그래서 제도의 개혁을 포기하고 개인의 경건, 헌신을 장려하는 청교도 운동의 새 전략을 마련했다.

개인들이 구원을 위해 경건과 헌신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 그에 합당한 신학도 만들었다.  그래서 퍼킨스가 만들어 낸 것이 청교도 신학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언약 신학이다. 아담이 율법의 완전한 순종과 선행을 조건으로 영생을 받기로 하나님과 계약했으나 아담이 실패하였다는 '행위언약',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의 선행에 성공하여 그리스도 자신과 우리의 구원의 의를 얻으시어 전가하셨다는 '은혜언약'을 수립하였다.

행위언약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비, 호의, 사랑, 은혜로 말미암는 사람의 구원과 영생은 기독교에 없다. 사람이 완전한 순종과 선행으로 구원의 자격을 준비하고 스스로의 공로로 영생을 획득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호의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율법에서 나온다. 신약 시대에도 구원이 율법에서 나오기는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율법의 선행을 통해 얻으신 구원의 자격이 우리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율법 중심의 종교이다.

퍼킨스가 1590년대에 도입한 행위언약 이론과 웨신서의 행위언약 내용을 비교하면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 하에서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인간과의 계약이다. 이 언약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약속과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약속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 The Works, vol 1, 32.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47)

“행위언약은 완전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윤리법은 인간에게 그의 본질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종을 명령하는 하나님 말씀의 부분이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금한다 ... 율법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순종을 요구하는 법과 그리고 순종과 결합되어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 The Works, vol 1, 32.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48)

퍼킨스의 이러한 언약 신학의 도입으로 개인들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 순종하고 헌신하고 경건하게 살게 만드는데 큰 열매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은 아담이 창조될 때 이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하나님 백성이었고, 하나님 백성의 위치를 스스로 거부하지 않는 한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와 복락을 누릴 것임이 생명나무로 보증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당시는 청교도 운동시대였고 국교회를 물리치는데 온 힘을 집중하던 시기였다. 청교도 종파들끼리 뭉치는 것만 중요했다. 어떤 청교도 종파의 주장이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에서 벗어났는지 점검하고 지적하는데에는 중대한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칼빈의 제자 존 낙스에 의해 시작된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 청교들에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잉글랜드 회중교 청교들의 사상이 들어갔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웨민 총회에도 참석했던 사무엘 러더포드마져도 아담이 선행의 공로에 근거하여 영생의 법적 자격을 얻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아담은 순종의 모든 과정을 완수한 후에 일종의 법적인 권리를 획득했을 것이다. 이는 땅의 식물과 열매에 대한 권리를 일종의 법적 권리가 아닌 창조주의 선물로부터 얻은 것과는 별도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에게는 견인의 약속이 주어지지 않았다. 아담이 의지하고 행함에 있어서 견인의 영향력이 아담 안에서 작동할 것이라는 어떤 약속도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사무엘 러더포드, <생명언약>(안상혁 역), 475-476)

“만일 아담이 순종 가운데 지속적으로 머물렀다면, 그는 무죄한 상태에서 면류관에 대한 법적인 권리를 주장했을 수 있을 것이다.”(사무엘 루더포드, 생명언약(안상혁 역), 480)

1590년대 스코틀랜드 언약신학자 로버트 롤록도 같은 창조 당시 아담 상태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였다. 고신 우병훈 교수의 논문 "스코틀랜드 최초의 언약신학자, 로버트 롤록의 생애와 신학"을 보면 롤록이 다음과 같이 퍼킨슨과 동일한 사상을 가졌다고 한다.

“이 언약은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곧장 체결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기시고, 그것을 지키게 하셨는데, 인간은 그 조건을 수락했다.”(로버트 롤록)

“행위언약의 조건의 주요한 요소들은 십계명의 개별 항목들이다. 그런 까닭에, 율법이 새겨진 돌판들이 ‘언약의 돌판들’이라고 불리는 것이다.”(로버트 롤록)

창조 당시 아담은 하나님 백성이었는가? 아니었는가? 창조 당시 아담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영생을 소유했었는가? 아니었는가? 이 질문은 기독교의 향방을 바꾸는 중요한 질문이다. 다시 질문해 보자! 하나님은 사람에게 노력하여 영생의 자격을 얻으라고 명령하셨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창조된 아담에게 영생과 모든 은혜를 다 주시고 아담이 영원히 하나님 백성으로 살고 하나님 자신도 영원히 아담의 하나님으로 남기로 언약하셨는가?

정답은 후자이다. 만일 곧 다시 죽을 아담에게 노력하여 영생을 얻으라고 명하셨다면, 생명나무의 의미가 사라진다. 어차피 죽을 아담에게 “정녕 죽으리라!”라고 경고하신 것도 어색해진다. 하나님이 불순종한 아담이 그대로 죽게 버려두고 다른 사람을 창조하여 백성 삼으시지 않고, 아담의 언약 파기의 죗값을 대신 친히 지불하심으로 언약을 복원하고 다시 아담과 그 후손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는 것도 어색해진다.

청교도들은 기독교의 향방을 가르는 이 중요한 문제에서 성경의 가르침과 칼빈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다. 율법 순종을 강조함으로 사람들을 경성하게 하는 효과를 얻기는 했으나 구원에 관한 성경의 진리에서 이탈하였다. 그리고 청교도 혁명 시대에 작성된 웨신서까지 아무 비판없이 이런 내용이 수록되었고, 지금 우리도 역시 아무 비판없이 그대로 맹종하고 있으므로 성경의 진리가 매우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칼빈과 정통 개혁주의자들은 창조 당시 아담이 하나님의 불완전하지 않은 온전한 백성이었고 영생과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가진 사람이었다 가르쳤다. 하나님이 아담의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을 주기로 했고, 아담의 마음에 영생의 기준인 율법이 기록된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청교도 신학의 가르침은 매우 생소한 기독교 사상이다. 칼빈은 태초의 아담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 (기독교강요, 2.1.4)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어떤 때에는 성례로 약속하신 일을 우리가 믿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례 자체를 우리에게서 빼앗으신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을 다른 말로 옮긴다면, "나의 약속의 상징에 집착해서 헛된 확신을 즐기지 못하도록 불멸에 대한 소망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빼앗으리라"는 말이 될 것이다.”(기독교강요, 4.14.12)

서철원 박사는 태초의 아담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류의 원죄는 하나님 밑에서 왕 되는 것을 거부하고 직접 하나님같이 되려는 데서 성립한다.”(서철원,「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 4:그리스도론」(쿰란, 2018), 163.)

“첫 인류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므로 곧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므로 죄인이 되어 생존권을 박탈당하여 죽게 되었다(창 2:17).” (서철원,「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 4:그리스도론」(쿰란, 2018),166)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섬겨야 할 존재인데 하나님을 반역하므로 영원한 멸망과 죽음에 종속하였다.”(서철원, 그리스도론, 253)

“첫 인류는 창조주 하나님을 반역하여(창 3:1-19) 하나님 백성 되기를 거부하므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창 2:17; 3:19).”(서철원, 그리스도론, 264)

“그리고 언약을 체결하시어 사람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창조 주 하나님만을 섬기게 정하셨다 ... 이렇게 큰 호의를 입어 하나님의 백성 된 자가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의 인격과 엄위와 영광을 짓밟힘 당하고 무시당하셨다. 사람이 반역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로 결행하므로 그의 인격과 엄위를 무시하였다. 하나님 섬김의 명령을 어기어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과 엄위를 무시하였다. 언약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주자가 되기로 하였다.”(서철원, 그리스도론, 195)
 

맺는 말>

다시 한번 중요한 질문을 해 본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자기의 희생(죽음)으로 되찾는 종교입니까? 아니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 백성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위해 하나님 사람이 되시어 율법의 선행으로 구원을 챙겨주는 종교입니까?”

웨신서 7장에 삽입되어 있는 청교도 시대의 행위언약 사상을 그대로 따르면 아담은 하나님의 백성 됨과 영생을 누려보지 못했다. 아담은 자기의 노력과 공로로 영생을 얻었어야 했는데, 그리 못하고 저주받고 죽었다. 그런데 아담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그가 못한 율법의 선행을 다하심으로 아담에게 구원을 챙겨주셨다는 것이 된다. 기독교가 이런 종교일까? 정말 성경은 기독교를 이렇게 가르치는가? 성경은 오직 하나님이 죄없으신 사람으로 오시어 언약을 파기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의와 구원을 주었다고 한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그래서 서철원 박사도 웨신서의 행위언약 사상이 전적으로 그릇되었다고 가르친다.

"행위언약은 위의 언약체결 논의에서 살폈듯이 잘못 설정된 언약개념이다. 처음 창조 시 아담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셔서 계명을 지키면 영생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조건으로 언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경륜에 전적으로 어긋난다. 성경 그 어디에도 그런 시사는 없다. 단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과 그 준수 강조를 행위언약으로 바꾼 것이다."(서철원 박사, 인간론, 168-171)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창조경륜을 몰랐으므로 선악계명이 하나님 섬김을 하느냐 거부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은 율법을 지켜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이 구원섭리를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히브리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언약의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여겨 오늘의 참상을 이루어냈습니다."(서철원 박사, 왜 웨민(WCF의 구원론과 아브라함의 구원이 맞지 않습니까?, 바른믿음, 2019.7.1)

무엇보다 성경이 창조 당시 아담과 하나님의 언약이 앞으로 얻어야 할 영생에 대한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고 태어난 아담이 영원히 하나님 백성으로 남고 하나님도 아담의 하나님으로 영원히 남기를 약속하는 언약이었음 밝히고 있다.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9:15)

아담이 반역하여 파기된 언약을 복원하고 다시 아담을 백성 삼으시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죄없는 사람이 되시어 언약 파기 죗값을 대신 지불하심으로 다시 아담과의 언약을 복원하였고 아담과 우리 모두를 다시 백성삼으셨다. 아담과의 첫 언약은 백성으로 창조된 아담이 영원히 하나님 백성으로 하나님도 영원히 아담의 하나님으로 남기로 안 언약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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