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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에 대한 오해 (1) : 개신교스콜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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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에 대한 오해 (1) : 개신교스콜라주의
  • 김만옥
  • 승인 2020.04.20 10: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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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적 칼빈주의(Orthodox Calvinism)

칼빈주의(Calvinism)를 정의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고 어렵기에 조직신학자 신복윤은 ‘신학지남(제122호 / 1962. 9)’의 <칼빈주의>에서 “칼빈주의 삼대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B. B. 워필드 박사는 칼빈주의는 그 자체가 유신론이요, 복음주의라 말하였다. 칼빈주의는 존 칼빈의 개인의 사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보다는 좀더 넓은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개혁파 교회로 알려진 프로테스탄트교회에 의해서 고백된 교리체계가 바로 칼빈주의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신학적이며, 윤리적이며, 철학적이며,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개념의 전(全) 체계라고 하여 더 넓은 의미로 말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칼빈의 위대한 감화 아래서 칼빈주의가 종교개혁 이후 오늘날까지 프로테스탄트의 여러 나라에서 우세하였으며, 따라서 인간의 사상에다가 영원한 특징을 남겨 놓았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인간의 생활사 문명인의 사회질서 심지어는, 국가의 정치기구에까지도 영원한 특징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칼빈주의를 말함에는 모호하리만큼 다양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으나 깊이 생각하면 지금의 칼빈주의는 ‘다양성’으로 인하여 ‘변질’된 현실로 칼빈주의를 ‘재정립’해야 하고 최우선적 방법이 ‘정통적 칼빈주의’ 추구로 “칼뱅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칼뱅을 우상화하자는 작업이 아닌 그가 추구한 신학 사상의 특징인 ‘종말론’으로 무천년설, ‘구원론’으로 이중은혜설, ‘성찬론’으로 영적임재설이 매우 성경적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7세기 이후에 변질된 역사적 배경에는 개신교 스콜라주의, 청교도주의, 극단적 칼빈주의, 신칼빈주의, 복음주의가 큰 영향을 주었고 이번 글에는 ‘개신교 스콜라주의’를 논하려 한다.

그런데 개신교 스콜라주의를 논하는 것이 어렵지만 일반적 기독교 역사 관점에서 역사신학자 홍삼열의 ‘17-18세기 개신교 정통주의’를 간단 요약하면 “개신교 교파들이 카톨릭으로부터 그리고 서로에게서 분명히 구분되는 자체의 교리로 무장했다는 의미에서 "정통주의"란 표현을 사용하였고, 중세 스콜라주의의 경우에서와 같이 학교를 배경으로 어려운 철학 논리에 기초하여 교리체계를 세웠다는 점에서 "개신교 스콜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개신교스콜라주의 특징을 논하는데 다음과 같다.

“① 첫째로 개신교 정통주의는 자체의 명확한 신앙고백을 만들어서 그것을 교인들에게 강요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루터교인들은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을 받아들여야 했고, 개혁교회 교인들은 도르트회의의 신앙고백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또한 개신교 교파들끼리 서로 대화를 피하고 심지어 자기들 신앙고백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교파 사람들을 이단시하는 풍조까지 생겼습니다. 루터란들은 칼빈주의자들이 루터의 공재설을 부인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불신앙으로 공격하면서 칼비니스트들의 잘못과 카톨릭의 잘못을 비교하면 칼비니스트의 잘못이 훨씬 더 크다고 주장했고, 칼비니스트들은 루터란들이 교황제도의 나쁜 잔재들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공격했습니다.

② 둘째로 개신교 정통주의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철학방법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방법론을 이용하여 16세기 개혁가들의 사상을 조직/체계화했습니다. 루터는 신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먼저 버려야 한다고 공언하였지만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고 이상한 철학논리로 자기주장을 합리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 16세기말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대부분 개신교 신학자들은 그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이용하여 루터와 칼빈의 신학을 정리했습니다. 결국 내용은 카톨릭 신학과 다르지만 방법론은 아주 비슷하게 되어 버린 셈이죠.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 개신교 신학자들은 중세의 스콜라 신학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로 학교를 기반으로 신학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그에 따른 방대한 양의 책들을 저술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예나대학의 교수였던 요한 게르하르트는 Loci Theologici라는 9권의 조직신학 책을 썼는데 나중에는 그것을 23권으로 확대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이러한 2가지 중에 매우 중요한 것이 둘째로 루터와 칼뱅이 비판한 ‘철학 방법론(특히 아리스토텔레스)’으로 ‘신학교육’을 체계화하였다는 것은 16세기의 신앙과 성경 중심의 신학을 부족으로 판단하고 다시 중세처럼 스콜라주의를 받아들여 17세기부터는 신앙의 자리에 ‘사변’이 자리를 잡고 성경의 자리에 ‘철학’으로 신학교육을 한 것이다.

그래서 역사신학자 황대우가 쓴 ‘칼빈과 칼빈주의 : R.A.Muller 교수의 견해에 대한 비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대우 교수(고신, 역사신학)
황대우 교수(고신, 역사신학)

“칼빈 Calvin과 칼빈주의 Calvinism 사이의 관계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라는 관점을 통해 평가된다. 이러한 연속성과 불연속성 논쟁의 핵심은 대부분 예정론과 결부되어 있다. ... (중략) ... 칼빈은 자신의 [강요]를 성경입문서로 간주한 반면에, 17세기의 개혁 스콜라주의 학자들은 그것을 개혁주의 교리교본의 하나로 간주했다는 것이 칼빈과 칼빈주의의의 차이의 출발점이다. ... (중략) ... 칼빈 이후의 칼빈주의는 칼빈보다 훨씬 더 교리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대표적인 결과가 '구원의 서정 ordo salutis'에 대한 이론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구원의 서정은 성경적 가르침 이상의 구조를 가지지 않으며, 후기 시대의 학자들에게서와 같이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지 않다. 이런 과정에서 대표적인 개혁 스콜라주의자들은 중세의 스콜라주의에서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방법론인 질문제기를 통한 토론방식을 그들의 신학방법론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은 분명 칼빈과 다르다. ... (중략) ... 칼빈으로부터 시대가 멀어질수록 개혁주의 진영에서의 칼빈의 영향이 점차 줄어들었고, 개혁 스콜라주의를 방어하는 결정적인 무기는 칼빈의 [강요]가 아니라 철학의 논리가 되었다.”

그리고 역사신학자 지형은은 ‘17세기 경건주의 운동과 한국 교회’에서 “1555년을 개신교 정통주의 시대가 시작된 때로 볼 수 있다. 이 때부터 각 종파는 무력대신 논리로 싸웠다. 교리 논쟁이 극심해졌다. 이런 가운데 교리 논쟁을 위해서 논리적이며 개념적 수단이 필요해졌고 이런 필요성 때문에 루터가 앞문으로 쫓아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슬그머니 다시 뒷문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시기에 수많은 교리 논쟁을 통하여 교파마다 신조를 만들었고 이로써 거대한 교리 체계가 생겼다. 중세의 스콜라 사상 체계와 비교할 수 있는 ‘개신교 스콜란 신학’이 건축된 것이다.”

그리고 역사신학자 이상규도 ‘개혁주의생명신학과 한국교회 - 신학은 학문인가 삶의 체계인가’에서 “기독교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베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중 원인설(four-fold causality)에 의해 결정된 방법론과 경향성을 이용했다. 어떻든 이런 변형된 형태의 스콜라주의가 가져온 한 가지 결과가 성경은 신적 진리를 진술하는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신앙체계의 교리서 혹은 신학에 대한 체계적인 산물로서의 교리서로 인식 되었다. 이러한 추세에서, 수사학이 논리에 의존하게 되었고, 설교가 교리에, 진리가 철학의 제일원리에, 감정이 이성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경향이 개혁신학에서 생명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칼뱅과 17세기 이후 신학의 ‘불연속성’의 주장들은 기독교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기에 다수의 입장이 ‘불연속성’이었는데 다시 논쟁을 일으킨 현대의 대표적인 역사신학자 리처드 멀러(R.A.Muller)의 ‘연속성’ 핵심 주장을 간단 요약하면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스콜라주의를 방법론적으로 사용을 하였지만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을 훼손한 것이 아니고 다 스콜라주의식으로 저술한 것이 아니고 17세기 개혁파 신학은 성경신학을 무시하지 않았고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스콜라주의를 모두 거부한 것이 아니고 고유한 의미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이러한 주장에서 그의 ‘신학적 배경’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에 ‘신학 학력’은 최고의 진보적 신학교(종교혼합주의에 불교적 명상도 실천)인 뉴욕의 유니언신학대학원(M.Div.)과 감리교회 신학이며 진보인 듀크대학교에서 감리교회 신학자인 데이비드 스타인메츠로부터 박사 논문을 지도받았다. 즉 멀러는 장로교회 신학교육을 받아 본 적도 없기에 사실상 칼빈주의도 모르고 자신의 스승이 감리교회 목사이며 신학자이고 개신교스콜라주의자이기에 멀러도 확실하게 영향을 받은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하고 미국의 칼빈신학대학원이 칼빈주의도 모르고 개신교스콜라주의를 추구하는 자를 임용한 것은 이 신학교의 심각한 신학적 문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복음주의 역사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17세기의 신학이 지성사의 흐름에는 어떠한 유의미한 기여도 하지 못했고 사변적인 스콜라주의가 한 세기 후 개신교 신학에 뿌리 내린 것이다.”로 한 것은 아주 명쾌한 신학적 표현이다.

그리고 마틴 로이드 존스의 후임인 R. T. 켄달은 청교도의 대 연구가이며 조직신학자로 유명한 제임스 패커에게 지도받은 박사 논문에서 칼뱅과 칼빈주의자의 ‘불연속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16세기 루터와 칼뱅의 신학은 후계자인 멜란히톤과 베자로 인하여 개신교스콜라주의가 되어 신학을 체계화를 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사변적 신학’이 되고 결과는 신앙 중심이 아니라 한 것은 핵심적 이해이고 켄달의 박사 논문을 지도한 패커도 인정하였기에 통과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건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경건주의는 칼빈주의 관점에서 문제이지만 개신교스콜라주의 문제는 확실하게 본 올바른 관점)에 다수의 역사신학자의 견해이고 다수의 종교 사회학자도 16세기 이후에 형식화가 되어 신앙의 순수성과 생명력을 잃었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들은 리처드 멀러와 다른 견해로 분명하게 바른 역사적 이해로 17세기 이후의 신학은 루터와 칼뱅의 신학 사상하고 다른 것을 간단하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루터와 칼뱅은 ‘종말론’으로 무천년설이지만 17세기 이후에 청교도와 신칼빈주의, 한국장로교회가 후천년설과 전천년설이고 칼뱅은 ‘구원론’의 핵심이 이중은혜설이지만 베자와 청교도와 신칼빈주의가 이중예정설이고 칼뱅은 ‘성찬론’이 영적임재설이지만 청교도와 한국장로교회는 츠빙글리의 기념설이고 루터와 칼뱅은 ‘구원의 순서’를 부정하지만 17세기 이후에 긍정이 되었고 부정하는 현대의 칼빈주의자도 있다.

그리고 다음 연재인 ‘청교도주의’에서 논하겠지만 칼뱅과 청교도는 분명하게 신학적 차이가 있고 청교도가 작성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최고의 개신교스콜라주의 작품이고 더불어 웨신서의 구원론 원조인 돌트 교회법(돌트 신조로 오역)도 있다.

그리고 조직신학자로 알려졌으나 성경학자인 벌코프는 ‘신학 방법론’이 개신교스콜라주의이기에 조직신학자 유해무의 비판대로 하나님이 2인칭(당신)이 아니라 3인칭(그)이 되게 하였기에 칼뱅하고 분명하게 신학적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장로교회의 보수 교단 신학자와 목사는 정신을 차리고 ‘협소한 관점’에서 벗어나 다수의 신학자가 인정하는 ‘개신교 스콜라주의’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자세가 되어 ‘수구’가 아닌 진정한 ‘보수’인 것을 증명하여 다시 칼뱅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ad Calvinus, 즉 신앙과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

김만옥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개혁신학연구원, Knox Theological Seminary(D.Min.), Grace Theological Seminary(D.Miss.Pro.)에서 공부하였고, <성찬식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등 6권의 저서와 1권의 공저를 출판하였다.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강사였고, 현재는 경북 영주의 바른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바른성경아카데미(RBA) 원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을 위해 실천하려고 연구하는 실천신학자이고, 또한 장례지도사로서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다. potentia-de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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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 2020-04-21 23:01:23
김박사님 참으로 귀한 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 보면서 더욱 명료한 칼빈신학도 바른 성경의 해석을 통한
목회와 설교를 그리고 신학을 연구하고 말해야 하는데
참으로 내 그릇을 보니 부끄럽기가 그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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