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빙글리의 종교개혁 공로 : 자국어로 드리는 예배 시도,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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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빙글리의 종교개혁 공로 : 자국어로 드리는 예배 시도, 정착
  • 이승구
  • 승인 2019.08.2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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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빙글리의 둘째 기여는 역시 자국어로 하는 예배의 시도와 그 정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매우 자명한 것이 중세 유럽 교회에서는 그렇게 자명한 것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 교회들은 어디서나 라틴어로 예배하였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여겨졌다. 예배에 참여하는 민중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안 되었고, 또 민중 편에서도 그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고 심지어 영적인 것이어서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는 잘못된 전통이 낳은 잘못된 전통의 고착화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1세기 신약 교회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구속에 근거하여 그 십자가 구속에 감사하면서 구약 교회 와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을 예배했었다. 다른 지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여 십자가 구속을 믿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게 되었을 때도 그들은 그 지역의 언어로 예배하거나 적어도 그들이 공유하는 통상어였던 코이네 희랍어로 예배하였다.

그러다가 아마도 350년경부터는 서방 교회에서 라틴어로 예배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을 것인데, 그 이후로 라틴어로 예배하는 것이 전통적인 일이 되어서 자국어로 하는 예배가 사라져 버렸다. 중세에는 이것이 매우 고착화 되어서 예배는 늘 라틴어로 행해졌고, 주일 저녁 예배에 미사의 전이나 중간이나 후에 한 순서로 자국어로 설교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이를 '프론'(the Prone)이라고 했다.

취리히 시의 시민 사제로 섬기게 된 쯔빙글리는 이 가끔 있던 일을 보편화하여 모든 예배를 당시 쯔리히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위스 투의 중세 독일어로 인도하고 모든 신도들이 잘 이해하는 가운데서 예배에 참여하게 하였다. 일상적 언어로 예배한 것이며, 자국어로 예배를 한 것이다. 당시 상황으로서는 이는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일도 쯔빙글리가 취리히에 오자마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지만 쯔빙글리는 매 주일 아침에 자국어로 하는 설교 후에 자국어로 하는 성찬이 있기를 원했으나, 한 동안 그렇게 못한 것 같다. 1519년부터 설교만 그곳에서 쓰는 언어인 스위스 독일어로 하였고, 1523년 8월 이후 그로스뮌스터에서는 세례 예배 때에 독일어로 하는 정화된 예배식(a purified liturgy in German)이 사용되었다.

1523년 쯔빙글리가 “미사 규정에 관하여”(Regarding the Canon of the Mass, De canone missae epichiresis)를 써서 제출했는데, 여기서 미사 규정을 검토하면서 이 때는 사제의 특별한 복식도 묵과하고 신학적으로 문제없는 라틴어 챤트도 허용했다. 이 때 그의 극도로 조심하는 태도로 논란이 일어나자 다시금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미사 규정에 관한 책에 대한 변호”(De canone missae libelli apologia)를 1523년 10월 9일에 써서 제출한다.

아직 본격적이고 제도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1523년 겨울 이후에는 취리히에서 교회의 절기들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고, 예배 전의 행진들(procession)도 더 이상 거행되지 않았으며, 목회자들은 꼭 미사를 집례해야 한다는 의무에서는 벗어나 있었고 각 설교자에 따라 느슨하게 변용하는 일이 있었다. 이런 것에 대해 취리히의 참사회원 호프만(Canon Hofmann, 1454-1525)을 필두로 하는 전통주의자들과 콘스탄츠의 대주교였던 휴고 주교(Bishop Hugo)의 간섭과 반대가 있었다. 심지어 스위스 연방들과 그 회의체(Diet)의 반대도 심각했다. 이와 함께 샥손 지역 신학자인 제롬 엠저(1478-1527)의 미사 옹호(Canoni Missae Defensis)에 대한 쯔빙글리의 반론(1524년 8월 20일)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1525년에 취리히 시가 쯔빙글리의 지도 아래서, 사제의 미사 복식과 라틴어 챤트도 다 제거한 새로운 형태의 예배 형식이 나타나면서 참으로 새로운 일이 진행된다. 쯔빙글리와 그의 아주 가까운 동료들인 엥겔하르트, 레오 유드, 오스왈트 미코니우스, 메간더 등의 청원을 아주 놀랍게도 아주 속히 받아들여서, 고난 주간 수요일인 1525년 4월 12일에 취리히의 시 의회(council)는 천주교적 미사를 공식적으로 폐지하였다. 이로써 각 회중은 각기 나름의 예배 방식을 가질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 다음 날인 1525년 4월 13일 소위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에 쯔빙글리는 그의 동료들과 이 새로운 방식으로 성찬 예배를 집례하였다.

이 일은 예배 전체가 자국어로 드려졌다는 것과 그것을 포함한 의미이지만 개혁된 성찬 예배를 드렸다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물론 후에 종교개혁이 된 곳마다 다 자국어로 예배를 드리게 된다. 성경도 자국어로 번역하여 읽고, 예배도 자국어로 하여 자신들이 무엇을 믿는지를 알며, 자신들이 예배식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개혁자들을 따르는 사람들, 특히 개혁파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었다. 자국어 성경을 가지게 된 것에 못지않게 자국어로 하는 예배의 참석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사실 쯔빙글리가 이 일을 시작할 때 당시 취리히 사람들은 자국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자국어로 하는 예배가 결국 자국어 성경을 요청한 것이고, 후에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주었을 때 개혁파 성도들이 열심히 그것을 읽고 그 뜻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결과를 내었던 것이다.

모국어로 예배하게 되는 일이 쯔빙글리에게서 본격화 되었다고 말씀하였다. 이 첫째 기여는 사실 처음에 신약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의 예배의 모습에로 돌아 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의 본래적 그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종교 개혁은 항상 성경에 의한 개혁이면서 교회의 최기 모습에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말씀에로 되돌아가고, 처음 교회의 모습에로 되돌아 간 것 – 그것이 종교개혁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때 쯔빙글리는 후대 개혁자들이 더 강조한 바를 미리 반영하면서 우리들이 고안한 바를 경멸하고, 우리들 인간들이 거창하게 여기지만 하나님께서 가증한 것이라고 한 것들을 버리며,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만 가지고 그를 숭배했어야 한다.”고 외쳤다. 1531년에 취리히, 베른, 바젤, 그리고 개신교 도시 동맹에서 실행하고 있는 예배 형식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우리는 그리스도가 정해준 것이 아닌 모든 것을 예배의 내용에서 빼내어버렸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도들이 전해 준 전통에 맞고 올바른 성찬식”인 이것은 “그리스도교 본질에 맞는 아주 단순한 예식”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우리는 미사를 미사답게 만들었습니다”고 선언한다. 그가 제시한 성찬 예배의 방식을 다음과 같다:

적당히 길고 올바른 설교 후에

♦성찬 상(table)에 발효되지 않은 떡 놓음

특별한 옷이 아닌 평상복을 입은 목회자(Pastor)와 두 명의 보조자
  
(assistants)가 앞에 나와 성도를 향하여 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를 통상어로 선언함

보조자들은 온 회중을 대표하여 “아멘”으로 대답.
 

[헌상 기도]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회중이 무릎 꿇음)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모든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시고 모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고, 숭배하며, 찬양합니다. 이제 우리 비참한 죄인들이 진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드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우리에게 전해 주신 대로, 그리고 성령님의 하나됨 안에서 영원히 사시며 통치하시는 당신님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성찬 제정사 봉독]

  목회자 왼편의 조사가 고전 11:20-29 봉독
  
마치고 온 회중과 함께 “주님을 찬양합니다.”(“Praise be to God.”)

 목회자: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Glory to God in the highest.”)

  집사: “땅에는 평화(가 넘치기를 원합니다.)”(“And on earth peace.”)

 부집사: “바르고 평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To men a sound and tranquil mind.”)

  조사들: “우리는 당신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당신님을 복되다 하옵니다.”

(“We praise Thee, we bless Thee.”) (이 찬양을 끝까지 함)

  집사: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The Lord be with you.”)

  부집사: “그리고 당신의 영과도 함께 계십니다.”(“And with Thy spirit.”)


[요한복음 6장 읽기]

집사: 여러분께 봉독할 말씀은 요한복음 6장입니다.

회중: “오 주님, 영광을 당신님께 돌리나이다”(“Glory be to Thee, O Lord.” )

집사: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 6:47-63 (마치고 성경에 입을 맞추고)

목회자: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Glory to God who deigns to forgive all our sins according to His word.”)

보조자들: “아멘”
 

[신앙고백]

목회자: “나는 한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집사: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부집사: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이와 같이 사도신경을 끝까지 교대로 봉독
 

[성찬에의 권면]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규례대로 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것을 갈망합니다. 주님은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고 우리 죄들을 씻기 위해서 자신의 피를 흘리셨으므로 기억과 찬양과 감사로서 이 예식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예식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바울의 말씀을 따라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이 어떤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믿음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 주님의 죽음에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며, 아무도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고, 그것 때문에 죄짓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 같이 무릎 꿇고 기도하겠습니다.”

다같이 [주께서 가르친 기도] 하고, 집사와 부집사가 “아멘.”
 

[성찬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님께서는 우리를 같은 믿음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님께서 주신 몸으로 한 몸 되게 하셨습니다. 당신님께서는 당신님의 외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위해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 자유와 사랑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당신님의 명령을 믿음으로 이루게 하시고, 또한 우리가 실수하지 않게 하시며, 진리되신 당신님을 그 어떤 위선적인 행동으로 더럽히거나 분노케 하지 않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가 당신님의 몸을 받은 사람들답게, 당신님의 자녀들답게, 그리고 가족답게 거룩하게 살게 하옵소서. 그렇게 해서 불신자들이 당신님의 이름과 영광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를 지켜 주옵소서. 그래서 당신님의 이름과 영광이 우리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지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더 굳센 믿음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고, 모든 의심에서 벗어나서, 오직 살아계셔서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 영원히 믿게 하옵소서.”

모든 교인들이 “아멘.”

떡을 들고 “떡을 잡으십시오. 떡을 드십시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부셔진 나의 몸이라,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 하신 말씀대로 하십시다.”라고 하면서 보조자에게 전달 떡을 뗌.

(잔을 너무 높지 않게 적당히 들고) “식후에 또한 잔도 이와 같이 하셨습니다.”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고 하셨으니, “마실 때마다 기억하여 행하십시다. 따라서 여러분이 이 떡과 이 잔을 먹고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면서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를 높이 찬양하고 그에게 감사하셔야 합니다.”(고전 11:23-26)
 

[배병, 배잔]

보조자들이 떡을 돌리면, 모든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받고 적당히 떼어내고 다음 사람에게 건넵니다. 그 후에 보조자들이 성찬 잔을 들고 한 사람씩 잔을 돌립니다.

(이 일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한명의 집사는 요한복음 13장부터의 말씀을 읽습니다)

[감사의 말]

(모든 잔을 다 거두고 나서) “모두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찬양)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라”

집사: “주님의 이름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찬양 합니다.”

부집사: “해 뜨는 곳부터 해지는 곳까지”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라 시 113:1-9을 이와 같이 교대로 읽고)
 

[권면과 축도]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함께 성찬을 거행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고백한 이 감사의 말을 통해서 우리가 불쌍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고 흘리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통해서 깨끗해지고,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받았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우리들 모두가 형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사랑과 믿음과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고백을 실천하기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그 고통스러운 죽음을 깊이 간직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또한 우리가 매일 우리의 죄에 대하여 죽고, 모든 선한 일만을 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도우며, 성령의 은혜와 은사로 강해져서,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존경받도록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복 내려 주시기 원합니다. 그가 그 분의 얼굴을 우리를 향하여 비추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감사기도]

“살아계시고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 하나님, 당신님께서 주신 모든 선물과 사랑을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아멘.”
 

[파송]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혹은 “평화 가운데서 돌아가십시오.”(“Go in peace.”)

이승구 교수는 총신대학(B.A), 서울대학교 대학원(M.Ed), 합동신학원(M.Div), The University of St. Andrews(M.Phil., Ph.D), Yale Universty Dvinity School(Research Fellow)에서 신학연구를 하였고, 현재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톰 라이트에 대한 개혁신학적 반응>(합신대학원출판부, 2013), <우리 이웃의 신학들>(나눔과 섬김, 2015) 등 약 15권의 귀중한 저서들과 다른 수 많은 역서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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